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Plan for the Second Life Idol RAW novel - Chapter (123)
123화
“가서는 조심하고.”
“나 진짜 별말 안 할 건데.”
나는 부루퉁한 얼굴의 에이든 리에게서 시선을 돌려 유찬희를 바라보며 말했다.
“유찬희, 네가 잘 챙겨. [디어돌> 때랑 비슷해, 뭐가 됐든 촬영이 되면 언제 어떻게 사용되고 퍼질지 모른다. 한번 입에서 나오면 돌이킬 수 없다는 거 알지.”
“네!”
“아니, 형은 나인데…….”
억울해하는 에이든 리의 옆에서 유찬희가 비장한 얼굴로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곧 사명이라도 부여받은 표정으로 유찬희가 에이든 리를 이끌어 숍을 나서는 것을 보며 나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진짜 괜찮나.’
바로 얼마 전에 대차게 스포일러를 터뜨리는 바람에 예정보다도 훨씬 빠르게 리얼리티의 선공개 편집본을 꺼내게 되었던 만큼, 나는 에이든 리의 돌발 행동을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스포일러는 유어원 덕에 잘 편집되어 그룹을 홍보하는 데 오히려 이득이 되었다지만, 장기적으로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하는 건 좋지 않을 터였다. 기대감을 떨어뜨리게 되니까.
‘…솔직히 저놈을 막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지는 않지만.’
어쨌든 막을 수 있는 만큼은 막아 봐야 할 터.
그에 그나마 상황에 자신을 맞출 줄 아는 유찬희에게 신신당부를 하긴 했지만, 둘 모두 급발진으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성격들이니만큼 완전히 걱정을 접을 순 없었다.
‘저 둘의 조합이 이상한 시너지를 발휘하게 될 가능성도 있고.’
다만 지금이야 알아서 잘해 주겠거니, 하고 믿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으니 그냥 두고 볼 수밖에 없을 터였다.
“세림이랑 단우도 잘 도착했나 봐.”
“그 둘이야 워낙 잘할 테니까 걱정 없지.”
“네, 잘하겠죠.”
둘이 나선 문 쪽을 바라보던 나는 곧 도지혁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휴대폰을 내려다보던 도지혁이 단톡방에 도착한 천세림과 주단우의 연락을 확인한 모양이었다.
그에 옆에서 막 헤어 세팅을 끝마친 강현진이 당연하다는 투로 그렇게 말한 것에 나는 선선히 동의했다. 확실히 에이든 리나 유찬희와는 달리 천세림과 주단우는 워낙 행실이 똑바른 만큼 별달리 걱정할 일은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걱정할 일은 딴 곳에 있었다.
“그럼 이제 저희도 가요. 밖에 차 대기 중이라고 하니까.”
바로 오늘의 우리들 말이다.
* * *
[디어돌>이 공전의 히트를 치며 종영한 이후, 이슈와 트렌드에 민감한 각 방송사들의 예능국은 아직 데뷔도 전인 원디어에게 수많은 러브콜을 보냈다.로드 엔터는 이를 확인한 후 중요도에 따라 몇 개의 스케줄을 골라 멤버들에게 고르게 분배했다.
그렇게 확정된 예능 스케줄만 벌써 단체 출연 두 개와 개인 출연 세 개. 이 스케줄 중 가장 먼저 촬영을 진행하게 된 건 개인 출연 예능이었다.
그리고 우연찮게도 그 세 개의 예능의 녹화 날짜가 모두 겹쳐, 오늘 원디어는 세 개의 조합으로 나뉘어 각자 스케줄을 소화하기 위해 찢어진 상태였다.
유찬희와 에이든 리가 나간 것은 웹 예능이었다. K팝 아티스트들이 음악 대결을 벌이는 예능으로, 대부분 프로듀서형 아이돌들이 자주 출연하는 예능이었다.
불안한 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음악과 경쟁이 함께 이루어지는 포맷이니, 둘은 나름대로 활약을 할 것으로 보였다.
이어서 주단우와 천세림이 출연한 것은 셀럽들의 자제가 출연하는 육아 예능이었다. 한 명은 활달하고 한 명은 다정다감하니, 이 둘도 무난하게 아이를 잘 돌보며 소화를 할 터였다.
그리고 나머지 셋. 나와 도지혁, 강현진이 출연하게 된 예능은…….
“안녕하십니까~! 이번에 아이돌 팀 인턴 사원으로 호호 상사에 입사하게 된 도.지.혁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같은 팀의 인턴으로 발령받은 강현진입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똑같이 인턴으로 호호 상사에서 일하게 된 원유하입니다.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디어돌>의 최종 순위 1~3위에 한해 출연 제안이 들어온, 한 케이블 채널의 간판 예능 ‘살아남아라! 호호 상사’였다.예능의 포맷은 간단했다. ‘호호’라는 유명 MC가 부장으로, 몇 명의 고정 패널들이 정직원으로 있는 회사에 출연진(게스트)이 인턴 혹은 경력직으로 입사를 하는 콘셉트인 것이다.
출연진은 자기소개와 더불어 적당히 신변잡기식 질문을 통해 토크를 이어 가고, 회사의 업무 시간이나 점심시간, 워크숍이나 회식, 운동회 같은 일정에서 모티브를 따 온 미니 게임을 함께 해 나가야 했다.
출연진에게 배정되는 직급은 활동 연차에 따라 나뉘곤 했는데, 그중 신인은 대부분 ‘인턴’이라는 직위를 달고 출연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 또한 ‘인턴’이라는 직위를 달고 출연했고.
“그래, 너희 셋이 그 전설의 인턴이라고? 너희 뭐… 되나?”
…예상처럼 의도된 텃세와 짓궂은 질문을 상대로 오늘의 촬영을 이어 나가게 될 터였다.
‘소개하기에는 좋지만.’
회사라는 콘셉트를 빌렸을 뿐 프로그램의 본질은 결국 출연진을 대중에게 소개하는 토크 쇼였다. 홍보에는 더할 나위 없는 예능이었던 것이다.
케이블 채널치고 안정적인 시청률을 보유한 장수 예능이기도 한 만큼 고정 시청자도 많아 인지도를 올리기에도 나쁘지 않지만, 그럼에도 한 가지 단점이 있었으니.
“듣기론 1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입사했다 들었는데… 그리 대단해 보이진 않는데?”
그건 바로 출연자들은 콘셉트를 빌려 떳떳하게 행해지는 ‘꼰대 짓’을 감내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아이돌 팬들은 이 예능을 별로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
이 프로그램에 대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존재 의의는 내 돌의 수트 입은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뿐’이라는 비아냥이니까.
출연자들의 과거사를 비롯해 예민한 지점까지 봐주는 것 없이 토크 주제로 잡아 물어뜯기 하는 예능이었기에 아이돌 팬들은 일단 내 본진이 출연한다 하면 걱정하는 기색이 강했다.
그럼에도 출연하면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많아 연예인이라면 모두가 한 번씩은 거쳐 가는 예능이기는 했지만, 그렇기에 오늘 우리는 긴장해야 할 터였다.
‘솔직히… 물어뜯을 요소가 너무 많지 않나.’
나, 도지혁, 강현진 모두 말이다.
예상대로 패널들은 제 발로 굴러 들어온 이야깃거리를 놓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게다가 각자 들어오기까지 사연이 많다던데? 뭐, 이력이 아주 화려해?”
기회를 노리던 패널들 중 가장 먼저 움직인 건 악덕 상사처럼 건들거리는 자세로 자리에 앉아 있던 부장 역할의 MC 호호였다.
그 뒤를 이어 패널들이 맞장구를 쳤다.
“캬, 역시 신세대라 그런가. 얼굴부터 우리 때랑 다르네.”
“비주얼이 아주 그냥, 역시 아이돌 팀 신입들답습니다.”
“그런데 어째 저 얼굴은… 뭔가 익숙한데?”
적당히 금칠을 하는 식으로 우리들을 훑던 패널들이 가장 먼저 타깃으로 잡은 건 도지혁이었다.
패널들 중 하나가 과장되게 고심하는 투로 침음을 뱉다가 도지혁에게 알은체를 한 것이다.
“얼굴이 어째 익숙한데? 타 회사에서 본 것 같아.”
“아, 맞습니다. 이전에 타 회사에 입사했던 적이 있습니다.”
“뭐? 이거 취업 사기 아냐? 우린 딱 처음 회사에 입사하는 인턴 뽑는다고 공고 냈었는데! 분명 경력직이면서 이렇게 신입 타이틀 달고 들어와도 되는 거야?”
도지혁의 선선한 인정에 곧 패널이 엄격하게 소리쳤다. 나는 그 소리에 ‘호호 상사’의 유명한 레퍼토리가 시작됐음을 알 수 있었다.
‘호호 상사’의 패널들은 초반부터 출연자들을 기선 제압하려 드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렇게 방송의 분위기를 잡고 주도권을 유지하며 판을 원하는 대로 굴렸던 것이다.
‘일종의 기싸움이지.’
홍보를 위해 출연한 게스트라 한들 이 예능 프로그램의 주인은 자신들이라는 텃세이기도 하고.
이번에 잡힌 도지혁은 이미 그가 6년 전 한번 데뷔를 했던 ‘중고 신인’이라는 점과 전 그룹이 좋지 않은 문제로 터져 나간 점을 빌미로 잡힌 듯했다.
‘이 질문들을 예능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게 제일 빡센 점이지.’
신인들은 이런 기선 제압에 말려드는 경우가 많았다. 아직 유연함도, 화젯거리를 어떻게 받아들여 이야기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 때지 않나.
그에 이번에도 손쉽게 흐름을 패널 쪽으로 이끌어 올 수 있으리라 생각해 건넨 질문이었겠지만.
“권 대리님, 저 혹시 기억 안 나십니까?”
나는 에이든 리나 유찬희 때와는 달리 걱정이 없었다. 상대가 상대였으니까.
“어?”
“저희 저번에 마주쳤던 적이 있지 않습니까, MEC 로비에서요.”
“…우리가?”
권 대리라 불린 패널이 어리둥절한 얼굴을 했다.
MEC는 지상파 방송국 중 하나로, 권 대리라고 불린 아나운서 출신 패널이 프리로 전향하기 전 전속으로 소속되어 있던 곳이기도 했다.
“벌써 6년쯤 되었나……. 제가 전 직장에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한번 뵌 적이 있었죠. 그때 제게 하셨던 말씀 기억 안 나십니까?”
“…내가 무슨 말을 했었어?”
도지혁은 눈을 가느스름하게 뜬 채 좋은 추억이라도 되짚는 양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 여유로운 태도에 기선 제압을 좀 해 보려던 패널이 불안한 얼굴을 했고.
“대리님이 그때 제게 그렇게 말하지 않으셨습니까, ‘좋은 기회가 있다면 잡고 안 될 일에 매달리지 말아라.’라고. 뜨려면 상황 판단이 중요하다고요.”
도지혁은 정확히 타점을 조준해 폭탄을 날림으로써 자신이 그를 제압하기에 이르렀다.
‘대단한데.’
나는 가볍게 감탄했다. [디어돌> 내에서도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말려들어 본 적이 없던 도지혁답게, 그는 웃는 얼굴로 고정 패널에게 엿을 먹인 것이었다.
권 대리라 불린 패널은 아나운서에서 예능인으로 전향한 사람으로, 과거부터 자신이 오지랖을 부릴 수 있을 만한 ‘급 떨어지는’ 연예인들에게 훈수를 두고 다니는 것으로 유명했다.
딱 그만큼의 꼰대력으로 ‘살아남아라! 호호 상사’에서도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었는데, 도지혁은 그런 훈수와 꼰대력을 이용해 오히려 딜을 먹인 것이었다.
“뭐? 권 대리, 생판 모르는 애한테 그런 소릴 한 거야?”
“아이고, 그때는 아직 사회 체험이나 할 어린애였을 텐데……. 그런 어린애한테까지 그러고 다니고 싶었나?”
게다가 도지혁의 딜은 위험한 수준도 아니었다. 애초에 권 대리가 여기저기 훈수를 먹이고 다닌단 사실은 너무도 유명한 만큼, 패널들과 당사자 또한 무겁게 받아들이기보다는 상황을 재밌게 살릴 이야기로 받아들인 것이다.
“아니, 저, 전… 아니, 도 인턴! 사람을 그렇게 몰아가나!?”
어떻게든 반격을 해 보겠다는 듯 권 대리가 일어서 도지혁을 향해 삿대질을 해 보았지만, 도지혁은 능청스레 손사래를 쳤다.
“아, 몰아가다뇨? 절대 아닙니다. 전 그저 그때부터 대리님의 말을 뼛속 깊숙이 받아들였단 걸, 그리고 제 인생의 모토로 삼았단 점을 말씀드리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권 대리님께서 몸소 증명해 주시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 교훈을.”
“어?”
그리고는 또 한 번의 딜을 먹였다.
“신입이고 중고 신입이고가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현재 회사에 충성하면 되는걸요. 호호 상사의 아들이 된 대리님처럼요.”
“……!”
“역시 인생 선배의 말을 듣는 건 중요하네요.”
언뜻 들으면 감탄과도 같았으나, 실은 도지혁의 말뜻은 간단했다.
‘=너도 MEC를 평생 직장으로 할 것처럼 하더니 이제는 전향해서 JHTS니 호호 상사의 아들이 되겠다는 소리나 하고 다니지 않냐. 그런 네가 나한테 할 소리냐?’
역시나 독기 가득한 도지혁다운 대처였다.
“아니, 저…….”
그에 약간은 표정이 허물어진 권 대리가 차마 말을 잇지 못할 때였다.
“자, 자. 그만하고~ 다음 인턴도 소개해야지! 언제까지 시간 잡아먹고 있을 거야? 일단 내가 궁금한 건… 여기서 입사 성적 1등이 누구야?”
도지혁을 기선 제압하는 것엔 포기했다는 듯, 곧 타깃이 돌려졌다.
“접니다.”
바로 나에게로.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