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 rushed after winning the first prize in the lotto RAW novel - Chapter 82
82화 이 영화를 평가해주세요
루비스피어 국제 독립 영화제.
세계 각국의 숨은 명작 독립영화를 발굴하기 위해 2019년부터 생겨난 독일의 영화제였다.
비록 생긴 지는 겨우 5년이 조금 넘은 정도였으나, 그 명성은 다른 유명 국제 영화제에 버금갔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4년 전, 루비스피어 영화제에서 발굴한 어느 독립영화 덕분이었다.
[더 타워 (The Tower)]지금은 전세계인이 다 알 정도로 유명했으며, 루비스피어 영화제에서 대상을 받고 본격적인 상업영화로 리메이크된 영화였다.
층마다 계급이 나뉘어 있는, 끝을 알 수 없이 높게 세워진 타워에서 살아가는 최하층 계급을 조명하고 있는 원작 영화는. 20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현대사회를 비판하면서도,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모두의 공감을 사며, 예술성과 현대인들에게 던지는 물음, 그리고 감독 나름의 메시지를 표현하는 방식이 독특하여. 당시 루비스피어 심사위원들에게 큰 충격을 선사했다고 한다.
아무튼 이 영화가 유명해진 덕분에, 당시에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영화를 찾아 관람하는 것이 유행하기도 했었다.
마침, 시기도 코로나로 인해 바깥출입이 통제되었던 때였기에. 사람들은 침대에 누워 너튜브를 보듯, 독립영화를 찾아보게 된 것이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게 되며, 독립영화의 가능성을 보여준 루비스피어 영화제는 그 명성이 가파르게 상승하게 되었고. 지금도 그 명성을 쭉 잇고 있었다.
‘그런 영화제에 우리 영화가 출품해서, 혹시라도 상을 타게 된다면?’
그렇다면 영화제의 상금과 빵빵한 혜택으로, 처럼 정식 영화를 제작할 기회가 생길 것이다.
‘그렇게 제작된 영화는 홍보할 필요도 없이 입소문을 타겠지.’
명성이 드높은 루비스피어 영화제에서 상을 탄 영화라는 것만으로도, 앞에서 설명했듯이 독립영화의 맛을 알게 된 사람들은. 알아서 우리 영화를 찾아보게 될 것이었다.
“사장님은 우리 영화가 그런 커다란 영화제에서 상을 탈 수 있을 거라 보십니까?”
그런데 최지훈 감독은 다소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왜요? 우리 영화 시나리오 좋지 않습니까? 충분히 상을 노려봐도 좋을 것 같은데요?”
“…시나리오는 좋죠….”
“?”
최지훈 감독의 안색이 어딘가 어두워 보였다.
‘자신감이 없어 보여.’
하긴.
그는 늘 예술성을 추구하며 많은 독립영화를 만들어 왔지만, 단 한 번도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니 걱정이 앞서는 것도 당연해.’
기껏 나처럼 좋은 투자자를 만났는데, 그 결과가 실망스럽게 된다면. 또다시 영화에 대한 꿈을 접어야 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하지만 최지훈 감독의 영화가 주목받지 못했던 이유는 그저 그의 영화가 진입장벽이 높았기 때문인데.’
내가 밤을 새워가며 보았을 정도로, 그의 영화는 무척이나 재밌었다. 하지만 그런 나 역시, 그를 영입해야 한다는 목적이 아니었다면. 최지훈 감독의 영화를 선뜻 찾아 보진 못했을 것이다.
‘우리나라 심사위원들도 마찬가지였겠지.’
나는 최지훈 감독과 계약을 하며, 그의 이력을 살펴본 적이 있었다.
‘최지훈 감독도 영화제에 작품을 출품한 적이 있었어. 그것도 여러 번이나. 하지만 그가 지원한 영화제는 전부 국내뿐이었지.’
내 막연한 생각으로는, 우리나라 영화계는 예술성보단 대중성을, 창의성보단 상업성을 더 따질 것 같아 보였다.
‘최지훈 감독의 영화는 그런 우리나라 영화계의 사정과는 잘 안 맞지 않았을까?’
그러므로 최지훈 감독의 영화는 영화제에서 탈락하기 일쑤였을 것이고.
그 실망스러운 결과에 최지훈 감독은 해외 영화제에 감히 영화를 출품할 생각을 하지 못할 정도로 자신감이 내려갔을 것이다.
‘즉, 운이 나빴어.’
처음부터 대중성보단 예술성을 보아주는 해외 영화제에 영화를 출품했다면, 적어도 저렇게 자신감이 떨어지진 않았을 텐데 말이다.
‘…어떻게 해야 최지훈 감독의 자신감을 회복시킬 수 있을까….’
그가 계속 이렇게 자신감이 없는 상태라면, 분명 영화 촬영에 지장이 가고 말 것이다.
‘…아, 그래. 그 방법이 있었지.’
나는 문득 떠오른 좋은 생각에 빙긋 미소를 지었다.
“최 감독님. 혹시 전에 찍었던 영화 중에, 영문 자막이 달린 작품이 있습니까?”
“예전에 처음으로 영화제에 출품했던 작품에 영문 자막을 달아놓긴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물어보십니까?”
“아는 사람에게 최 감독님 작품을 보여주고 싶어서요. 혹시 자막이 달린 버전의 영화를 제게 보내주실 수 있으십니까?”
최지훈 감독이 흔쾌히 허락해주었다.
“친구분이 외국인인가 보네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영화를 아주 좋아하는 친구죠.”
그도 그럴 것이, 그는 70세가 넘도록 열정적으로 영화를 즐겁게 촬영하는 사람이었다.
‘스티븐 에필버그에게 최지훈 감독의 영화를 보여주고, 평가해달라고 하자.’
나는 최지훈 감독의 영화는 분명 스티븐 감독에게 호평받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영화계의 거장에게 받은, 후한 평가라면. 최지훈 감독의 자신감도 다시 회복될 거야.’
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최지훈 감독에겐 비밀로 진행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 스티븐 감독이 혹평이라도 쏟아낸다면. 최지훈 감독의 자신감은 지하를 뚫고 내려가게 될지도 모른다.
“그럼 조금 이따 영화 촬영이 끝나면, 이메일로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우리 영화를 영화제에 출품할지 말지는 나중에 다시 얘기해보도록 하죠.”
“…예.”
스티븐 감독의 평가를 듣고 나서 다시 이 얘기를 꺼낸다면, 최지훈 감독도 긍정적으로 영화제에 출품하는 것을 고려할 것이다.
“그나저나 오전에 있다고 하셨던 중요한 일은 잘 끝내셨나요?”
“아, 네. 그게 어떻게 되었냐면….”
이후, 최지훈 감독과 나는 여러 가지 잡담을 나누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다시 촬영에 돌입해야 할 시간이 돌아왔다.
“레디… 액션!”
나는 최지훈 감독의 옆자리에 앉아, 그가 영화를 촬영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렇게 잘하면서.’
촬영에 돌입한 최지훈 감독에게선, 아까의 자신감 없던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는 진중했고, 날카로웠으며, 카리스마가 넘쳤다. 다만, 아주 약간의 초조함이 느껴지긴 했다.
‘다리까지 살짝 떨고 있잖아?’
그리고 그 초조함은 아까 꺼낸 영화제 이야기 때문임이 확실했다.
“컷!”
“커트!”
“컷트-!”
뭐가 계속 마음에 들지 않는지.
시간이 지날수록 최지훈 감독의 커트 사인이 늘어갔고, 메가폰을 쥘 때마다 그의 얼굴은 점점 굳어져 갔다.
“…김지석! 제대로 안 할래?!”
“…죄송합니다.”
최지훈 감독이 외침에 촬영장의 분위기가 점점 가라앉아 갔다.
.
.
.
촬영이 끝난 것은 저녁때가 훨씬 지난 늦은 밤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초췌한 얼굴의 배우들이 최지훈 감독과 내게 인사를 건네며, 집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배우들과 스텝들이 모두 빠져나갔을 때, 최지훈 감독이 내게 대뜸 사과를 해왔다.
“…못 볼 꼴 보여서 죄송합니다. 오늘 촬영이 잘 안 풀렸네요.”
나는 가만히 그의 눈을 쳐다보며 말했다.
“부담되십니까?”
“네? 아뇨… 그… 아닙니…다.”
어떻게든 부정하려는 최지훈 감독의 모습은 누가 봐도 부담감에 짓눌려있었다.
“영화가 잘 안되어도 되니까. 너무 그렇게 완벽을 추구하진 마세요.”
나는 진심이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나는, ‘영화가 잘 안되면 손해가 좀 나겠군.’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달랐다.
‘내 통장엔 2,000억 원이 넘는 현금이 들어 있으니까.’
1억을 투자했는데 완전히 망해버렸다?
별 상관없었다. 앞으로 같은 시도를 무려 2,000번이나 할 수 있는 돈이 통장에 들어 있었으니 말이다.
‘마음이 여유로워졌어.’
오래간만에 다시 느끼는 여유로운 감정에, 나는 실패에 더욱 너그러워질 수 있었다.
‘애초에 운이 좋은 내가 실패할 리도 없지만.’
그래도 만에 하나 실패를 하게 되더라도, 최지훈 감독을 탓할 생각은 눈꼽 만큼도 없었다.
하지만 최지훈 감독은 이러한 내 마음을 몰랐고. 따라서 자신이 받은 돈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는 것 같아 보였다.
“…실패라뇨.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무려 1억이라는 제작비를 지원받았는데요. 게다가 제겐 과분한 연봉까지 주셨잖습니까….”
“아니, 그거 정말 별것 아닌….”
“제가 실력이 부족해서, 비록 루비스피어 영화제에 나갈 정도는 아니더라도. 꼭 사장님이 투자하신 원금만큼은 돌려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두 주먹을 불끈 쥐는 최지훈 감독에게 나는 무언가를 말하려다 말았다.
‘어차피 지금은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듣질 않겠지.’
지금 최지훈 감독의 어깨에는 너무 많은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 때문에 아무리 간단한 장면이라도 신중에 신중을 기하게 된다.
문제는 너무 신중해져서 오히려 영화 촬영에 지장이 생긴다는 점이었다.
오늘 촬영만 해도 그저 좀비 주인공이 아기가 먹을 이유식을 찾으러 밖으로 나가는 간단한 장면이었을 뿐이었는데, 최지훈 감독은 좀비를 연기하는 배우의 표정이 이상하다며 계속해서 재촬영을 하였다.
‘좀비가 그르렁거리는 소리의 피치를 과하게 신경쓰는 것도 그렇고, 아기를 향하는 좀비의 미묘한 얼굴 각도까지 신경을 쓰다니….’
영화제 이야기를 꺼낸 후로, 최지훈 감독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했다.
‘당장 스티븐 감독에게 연락을 해봐야겠어.’
나는 최지훈 감독에게 자막 버전의 영화를 보내달라고 부탁하며, 곧장 집으로 향했다.
***
“글쎄, 생각이 없대도.”
스티븐은 어젯밤부터 지금까지 자신을 설득하고 있는 눈앞의 청년에게 진절머리가 났다.
“대체 왜 안 하신다는 거예요? 조건도 후하게 해드린다니까요?”
“라이언, 내 영화는 무조건 영화관 스크린에만 걸리게 할 거라니까. 그 조그만 TV에 먼저 공개되는 일은 절대 없어.”
“그러니까 우리 OTT 플랫폼에 영화를 올려도, 영화관 스크린에 걸리지 않는 게 아니라니까요?”
그 말에 스티븐은 코웃음을 쳤다.
“흥! 극장과 OTT에서 내 영화를 동시 공개를 하자고? 미안하지만, 이 영화는 무조건 대형 스크린에서 봐야 한다. 조그만 TV 화면으로는 영화의 영상미를 모두 담을 수 없어.”
“TV로 먼저 영화를 접하게 하면서, 사람들이 극장으로 찾아오게끔 유도하는 방법도 있잖아요.”
“그러면 감동이 줄어들지. 이미 알고 있는 영화를 두 번이나 보는 셈이니까.”
젊은 라이언은 스티븐의 고집을 이해할 수 없었다.
‘더 좋은 기회가 펼쳐질 수 있는데, 대체 왜!’
거대 OTT 플랫폼에 영화를 공개하면, 그것만으로도 이슈가 되어 홍보 효과를 제대로 누릴 수 있었다. 그런데도 스티븐 아저씨는 시대에 뒤떨어진 고집만을 피우다니.
‘…이제 아버지가 주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넷플리스의 창업주이자 라이언의 아버지인 라드 헤이스팅스는 한 달 전에 이런 제안을 했었다.
-한 달 안에, 우리 넷플스에 새롭게 런칭할 영화를 찾아와라. 단, 반드시 독창적인 영화여야 한다.
-그런 영화를 발굴하는 데 성공한다면, 내가 너의 소원 한 가지를 들어주마.
소원을 들어준다는 말에 혈기 왕성한 21살의 라이언은 깊게 생각하지 않고, 아버지의 제안을 받았었다.
그렇게 지금, 발등에 불이 떨어진 라이언이 아버지의 오랜 친구 스티븐 에필버그를 찾아온 것이었다.
“아저씨, 한 번 만요. 제가 이렇게 부탁드릴게요.”
“그만 좀 해라! 네 소원이 대체 뭐길래 이렇게 난리를 피우는 거야?!”
라이언은 그런 스티븐의 물음에 진지하게 대답했다.
“우리 넷플리스에 제가 만든 다큐멘터리를 올리고 싶어요.”
“…뭐?”
스티븐은 조금 놀란 기색으로 라이언의 진지한 눈을 바라보았다.
‘마냥 철부지인 줄로만 알았는데.’
다큐멘터리를 찍어 올리겠다는 포부가 꼭 멋진 영화를 만들고 말겠다던 어린 자신을 보는 듯했다.
‘하지만 그래서 더더욱 안 돼.’
지금 스티븐이 라이언의 부탁을 들어주게 되면, 그는 너무나 손쉽게 꿈을 이룰 수 있게 된다.
‘그래서야 의미가 없지.’
제 손으로 노력하고, 실패도 경험해봐야만 진정으로 성장할 수 있다. 그러므로.
“안돼, 돌아가, 바꿔줄 생각 없어.”
“아, 아저씨!”
끈질기게 따라붙는 라이언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스티븐은 자신의 사무실로 향했다.
‘내가 그걸 어디에다 두었더라….’
스티븐은 사무용 PC의 전원을 켜, 어제 수정했던 대본 파일을 실행했다.
-한 번만 도와주시면, 제가 나중에 크게 사례할게요. 네? 제발요…!
-여보세요, 제 말 듣고 계세요?
-아저씨?
라이언의 말이 자꾸만 들려와 거슬렸지만, 스티븐은 그 특유의 집중력으로 수정된 대본집 검토를 마치었다.
‘…간만에 이메일도 확인해야겠어.’
지난 며칠간 바빠서 이메일을 확인하지 못했으니, 분명 읽어야 할 메일이 잔뜩 쌓여있을 것이었다.
그렇게 쌓여있는 메일의 목록을 확인하던 스티븐은 문득 낯이 익은 이름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응? 미스터 윤?’
이번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에 대한 조언과, 괜찮은 도입 장면을 찍을 수 있게 해주었던 그가 자신에게 메일을 보냈다니?
‘대체 무슨 일로?’
호기심이 생긴 스티븐은 곧장 메일을 클릭해 보았다.
‘…독립영화 한 편을 보고 평가를 해달라고?’
스티븐은 곧장 시계를 확인해 보았다.
‘다음 일정까지 남은 시간은 약 2시간 정도.’
이동 시간을 고려하면 1시간 30분의 여유가 있었다.
‘영상 길이가 1시간이라고 했으니, 시간은 충분하겠어.’
스티븐은 자신에게 적지 않은 도움을 주었던 미스터 윤을 위해, 기꺼이 1시간을 투자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약 한 시간 후.
“Wow…!”
영화를 모두 본 스티븐은 옆에서 눈을 반짝이며, 연신 감탄사를 내뱉는 라이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