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Plan for the Second Life Idol RAW novel - Chapter (12)
‘아, 등급 재평가 바로 전날에 가족이랑 3분 전화 연결이 진행된다고 했던가.’
합숙 첫날 강당에서 스태프가 그렇게 말했던 게 이제야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나는 잠깐 다녀오겠다는 말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족과의 전화 연결은 세 개의 연습실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다. 워낙 연습생들이 많은 탓이었다.
연습실 앞에는 스태프와 함께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연습생들이 있었고, 나는 조용히 그 뒷줄에 가서 섰다.
“전화 연결은 3분 동안 진행됩니다. 문을 두드리면 전화 끊고 나오시면 돼요.”
사무적인 스태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나는 곧 휴대폰을 받아 들고 연습실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
그리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지 않고 그냥 그 자리에서 3분을 때웠다.
‘미래도 지금도 전화할 사람 같은 게 없다는 건 같군.’
현재의 내게 부모님의 죽음은 이미 오래전의 일이었다. 내가 죽은 것이 스물다섯의 겨울이었으니 벌써 육 년도 더 전의 일인 것이다.
그런 만큼 이제 와 주체할 수 없을 만큼의 슬픔 같은 게 느껴질 리는 없었다. 밥을 못 먹고 잠을 못 잘 정도의 괴로움은 이미 지나 버린 과거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 가정사 관련 인터뷰는 방송에 내보내지 않는 조건으로 출연할게요.
그렇다고 해서 그분들을 쉽게 입에 올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디어돌>에 출연하겠다는 의사를 밝힐 때 권 실장님과 한 가지 약속을 했다. 그건 바로 내 가정사를 방송 용도로 써먹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이건 네 인지도나 데뷔에 있어 아주 중요한 카드가 될 수도 있어. 그래도 괜찮겠니?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가장 중요한 건 뭘까.
빼어난 노래 실력, 감탄사를 불러일으킬 만한 춤 선, 수려한 미모나 주체할 수 없는 끼. 그 모든 것들이 중요하겠지만 실제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
바로 캐릭터였다.
-네, 절대 노출 안 되게 해 주세요.
내 인생은 ‘불행 서사’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불행한 일투성이었고, 그건 실은 연예계에서는 아주 효과적으로 써먹을 수 있는 카드이기도 했다.
대중, 특히 TV를 보는 시청자들은 서사에 약하다. 그중에서도 눈물샘을 자극하는 ‘불행 서사’는 언제고 먹히는 키워드였다.
그런 만큼 나는 ‘불행 서사’와 ‘극복’의 아이콘에 아주 잘 맞는 소재거리였다.
보육원 출신. 좌절된 입양 기회. 늦은 나이에 겨우 입양을 갔으나 양부모를 모두 잃었고, 컨디션 난조로 인해 데뷔조에서도 떨어진 대형 출신 연습생.
심지어 그 연습생이 양부모의 죽음 이후 우울증을 겪어 오랜 시간 방황했고, 그로 인해 아직까지도 그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면.
무너진 체력과 아직까지 떨쳐 내지 못한 슬럼프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이자 새로운 시작을 위해 [디어돌>에 출연했다면?
‘이보다 더 서바이벌에 맞는 캐릭터는 없어 보이겠지.’
제작진 측은 이 캐릭터를 살리고 싶어 할 것이고, 내 캐릭터는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받아들여져 한동안 주목을 모을 수 있을 터였다.
‘시청자들의 사랑으로 이 연습생은 데뷔를 통한 극복을 이뤄 냈습니다, 하는 식의 감동 서사를 만들어 낼 수도 있을 테고.’
그러나 그건 정말로 나의 과거를 소비하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 ‘원유하’라는 개인은 감추어지고 ‘고아 출신 대형 연습생’만 남게 되는 것이다.
실력보다는 과거가 더욱 중점적으로 다루어질 것이고 그러는 동안 나의 과거는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낱낱이 해체되어 떠돌아다닐 터였다.
그러는 동안 돌아가신 부모님은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것이고.
“…….”
나는 그분들을 그런 식으로 타인의 입에 오르내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아이돌로 데뷔하고 싶지 않아 하는 것이나 그를 위해 분량을 얻고 싶지 않아 하는 것과 관계없이, 그런 이유에서 나는 아주 조금의 과거사도 방송에 알려지지 않기를 바랐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러 가족 관계와 관련된 사항은 뺀 채로 에이넷에 보낼 수 있도록 권 실장님께 요청드렸고, 덕분에 인터뷰 때도 가족과 관련된 사항은 이야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
제작진들이야 물론 내 가정사에 뭔가 있구나, 생각은 할 테지만 소속사에서 언질을 주었으니 굳이 내게 그런 질문을 캐묻지는 못할 것이었다.
‘이럴 땐 대형 덕을 보는 것 같네.’
아마 중소 소속사였으면 눈치 같은 건 보지 않고 벌써 인터뷰에서 내 가정사를 낱낱이 해체하려 들었을 테지만, 대형 소속사의 위세가 꽤 대단하긴 한 모양이었다. 아직까지 내게 그런 질문을 해 오는 제작진은 없는 걸 보니.
‘내 영상은… 뭐, 알아서 처리하겠지.’
전화 통화를 하는 연습생만 백 명이다. 대충 그중에서 흥미로운 연습생 몇 명 뽑아다가 방송에 쓰면 그만일 테니, 내 영상 정도야 그냥 버릴 터였다.
“가족들이랑 전화 잘하고 왔어?”
“어.”
나는 식당에 도착해 자리로 돌아온 후 에이든 리의 질문에 그렇게 대답했다. 그러고는 내 식판 위에 남아 있던 음식들을 전부 쓰레기통에 버려 버렸다.
* * *
등급 재평가가 시작되는 날 아침은 분위기부터가 이전 날과는 달랐다.
내내 여유로운 얼굴이던 에이든 리마저 말수가 적었고, 천세림은 웃고 있으면서도 날이 서 있었다. 주단우야 말할 것도 없이 얼어 있었고.
다른 연습생들 또한 식당에서도 다시 안무를 춰 보거나 노래 연습을 하는 등 바빠 보였다. 발등에 불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당장 어제까지도 연습에 집중을 못 하던 연습생들마저 조금이라도 더 안무를 숙지하기 위해 뒤늦게 내게 달려오기도 했다.
그리고 오전에 진행된 한 시간의 마지막 연습 시간이 끝나고, 마침내 등급 재평가가 시작되었다.
“등급 재평가는 클래스별로 이루어집니다. 각자 스스로 카메라를 조작해 녹화 버튼을 누르고 ‘봐’를 선보여 주시면 됩니다. 기회는 단 한 번뿐이며 재도전은 없습니다.”
D클래스 연습생들은 긴장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곧 스태프들은 연습실 거울 앞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먼저 연습실에서 빠졌다.
등급 재평가는 어제 저녁 미리 뽑아 두었던 제비뽑기에 따른 순서대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공교롭게도 내가 뽑은 순서는 꽤 뒤쪽이어서, 나는 다른 연습생들이 등급 평가를 하는 걸 꽤 오랫동안 지켜봐야 했다.
“안녕하세요! 훼이 엔터테인먼트 소속 쯔쉬안입니다. 등급 평가 시작하겠습니다!”
다행히 D클래스의 전체 성적은 나쁘지 않을 것 같아 보였다. 다들 칼을 갈고 연습을 한 탓에 전체적으로 나쁘지 않은 수준으로 ‘봐’를 선보일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중에서는 원래 하던 것에 비해 좋지 않은 결과를 내보이는 연습생들도 있었다. 긴장된 분위기, 게다가 단 한 번뿐인 기회라는 압박감에 짓눌려 실력을 제대로 선보이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연습 내내 나를 가장 알차게 써먹던 쯔쉬안도 그런 압박감에 짓눌린 연습생 중 하나였다.
“아!”
“아아…….”
너무 긴장한 탓에 쯔쉬안은 가사의 발음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중간에는 박자를 놓쳐 버리고 말았다. 마지막 즈음에는 발이 꼬여서 넘어져 버렸고.
막내인 쯔쉬안이 합숙 내내 얼마나 열심히 연습해 왔는지를 알고 있는 D클래스 연습생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안타까운 신음을 냈다.
하지만 쯔쉬안은 위기의 순간에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빛, 빛나는 나를 봐! 너만의 나를 봐~”
넘어진 후에는 거의 바닥을 후다닥 쓸다시피 하여 벌떡 일어났는데, 그 모습이 주섬주섬 뭔가를 주워 일어나는 것 같이 어수룩해 보여 D클래스 연습생들은 자기들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려 버렸다.
쯔쉬안은 부끄러운 듯 빨갛게 물든 얼굴로 씩씩하게 끝까지 춤을 췄다.
‘잘하네.’
꽤 많은 실수를 했다지만,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쯔쉬안이 D보다는 더 높은 등급을 얻을 것이라 예상했다. 쯔쉬안은 포기하지 않고 결국 끝까지 춤을 추고 노래를 해냈기 때문이다.
‘노력도 실력이지.’
게다가 서바이벌 프로그램이지 않은가. 그런 노력에 멘토들도 점수를 좀 보태 줄 것이었다.
다른 연습생들의 미소 속에서 머쓱한 얼굴로 자리로 돌아온 쯔쉬안에 이어 다음 차례로 연습실 중앙으로 나선 건 주단우였다.
“…시즈레이블 소속 주단우입니다. 영상 평가 시작하겠습니다.”
곧 너무 많이 들어 이제는 귀에 완전히 익어 버린 ‘봐’의 인트로가 흘러나오기 시작하고, 주단우는 폼을 잡았다.
그리고 주단우는 박자를 타고 능숙하게 자신이 연습한 춤과 노래를 해 나가기 시작했다.
“…와.”
“잘한다.”
연습생들 사이에서 속삭임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의 말마따나 주단우는 어려워했던 춤마저도 곧잘 해내고 있었다. 노래야 보컬 멘토인 차미나에게 칭찬을 들을 정도였으니 말할 것도 없고.
그러나.
“지난날은 이제 bye, 너와 나의 꿈이……. 아.”
연습한 대로 춤과 노래를 이어 나가던 주단우는 순간 제동이라도 걸린 것처럼 그대로 멈춰 섰다. 춤을 추다가 순간적으로 박자가 꼬였는데, 자신도 모르게 멈춰 버리고 만 것이다.
“아…….”
“단우 형…….”
“어떡하냐…….”
그리고 주단우는 그 자리에 멍하니 멈추어 서 더 이상 춤과 노래를 이어 가지 못했다.
“…….”
주단우의 얼굴이 실시간으로 허물어지는 것이 보였다. 그가 천천히 무너져 가는 동안에도 맞추어 부르고 리듬을 타는 사람 없는 ‘봐’의 멜로디는 잔인할 정도로 빠르고 천진하게 연습실에 울려 퍼졌다.
“…감사… 합니다.”
그렇게 주단우는 다시 시작하지 못하고 그대로 영상 평가를 끝내고 말았다.
“…….”
힘없이 자리로 돌아와 앉는 주단우에게는 감히 어떤 연습생들도 위로의 말을 꺼내지 못했다. 주단우가 느끼고 있을 괴로움이 그대로 얼굴에 드러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로도 등급 평가는 계속해서 진행되었다.
자기 실력에 비해 좋은 결과를 낸 연습생이 있는 반면, 연습하지 않은 그대로의 실력을 보이는 연습생과 연습량에 비해 좋지 않은 결과를 내지 못한 연습생들도 있었다.
그렇게 한 명씩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등급 평가가 진행되다가, 마침내 내 차례가 왔다.
내 앞 타자가 자리로 돌아와 앉는 것을 보고 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났다. 그 후 바로 연습실 중앙으로 이동하려는데.
“힘내, 유하야.”
…라는 속삭임이 따라붙었다.
“…….”
주단우였다.
‘…이 와중에.’
성격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자기 자신이나 챙길 것이지.
속 깊은 곳에서부터 한숨이 나왔지만, 나는 작게 고개만 끄덕이고 중앙으로 나섰다. 그리고 카메라 조작 버튼을 누른 후,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KRM 엔터테인먼트 소속 원유하입니다. 등급 평가 시작하겠습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