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 rushed after winning the first prize in the lotto RAW novel - Chapter 98
98화 미스터 윤이 누굴 구했다고요? (2)
매표소의 앞에는 많은 사람이 몰려있었고, 공항 가드들이 사람들을 진정시키며 현장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가드들의 뒤편, 그러니까 매표소의 오른쪽 구석의 바닥에는 7살쯤 되어 보이는 한 남자아이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이런 미친!’
피를 어찌나 많이 흘렸던지, 새하얀 바닥 곳곳에 시뻘건 피 웅덩이가 흥건히 생겨나 있었다.
“으흐흑! 제발 우리 아이 좀 살려주세요!”
아이의 어머니로 보이는 여인은 반쯤 정신 나간 모습으로 응급 처치 중인 구급대원의 팔을 붙잡고 애원하고 있었고, 구급대원 또한 땀을 뻘뻘 흘리며 아이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중이었다.
그 참혹한 광경에 상황이 엄청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급히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접근하시면 안 됩니다!”
안 그래도 마음이 급한데, 가드가 막아서니. 순간, 짜증이 울컥 올라왔다.
“비켜요! 지금 이럴 시간 없어요!”
“안 됩니다. 지금 현장에 접근하시면….”
“내 혈액형이 바로 RH- AB형이에요!”
그런 나의 외침에 순간 가드의 표정이 멍해졌다.
“지, 진짜입니까?”
“그렇다니까요!”
“어, 이, 이쪽으로 오세요!”
아무래도 이 가드는 지금 RH- AB형의 혈액형을 가진 사람이 나타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다.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흔한 혈액형이 아니긴 하지.’
어쨌거나 가드는 나를 구급대원에게 데려갔다. 그러자 구급대원은 화색을 띠며 내게 물었다.
“정말 RH- AB형이십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방에서 내 혈액형 정보가 표시된 문서를 보여주었다.
“자 확인하셨죠?”
이 문서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여 내가 여행을 다닐 때마다 항상 가지고 다니는 것으로, 한글과 영어, 그리고 일본어와 중국어로 적혀 있었다.
그 문서를 본 구급대원은 즉시 아이의 어머니에게 몇 가지 사실을 빠르게 물어본 뒤, 응급 구조 키트에서 직접 수혈을 할 수 있는 도구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지금 너무 급한 상황이라 수혈팩을 이용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부득이 사람과 사람이 직접 수혈하는 방식을 써야 할 것 같습니다.”
구급대원은 지금 아이가 피를 너무 많이 흘려, 당장 수혈하지 않으면 병원으로 이송되기 전에 사망할 확률이 높다고 설명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구급대원의 말이 굉장히 빨랐다.)
“다만, 사람과 사람이 직접 수혈하게 될 시에 부작용이 생길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감염의 위험이라던가, 혈액의 호환 문제로 혈액의 응고 될 수도….”
“그런 것은 이미 알고 있으니까, 설명해 주시지 않아도 됩니다.”
나도 희귀 혈액형의 보유자이다. 이 정도는 내게 상식이나 다름없었다.
“이런 위험성에도 수혈하는 데 동의하십니까?”
“네, 동의합니다.”
내 망설임 없는 대답에, 구급대원의 얼굴이 비장해졌다.
“감사합니다.”
구급대원은 즉시 동료에게 뭔가를 지시했다.
“병원에 전화해서 지금 달려오고 있는 혈액팩, 당장 병원으로 돌려보내라고 하고, 성인 남성용 수혈팩도 하나 더 준비하라고 전해! 그리고 지금 그쪽으로 출발할 거니까, 수술 준비 서두르라고 하고!”
“넵!”
지시를 마친 구급대원이 내 팔뚝에 바늘을 꽂아 넣으며 수혈이 시작되었다.
관을 타고 흐르는 붉은 피가 아이의 몸속으로 들어가자, 새하얗게 질렸던 피부에 혈색이 조금 돌아오는 듯 보였다.
“여기 좀 도와주세요!”
구급대원이 공항 가드들을 부르며, 나를 들것에 눕혔다.
“아이를 눕힌 들것은 저희가 들 테니, 여기 이분의 들것을 좀 맡아 옮겨주세요. 단, 아이의 들것보다 높게 들어 올리셔야 합니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수혈하면서 동시에 병원으로 이송할 생각인 모양이었다.
‘하긴. 수혈해도, 근본적인 치료는 이곳에선 처치할 수 없을 테니 당연한 건가.’
아이의 모습은 처참했다. 온몸에 자상이 있었으며, 군데군데 크고 작은 유리 조각이 박혀 있었다. 특히 목의 상처가 가장 심했는데, 아무래도 여기가 가장 출혈이 심했던 곳으로 보였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척 보기에도 매우 심각한 상황이었다.
‘일단 지혈된 것을 보니, 동맥을 베인 것은 아닌가 보네.’
천만다행한 일이었다. 비록 다른 부위의 상처 때문에 과다출혈이 일어났지만, 어쨌든 더 이상의 혈액 손실은 막아낸 것이니 말이다.
“셋, 둘, 하나!”
나와 아이가 들것에 실려 구급차에 탑승하자, 구급대원은 곧바로 병원으로 출발시켰다.
에에에엥-!
요란한 사이렌이 울리며, 구급차가 도심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나는 들것에 누운 채, 구급대원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를 물었다.
“공항 3층 난간대의 유리를 교체하는 과정에서 생긴 사고였답니다. 작업의 특성상 1층부터 3층까지의 교체 라인에 바리게이트를 쳐서 사람의 출입을 막았는데, 아이가 장난을 치다가 그 바리게이트 라인을 넘어왔답니다. 그리고 하필 그 타이밍에 교체 중이었던 유리가 아이가 있던 바닥으로 추락한 거죠.”
그런 구급대원의 설명에 나는 크게 놀라고 말았다.
“난간대의 유리라면, 강화 유리잖습니까? 그걸 직격으로 맞았다면, 뇌에도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지 않나요?”
“다행히 유리가 직접적으로 아이를 덮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바닥에 떨어지며 깨진 유리 파편들이 아이의 몸에 박히거나 베면서 지나가게 되었던 거죠.”
“이런….”
나는 눈을 감고 쉭쉭 소리를 내며 숨을 쉬는 아이를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그런데 따로 보관 중인 혈액팩은 없었나 보네요? 아무리 희귀한 혈액형이라지만. 이런 큰 공항이라면 혈액팩을 종류별로 보관해두지 않나요?”
“맞습니다. 그런데 하필 얼마 전에 RH- AB의 혈액팩을 근처 병원에 지원해주었다더군요.”
“긴급상황이었나 보네요?”
“네, 교통사고가 있었거든요.”
“흠….”
짧은 기간에 심각하게 다친 희귀 혈액형 환자가 둘 이상 발생하다니.
‘이 아이도 운이 참 없었… 아니지. 그래도 때마침 그 자리에 같은 혈액형을 가진 나를 만났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고 해야 할까.’
나는 구급대원에게 물었다.
“병원까지는 얼마나 걸리나요?”
“지금 10분쯤 달려왔으니까, 앞으로 20분쯤 걸리겠네요.”
“그래도 운 좋게 차가 막히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구급차가 지나갈 때 운전자분들이 잘 비켜주시긴 하지만, 그래도 운 나쁠 때는 비켜주시는 시간도 꽤 걸리거든요.”
“…그렇군요.”
병원까지 총 30분의 거리. 왕복이면 1시간. 아이를 살리는 데 소비한 시간이었으니, 이 1시간은 매우 가치가 있었다.
“흑흑… 가엾은 우리 노아….”
아이의 어머니가 축 늘어진 아이의 손을 붙잡고 계속해서 울고 있는 모습을 보며, 나는 조금이라도 빨리 병원에 도착하기를 바라였다.
끼익-
병원에 도착한 시간은 그로부터 약 10분 후로, 구급대원이 말해준 시간보다 10분이나 일찍 도착했다.
“서두르세요!”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나와 아이를 구급차에서 내려주고는. 곧바로 응급처치실로 이동했다.
“바늘, 빼겠습니다.”
내 팔뚝에서 바늘이 빠져나가고, 아이의 몸에는 새로운 혈액팩이 꽂혔다.
의료진은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전문적인 용어를 말하며, 아이를 검사실로 데려갔다.
“당신도 검사받으셔야 합니다.”
수혈로 인한 감염의 확률은 낮지만, 그래도 검사를 해봐야 한다는 것이 의료진의 판단이었다.
또한, 그들은 나도 수혈을 받는 것이 좋겠다는 권유를 하였다.
“오래 걸리나요?”
“아닙니다. 검사 결과가 나오는 시간을 포함해서 1시간 ~ 2시간 정도면 될 겁니다.”
그렇게 나는 병원에서 여러 가지 검사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의료진의 말대로, 약 2시간 후에 나는 어느 낯익은 의사에게 검사 결과를 들을 수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당신은…”
그는 예전에 내가 불길 속에서 케빈을 구해내었을 때, 내게 여러 검사를 해주었던 바로 그 의사였다.
“이번에도 아이의 생명을 구하셨더군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하하, 어쩌다보니….”
“검사 결과는 모두 정상으로 나왔습니다. 수혈도 한 팩 받으셨으니, 이대로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아이는 어떻게 되었나요? 괜찮나요?”
“몇몇 중요 장기와 혈관을 다쳐서, 부득이하게 지금 수술 중입니다.”
수술이라는 말에 나는 표정을 굳혔다. 의사는 그런 나의 얼굴을 살피며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당신이 아니었으면, 아이는 수술받을 기회조차 없었을 겁니다. 그리고 지금 수술도 잘 진행되고 있으니, 너무 그렇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나는 의사의 믿음직스러운 목소리에 안심하며, 병원을 나설 채비를 하였다.
“바로 가시려고요?”
“더 있을 이유가 없으니까요.”
“아이의 어머니가 당신을 애타게 찾더군요. 아까는 경황이 없어서 제대로 인사하지 못했다고요.”
“감사는 무슨… 별일도 아니었는데요. 그냥 아이의 쾌유를 빈다고 전해주십시오.”
그렇게 내가 병실을 빠져나가려던 찰나, 의사 선생님이 나를 급히 불러 세웠다.
“잠시만요! 제가 한 가지를 까먹었습니다!”
빠른 걸음으로 다가온 의사 선생님은 한 장의 명함을 내게 건네주었다.
“그 아이 어머니의 명함입니다. 당신이 혹시라도 바쁜 것 같으면, 전해주라고 하시더군요.”
[안나 오스왈드]나는 명함에 적힌 이름을 슬쩍 보고,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나중에 시간이 되면, 한번 연락해 보겠습니다. 그럼, 이만.”
***
근처의 햄버거 가게에서 간단하게 한 끼를 때운 나는, 서둘러 취리히 시장님을 만나기 위해 약속 장소로 향했다.
“오오! 미스터 윤. 다시 만나 뵙게 되어 반갑군요.”
양손을 벌리며 나를 반겨주는 시장님에게, 나 또한 반갑게 인사했다.
“그래, 무슨 일로 나를 보자고 하신 거죠? 혹시, 전에 전화로 물어보았던 플라스틱 쓰레기에 대한 건가요?”
“네, 맞습니다.”
“음… 그럼 미스터 윤이 제게 묻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대충 예상이 가는군요. 확답드렸던 정부 지원이 왜 취소가 되었는지가 궁금하신 거겠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음. 거기엔 조금 복잡한 사정이 있습니다.”
“경청하겠습니다.”
“미스터 윤은 스위스 연방 평의회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당연히 알고 있었다.
“7명의 각료로 구성된 스위스의 행정부 아닙니까?”
“네, 맞습니다. 스위스의 대통령과 부통령도 이곳 연방 평의회에서 선출되죠.”
“연방 평의회의 의장을 대통령이라고 부른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설명하시는 건지…”
“미스터 윤이 요청한 정부 지원은 이곳 연방 평의회에서 승인이 나야만 가능합니다. 그런데 평의회 구성원 중 네 사람이 지원을 반대했습니다.”
“…대체 왜요?”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 제안은 분명 스위스에도 도움이 되는 것이었으므로,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반대표를 던진 분들은 모두 변화를 싫어하는 성격을 가지고 계십니다. 미스터 윤의 제안은 매우 놀라운 것이지만, 이제껏 없었던 새로운 것이기도 합니다.”
“…고작 새롭다는 이유만으로 반대한다고요?”
“…뭐, 비용 문제라던가. 여러 자질구레한 이유도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제가 말씀드린 것이 맞을 겁니다.”
나는 너무 어이가 없었지만, 시장님의 앞이기에 티를 내지는 않았다.
“시장님, 그분들을 설득할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아시다시피 이것은 서로에게 모두 득이 되는 사업이지 않습니까.”
“흐음… 잠시만요.”
자리에서 일어난 시장님이 비서에게 무언가를 지시하였고. 그렇게 잠시 후, 비서는 한 장의 서류를 내게 건네주었다.
“이건?”
“연방 평의회 멤버 중 한 분이십니다.”
서류에는 멋들어지게 콧수염을 기른 중년 남성의 사진과, 그 인적 사항이 적혀 있었다.
[루이 오스왈드]“반대표를 던진 네 분 중에서 유일하게 말이 통할만한 분입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그분은 대개 중립적인 의견을 많이 내시거든요. 이번에도 비록 반대표를 던지시긴 하셨지만,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고심하신 것 같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그러니 이분을 설득할 수 있다면, 정부의 지원을 받으실 수 있으실 겁니다.”
“그래요?”
시장님의 말대로 한번 이야기를 나눠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 보이긴 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이름이 낯이 익을까?’
분명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는데도,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루이… 루이… 루이… 오스왈드… 아!’
무언가 떠오른 내가 품속에서 아까 의사가 전해 준 명함을 꺼내 들었다.
[안나 오스왈드]‘안나 오스왈드, 루이 오스왈드. 두 다 같은 성씨야. 이게 과연 우연일까?’
나는 어쩌면 이야기가 쉽게 풀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