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 rushed after winning the first prize in the lotto RAW novel - Chapter 78
78화 무척이나 재밌었습니다
이지혜의 간곡한 권유가 아니었다면, 최지훈은 이런 자리에 절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선배도 오지랖은… 지금에 와서 영화라니….’
그는 아내와 딸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영화제작에 손을 뗀 지 오래였다.
‘내가 만든 영화는 돈이 안 되니까.’
그가 만드는 독립 영화는 놀라울 정도로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제작비를 회수하지 못하는 일이 허다했고, 늘 손해를 보았다.
‘언제까지고 아내가 벌어오는 돈에 빌붙어 살 수는 없어.’
딸아이도 점점 자라는 와중에, 철없이 꿈만을 쫓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상업영화를 찍는다면 모를까.’
하지만 아무리 돈이 되어도, 이익만을 목적으로 하는 상업영화는 도저히 찍고 싶지 않았다.
‘영화에는 철학과 예술이 있어야 해.’
그것이 담겨 있지 않은 영화는 진정한 영화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최지훈은 독립 영화를 제작할 기회라는 이지혜의 말에도 시큰둥했었다.
윤현민이라는 사람이 어떤 인물인지는 모르겠지만, 보나 마나 영화를 제작하려는 목적이 돈 때문일 것이 뻔했다.
그러므로 최지훈은 이 만남이 매우 회의적이었다.
“시나리오를 직접 작성해오셨다고요?”
“네. 한 번 읽어보세요.”
“…혹시 이쪽 관련 일을 해보셨거나, 대학교 전공이 이쪽 계열이셨나요?”
“아뇨.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지난 일주일간 밤을 새워가며 노력했습니다.”
그 말에 최지훈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흥, 겨우 일주일? 시나리오 쓰는 게 어디 쉬운 줄 아나.’
밤을 새웠다지만, 최지훈은 오히려 저 남자가 영화를 모독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
‘…어디 얼마나 엉망으로 썼을지, 한번 보자.’
그렇게 최지훈은 별 기대 없이 남자가 작성해왔다는 시나리오를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뭐야, 이거?’
그것은 시나리오라기 보단 소설형식에 더 가까웠다. 하지만 그것의 첫 문단에 적힌 설정은 꽤 신선했다.
[눈앞에 작은 먹이가 꿈틀댄다. 그것은 자신이 방금 잡아먹은 인간의 아기. 좀비는 그 조그만 아기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그것은 식욕 때문이 아니었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떠한 감정 때문이었다.]‘아기와 좀비라니?’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단어의 등장에 최지훈은 흥미로움을 느꼈다.
‘…그래봤자지.’
초보 각본가가 흔히 하는 실수가 있었다. 바로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처음부터 자극적이고 무리한 설정을 집어넣는다는 것이다.
‘그러다간 중후반부에 이야기가 산으로 가게 되어버리기 쉽지.’
최지훈은 이 시나리오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하며, 계속해서 문장을 읽어나갔다. 그런데 페이지를 넘길수록, 이야기는 오히려 점점 탄탄해져 갔다.
‘왜… 재밌는 거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저 윤현민이라는 사람은 분명 시나리오 작성이 처음이라고 말했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짜임새 있는 스토리를 짤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소재도 독특했다. 좀비의 시점에서 그려지는 육아 생활이라니. 말이 되지 않는 모순적인 설정에, 계속 다음 장면이 궁금해져만 갔다.
‘…하지만 이건 그냥 재미만을 추구한 시나리오야.’
분명 흥미로운 스토리였다. 하지만 최지훈이 추구하는 예술성이 이 시나리오에는 없었다.
최지훈은 많은 아쉬움을 느끼며 시나리오를 계속해서 읽어나갔다. 그렇게 잠시 후, 그가 마지막을 장면을 읽기 시작했을 때.
‘이건…’
그는 두 눈을 부릅떴다.
예상치 못한 반전의 등장.
그가 찾던 예술성이 바로 거기에 있었다.
“…이 시나리오, 정말 당신이 쓴 겁니까?”
***
“당연히 제가 썼죠.”
내 대답에 상당히 놀라워하는 최지훈의 반응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예상대로네.’
내가 최지훈 감독에게 보여준 시나리오는 철저하게 그의 취향에 맞게 작성한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저예산으로 만들 수 있게 공간이 한정되어있으며, 관객들의 이목을 끌만한 흥미로운 소재를 골랐지.’
그것은 다름 아닌 좀비였다.
좀비를 모르는 관객은 없기에, 따로 설명하는 장면을 찍을 필요가 없으니 예산을 아낄 수 있다. 또한, 좀비 영화는 언제나 자극적이다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의 흥미를 확실히 끌게 된다.
물론. 좀비 하나만으로는 식상하다고 느낄 수도 있었기에, 나는 전혀 말도 안 되는 설정 하나를 추가했다.
‘아기.’
순수의 결정체인 무방비한 아기와 인간을 잡아먹는 좀비의 만남, 그것도 그 좀비가 아기를 돌보는 스토리라니. 그 누가 이런 이야기의 다음을 궁금해하지 않을 수 있을까.
게다가 아기라는 소재는, 현재 어린 딸의 아버지이기도 한 최지훈 감독의 최대 관심사일 테니. 그에 대한 맞춤 소재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예술성이 부족했지.’
그래서 나는 고민하고 또 고민하여 마지막 반전을 생각해 내었다.
이 이야기의 시작은 좀비는 아기를 처음 만났을 때, 분명 잡아먹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이 조그만 인간에 대한 호기심으로 아기를 돌보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 좀비는 아기를 잡아먹으려는 다른 좀비와도 맞서 싸우고, 아기의 울음에 군인들이 몰려들까 걱정하기도 한다.
또 영화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장면은 집안이었으며, 대사는 오로지 좀비의 나래이션 뿐이었다.
그 한정된 공간 속에서, 주인공 좀비는 시시각각 변하는 자신의 감정을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아기에게 흥미가 생긴 처음의 호기심이란 감정에서, 점점 아기를 사랑하게 되는 좀비의 모습.
그리고 아기를 더 행복하게 만들어 주기 위해. 자신이 위험해질 것을 알면서도, 인간의 거주 구역으로 향하는 좀비의 모습.
주인공 좀비는 결국, 인간 거주지에 아기를 데려다주고 머리에 총알이 박혀 쓰러지고 만다.
‘바로 이 장면에서 반전이 일어나는 거야.’
좀비의 숨이 끊어지기 직전, 그는 잊고 있었던 생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것은 갓 태어난 아이를 안은 채, 환하게 웃는 그의 모습이었다.
‘사실, 좀비는 바로 그 아기의 아빠였던 거지.’
나는 이 결말을 적으면서도 나 스스로에게 상당히 만족했다. 왜냐하면, 이 결말은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좀비가 떠올린 기억은 자신이 잡아먹은 아기 아빠의 기억일 수도 있고, 아니면 자신이 바라던 미래의 모습일 수도 있지. 또는 내 의도대로 좀비가 정말 그 아기의 아빠일 수도 있고.’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결말. 바로 최지훈 감독이 추구하는 예술성 높은 영화라 할 수 있었다.
‘부성애를 강조한 것도 최지훈 감독의 마음에 쏙 들었겠지.’
이지혜 씨에게서 받은 최지훈 감독의 작품을 모조리 본 나는, 그의 작품에서 한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었다.
‘최근에 찍은 영화일수록 부성애가 강조되는 부분이 많았었어.’
그런 영화를 찍기 시작한 시점은 정확히, 최지훈 감독의 딸이 태어났던 시기와 일치했다.
따라서 부성애를 강조한 시나리오는 최지훈 감독의 입맛에 맞을 수밖에 없었고.
“대단하네요, 초보인데 이렇게 짜임새 있는 시나리오를 만드셨다니. 감탄했습니다.”
이렇게 그의 호감을 얻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시나리오가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이네요.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계약을 진행….”
“정말 아쉽네요. 이런 훌륭한 작품을 놓칠 수밖에 없다는 게.”
내가 계약 얘기를 본격적으로 꺼내기도 전, 최지훈 감독은 넌지시 내 제안을 거절했다.
‘당연히 계약할 줄 알았는데?’
방금 내 시나리오를 읽고 난 최지훈 감독의 반응에, 나는 그가 영화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며, 창작욕에 불타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오히려 그가 먼저 내게 계약하자고 달려들 줄 알았다.
“설마, 이제는 영화제작을 아예 안 하실 생각이십니까?”
최지훈 감독의 고개가 위아래로 끄덕여진다.
“이제는 꿈만 바라보며 달려가기엔 짊어진 것이 많아서요.”
그 말에 나는 그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가족들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입니까?”
“그렇죠. 제가 꿈을 좇는답시고, 아내 혼자 일하게 만들 수는 없으니까요.”
그야 그럴 것이다.
‘최지훈 씨가 그간 찍어온 영화는 전부 돈이 되지 않았으니, 이번 영화도 마찬가지라 생각하는 거겠지.’
하지만 그것은 크나큰 착각이었다.
‘운 좋은 내가 있는데, 영화가 흥행하지 않을 리 없잖아?’
게다가 그가 거절하는 이유가 겨우 생계 때문이라면, 곧바로 해결해 줄 방법도 있었다.
“혹시 지금 월급이 얼마나 되십니까?”
“주6일 근무에 월 260만 원 정도 받습니다.”
“260만 원….”
나는 머릿속으로 빠르게 계산을 마쳤다.
“그럼, 제가 최지훈 씨를 연봉 5,000만 원에 고용하겠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저와 함께 영화를 제작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네에?”
본래 나는 겨우 감독 한 명 때문에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새벽에 본 그의 영화는, 그를 꼭 고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끔 했다.
‘대중성이 없는 영화이기에, 그동안 발견되지 못했던 거야.’
비유하자면, 그의 영화는 흙 속의 진주와 같았다.
‘최지훈 씨의 영화는, 한편 한편이 여운이 깊어.’
내가 영화에 관심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이지혜 씨가 왜 그리 반색했는지 이제야 이해가 갔다.
‘자기만 알고 있던 숨은 진주를 다른 사람에게도 널리 알리고 싶었던 거야.’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가치 있는 것을 공유하거나 자랑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다.
‘나 또한 최지훈 씨의 작품을 보고 그런 마음이 들었지.’
그러니 파묻혀 있던 귀한 원석을 가공하여 반짝반짝 빛나게 하는 게, 지금의 내 역할일 것이다.
‘1년에 5천만 원쯤이야 이젠 내게 별 타격이 되지 않기도 하고.’
오히려 5천만 원으로 미래에 유명해질 감독의 호의를 살 수 있다면, 싸게 먹히는 셈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나는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잘 모른다. 그나마 시나리오와 연출만 겨우 손을 댈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러니 영화제작에 일가견이 있는 누군가가 꼭 필요했다.
“…그 말 진심이십니까?”
최지훈 감독은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내게 되물었다.
“네, 진심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제작비도 많이 지원해드리죠.”
“…얼마나요?”
“그동안 독립 영화를 찍으셨을 때 들어간 예산이 얼마 정도 되나요?”
“…한 편당 대략 1,000만 원입니다.”
“그럼 1억 원 지원해드리겠습니다.”
“네에?!”
“최지훈 감독님께서 원하는 대로 한 번 만들어보세요.”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경악했다. 그리곤 진심으로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물었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 겁니까?”
나는 늦은 새벽까지 당신의 영화를 모두 보았다고 말하였다.
“무척이나 재밌었습니다.”
“…….”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보고 싶었습니다. 최지훈 감독님의 이야기를요.”
그는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마침내 최지훈 감독의 입이 열렸다.
“…내 영화 인생은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봅니다.”
최지훈 감독의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그는 물기가 가득 묻은 목소리로 계속해서 말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사장님.”
저야말로.
이렇게 나는 영화제작의 첫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
***
부릉-
최지훈 감독과 정식으로 계약을 마친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도로 위를 달리고 있었다.
‘배우나 촬영 스텝은 최지훈 감독이 같이 일했던 사람들을 데려오기로 했으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지?’
나는 최지훈 감독을 섭외하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흐뭇하게 웃었다. 그런데 그때.
빠앙-!
갑자기 지나가던 차 한 대가 내 앞에 끼어들었다.
‘아 씨. 깜짝이야.’
나는 짜증이 솟구쳐 올랐다. 오늘만 벌써 네 번이나 끼어들기를 당했으니, 오죽할까.
‘처음 벤츠를 샀을 땐, 이 정도만 해도 운전할 맛이 난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것은 그저 내 착각이었을 뿐이었다. 실제로 겪어본 도로 위에선 벤츠 C클래스 따윈 외제 차로 쳐주지도 않는 듯이 무시하기 일쑤였다.
‘차를 바꿀 때가 되었나.’
한강 뷰 집도 매입했고, 한 달에 벌리는 수입도 억 단위를 훨씬 넘기기도 했으니.
‘제대로 된 외제 차를 한 번 뽑아봐?’
끼익-
횡단보도 앞에 멈춰선 나는 신호가 다시 바뀌길 기다렸다. 그러던 중 문득, 건너편에 있는 람보르기니 판매장이 눈에 들어왔다.
‘…일단 구경만이라도 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