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Plan for the Second Life Idol RAW novel - Chapter (118)
“내가 샀는데?”
“어?”
나는 태연스레 말을 이었다. 그러자 떠보는 듯하던 에이든 리의 얼굴이 어리둥절하게 변했다.
나는 비척비척 바닥에서 일어나 연습실 거울 쪽에 몸을 기댔다. 마침 천세림이 뛰어와 내게 가방 속에 있던 영양제를 건네줘, 나는 그것을 받아 들며 말을 덧붙였다.
“건강 챙기려고 내가 샀어.”
“…유하가 샀다고?”
“응. 니들이 먹으라며.”
“형이 산 거예요?”
옆에 다시 앉은 천세림도 내 말에 의아한 얼굴로 그렇게 말하는 것에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영양제의 상표를 보여 주었다.
“너희가 추천해 준 거잖아. 기억 안 나냐?”
“아, 이거. 그러네?”
천세림이 상표를 이제야 확인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에이든 리가 호기심 어린 눈길로 상표를 한번 흘긋 보았다.
실제로 주단우가 나와 에이든 리에게 준 영양제는 지난번 내가 혼절해 병원 신세를 진 이후 천세림과 에이든 리가 내게 추천해 준 것이었다.
정확히는 천세림이 먼저 먹기 시작하면서 에이든 리에게 전파하고 그 둘이 내게 이야기했던 건데, 에이든 리는 지금 내게 신경이 쏠려 그 자리에 주단우도 있었단 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듯싶었다.
“이거 유행하나 봐. 나도 이거 선물로 받았어.”
“마니또한테?”
“응, 기억 안 나? 유하가 내 침대 위에 뒀잖아.”
예상대로 에이든 리는 주단우까지는 생각이 닿지 않은 듯했다.
에이든 리가 눈을 가늘게 뜨곤 내게 말했다. 그 얼굴에는 긴가민가한 기색이 역력해, 나는 에이든 리가 자신의 마니또를 아직 찾아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이제야 기억이 났다는 듯 적당히 수긍했다.
“아, 네 침대 옆에 떨어져 있던 거. 바닥 굴러다니기에 대충 침대 옆에 둔 건데. 마니또 선물이었냐?”
“응, 유하가 먹는 거랑 똑같은 거 들어 있었어.”
“우연이네.”
“지혁이 형도 이거 먹던데.”
“그래?”
나는 우회하는 방식으로 계속해서 나를 떠보는 에이든 리의 질문을 회피하며 생각했다.
‘주단우가 도지혁한테도 준 건가?’
주단우와 도지혁은 같은 방을 쓰고 있으니, 그가 에이든 리에 이어 내게 줄 영양제를 구매하며 도지혁에게 줄 것도 같이 산 것인지도 몰랐다.
도지혁은 평소 건강 관리에 관심이 많기도 하니 가볍게 선물을 주는 겸, 주변에 영양제 선물을 뿌림으로써 좀 더 에이든 리를 혼란스럽게 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유하, 내 마니또야?”
어찌 됐든 내 말에 에이든 리는 답답함을 느낀 모양이었다. 제 말에도 내가 계속해서 모르는 척을 하자, 안 되겠다 싶었는지 결국 정공법으로 치고 들어온 것이다.
나는 그 모습에 괜히 말의 핵심을 못 알아듣는 척하던 것을 그만두었다.
그리고는.
“어떨 거 같아?”
“……!”
“추리해 봐.”
에이든 리가 그랬던 것처럼 놈을 한번 골려 보았다.
“치사하다!”
나는 영양제를 목구멍 너머로 삼키곤 에이든 리의 말을 가볍게 무시했다. 불퉁해진 얼굴로 나를 노려보던 에이든 리는 곧 다른 쪽을 캐 봐야겠다 생각했는지, 자리에서 일어서 도지혁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곧 에이든 리가 완전히 자리를 떠나자, 천세림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형이 진짜 이든이 형 마니또예요?”
“추리해 보라니까.”
“아니, 저한테는 알려 줘도 되잖아요. 우리 어차피 하루 남았는데.”
“그 하루 동안에도 판이 바뀔 텐데, 내가 뭘 믿고 알려 줘.”
“진짜 치사하다, 형.”
짐짓 서운한 얼굴로 천세림이 그렇게 말하는 것에 나는 이 기회에 놈을 한번 떠보기로 했다.
“네가 먼저 밝히면 알려 주고.”
“마지막 날에야 동맹을 맺자고요? 이미 형 동맹 상대 있잖아요.”
대충 반응이나 살필 겸해서 던진 말이었건만, 돌아온 천세림의 답은 어딘가 의미심장했다.
그에 나는 순간적으로 입을 다물고 천세림에게로 시선을 돌렸고, 내 반응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던 놈과 눈이 마주쳤다.
곧 천세림이 씩 미소 지었다.
“맞네.”
그 순간 나는 내가 천세림에게 말려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바로 답했어야 했는데.’
잔머리며 눈치 하나는 역시 귀신같은 놈이었다. 그 잠깐의 침묵이 천세림에게는 확신을 준 듯했다.
게다가 저 자신만만한 표정.
“…누군지 이미 알고 있지? 너.”
뭔가를 알고 있는 게 확실했다.
어떻게 마니또에 대해 추리를 해낸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천세림의 말을 부정하지 않는 방식으로 긍정을 표하며 덧붙여 물었다.
그러자 천세림이 흠, 고뇌하는 척을 했다.
“어떨까요? 제가 알고 있을까요, 없을까요? 제가 형 동맹 상대가 누군지, 형이 누구 마니또인지 알고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는 직전의 나처럼 이제야 본색을 드러냈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물었다.
“뭘 원하냐?”
천세림이 원하는 게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내 말에 천세림은 그제야 본론을 꺼내놓았다.
“마니또 게임이랑은 별개로 저희 내기라도 할래요? 제가 형이 누구 마니또인지 맞추면 형은 제 노예가 되는 거죠.”
“뭐?”
“그리고 제 노예 하는 동안 제가 주는 것들 군말 없이 받아먹기 어때요? 출처며 정체 궁금해하지도 말고 물어보지도 말고.”
…어째 불안한데.
나는 호기롭게 내기를 거는 천세림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그가 내게 먹이지 못해 안달이었던 환약이니 즙 같은 것들을 떠올렸다.
건강 염려증이라도 있는 것처럼 천세림은 지난번 내가 병원 신세를 진 이후로 내게 보양식을 먹이지 못해 안달이었다.
이게 대체 뭘로 만든 거냐고 물어도 제대로 된 답을 안 해 줘서 극구 거부하고 있는 상태였는데.
“형이 내기 안 받아들이면 저 이거 형 친구한테 이릅니다?”
이 기회에 천세림은 내게 그것들을 어떻게든 먹일 생각인 듯했다.
“…….”
솔직히 먹는 것까지는 별다른 문제가 안 됐다. 뭘로 만들어졌든 천세림이 내게 이상한 걸 먹이진 않을 테니까.
하지만 내가 그 보약들을 거부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너 그거 먹어 보긴 했어?”
“몸에 좋은 것은 쓴 법.”
바로 그렇게 전달되는 것들이 모두 극악의 맛을 자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놀랐지.’
세상에 이런 맛이 존재할 수도 있구나 싶어서.
먹은 순간 시야가 하얗게 변할 정도의 쓴맛이었다. 사람이 먹으라고 만든 건가 싶은.
‘오히려 수명이 줄 것 같던데.’
그래서인지 막상 천세림도 안 먹지 않나.
순간 저도 안 먹는 것을 내게 먹으라는 천세림의 말에 어쩐지 억울해져, 나는 항의했다.
“야, 상도의라는 게 있는데…….”
“마피아에 상도의가 어딨어요?”
…일단은 마니또잖아, 이 자식아.
돌아가는 형세는 서로 죽고 죽이는 마피아 판이기는 해도 나름대로 따뜻한 의도하에 진행하게 된 게임이었는데, 이게 이렇게까지 긴장감이 더해질 일인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결국 입을 열었다.
“…조건 하나 덧붙여. 최소 멤버 3명 마니또 알아내기.”
“아, 치사하다!”
“협박한 건 너잖아.”
어차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면 조건이라도 붙여야 했다.
내 말에 천세림은 불만스러운 듯 볼을 부풀렸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 가서 딴말하지 마요, 형.”
그러면서도 의미심장한 말을 덧붙여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었지만.
* * *
다음 날, 우리는 리얼리티 첫 촬영 때처럼 로드 엔터의 회의실에 둘러앉아 있었다.
그러나 첫날과는 달리 멤버들 사이에서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럼, 원디어의 첫 타이틀 곡 발표를 시작하겠습니다!“
바로 오늘, 원디어라는 그룹의 방향성이 결정되니까.
데뷔곡을 결정하기 위한 직원 투표는 오늘 오전 끝났다. 남은 것은 결과를 확인하는 일뿐.
스크린은 이미 세팅되어 있었고, 동영상을 틀 리모컨은 천세림의 손에 들려 있었다. 천세림이 버튼을 누르면 화면 위로 데뷔곡의 안무가 뜨게 될 것이다.
“그럼, 틉니다?”
‘Beyond the wall’이라면 기존에 이미 완성되어 있던 안무 팀의 시안 영상이, 에이든 리의 곡이라면 바로 어젯밤까지 촬영했던 우리들의 영상이.
천세림은 긴장된 얼굴로 심호흡한 후 리모컨을 꾹 누르고 자신 또한 자리에 앉았다. 화면 위로 떠 있던 동영상의 재생 버튼이 눌리자, 곧 멤버들에게서 불안에 찬 수군거림이 새어 나왔다.
“긴장된다…….”
“그런데 이든이 형 곡이 떨어지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우리 리얼리티도 벌써 다 찍었는데…….”
“…다시 찍나?”
“설마…….”
“아예 엎어지면…….”
멤버들이 어색한 얼굴로 서로를 돌아보며 수군거렸다.
막상 어제까지만 해도 자신감에 차 뽑히지 않을 일이 없다며 떠들더니만, 막상 오늘이 되자 불안한 마음이 치고 올라온 모양이었다.
노력한 만큼의 결과를 돌려받을 수 있다고는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그것을 오랜 연습생 기간을 거치며 몇 번이고 확인했을 멤버들이기에, 지난 일주일간의 노력 여하와는 상관없이 ‘설마’의 가능성을 버리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멤버들의 걱정은 타당했다.
‘만약 곡이 선택되지 못한다면 다시 찍을 수밖에 없겠지.’
만약 에이든 리의 곡이 아닌 ‘Beyond the wall’이 우리들의 데뷔곡이 된다면 리얼리티의 방향성을 다시 짚고 넘어가야 할 터이기 때문이다.
이번 리얼리티의 콘셉트는 너무나 확고하다. 그룹을 보여 주는 데 이어 자체 제작이라는 그룹만의 정체성을 보여 주는 데 중점을 두었으니까.
그런데 에이든 리의 곡이 뽑히지 못하고 기존에 제작해 두었던 곡으로 가게 된다면 그룹의 방향성과 더불어 정체성까지도 재고해야 될 터였다.
그럼 지금까지 찍어 둔 촬영분 중 꽤 많은 장면을 버려야 한다.
‘엎어진 곡을 이렇게 열심히 만들었습니다, 이런 걸 보여 줄 수는 없을 테니까.’
다만 제작 자체가 무산될 일은 없었다. 단독 리얼리티는 계약 사항에 포함된 내용이었고, 리얼리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팬들의 코어화와 시청률을 에이넷이 놓치려 들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 에이넷 측에서는 지금까지 촬영된 숙소 생활과 함께 몇 가지 정도 추가적인 촬영을 거쳐 재제작을 하려 들 터였다.
그러니 손해 볼 일은 없지만.
‘역시 아쉽지.’
몇 화 동안 내내 데뷔곡을 홍보할 수 있는 기회를 버려야 한다는 건.
나는 이번 리얼리티를 통해 데뷔곡에 대한 팬분들의 호기심을 극한까지 끌어 올릴 수 있을 거라 예상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번 리얼리티를 통해 원디어라는 그룹에 정체성을 부여하고 그 시작점이 되는 데뷔곡에 어떤 기획을 덧붙이게 되었는지, 거기에 각 멤버들이 어떤 고뇌를 거쳐 가사를 붙이고 녹음을 거쳐 안무를 창작했는지를 보여 줄 수 있었다.
팬분들이 원디어라는 그룹과 데뷔곡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전부 확인할 수 있는 거다.
즉, 멤버들이 실제로 직접 참여해 만드는 과정을 담은 만큼 그저 결과물만을 놓고 보았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감상이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홍보 기회는 흔하지 않아.’
리얼리티의 촬영분은 우리의 데뷔 쇼케이스 일주일 전쯤부터 방영을 시작해 활동기와 맞물릴 예정이었다. 시기를 잘 탄 만큼 적잖은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었다.
‘아마 하승혁 대표도 그걸 노린 걸 테고.’
-엔터 사업도 예측된 가능성을 토대로 진행되는 것이니까요. 불확실함에서 나오는 대박도 있겠지만, 그런 경우는 잦지 않죠. 그렇기에 이미 검증된 안이 있다면 불확실한 안보다는 그 검증된 방법을 쓰는 게 옳고.
에이든 리의 곡을 두고 하승혁 대표는 그렇게 말했었지만, 나는 이번 리얼리티 촬영을 통해 그가 이번 일을 허투루 벌인 건 아니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하승혁 대표는 이미 원디어라는 그룹에게서 ‘예측된 가능성’을 보았던 것이다.
그는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우리들을 높은 시청률과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의해 검증된 ‘확실한 안’으로 보았을 터였다.
‘이번 리얼리티도 예측된 가능성을 통한 최적의 수였겠지.’
결국 하승혁 대표는 이번 일을 ‘배팅’이라고 여기진 않았을 것이다. 그는 이미 우리들이 해낼 수 있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을 테니까.
그러니 나는 우리들의 첫 타이틀이 어떻게 결정될지에 대해 큰 걱정이 되지 않았다.
하승혁 대표가 이토록 대범하게 리얼리티의 기획을 잡아 놓을 수 있었던 이유는.
[…♪♬]“……!”
“헉……!”
“와!!”
결국 에이든 리의 곡이 뽑힐 거라고 확신했다는 뜻일 테니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