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Plan for the Second Life Idol RAW novel - Chapter (112)
‘이것도 미래와는 다르군.’
하승혁 대표와 마주하기 전, 계약서를 쓰기 위해 회의실로 향하며 나는 생각했다.
회귀 전, [디어돌>로 데뷔한 프로젝트 그룹 아이딘은 KC의 자회사 중 하나가 아닌 타 매니지먼트에 소속되었다.
‘그때 당시에는 분명 중형급 소속사였지.’
당시의 소속사도 물론 에이넷의 지원을 받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은 지금과는 조금 달랐다.
당시의 에이넷, 즉 KC는 매니징을 타 회사에 맡기고 뒷짐을 진 채 물러나 적당히 수익의 퍼센티지만 떼어 먹었기 때문이다.
또 한 번 변화가 일어난 거다.
‘시청률이 더 높았기 때문인가?’
회귀 이전 [디어돌>은 3퍼센트 후반 정도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막을 내렸다. 그조차도 케이블 채널, 특히 K팝 시장에서는 손꼽히는 화제성이긴 하다.
하지만 이번 생에서 [디어돌>이 달성한 시청률은 5퍼센트 후반대.
거의 두 배가량 화제성의 차이를 보인 만큼, 에이넷을 가지고 있는 KC가 자회사를 통해 직접 원디어를 굴려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을 수도 있었다. ‘돈이 된다’고 생각했을 테니까.
그렇다면 데뷔 멤버가 바뀐 것처럼 이 또한 나비 효과의 하나인 걸까.
‘그도 아니면… 시스템 때문일 수도 있고.’
나는 조용히 내게 새롭게 주어진 ‘시나리오’를 떠올려 냈다.
「동일한 루트를 밟아 나간다면 당신의 미래는 절망뿐.
‘아이딘’으로서의 미래를 회피하고 ‘원디어’만의 성공을 달성하세요.」
시스템은 내게 아이딘과 동일한 미래를 밟아 나가지 말 것을 시나리오 성공의 조건으로 내세웠었다. 그런 만큼 이번 변화는 내게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아이돌 활동의 방향성을 정하는 건 결국 소속사인 만큼, 소속사가 달라졌단 건 ‘원디어’가 아이딘이 밟은 루트를 그대로 따라갈 가능성이 조금은 줄어들었다는 뜻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어째서 [디어돌>의 프로젝트 그룹 매니징을 맡을 소속사가 달라진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보통 기획 단계에서부터 매니징을 맡을 소속사를 정하는 만큼, 로드 엔터가 원디어를 담당하게 될 거라는 건 꽤 초반부에 정해졌을 터였다.
즉 지난 생과는 달리 시작 단계부터 애초에 뭔가가 달라져 있었던 거다.
‘변화가 너무 큰데.’
그에 시스템이 안배를 내려 준 것은 아닐까, 잠깐 생각해 보기도 했지만.
‘그럴 리가 없지.’
나는 단번에 그 가능성을 지워 낼 수밖에 없었다.
시스템은 공짜로 내게 무언가를 해 주지 않는다. 게다가 이번에는 사람들이 위화감을 느낄 만한 사건이 있지도 않았던 만큼, 시스템이 날 도울 이유는 없었다.
알 수 없는 오류를 내고 내게 예정되어 있던 ‘퀘스트 종료’를 유예한 보상을 내려 준 것일까에 대해서도 생각해 봤지만 그렇다면 알림창이 떴을 터였다.
이 때문에 나는 상황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하는 채로 변화를 받아들이는 중이었다.
‘여전히 그 오류가 뭐였는지, 어째서 놓아주려던 날 다시 잡을 필요가 있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목표는 같았다.
‘부여된 시나리오와 미션을 깨 나가면서 관리자를 찾아낸다.’
어째서 내가 시스템에 의해 또 한 번 붙들리게 된 건지, 무엇보다도 최종적으로 시스템이 나를 통해 무엇을 이루려 하는 건지를 알아내야 동일한 일을 겪지 않을 수 있을 테니까. 또 한 번 목숨을 위협받을 순 없지 않나.
또 한 번 시작점으로 되돌아온 것 같은 모양새였으나, 다행히 수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적어도 이전과는 달리 나는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지 않았나.
유령을 쫓고 있는 게 아니라 명확한 실체가 있는 존재를 쫓고 있다는 확신만 있다면 이전보다는 훨씬 더 많은 것을 추측해 낼 수 있을 터였다.
앞으로 5년. 시나리오를 부여한 관리자가 그대로 나를 방치해 두진 않을 터.
그렇다면.
‘찾아낼 수 있다.’
이번에야말로 놓치지 않으면 되는 일이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이제는 5년간 동고동락할 멤버들과 함께 사인을 끝마쳤고.
“앉으시죠.”
마침내 우리를 관리할 대표 이사와 마주할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나는 대표가 손짓한 대로 소파에 앉으며 슬쩍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널찍한 사무실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그 흔한 화초 하나 없이 업무에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무엇도 구비되어 있지 않은 삭막한 사무실이었으나 오히려 멤버들은 그 모습에 하승혁 대표에게 호감을 가진 것 같았다.
거기에는 그가 가진 기묘한 분위기 또한 한몫했다.
‘…호락호락하진 않겠는데, 정말로.’
하승혁 대표는 빈틈 하나 없어 보이는 듯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즉, 일을 잘할 것 같은 사람이었다는 뜻이다.
단정하고 깔끔하게 올려진 머리와 그 아래에 자리한 선이 굵고 다부진 얼굴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직장인보다는 연예인이 더 맞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흔하지 않은 잘생긴 얼굴.
거기에 굳은 성격을 보여 주는 듯 탄탄한 몸을 감싼 쓰리 피스 수트에 목 끝까지 채운 넥타이, 한창 일을 하고 있던 탓에 높은 콧대 위에 올려진 은테 안경.
그 너머로 보이는 서늘한 눈빛까지.
설렁설렁 일할 것 같은 사람보다는 5년간 제대로 된 방향성을 제시해 줄 것 같은 사람에게 호감이 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죠. 내가 왜 불확실성에 투자를 해야 합니까?”
다만 그 호감은 이어진 대화에서 금세 사라져 버리고 만 듯했지만.
* * *
“메일로 곡을 하나 보내셨던데요, 에이든 씨.”
“네~!”
“……?”
데뷔곡의 시안을 함께 듣고 이후의 방향성을 의논하기 위해 자리에 앉았던 멤버들은 하승혁 대표의 뜻밖의 말에 어리둥절함을 감추지 못했다.
게다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멤버들 중 유일하게 에이든 리만이 활기차게 긍정을 표해, 나는 당황한 기분으로 놈에게 물었다.
“뭐… 너 뭘 한 거야?”
“응, 데뷔곡 수급한다고 들어서 곡 보냈어.”
“…언제?”
“얼마 전에?”
나는 어이가 없어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원디어가 로드 엔터에 소속된다는 이야기는 파이널 경연 다음 날에서야 우리에게 전해졌다. 그런데 뭘 어떻게 알고 곡을 보냈단 말인가.
“잘?”
내 물음에 에이든 리는 그렇게 답하곤 입을 다물었다. 딱히 숨기고 싶어 한다기보다는 정말 말할 필요를 못 느껴서인 듯 대수롭지 않은 태도였다.
그런 에이든 리에게 하승혁 대표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에이든 씨가 보낸 곡이 KC ENM이 수급한 곡들보다 더 좋은 곡이라고 확신합니까?”
“그건 모르죠?”
에이든 리의 어이없는 대답에 한순간 멤버들이 당황한 눈빛으로 에이든 리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일견 장난으로 받아들여지는 말에도 하승혁 대표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그에 에이든 리가 씩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근데 별로 질 것 같진 않네요.”
그 오만하기까지 한 말에 하승혁 대표는 이렇게 말했고.
“이미 검증된 안정성을 가지고 있는 곡과 에이든 씨의 불확실한 곡. 내가 그 둘 중 무엇을 선택할 거라 생각합니까?”
내가 그 말에 이렇게 대답함으로써.
“불확실한 곡을 선택해 주시죠.”
“타당한 이유가 있습니까?”
…대화는 여기까지 치닫게 된 것이었다.
“엔터 사업이라는 게 원래 불확실성에서 가능성을 보는 것 아닙니까?”
“틀립니다. 엔터 사업도 예측된 가능성을 토대로 진행되는 것이니까요. 불확실함에서 나오는 대박도 있겠지만, 그런 경우는 잦지 않죠. 그렇기에 이미 검증된 안이 있다면 불확실한 안보다는 그 검증된 방법을 쓰는 게 옳고.”
하승혁 대표는 가만히 안경을 벗어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더없이 사무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사업에는 이유가 필요합니다. 그저 감으로 진행시키기에는 너무 많은 것이 걸려 있으니까요. 원하는 방향이 있다면, 그것을 제게 납득시켜 주십시오.”
나는 안경을 벗은 덕에 더욱 날카롭게 느껴지는 하승혁 대표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대답했다.
“[디자인 유어 아이돌>로 데뷔한 프로젝트 그룹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서요.”
실은 여기에는 한 가지 더 이유가 있었지만.
나는 하승혁 대표에게 그렇게 답하며 긴장한 기색의 멤버들에게 눈길을 주었다. 그리고 조금은 어리벙벙한 기색의 에이든 리와 눈이 마주쳤을 때, 다시 시선을 돌려 하승혁 대표를 바라보았다.
내가 에이든 리의 편을 드는 이유는 간단했다.
‘아이딘은 회사의 기획으로만 돌아갔지.’
[디자인 유어 아이돌>은 기껏 멤버 구성원의 능력치가 완벽한 아이돌 그룹을 데뷔시키겠다는 목표를 내걸고 멤버를 뽑아 놓고, 초반의 기획을 전혀 살리려 들지 않았다.1차 경연부터 시작해 지속적으로 멤버들에게 창작 능력을 요구한 것이 무색할 정도로, 아이딘은 회사가 뽑아 놓은 안정적인 곡들로 활동을 해 나갔던 것이다.
‘그게 아마 에이든 리의 탈주 사유가 되었을 테고.’
그러니까 지금 이 상황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볼 수 있었다.
애초부터 나는 아이딘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을 잡고 5년간의 활동을 이어 나가야 한다. 그리고, 그와 함께 멤버의 탈주 또한 막아 내야 했다.
지금 ‘원디어’에 소속된 ‘아이딘’의 멤버는 총 네 명. 강현진, 도지혁, 에이든 리, 유찬희.
넷 중 두 명은 끝까지 그룹 활동을 해내지 못했었다.
‘에이든 리는 2년 차에, 강현진은 4년 차에.’
에이든 리는 계약서상의 문제로 아예 활동을 종료하고 한국을 떴고 강현진은 4년 차 말쯤 건강상의 이유를 대며 계약 만료까지 활동을 아예 멈춰 버렸다. 결국 아이딘의 활동을 끝내는 마지막 콘서트 때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걸로 알고 있고.
‘시나리오가 내게 내건 조건은 총 네 개.’
계약 만료까지 원디어의 기존 멤버를 전부 유지하는 것과 연차별로 활동 업적을 쌓는 것, 그리고 밝혀지지 않은 두 개까지.
밝혀지지 않은 두 개의 조건을 어떻게 만료해야 할지는 감조차 오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그것보다도 원디어의 기존 멤버를 전부 유지하는 게 더 어려운 조건처럼 느껴졌다. 사람을 통제할 순 없으니까.
‘하지만, 영향은 줄 수 있어.’
그렇기에 이 모든 것을 해내기 위해 내가 택한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그룹의 방향성을 바꾼다.’
강현진의 탈주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 이유를 모르니 조금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에이든 리의 탈주 사유는 짐작 가는 게 있었다.
소속사에 눌려 제 능력을 펼치지 못하고, 무엇보다도 제 열정을 멤버들이 따라오지 못해 탈주를 결심하게 된 것이라면 에이든 리를 그룹에 눌러 앉히는 건 간단한 일이었다.
회사의 기획으로만 이루어지던 기존의 아이딘에서 벗어나 멤버들의 참여가 필수적으로 이루어지는 자체 제작으로 간다.
능력치가 모자란 그룹이라면 독이 될 수밖에 없는 활동 방향성. 그러나, 나는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이 인선이라면 가능하다.’
[디어돌>은 열심히 연습생들을 굴려 가며 ‘능력’이 되지 않는 연습생들을 걸러 냈다. 그렇기에 파이널 경연까지 살아남은 건 그들이 정한 ‘룰’을 따라온 연습생들뿐이었다.애초부터 [디어돌>이 정한 창작 룰을 따라가지 못하는 연습생들에게는 카메라 분량조차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이미 창작 능력이 없는 연습생들은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해 1차와 2차 경연 때 걸러지고, 파이널까지 살아남은 연습생들은 각자 하나씩은 그들이 원하는 이상적이고 ‘완벽한’ 능력치를 가지고 있어 카메라 분량을 받아 냈던 연습생들뿐이었다.
그렇게 파이널 경연까지 거쳐 마침내 선발된 여섯 명.
이들은 기획사들의 눈, 대중의 니즈, 여기에 제작진들의 목표가 합쳐진, 이미 수없이 많은 ‘검증’을 통과해 낸 연습생들이었다.
“에이든의 곡은 이미 들어 보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저희들이 [디자인 유어 아이돌>이라는 서바이벌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 왔는지도요. 그렇다면 저 또한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
“사업을 이끄는 대표의 눈으로 보았을 때, 저희에게서 가능성이 느껴지지는 않으셨습니까?”
에이든 리의 작곡과 프로듀싱 능력, 주단우와 유찬희, 천세림의 작사 능력과 도지혁과 강현진의 안무 창작 능력까지. [디어돌>은 그 모든 것을 담아냈고 그건 대중들에게 어필되었다.
그렇게 진행되고 끝난 ‘서바이벌’. 마침내 탄생한 프로젝트 그룹에 그들의 능력을 담지 않는다는 건, 내 사심을 빼고 봐도 아까운 일이었다.
콘셉트는 이미 3개월간의 방송 기간 동안 충분히 잡혔다. 증명도 충분히 했다.
그러니 못 하는 게 이상했다. 만약 불가능했다면 애초에 원디어가 되지 못했을 테니까.
“잘할 수 있을 겁니다. 잘해서 여기 있으니까요.”
즉, 나도 완전히 불확실한 건 아니었다.
이들의 능력은 나뿐만이 아닌 5.9%의 시청률이 증명해 주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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