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Plan for the Second Life Idol RAW novel - Chapter (134)
134화
“그냥 의견이 좀 맞을 것 같아서요.”
“…정말 그것뿐이야?”
“네.”
내 말에 도지혁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렇게 물었으나, 나는 이 이상 설명해 줄 말이 없었다.
왜냐하면, 정말 그게 전부였기 때문이다.
‘회사 내부에서 말이 통할 만한 사람은 하승혁뿐이었어.’
앞으로의 5년, 연예계가 어떻게 흘러갈지에 대해서는 대충 알고 있는 바가 있다. 하지만 막상 로드 엔터와 관련해서는 내가 알고 있는 정보가 없었다.
‘회귀 전에는 로드 엔터가 설립되지 않았었으니까.’
나는 회귀 전에는 그의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건 그가 이전 생에서는 본사에 남아 있었거나, 혹은 독립했더라도 다른 계열사를 차렸기 때문일 터.
어떤 정보도 없던 만큼, 나는 계약서를 작성할 즈음 그에 대해 알려진 정보를 되는 대로 찾아보았다. 앞으로의 원디어 활동에 있어 대표의 능력과 입김은 무시할 수 없을 테니까.
그렇게 알아낸, 정확히는 대중에게 ‘공개된’ 정보는 몇 가지가 있었다.
재벌가의 막내아들로서 총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단 것, 굵직한 프로젝트를 여럿 수행해 능력을 인정받았단 것과 스스로 본사에서 물러났다는 것.
그러나 아마 형제들로부터 신임받고 있단 이야기는 거짓말일 터였다.
‘그게 아니라면 갓 만들어진 회사 내부에서도 이렇게 뚜렷하게 라인이 나뉘어 있을 리 없겠지.’
만약 하승혁이 외부에 알려진 것처럼 형제들의 전폭적인 지원하에 엔터사를 설립한 것이라면, 오히려 매니지먼트 팀은 어떻게든 잡음을 내지 않기 위해 애를 썼을 터였다.
매니지먼트 팀이 별다른 문제 없이 아티스트를 지원하는 것은 오히려 실적이 될 테니까.
회사 내부에서 라인이 나뉘어 있더라도 그것은 최종적으로 대표에게 신임을 받기 위한 것. 보통은 대표 아래에서 각 팀들이 치열하게 싸우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 매니지먼트 팀은… 대표를 무시하는 것 같지.’
만약 타 팀보다 더 능력 있는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대표의 신임을 받고자 했다면 오늘 같은 일은 없었을 터였다.
즉, 내가 예상한 바로 오늘의 일은 매니지먼트 팀의 독단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게 뜻하는 바는 명확하다.
‘매니지먼트 팀은 대표 라인이 아냐.’
그들이 대표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해 일하고 있다는 것 말이다.
‘대표의 가장 큰 경쟁자는 아마도… 형제들.’
하승혁이 후계 다툼에 참여하고 싶지 않아 나온 것임은 확실해 보였다. 후계 다툼에 참여할 생각이었다면 어찌 됐든 본사에서 한자리를 차지한 채 버텼을 테니까.
가장 가능성 있는 가설은 하승혁이 그렇게 자리를 박차고 나왔음에도 형제들이 차마 견제의 끈을 놓지 못했단 것이었다.
총수의 신임과 사랑을 받고 있으며, 본인의 능력 또한 뚜렷하다면 형제들로서는 끝까지 그를 견제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테니까.
그게 지금의 상황을 초래한 거다.
‘대표와 라인을 같이하는 팀은 사업을 발전시키려 할 테고, 라인이 다르다면 감시와 견제, 현 상황의 유지, 어쩌면 훼방을 놓으려 하겠지.’
일종의 스파이처럼 말이다.
솔직히 회사 내부에서 어떤 권력 다툼이 이루어지든 내가 신경 쓸 바는 아니다. 하지만.
‘그게 원디어 활동에까지 영향을 미치면 곤란해.’
이쪽은 목숨이 걸려 있다. 괜한 권력 싸움에 제동이 걸려 혹시 모를 위험을 감수하고 싶진 않단 뜻이다.
하지만 원디어가 신인인 이상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순 없다. 그렇다면 회사 내부에서 동맹을 구해야 한단 뜻이고.
-시간이 없어 바로 용건을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만약 실례가 되는 질문이라면 죄송합니다만, 혹 오늘 스케줄과 관련된 변동 사항이 사전에 대표님과 미리 이야기된 것인지 여쭈려 합니다.
-변동 사항……? 팬 사인회 건으로 변동 사항이 있었습니까?
나는 지난번의 만남으로 회사 내부의 ‘동맹’이 하승혁 대표가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지난번에 확인한 대로라면, 이런 권력 싸움을 제일 귀찮아하는 건 하승혁 대표일 테니까.’
그렇다면 목적하는 지점이 같다. 서로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란 거다.
예상대로 상황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듯한 대표의 말에 나는 역시 매니지먼트 팀이 현재 대표의 라인이 아님을 확신할 수 있었다.
물론 팬 사인회를 비롯해 아티스트의 스케줄 등과 관련되어 세세한 부분을 조율하는 것은 팀을 관리하는 팀장의 재량이다.
다만, 현재 로드 엔터의 소속 그룹은 원디어밖에 없는 상황.
회사 전체가 원디어를 위해 굴러가는 것과 다름없는 만큼, 첫 일정과 관련된 변동 사항이 있다면 이는 대표에게도 보고가 들어가는 것이 옳았다.
하지만 매니지먼트 팀은 이 건을 의도적으로 누락시켰다.
-사전에 미리 알려졌던 것과는 다른 쪽으로, 그것도 바로 당일에 팬 사인회 진행 방식이 변경된다면 이는 문제가 될 수밖에 없겠죠. 해서 물으려 합니다, 안전을 위해서라 한들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팬 서비스를 최소화하는 방면으로 모든 일정이 굴러가게 될까요.
이는 대표 선에서 매니지먼트 팀을 닦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줄 터.
그러나 각 팀의 재량을 무시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대표에게도 일종의 ‘명분’이 필요했다.
-원디어의 리더로서, 원유하 씨는 어떤 쪽을 더 우선시하는 것이 그룹에 효율적이라고 생각합니까?
-그룹의 안전을 포기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팬분들께 약속드린 사항을 초반부터 어기는 그룹이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고요.
그리고 나는 그게 ‘아티스트’가 되어 줄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서로 원하는 것의 맞교환이지.’
우리는 관리받는 입장이지 관리하는 입장이 아니다. 게다가 신인에 불과해, 현재로서는 직접적인 건의를 하기에는 영 위치가 애매했다.
대표도 직접적으로 각 팀에 영향력을 대놓고 행사하기는 어려웠을 터였다. 그들이 어떤 라인을 타고 있는지는 오히려 대표가 더욱 뚜렷하게 알고 있을 테고, 그들은 회사 내부에서 서로 간을 보며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을 테니까.
그렇다면 원디어가 그 ‘명분’이 되어 주고, 대표는 우리를 대신해 ‘입’이 되어 주면 된다.
그러면 완벽한 윈윈이다.
다행히 대표 또한 몇 마디의 대화로 내가 무엇을 제안하는 것인지 단번에 알아차린 듯했다.
-알겠습니다. 시간이 없군요. 이에 대해서는 매니지먼트 팀 팀장과 연락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추후 연락드리죠.
직후 끊긴 전화. 곧 커피를 들고 매니저 형과 천세림이 차 안으로 들어오며, 우리는 다시 팬 사인회장으로 출발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예?
걸려 온 전화를 받은 매니저 형의 얼굴에 균열이 일면서 상황이 변했다.
-음, 얘들아…… 팬 사인회 진행 방식과 관련해서 너희한테 의견을 물어보려고 해.
매니지먼트 팀이 선택권을 우리에게 떠넘긴 것이다.
-일정 변동과 관련하여 내부에서 의견이 좀 있었던 모양이야. 아무래도 첫 일정인 만큼 대표님은 회사의 이미지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신 듯해. 뭐… 안전을 위해서긴 하지만 우리가 말을 바꾼 건 사실이니까.
대표는 직전까지도 대기업에서 일한 사람답게 회사의 이미지 문제를 걸고넘어진 듯했다. 회사가 거짓말을 일삼는다는 이미지를 초반부터 깔고 갈 수는 없다는 입장을 내세운 것이다.
‘장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이미지니까.’
아무리 변동 사항도, 후려치기도 많은 업종이라 한들 엔터 사업도 엄연한 브랜드 장사다. 초반부터 좋지 않은 이미지를 깔고 갈 이유는 없단 뜻이다.
그리고 대표와 팀장의 입장이 갈리며, 선택권은 내가 예상했던 대로 원디어에게 돌아오게 된 듯했다. 일정 자체를 직접적으로 소화하는 건 아티스트니까.
-대표님은 아무래도 엔터 사업은 처음이시니까 현장에 대해서는 모르시겠지. 그래서 그렇게 말씀하신 듯한데……. 알지, 유하야. 사생도 그렇고 현장에는 알 수 없는 위험이 많다는 거. 다 너희를 위해서 한 일정 변경이잖아.
-…….
-팀장님과 대표님은 너희 의견에 따라 일정 진행을 하자고 말을 하신 듯하더라고. 어떻게 생각해? 이대로 진행할까, 아니면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촬영 허용으로 진행할까?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대로 따르겠다면서도 매니저 형이 덧붙인 말들에, 나는 그가 정확히는 우리에게 한 가지 방향을 강요하고 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이미 피해 본 경험 있지 않냐고 떠보고 있군.’
이미 몇 달 전, 생방 직전에 사생으로 인해 큰 피해를 입었던 건 나였다.
그로 인해 적잖은 고통을 겪었니 뭐니 하는 식으로 대대적으로 기사가 나갔던 만큼, 그는 내 트라우마를 자극해 원하는 쪽으로 그룹을 이끌어 보려 하는 듯했다.
또 한 번 그런 식으로 괜한 빌미를 사생들에게 넘겨줄 셈이냐, 그런 위험을 또 한 번 감수하려 하냐는 식으로.
우리가 신인이기에 할 수 있는 전형적인 가스라이팅이었다.
하지만.
-괜찮아요. 매니저 형도 있고 시큐리티 분들도 계시니 혹시 모를 사항이 있으면 지켜 주시겠죠.
-어?
-아닌가요? 물론 현장에 대해서는 형이 더 잘 아시겠죠, 어쨌든 저희는 팬 사인회는 처음이기도 하고……. 그래도 지켜 주실 거잖아요?
그쪽이 우리가 신인임을 이용하려 든다면, 나도 우리가 신인임을 이용하면 되는 일이었다.
‘우린 뭘 잘 모르고, 너희를 믿고 있다.’는 식으로.
‘연차 쌓인 연예인은 현장에 대해 잘 알 수밖에 없지. 직원들의 노고나 돌발 상황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잘 알게 되고.’
물론 이번 팬 사인회에서는 큰 문제는 일어나지 않을 테지만, 어찌 됐든 연차가 쌓이면 쌓인 만큼 노련해지기 마련이다. 다양한 돌발 상황에 대한 데이터가 축적되니까.
‘그만큼 직원과 오히려 대화가 통하는 쪽들이 많아지고.’
하지만 신인 시절은 달랐다. 축적된 데이터가 없는 만큼 직원의 말에 무조건 따르고 보거나 아직 위험성에 대한 파악이 되지 않아 오히려 스스로 돌발 행동을 자처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애초에 설득이 절대 불가능한, 위험성에 대한 어떤 데이터도 없기 때문에 무작정 해 볼 수 있는 게 있다면 해 보자는 식의 열정 많은 신인 아이돌 이미지를 우리에게 씌우려 하는 거였다.
-음… 그, 그건 그렇지. 하지만 만에 하나란 게…….
-팬분들도 저희한테 나쁜 행동을 하지는 않으실 거라고 믿고 있고요. 그럼 괜찮지 않을까요? 실은 저희도 약속했던 사항을 처음부터 어기고 간다는 게 좀, 그룹 이미지에 어떨까 싶기도 했고요.
-맞아요, 간절하게 활동하겠다고 나와 놓고 벌써부터 몸 사리냔 소리 들을까 봐 걱정도 되고…….
-혹시 모를 위험이 발견되면 그때는 바로 매니저 형한테 말씀드릴게요. 애들도 처신 잘할 테니 문제없을 것 같고요. 애초에 1대1로는 녹화나 개인 촬영은 불가라고 미리 명시도 되어 있잖아요? 별일 없을 것 같은데.
여기에 천세림과 도지혁의 지원 사격이 더해지며 매니저 형은 결국 우리를 설득하려던 것을 포기하게 되었다.
미처 숨기지 못한 죽상으로 팀장에게 그렇게 우리의 결정을 알린 후 도착한 팬 사인회장에서는 팬분들이 모두 예상하셨던 대로 즐겁게 시간을 보내실 수 있었고.
“너무 좋았어.”
물밑으로 어떤 상황이 오갔는지 전부 파악하진 못한 듯하지만, 어쨌든 팬 사인회가 성공적으로 진행된 것만으로도 만족한다는 듯 주단우가 기분 좋게 웃었다.
이미 손에 쓴 이름들은 닦은 상태였지만, 주단우는 여전히 그 이름들이 손에 남아 있기라도 한 것처럼 손바닥을 들여다보았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나는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동하자, 본방 해야지.”
불퉁한 얼굴로 대기실로 들어선 매니저 형이 우리를 호출하며, 오늘 스케줄의 가장 중요한 ‘첫 본방’을 하기 위해 움직일 시간이었으니까.
* * *
공개 방송이 열리는 내부 세트장에 들어선 개인 팬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방송의 MC들이 있는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나의 무대가 끝나고, 곧 MC들이 큐 카드를 든 채 타이밍을 맞추어 입을 열었다.
“네, 라피엔의 무대까지 만나 보았는데요, 아, 다음 무대를 준비하고 계신 분들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요?”
“글쎄요, 산전수전을 모두 거친 ‘역대급’ 신인? 정말 많은 팬분들께서 기다려 주신 그룹이죠.”
멘트가 이어지면서 객석에 자리한 유어원들에게서 비명 같은 환호가 터져 나왔다. 다음 무대가 어떻게 이어질지 직감한 탓이었다.
그에 화답하듯 MC들의 멘트가 뒤를 이었다.
“많은 팬분들의 기대와 설렘 속에서 힘찬 도약을 시작한 그룹! 네, 바로 ‘원디어’의 따끈따끈한 데뷔 무대가 준비되어 있는데요.”
“모두를 새로운 세계로 초대할 원디어의 데뷔 곡 ‘UTOPIA’와 수록곡 ‘Above’의 무대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지금 바로, 만나 볼까요?”
“Let’s~ Dive!”
멘트가 이어진 후 유어원의 시선은 모두 한곳을 향했다. 새벽에 사전 녹화로 촬영되었던 ‘Above’가 전파를 탐과 동시에 무대 위로 원디어가 올라온 것이었다.
“얘들아!”
“얘들아! 잘해!”
열띤 환호와 응원 속에서 각자 자리를 잡는 원디어는 숨을 한번 몰아쉬고 조용히 대형을 이루어 나갔다.
곧 송출되던 ‘Above’의 무대가 끝이 나고, 카메라에 불이 들어오며.
[……♩]개인 팬은 숨을 급히 숨을 들이마셨다.
흩뿌려진 조명 빛 아래에서 반짝거리는 애쉬퍼플빛 머리카락, 원유하의 목에 묶여 자그만 동작에도 부드럽게 너울거리는 푸른 리본.
이미 수십 번 돌려 본 뮤직비디오 속의 착장 그대로의 원유하가 화려한 데뷔 무대를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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