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 rushed after winning the first prize in the lotto RAW novel - Chapter 94
94화 이번 투자로 한 사람의 꿈을 지킬 겁니다 (3)
“으윽…!”
난장판이 된 바닥에서 성윤복은 눈을 천천히 떴다.
“…!!!”
머리가 너무 아팠다. 지끈거렸고, 콕콕 쑤시기도 했다.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지…’
성윤복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일부가 작살 난 피아노, 온갖 곳에 널브러진 각종 공구, 그리고 바닥에 굴러다니고 있는 빈 양주병.
그것을 보니, 지난밤의 기억이 섬광처럼 머릿속에 떠올랐다.
‘…술 먹고 또 궁상맞게 처 울다가 뻗었었나 보군. 그나저나 여기가 어디지?’
성윤복은 창고의 입구 오른쪽에 적힌 숫자 3을 확인했다.
‘망할… 어쩐지 몸이 으슬으슬하더라니. 하필이면 난방 설비가 고장 난 제3작업장에서 잠들게 뭐람.’
아무리 입하(立夏)가 지났다지만, 이곳 작업장이 위치한 곳이 음지에다 바람까지 잘 불어오는 곳이라. 난방이 없으면 과장 좀 보태서 그야말로 얼음창고나 다름없었다.
성윤복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깨질듯한 머리를 부여잡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단, 가게로 돌아가서 따듯한 차라도 한 잔 마셔야겠어.’
양손으로 제 어깨를 감싼 성윤복이 종종걸음으로 작업장의 문을 열려던 그때.
-그럼 그 연구 중에 파킨슨병 치료제에 관한 연구도 있었겠네요?
문 너머에서 익숙한 목소리와 엿 같은 단어 하나가 동시에 들려왔다.
‘이 목소리는… 그 놈인데?’
어제 성윤복을 찾아왔던 윤현민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그런데 파킨슨병의 치료제라니?’
윤현민은 자신의 병에 대해 모르고 있을 터다.
‘설마, 김 씨가 벌써 나불댄 거야?’
아무리 답답했다고 해도, 그 입 싼 놈에게 사정을 말해버렸던 것이 실수였다.
‘덕분에 내가 어제 모진 말로 저놈을 쫓아낸 게 헛짓거리가 되어버렸잖아.’
하아아.
성윤복은 깊은 한숨을 쉬며, 문고리에서 손을 떼었다.
‘지금 밖으로 나가봤자, 서로 어색하기만 하겠지.’
어제의 일을 사과하긴 해야겠지만. 이렇게 엉망인 몰골로 대화를 나눌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저놈이 무슨 통화를 하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남의 통화를 엿듣는 것은, 좋지 못한 행동이었으나. 파킨슨병의 치료제라는 말을 들은 이상, 성윤복은 그냥 못 들은 척 지나갈 수 없었다.
‘그 파킨슨병의 치료제라니. 에이, 아니겠지. 아닐 거야.’
의사가 그러지 않았는가. 파킨슨병은 완치가 불가한 병이며, 치료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리고 설사, 치료제 비슷한 게 있다고 쳐도. 저놈이 그걸 왜 구하려 한단 말인가.
‘설마, 별로 친하지도 않은 나를 구하려고?’
그거야말로 말도 안 되는 판타지였다.
피아노 제작 때문에 몇 번 말을 섞은 것이 다인 자신을 위해, 저런 수고를 들인다는 것이 어디 말이나 되는 일인가.
‘내가 너무나도 병을 치료하고 싶었던 나머지, 헛것을 들은 거야.’
그렇게 속으로 되뇌었지만, 성윤복의 심장은 어쩔 수 없이 묘한 기대감에 두근거리고 있었다.
“…….”
성윤복은 문에 귀를 바짝 가져다 댄 채, 숨을 죽였다. 그러자 윤현민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해가 안 되네요. 파킨슨병 치료에 관한 연구라면, 당연히 대학에서 지원금이 나올 것 같은데요.
-…그렇다면 대학에서도 교수의 연구를 다시 보았겠군요?
-그럼, 역시 파킨슨병의 치료제가 완성되려면 시일이 꽤 걸리겠지요?
파킨슨병, 대학, 교수, 연구.
성윤복은 들려오는 단어들에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정말 치료제를 찾고 있다고? 왜?’
성윤복은 생판 남이나 다름없는 자신을 위해서 저런다고는 끝까지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우연일 거야. 저놈은 다른 이유로 파킨슨병의 치료제를 찾는 거지, 결코 나와는 상관없는 일일 거야.’
잘 생각해보면, 오히려 우연일 거라는 생각이 더 말이 안 되는 것이었지만.
뜻밖의 상황을 마주하게 되어 당황하게 된 성윤복은, 그런 것까지 신경을 여력이 되지 않았다.
‘그래, 비록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지만. 파킨슨병의 치료제가 개발 중이라는 것을 들었으니까. 나중에 저놈에게 치료제를 구할 수 있는지 물어보면 될….’
성윤복이 이렇게 결론을 내리던 순간.
-…네. 제가 알고 있는 피아노 제작 장인이, 파킨슨병에 걸렸다고 합니다.
더는 부정할 수 없는 대화 내용이 들려왔다.
‘…뭐?’
저놈이 알고 있는, 파킨슨병에 걸린 피아노 제작 장인. 그리고 하필이면 자신의 작업장의 앞에서 통화하는 것까지.
그러한 사실들을 종합해 보았을 때, 저놈이 말하는 대상은 오로지 성윤복 자신밖에 없었다.
‘정말로 나를 위해 치료제를 찾고 있었다고…’
어제 윤현민에게 모진 말을 했던 기억과 어쩌면 정말로 치료제를 찾아 나을 수도 있다는 희망에.
울컥.
성윤복의 눈시울이 점점 뜨거워져 갔다.
‘어째서… 왜 나 같은 놈을 위해…’
그렁그렁 맺힌 눈물방울은 당장이라도 떨어질 듯 위태롭게 걸쳐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번 투자로 한 사람의 꿈을 지킬 겁니다.
그 한 마디에 참고 참았던 뜨거운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히끅… 흐읍…!”
행여라도 흐느끼는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갈까 봐. 그래서 윤현민, 저놈에게 이런 꼴사나운 모습을 들킬까 봐. 성윤복은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었다.
‘고맙다… 정말로 고마워….’
다시는 피아노를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두려웠었다.
그동안 칠흑 같은 암흑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듯한 기분에 얼마나 절망했던가.
‘내 꿈을 지켜주겠다고….’
윤현민의 그 한 마디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암흑에 내려온, 한 줄기 빛과도 같은 희망이었다.
그래, 희망.
그것은 앞으로 평생 피아노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이 아닌, 언젠가 다시 피아노를 만들 수 있다는 새로운 꿈이 되었다.
뚝… 뚝….
눈물이 덜덜 떨리는 오른손에 방울방울 떨어져 내릴 때마다. 그는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포기하지 않겠다.’
다시 망치를 두드리고, 실톱을 쥘 수 있게 되어. 그래서 한 번 더 아름다운 피아노를 만들 수 있게 된다면.
‘그때, 너에게 가장 어울리는 피아노를 제작해주마.’
나를 위해 노력해준 너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보답을 해주겠다.
성윤복은 조용해진 문 너머를 응시하며,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전까지….’
다시 고개를 든 성윤복이 문을 열고 나왔다. 그리고는 어딘가를 향해 바삐 걸어갔다.
잠시 후, 그가 도착한 곳은 0이라고 적혀있는 그의 또 다른 작업장이었다.
끼이익-
녹슨 철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 성윤복은, 가장 안쪽에 보관된 ‘그것’을 향해 거침없이 걸어갔다.
우뚝.
그렇게 그가 멈춰 선 곳은, 검은색 천으로 뒤덮인 무언가의 앞이었다.
‘비록 시제품이었지만, 다른 놈들과는 다르게 잘 만들어진 녀석인데다 나중에 내가 추가로 손을 봐놓았었으니. 윤현민, 그 녀석이 임시로 사용해도 괜찮을 거야.’
펄럭-!
낑낑거리며 떨리는 손으로 성윤복이 검은색 천을 걷어내자, 마침내 드러나는 새하얀 자태.
그것은….
***
1층 가게에 설치된 피아노의 자태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게, 피아노의 꿈 1에 나왔던 그랜드 피아노의 시제품이었다는 말이지?’
말이 시제품이지, 당장 커다란 콘서트홀의 무대 위에 올려놔도 좋을 만큼 아름다웠다.
‘영화에 등장했던 피아노에도 전혀 뒤지지 않아.’
장인의 섬세한 손길이 닿은, 유려한 곡선과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건반을 보면. 도저히 이게 시제품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오히려 영화에 등장한 피아노보다 더 예쁜 것 같은데?’
성윤복 장인이 나중에 조금 더 손을 보았다고 했었는데, 그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해드린 것도 없는데 이런 과분한 선물을 주시다니….’
나는 며칠 전의 일을 떠올렸다.
아미트 교수에게 약 350억을 투자 하기로 마음먹은 나는, 구상민 씨에게 부탁해 그와 화상 통화를 하였었다.
그리고 그 결과, 나는 치료제를 완성하기까지 내 생각보다도 더 오랜 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론은 완성되었어도, 동물 실험과 임상시험이 꽤 길어진다고 했었지.’
아미트 교수는 동물 실험은 그렇다 쳐도, 1상에서 3상에 이르는 임상시험은. 승인과 시험에 평균적으로 10년 정도가 걸린다고 설명해주었다.
‘10년은 길어도 너무 길어.’
그 정도의 시간이 걸리게 된다면, 성윤복 장인의 꿈을 지켜주기 매우 힘들다.
성윤복 장인의 나이는 올해로 50대 후반이었다.
10년 뒤면, 거의 70살이 다 되어가는 나이가 되실 텐데. 그때 파킨슨병이 완전 치유가 된다고 해도, 그 나이면 기력이 다해 다시 망치를 드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 되어 있을 것이다.
‘치료제가 곧 개발이 된다고 한다면, 곧바로 성윤복 장인에게 달려가 기쁜 소식을 전해주고 싶었는데. 그럴 수가 없었지.’
뭔가 임상시험 기간을 단축할 특별한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면, 치료제는 10년이 지나서야 생산이 가능해질 것이다.
이것은 성윤복 장인에게 너무나 절망적인 소식이 될 수 있었기에,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고.
결국, 임상시험 기간을 줄일 방법을 찾을 때까지 성윤복 장인을 찾아가지 않게 되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설마 성윤복 장인이 먼저 연락을 주실 줄이야….’
-그때 가게에서 쫓은 것은, 내가 많이 미안했어.
갑자기 연락을 받은 나는, 돌연 성윤복 장인에게 사과를 받았고. 이렇게 과분한 피아노 선물까지 받게 되었던 것이었다.
‘아무리 시제품이고, 임시로 빌려주는 것이라지만. 이렇게 좋은 피아노를 그냥 맨입으로 받아도 되는 건가…’
아무래도 이런 피아노를 그냥 받아들일 수 없었던 나는, 다시 성윤복 장인에게 연락하여 대가를 치르려 했다. 그런데.
-이건 내 사과의 선물이자, 감사의 표시야. 그러니까 이것 때문에 뭔가를 줄 생각을 하지 마.
“하, 하지만….”
-쯧. 정 뭔가를 주고 싶거든. 내 한 가지 부탁만 좀 들어줘.
“무슨 부탁이요?”
부탁이라는 말에, 나는 귀를 쫑긋 세우며 집중했다.
-포기하지 말아줘.
“네? 갑자기 뭘 포기하지 말라는 거예요?”
-…뭐든지. 아무리 오래 걸리더라도, 포기만 하지 마.
“…”
성윤복 장인의 말뜻이 무엇인지 막연하게 이해한 나는, 일단 알겠다고 대답하였다.
-고맙다.
그렇게 통화가 종료되고, 나는 성윤복 장인의 말뜻을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런데 사과의 선물이자 감사의 표시라는 게 대체 무슨 말이지?’
사과의 선물은 이해가 되었다.
‘핑계를 대며 나를 가게에서 내쫓았던 것을 사과한다고 하시는 거겠지. 그런데 감사는 뭐지? 성윤복 장인이 내게 감사할 일이 있었나?’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도통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어쨌든 이렇게 멋진 피아노를 받았으니. 잘 활용해봐야겠지.’
나는 인테리어 공사가 완료된 가게 전경을 만족스럽게 둘러보았다.
‘가게 벽면이 막혀있지 않고, 개방이 가능해졌으니. 이제 대로변에 우리 카페의 피아노 소리가 울려 퍼질 수 있겠어.’
나는 대로변을 지나는 사람들이 그 피아노 소리에 이끌려, 우리 가게로 들어오는 것을 상상해 보았다.
‘그렇게 우연히 들어온 가게의 정중앙에는, 눈을 떼기 힘들 정도의 아름다운 피아노가 있지.’
그리고 그 손님은 이 피아노가, 어느 영화에 출연한 바로 그 피아노를 닮았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피아노만으로도 홍보 효과가 괜찮을 것 같네. 좋아, 오픈 초반에는 이걸 적극적으로 활용해보는 거야.’
전에 피아노의 꿈 2에 우리 가게를 촬영장소로 제공하여 홍보했던 것처럼. 나는 이번에도 비슷한 방식의 홍보 효과를 노려보기로 하였다.
‘그러려면 영화 속의 한 장면을 연출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는데?’
피아노의 꿈 1에 나온 듯한 피아노를 마치 그 영화의 주인공이 연주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면, 그림이 이쁠 것 같았다.
‘그러기 위해선 한 가지의 소품이 필요하겠는데?’
바로 피아노의 꿈 1의 주인공이 입었던 의상이 필요했다.
‘…이지현 씨의 도움이 필요하겠어.’
나는 곧장 이지현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렇게 다시 며칠 후, 카페 드리머의 1층 오픈 일.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이런 건 예상 밖이었다.
‘이렇게 홍보 효과가 좋을 줄이야?’
가게에 손님들이 끊임없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또 한 가지.
아름다운 음악에 이끌려 우연히 찾아온 어느 손님에 의해, 임상시험 기간을 줄일 방법을 찾게 될 줄은 나는 정말 예상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