Luck rushed after winning the first prize in the lotto RAW novel - Chapter 77
77화 이 시나리오, 정말 당신이 쓴 겁니까?
나는 영화제작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지만, 아직은 먼 미래의 일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지혜 씨에게 여행 도중 겪은 일들을 말해준 덕분에, 독립 영화라는 힌트를 얻게 되었다.
그뿐인가.
“제 지인 중에 실력 좋은 영화감독이 있어요.”
이지혜 씨는 내게 꼭 필요한 감독까지 소개해 줄 수 있었다. 이쯤 되면 세상이 내게 영화를 만들라고 부추기는 것이 아닐까.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이지혜 씨에게 물었다.
“그 감독이 누구인가요?”
“…제 대학교 후배예요. 그런데 그리 유명하진 않아요. 독립 영화를 많이 찍긴 했지만요.”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별로 유명하지 않은 감독인데, 실력이 괜찮다고?’
내가 그러한 의문을 품고 있다는 것을 이지혜 씨도 눈치를 챘는지, 그녀가 빠르게 설명을 이어 나갔다.
“제 후배, 그러니까 최지훈 감독이 유명해지지 못한 이유는 자신만의 확고한 신념 때문이에요.”
“신념이요? 그 신념이 대체 뭐길래…”
“지훈이의 신념은 예술성이 없는 영화는 절대 찍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상업적인 영화를 찍지 않는다는 말인가요?”
“네, 맞아요.”
그 말에 나는 고개를 갸우뚱 했다.
“신념도 좋지만, 그렇게 계속 하다간 굶기 딱 좋을 텐데…”
나는 이지혜 씨에게 물었다.
“그럼 그분은 지금도 계속 영화에 도전하는 중인가요?”
그런 나의 물음에 이지혜 씨가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아뇨. 지금은 다른 일을 하고 있어요.”
“어떤 일을 하고 계시는데요?”
“…카페 바리스타요.”
“…….”
역시.
이지혜 씨의 말에, 나는 최지훈이라는 사람이 어떤 인물인지 대충 알 수 있었다.
‘예술에 목숨을 걸다 현실에 좌절하게 된 사람.’
영화감독을 꿈꾸는 사람은 대부분 예술성 있는 명작을 추구하며 시작하곤 한다.
하지만 그 예술성이라는 것이 배고픔을 동반하게 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그들은 선택을 하게 된다.
‘예술성을 포기하고 대중성을 택할 것인지, 아니면 끝까지 신념을 지킬 것인지.’
대부분은 대중성을 택하게 된다. 관객들의 입맛에 맞고, 적당한 오락성이 가미된 영화를 찍는다면. 적어도 굶지는 않으니 말이다.
‘오히려 대박이 날 가능성이 커지지.’
게다가 상업영화를 찍게 되면, 어느 정도 가시적인 결과가 즉각적으로 눈에 들어오게 되니. 성취감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예술성만을 추구하는 영화는 다르다.
‘대부분은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해.’
오락성은 전혀 없는, 진지한 영화에 관객들은 환호하지 않는다. 일부의 관객들이 좋아해 주긴 하겠지만, 계속 거기에 집착하고 있다간 굶어 죽기 딱 좋다.
‘그런데 이지혜 씨가 말한 그 최지훈이라는 사람은 굶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예술적인 영화를 찍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는 거잖아?’
그런 인물은 투자자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 투자자는 기본적으로 이윤을 추구하기에, 상업적이고 대중적인 감독을 더 좋아하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나는 아니지.’
나는 기본적으로 이윤을 추구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내 만족을 위해, 영화를 제작하고 싶은 것뿐.
‘물론, 그렇다고 운 좋은 내가 실패할 것 같진 않지만.’
아무튼, 나는 뚝심있고 고지식한 최지훈이라는 인물에 흥미가 생겼다.
“…지훈이는 정말 괜찮은 감독이에요. 못 믿으시겠으면, 제가 지훈이가 찍은 영화 몇 개 보내드릴게요.”
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느라, 잠시 말이 없던 것을. 이지혜 씨는 내가 그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고 오해한 모양이었다.
“남의 영화를 그렇게 막 보내면, 불법이지 않나요?”
“…어차피 돈이 안 되는 영화라서요…. 게다가 지훈이는 오히려 자신의 영화가 널리 알려지는 것을 더 좋아해요.”
뭐, 그렇다면야.
“그럼 그 영화들 전부 제 메일로 보내주세요.”
“네. 아마 보시면, 제가 왜 지훈이를 추천했는지 아시게 될 거예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지혜 씨에게 최지훈 감독의 연락처를 요청했다. 이에 이지혜 씨는 매우 기뻐하며 그의 연락처를 알려주었다.
“…그런데 이지혜 씨, 최지훈 감독하고는 어떤 사이신가요?”
“…예?”
“아니…. 본인 일도 아닌데, 너무 적극적이신 것 같아서요. 방금도 지기 일처럼 굉장히 기뻐하셨잖아요?”
이지혜 씨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런 사이 아니에요. 예전에 지훈이한테 도움을 받은 게 많아서, 이번에는 제가 지훈이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을 뿐이에요.”
이어서 이지혜 씨는 9년간 집 밖을 나서지 않으며 많은 주변인이 연락이 끊겼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지훈이는 최근까지도 저를 걱정하며 정기적으로 연락을 해준 고마운 후배예요.”
“…그 정도면 진짜 최지훈 씨가 이지혜 씨에게 마음이 있는 것 아닙니까?”
“아뇨, 절대요.”
이지혜 씨는 단호하게 부정했다.
“왜냐면 지훈이는 이미 결혼했거든요.”
이번에는 내가 놀라고 말았다.
“…그분 몇 살이신데요?”
“올해로 26이요.”
“…그럼 결혼은 언제…”
“지훈이 딸이 올해로 4살이니까… 21살에 결혼했겠네요.”
“…와우.”
가정이 있으면서도 여전히 예술성을 추구하다니.
어떻게 보면 뚝심 있고, 또 어떻게 보면 가장으로서 책임이 없다고도 볼 수 있었다.
‘어쨌거나 내게는 딱 좋은 사람이야.’
뜻만 맞는다면, 한눈팔지 않고 열심히 내가 원하는 영화를 제작해줄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예술성 있는 작품만 찍는다고 했지?’
나는 그런 시나리오 작성에 자신이 있었다.
‘게다가 이지혜 씨가 최지훈 감독의 영화를 보내준다고 했으니, 그의 영화를 보고 나면, 어떤 시나리오를 적어야 할지 감이 잡힐 거야.’
“그럼 부탁드릴게요.”
“네.”
다시 한번 이지혜 씨에게 영화를 부탁한 나는, 곧장 사무실의 컴퓨터 전원을 켰고. 가볍게 시나리오를 작성할 생각으로 문서 프로그램을 실행하였다.
그런데 이지혜 씨는 아직도 내게 볼 일이 남았는지, 사무실을 떠나지 않고 머뭇거리고 있었다.
“…저, 사장님.”
“네, 말씀하세요.”
“이런 말씀 드리기 주제넘을 수도 있겠지만… 혹시, 카페를 확장하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네?”
카페 확장이라니. 생각해본 적 없었다.
“갑자기 그건 왜요?”
“요즘 가게에 방문하는 손님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은 알고 계시죠?”
“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일시적인 현상이지 않나요?”
당장 오늘만 해도, 나를 보려고 찾아온 외국인들이 굉장히 많이 보였었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한국에 잠시 머물다 떠날 사람들이니, 장기적으로 봤을 땐 그리 유의미한 숫자가 아니었다.
“…제 생각은 조금 달라요.”
이지현 씨는 자신이 지켜본 관점으로 설명을 이어 나갔다.
“그동안 제가 지켜본 사장님은 계속해서 무언가의 이슈를 터뜨리는 재주가 있으시더라고요.”
“음… 의도치 않게 그렇게 되었네요.”
“저는 사장님의 그런 점이 한두 번이면 끝날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건 제 착각이었죠. 사장님은 끊임없이 무언가의 사건을 일으키시더라고요.”
이지혜 씨는 내가 앞으로도 계속 사람들의 시선을 끌 것이며, 그렇게 된다면 가게를 찾아오는 손님도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라 말하였다.
“그래서 가게를 확장하면 어떻겠냐고 물어보신 거예요?”
“맞아요. 보아하니 사장님도 그동안 벌어들인 가게 수입과 패션 사업에서 벌어들인 수입이 꽤 많아 보이기도 했고, 마침 이 건물 1층의 가게가 매물로 나왔길래. 놓치기 아까운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흠.”
이 건물 1층이 매물로 나왔다는 소식에 나는 눈이 반짝였다.
‘만약 정말로 1층으로 가게를 확장한다면, 카페 드리머가 더욱 번성할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우리 가게 밖에서 줄을 서시는 손님들의 수고를 덜어드릴 수도 있으니. 가게 확장은 매우 괜찮은 생각이었다.
‘조금 고민을 해봐야겠어.’
“알려줘서 고마워요. 긍정적으로 검토해 볼게요.”
“네, 감사합니다.”
“그런데 혹시, 이 말을 하고 싶어서 아까 사무실로 따라 들어온 거였나요?”
이지혜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생각과 다르게 다른 이야기를 먼저 하게 되었지만요.”
나는 이지혜 씨에게 진심으로 고마웠다. 늘 나 대신 연주를 해주기도 하고, 이렇게 가게 운영에 도움이 되는 조언도 해주니 말이다.
“그럼,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영화는 집에 가서 바로 보내드릴게요.”
그렇게 이지혜 씨가 떠나고, 나는 모니터에 문서 프로그램을 다시 띄웠다.
‘어떤 시나리오의 영화를 만들면 좋을까.’
독립 영화의 런닝 타임은 대략 30분에서 2시간으로 상업영화보다 짧은 것이 일반적이었다.
‘상영시간이 길어질수록 제작비가 많이 들겠지.’
제작비를 아끼기 위해선 상영시간을 짧게 만들던가, 영화의 배경이 되는 공간을 제한해야한다.
‘집안이나 지하실 같은 좁은 공간이라던가, 야외 촬영하더라도 장면 전환이 많지 않은 영화를 만들어야 해.’
등장인물도 적으면 적을수록 좋았다.
‘중요한 것은 스토리야.’
극단적으로 영화에 사람이 한 명만 나오더라도, 스토리가 괜찮으면 관객은 영화를 재미있게 볼 수 있다.
‘음….’
나는 문서창의 빈 화면을 계속 응시하며, 생각하고 또 고민했다.
우웅-
그러던 중, 이지혜 씨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영화 보냈어요.]메일을 확인해 보니, 여러 편의 영화가 첨부파일에 들어있었다.
‘그럼 어디….’
나는 최지훈 감독의 영화들을 하나하나 감상하기 시작했다.
.
.
.
최지훈 감독의 작품은 각각 30분에서 1시간짜리 영화가 많았다. 작품 수도 꽤 많았던 탓에, 내가 그의 영화를 모두 감상하고 났을 땐 이미 새벽 2시를 넘기고 있었다.
‘…왜 이지혜 씨가 최지훈 감독을 그렇게 추천했는지 알겠어.’
재밌었다. 무척이나.
물론, 상업적인 관점에선 꽝이었다. 하지만 각각의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확실하고 다양해서, 각각의 영화 모두 몰입하며 볼 수 있었다.
‘특히, 사람의 공감력을 자극하여 감동을 주는 부분이 많네.’
최지훈 감독의 영화는 어설프고 식상한 신파극이 아니라, 사람의 근본적인 마음을 울리는 그런 감동을 주곤 했다.
그런 최지훈 감독의 특성을 파악한 나는, 머릿속에 영감이 마구 떠오르기 시작했다.
‘좋아!’
타다다다-!
나는 키보드를 빠르게 두드리며, 어떤 이야기를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
일주일 후.
나는 최지훈 감독과 만날 수 있었다.
“…지혜 선배의 부탁으로 나오긴 했지만, 저는 아무 시나리오나 영화로 만들지 않습니다.”
단정하고 짧게 자른 머리와 셔츠의 맨 윗단추까지 잠근 최지훈 감독의 두 눈에서 어떠한 고집이 느껴졌다.
“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일단 읽어보시죠.”
탁.
나는 테이블 위에, 내가 작성한 시나리오를 올렸다.
“그럼….”
최지훈 감독은 내 시나리오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읽기 시작했다.
팔락.
팔락.
점심시간의 카페는 무척이나 시끄러웠지만, 진지하게 시나리오를 읽는 최지훈 감독의 주변은 고요할 뿐이었다.
팔락.
이윽고, 마지막 장을 읽은 최지훈 감독이 내 시나리오를 다시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시나리오, 정말 당신이 쓴 겁니까?”
최지훈 감독의 두 눈동자가 열의로 불타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