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Plan for the Second Life Idol RAW novel - Chapter (124)
124화
나는 부장의 질문에 가볍게 손을 들었다. 그러자 훑는 듯한 시선이 오가고, 곧 과장된 감탄사가 뒤를 이었다.
“내가 원 인턴 얘기는 좀 들었지. 아이돌 팀 노래 부문으로 탑 먹었다며? 맞나?”
“맞습니다.”
“게다가 대학교도 3대 대학교 중 하나 나왔다고? 이야, 뒷배경도 빵빵하네. 역시 될 사람은 된다는 말이 딱 맞지?”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런데… 이게 다 낙하산이라는 소문이 있던데?”
장난스럽게 꺼낸 말이었지만, 도지혁 때와 비슷하게 빡센 꼬투리 잡기라는 점은 확실했다.
패널이 하는 말은 즉 이런 뜻이었던 것이다.
‘너 조작캐 논란에 가정사 팔이 해서 1등 했다는 얘기가 있던데?’
콘셉트에 과몰입한 것처럼 하는 말이었으나, 그건 결국 어떤 우회도 없이 직접적으로 내게 따라붙은 논란을 정확히 캐묻는 질문이었다.
어떤 토크 쇼에서도 제정신으로는 건네지 못할 질문이었지만, 호호 상사는 콘셉트를 무기로 이런 식의 질문들을 출연자들에게 던지는 구성을 반복하고 있었다.
“……!”
내게 따라붙은 조작캐 논란을 누구보다도 강하게 의식하는 강현진의 몸이 긴장으로 굳는 게 느껴졌다.
내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에 대해 걱정하는 듯했지만.
“맞습니다, 낙하산.”
나는 던져진 떡밥을 굳이 피하려 하지 않았다.
“뭐?”
“응?”
예상치 못한 수긍이었는지, 패널들이 의아한 기색으로 되물었다.
지금까지의 출연진들은 대부분 예민한 질문은 우회하거나 말을 흐리고, 그러다 반대로 패널들을 물어뜯는 식으로 회피를 선택하곤 했지 던져진 질문들을 그대로 돌파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게 신인일 경우에는 더더욱.
하지만 나도 정확히 그 ‘질문’을 받을 생각은 없었다.
“정말 고민입니다. 대체 어떻게 아셨죠?”
“어?”
“제게 뒷배가 있다는 걸요.”
오히려 내 목적은 그 질문을 교묘하게 피해 가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
내가 진지한 투로 내뱉은 말에 패널들의 표정이 어리둥절해졌다. 나는 그들이 상황을 파악하기까지 기다리지 않고 목소리를 죽인 채 말을 이었다.
“설마 제 뒤에 계신 분의 정체도 알고 계신 겁니까?”
“뒤에…….”
“누가 있어……?”
당황하길 바라고 한 질문에 오히려 당당하게 대꾸하자, 패널들은 혼란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내가 그들이 던진 ‘낙하산’이라는 키워드를 정직하게 받아들인 것인지, 아니면 콘셉트를 잡고 회피하려 하는 것인지를 가늠하는 듯했다. 아니면 사고를 칠까 두려워하는 것일 수도 있고.
‘내가 신인이라 더 그렇게 생각하겠지.’
그들이 초반부터 나를 떠보듯 직접적으로 ‘센’ 키워드를 던진 이유는 하나뿐일 터였다. 내가 신인인 만큼 당황시켜 기선 제압을 하기 쉬울 거라고 생각했을 테니까.
물론 패널들의 노림수는 지금까지 수많은 신인들에게 먹혀 왔을 터였다. 경험이 부족한 신인들은 질문을 유연하게 대처할 줄도, 회피하는 방법도 알지 못하니까.
하지만.
‘꼰대를 처음 만나 본 것도 아니고.’
아마 도지혁도 그렇겠지만, 나 또한 이런 질문들이 낯설지는 않았다.
망돌 앞에서 눈치를 보는 사람은 누구도 없다. 그리고 라이트닝 시절, 나는 메이저 예능보다는 급 떨어지는 마이너 예능에서 자주 굴러야 했다.
출연진에 대한 얄팍한 보호막조차 없는, 물어뜯기가 일상인 예능들 말이다.
‘그조차도 없어 찾아다녀야 했지.’
그렇게 부탁하며 출연한 예능들마다 척수 반사 수준으로 나오는 날것의 질문이나 행동들을 마주한 만큼, 나는 그걸 어떻게든 버티고 회피하거나 직접적으로 마주하는 데는 도가 터 있었다.
“이렇게 된 이상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낙하산이라는 걸요.”
즉, 어수룩한 신인일 수가 없다 이 말이다. 보고 듣고 겪은 게 너무 많았으니까.
“???”
패널들은 의아해하는 얼굴을 숨기지 못했다. ‘낙하산’이라는 수식어가 나를 비하하는 목적으로 [디어돌> 방영 기간과 그 이후를 통틀어 꾸준히 내 이름에 따라붙고 있는 만큼, 내가 그 수식어를 긍정할 줄은 몰랐다는 기색이었다.
물론 나는 이번에도 그 논란을 직접적으로 짚고 넘어갈 생각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너무 오래 내버려 두면 뒷말은 증식하지.’
조작캐니 백이현 덕을 본 낙하산이니 하는 뒷말들은 [디어돌>을 통해 내 이름 뒤에 붙어 내가 연예계를 떠나지 않는 한 계속 함께하게 될 터.
너무 오랜 침묵은 좋지 않았다. 악플을 다는 놈들은 내가 켕기는 게 있어 외면하는 거라며 정신 승리를 하려 들 테고, 그에 따른 유언비어를 여기저기 퍼 나를 테니까.
그렇기에 나는 이번 ‘살아남아라! 호호 상사’ 출연으로 그 지점을 한번 건드려 볼 생각이었다.
어떤 예민함도, 어떤 불편함도 강제로 웃음으로 승화시킬 수밖에 없는 방송.
진지한 문제도 하찮게 만들어 버리는 방송.
그런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출연진의 말을 예능으로 다룰 수밖에 없는 포맷을 이용하는 방식.
“하지만 비밀은 지켜 주시길 바랍니다, 제가 아이돌 팀 원디어 프로젝트를 맡을 차기 부장이 될 거라는 걸요.”
즉, ‘낙하산’이라는 단어를 아예 캐릭터화해 뻔뻔하게 소화해 봄으로써.
“……?”
“아하하하!”
옆에 있던 도지혁이 내 말에 배를 잡고 웃는 게 보였다. 강현진은 내 태도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얼이 빠져 있는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내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도지혁이야 내가 뭘 하려는지 대충 감은 잡은 듯하지만.
‘…놀림은 피할 수 없겠군.’
도지혁이 이런 걸 놓칠 리가 없지. 촬영이 끝나면서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서부터 무섭게 꼬투리를 잡고 늘어지려 할 터였다.
‘이 예능 출연진 그 누구도 오히려 도지혁보단 덜 무섭겠다 싶은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오늘 내가 콘셉트로 잡은 뻔뻔함을 얼굴에 장착한 채 멀뚱하니 서 있었다.
내 말에 잠깐 당혹스러움을 느낀 듯하던 패널들 중 하나가 바로 페이스를 되찾고는 말했다.
“원 인턴, 좋게 봤는데 안 되겠구만. 회사가 장난이야! 무슨 뻔뻔한 소릴 하고 있어! 회사에 뒷배 차고 들어왔다는 게 자랑이야? 게다가 부장이라니, 말이 돼!”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장단은 맞춰 줘야겠다고 생각한 듯했다. 이런 말에 진지하게 대응하면 분위기가 망가지니까.
그에 나는 또 한 번 진지한 얼굴로 답했다.
“전 언제나 진심입니다. 믿지 못하시겠다면 어쩔 수 없군요. 제게 힘을 실어 주신 분이 누군지 밝히는 수밖에.”
“아니, 그게 대체 누군데…….”
“저를 지금까지 키워 준 분은.”
“분은……?”
“네, 그분의 성함은…….”
내가 과장되게 꾸며 낸 긴장한 얼굴로 천천히 입을 열려던 그때였다.
“유.”
“어 자.”
“…그리고 원 자 쓰시는 분이십니다.”
진지한 어투로 옆에 있던 도지혁이 죽 좋게 치고 들어오는 말에 나는 한 마디씩 말을 덧붙여 말을 끝내고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유, 어 자, 원 자……?”
“유어원… 엇.”
“그, 그건!”
그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우리의 말을 중얼거린 패널들이 곧 상황을 파악했다는 듯 지극히 꾸며낸 티가 나는 안절부절못한 얼굴로 변했다. 우리가 쉴드로 무엇을 내세웠는지 깨달은 탓이었다.
아무리 예민한 지점을 거침없이 건드리는 ‘호호 상사’라 한들, 그들도 선은 지킨다. 그리고 사전에 이미 스태프로부터 8월에 데뷔를 앞둔 원디어의 팬덤 이름이 유어원이 되었다는 것쯤은 들었을 터.
즉 내가 쓰는 수법은 간단했다.
“제가 입사 평가에서 탑 먹은 비결을 아직 모르시겠다면 저희 뒷배인 유어원께…….”
“아니, 아니!”
“우, 우리가 언제 그랬나!”
“난 단 한마디도 한 적 없네, 원 인턴!”
“그, 유어원 대단하지. 아암, 멋진 눈을 가지고 있는 분들 아냐!”
전형적인 탈룰라 말이다.
패널들이 타깃으로 잡을 수 있는 건 출연진 뿐, 팬들이 아니다. 즉 이번 판에서 패널들은 무조건 우리가 만든 분위기에 말려들어 줄 수밖에 없었다.
‘팬 이야기가 나오면 한 수 접어 주는 게 예능 판의 도리이기도 하고.’
그에 허겁지겁 과장된 외면과 미안함을 얼굴에 띠고 말을 맞추는 패널들의 모습에 내가 천연덕스럽게 말을 이었다.
“감사합니다, 협조해 주시는 걸로 알겠습니다.”
“그… 잠깐…….”
“유어원의 지지와 여러분의 협조 덕분에 회사 생활이 무척 즐거울 것 같습니다. 아이돌 팀 원디어 프로젝트의 리더를 맡은 입장으로서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아니, 원 인턴…….”
“그리고 역시 제 뒷배의 정체에 대해서는 대외비로 부탁드립니다. 제가 부장직을 달 때까지는 팀 내부에서만 공유해 주십시오.”
“…….”
나는 그렇게 말을 끝마치고는 패널들이 더 말을 덧붙이기 전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기존 패널들의 텃세에 말려드는 인턴 대신 오히려 ‘차기 부장’으로서 뻔뻔한 낙하산 캐릭터 구축을 한 것에 패널들은 슬슬 우리들이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그, 그럼 세 번째 인턴.”
“…네.”
도지혁에 이어 나까지도 저들이 원하던 대로의 기선 제압이 되지 않자, 패널들은 마지막 타깃인 강현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다만 나와 도지혁에게 말을 걸 때와는 달리 조금은 긴장한 얼굴이었는데, 함께 출연한 우리 둘이 일종의 ‘또라이스러움’을 보여 준 만큼 강현진 또한 비슷한 캐릭터 구축 시도를 할까 경계하는 기색이 강했다.
“이 얼굴도 좀 익숙한데.”
“그래, 강 인턴은 어릴 적부터 이미 굵직한 프로젝트에 다수 참여해 봤었다고?”
하지만.
“…네.”
오히려 이런저런 프로그램에 출연해 본 경력 탓에 제일 호락호락하지 않으리라 생각했을 강현진이 물렁한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그들의 얼굴에는 다시 생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강현진에게서는 그들이 원하는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지, 곧 그들은 씩 웃으며 다시 한번 ‘몰이’를 위한 분위기를 잡아 가기 시작했다.
“이야, 이쪽이 진정한 인재구만. 원래는 어릴 때 댄스 쪽이 아니라 연기 쪽을 했다는 것 같은데?”
“잠깐… 했었습니다.”
“알지, 알지. 그때 아역으로 출연한 드라마나 뮤지컬만 몇 개야, 아직도 기억나는 게 있는데.”
“오, 뭐? 본 적 있나, 이 사원?”
“아, 어찌나 감명 깊게 봤는지.”
이 사원이라 불린 패널은 곧 감회에 젖은 얼굴로 앉아 있던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파티션 사이를 걸어 나와 세트장 중앙에 선 채 즉흥 연기를 시작했다.
“「엄마. 가지마요. 민우가. 잘할게요.」”
과거, 강현진이 출연했던 드라마를 따라 하는 식으로 말이다.
“와하하! 그게 뭐야, 이 사원!”
“「나는. 이곳의. 스타!」”
곧 분위기를 바꾸어 강현진이 출연했던 뮤지컬의 아역 연기를 그대로 따라 하는 모습에 패널들이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물끄러미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곁눈질로 잠깐 강현진을 확인했다.
“……….”
아니나 다를까, 어느새 강현진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표정 관리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듯했으나, 그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다는 것은 확실했다.
“내가 강 인턴 어릴 때 연기를 정말 좋아했지. 어린애가 열심히 연기하는데 얼마나 기특하고 착해.”
“그런데 좀 아쉽긴 했지. 하긴 그때는 너무 어렸으니까 연기라는 게 너무 어려웠을 테니 그럴 만도 하지만.”
“그래도 사람들한테 사랑은 많이 받았잖아? 그럼 된 거지! 이렇게 계속해서 남아 있잖아요.”
패널들은 그렇게 말을 주워섬기며 웃었다. 강현진의 기색 같은 건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는 듯했다.
능청스럽게 건네진 말에 강현진은 겨우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웃었다. 하지만, 놈이 패널들이 한 말에 동의하지 않고 있음은 확실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연기라는 단어는 강현진에게 있어 트리거 그 자체니까.’
강현진은 연기를 혐오하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강현진이 연기를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는 타당했다.
‘강현진은 사람들의 ‘밈’이 되었던 적이 있지.’
부모님의 성화에 출연했던 드라마에서 보여 준 ‘발 연기’가 짤이 되어 온갖 커뮤니티에 돌아다님으로써, 강현진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조롱을 받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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