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Plan for the Second Life Idol RAW novel - Chapter (14)
주단우는 괜찮은 놈이다. 그건 확실했다.
비주얼도 눈에 띄고, 실력도 괜찮고, 노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고. 데뷔를 못 하는 게 이상할 정도라는 거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뭔가를 체념하는 데 익숙해 보이기도 했다.
뭔가가 잘 안 되었을 때 더 무언가를 해 본다기보다는 겁을 먹고 움츠러드는 쪽에 가까워 보였다는 말이다.
‘그게 원래 성격일 것 같지는 않아.’
아마 상황이 주단우를 체념이 익숙한 사람으로 만들었을 거다. 겪었던 사건이나 주변인들, 누군가의 말 같은 것들이 주단우가 뭔가를 끈기 있게 하기보다는 체념하게 만들었겠지.
성격이 이상할 정도로 소극적이고 자존감이 낮아 보이는 것도 그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주단우를 이렇게 만든 건 아마…….
‘같은 회사 연습생들.’
나는 주단우가 B등급을 받은 같은 회사 연습생을 마주했을 때의 반응을 기억하고 있었다. 박우재라는 이름을 가진 연습생은 주단우를 대하는 데 좀 과할 정도로 격이 없었고, 주단우는 그에 반해 거리감을 느끼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시즈레이블 소속 데뷔 그룹 멤버들이 일으켰던 문제들을 생각해 보면, 주단우는 아마 연습생들 사이에 섞여 들어가지 못하고 겉돌았을 가능성이 컸다. 그 분위기에 적응하기에 이놈은 대가 너무 약하니까.
‘…순하기도 하고.’
지금도 눈에 띄게 의기소침해져 있는 모습을 보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눈에 빤했다. 아마 끝도 없이 자책을 하고 있겠지.
“…….”
그렇게 모든 것이 끝났다는 생각이 들면 나쁜 선택을 하기가 쉬웠다.
과거, 내가 회사에서 방출되자마자 로빈슨에 들어가 라이트닝으로 데뷔했던 것처럼.
“마지막으로 D등급에서 A등급으로 이동할 연습생, 이동해 주세요.”
나는 천천히 움직일 준비를 했다. 순간 주단우의 눈길이 내게 따라붙었으나, 그는 곧 다시 푹 고개를 숙였다.
마치 보는 것도 힘들단 듯, 혹은 무언가를 체념하기라도 한 것처럼.
‘…안 되겠네.’
나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서기 전, 주단우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 그러자 주단우가 흠칫 놀라 고개를 들었다.
“형.”
“…어?”
주단우는 내가 자신에게 알은체를 하는 것이 뜻밖이라는 듯 벙벙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에 나는 조용히 속삭였다.
“다음번에는 저랑 같이 무대해요.”
“…으응.”
주단우는 내 말을 그저 인사말 정도로 생각하는 듯, 조금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런 주단우에게 조금 더 단호하게, 힘을 준 목소리로 이어 말했다.
“빈말 아니에요.”
“…어?”
“다음에 같이 무대하자는 거, 빈말 아니라고.”
그러니까 여기서 괜히 포기하지 말라고.
나는 마지막 말까지는 남기지 못하고, 그대로 D클래스를 떠났다.
* * *
모든 등급 이동이 완료되었을 때, A클래스에 남은 A등급은 총 열다섯 명이었다.
‘처음에는 8명에서 시작했으니 꽤 늘은 셈이군.’
다행인 건, 그렇게 A등급으로 올라온 연습생 중에는 F등급에서 A등급으로 수직 상승한 연습생도 한 명 끼어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되면 ‘극복’ 캐릭터 서사도 그 연습생과 나눠 가질 수 있게 된다.
‘다행이네.’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문득 익숙한 알림음과 함께 눈앞으로 이제는 익숙해진 반투명한 창이 떠올랐다.
그리고 나는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퀘스트 성공!』
당신은 D클래스의 리더로서 성실하게 반을 이끌었습니다.
등급 상승을 이뤄 낸 연습생의 수-15명
최종 춤 스텟 : C→B-(스텟 2 상승)
보상 : 운 +20
『업적 달성 완료!』
당신은 D등급에서 A등급으로 괄목할 성장을 이뤄 냈습니다.
보상 : 스텟 선택 상승권(1회)
“……!!”
나는 뜬금없이 쏟아진 보상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상태창이 생각지도 못한 결과물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보상으로 받은 운 20포인트도 나쁘지 않았으나, 가장 눈여겨볼 만한 건.
‘스텟 선택 상승권……!’
내가 원하는 스텟을 하나 상승시킬 수 있는 것으로 보이는 보상이었다.
순간 가슴속으로 [디어돌>에 참가한 후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했던 환희가 차올랐다. [디어돌> 합숙에 참여한 이후 처음 느껴 보는 성취감이었다.
‘이제 이 쓰레기 같은 체력을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다……!’
개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이 정도의 보상이라면 지난 며칠간 지독한 근육통에 시달리고 얼떨결에 야간 자율 학습까지 해 가며 ‘봐’를 연습한 보람이 있다고 말할 수 있었다. 뜻하지 않은 감투와 분량에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정말로 나쁘지 않은 장사였다.
나는 만족스러운 한숨을 내쉬며 상태창을 끄고 몸을 늘어뜨렸다. 그 모습이 어떻게 보였던 건지, 옆에 있던 두 연습생이 물었다.
“유하, 피곤해?”
“졸려요?”
“…아니.”
내게 그렇게 말을 한 건, 당연하겠지만 A등급에 잔류한 에이든 리와 천세림이었다.
‘…뭐, 남을 건 예상했지.’
이틀 전 새벽 연습을 할 때 나는 에이든 리와 천세림이 카메라 평가를 말아먹지만 않으면 수월하게 A등급에 잔류할 거라는 걸 확신했었다.
에이든 리는 과거 아이딘의 메인 보컬로 데뷔했었듯 노래 실력이 뛰어났고, 댄스 또한 겨우 연습생 6개월 차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깔끔했다.
천세림은 잘 다듬어진 느낌이 났다. 연습생 기간 4년 차라더니 왜 지금껏 데뷔를 하지 못했나 싶을 정도로 꽤 안정적인 실력을 보였기 때문이다.
보컬의 경우 본인의 음역대에서 최대한 단점을 감추면서 똑똑하게 소화해 낸다는 느낌이 강했고, 댄스는 잘 단련된 기본기를 토대로 전체적으로 힘 있는 춤 선을 보였다.
‘이 정도면 왜 과거 데뷔하지 못했는지 의아할 정도인데.’
비주얼이나 캐릭터성으로만 봐도 주목을 받을 만한 연습생인데, 어째서 데뷔까지는 하지 못했던 걸지 의아할 정도였다.
“영상 평가,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내가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려 할 때쯤 도민이 입을 연 탓에 내 생각은 자연스레 중단되었다.
“이곳에 남은 열다섯 명의 연습생들, 축하합니다. A클래스는 앞으로 ‘뮤직A’에서 진행될 ‘봐’ 무대의 중심이 되어 100명을 이끌어 나가게 됩니다. 그러나 그 전에, ‘봐’의 얼굴이 될 센터를 먼저 선발해야겠죠.”
도민의 말에 A클래스의 연습생들이 긴장과 설렘이 섞인 얼굴로 서로를 훑어보았다.
“지금 이곳에 있는 열다섯 명의 카메라 영상 평가는 지금 강당에 모여 있을 연습생들에게 모두 공유되었습니다. 85명의 연습생들은 동영상을 보고 여러분 중 가장 ‘봐’ 센터로 어울린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투표할 겁니다.”
그리고 현재 열다섯 명 중 단 다섯 명의 후보만을 골라내어 앞으로 연습생들을 투표해 줄 아이돌 메이커들에게 사전 투표를 받게 된다고 도민은 설명했다.
“테마송 공개 전, 연습생들의 투표로 뽑힌 다섯 연습생들의 연습 영상이 하루 동안 선공개될 예정입니다. 그리고 아이돌 메이커님들을 대상으로 이뤄진 단 하루 동안의 투표로 ‘봐’의 최종 센터가 결정됩니다.”
도민은 그렇게 설명을 마친 후 A클래스 연습생들을 잠시 동안 자리에서 대기시켰다.
B~F등급 연습생들의 투표가 모두 끝나면 우리 또한 강당에 들어서 최종 후보들을 확인하게 될 예정이었다.
그렇게 잠깐 동안의 자유 시간이 이어지면서, A클래스 내에서는 적당히 신변잡기식 질문들이 오갔다. 새로 클래스에 영입된 인물들과 잔류한 인물들 간에 서로 교류가 많지 않았던 탓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뜻밖의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는데.
“안녕하세요, DIO 엔터 소속 유찬희입니다.”
…방송 첫날 날 죽일 듯 노려보았던 KRM의 라이벌 소속사, DIO 소속 연습생 유찬희였다.
“…안녕하세요, KRM 엔터 소속 원유하입니다.”
“그간 연습 열심히 하셨나 봐요. D클래스에서 A클래스로 수직 상승이라니. 완전 성장캐인데요?”
음, 첫 마디부터 시비 터는 데 거리낌이 없군.
하는 말만 들어 보면 그냥 적당한 공치사 같아 보였지만, 어조나 얼굴은 어떻게든 뭔가를 물고 늘어지려는 쪽에 가까워 보였다.
나는 괜히 말을 늘이지 않기 위해 적당히 대답하기로 했다.
“멘토님들께서 좋게 봐 주신 거라고 생각합니다.”
“원유하 연습생님의 실력을 알아봐 주신 거겠죠~. 아니면 다른 매력을 발견하셨든가. 뭔가 이유가 있으니까 이렇게 수직 상승하신 게 아니겠어요?”
그니까 실력보단 소속사 빨로 올라온 거 아니냐, 이렇게 말하는 거 같은데.
나는 살짝 눈을 가늘게 뜨고 유찬희를 바라보았다. 이죽거리듯 웃고 있는 얼굴 위로는 숨길 수 없는 적대심과 조소의 눈빛이 떠올라 있었다.
날 어떻게 여기는지 훤히 보였다는 이야기다.
‘…견제 좀 작작 하지.’
정작 상대방은 그럴 마음도 없는데.
유찬희는 처음에는 B등급을 받았다가 이번에 A등급으로 상승한 연습생이었다.
첫날 KRM 소속인 내가 D등급을 받았단 것에 적잖이 기뻐하는 표정을 지었으니, 지금 내 이동이 마음에 안 들 만도 했다. 이쪽도 내가 초반에 ‘극복’ 캐릭터를 탈 거라는 걸 예상했을 테니까.
그러나 그건 이놈 사정이고, 나 또한 이 이동이 그닥 마음에 들지 않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런 와중에 혹 카메라에 어떻게 잡힐지 모르는 견제까지 받을 생각은 없었다. 그게 적대 소속사로 유명한 DIO 소속이라면 더더욱.
그런 생각으로 어떻게 하면 적당히 이놈을 끊어 낼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던 그때였다.
“멘토님들이 생각이 있으니까 올리셨겠지. 그 이유를 아무렇게나 추측하는 건 좀 아닌 것 같은데.”
“예?”
“이유가 궁금하다며. 그 이유, 딱히 연습생이 궁금해할 건 없을 것 같다고.”
나는 당황한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어물거리기만 하는 유찬희의 옆에 선 한 연습생을 바라보았다.
대놓고 눈치 주는 말을 하면서도 덤덤한 얼굴이 묘하게 권위적이어 보였다. 게다가 남달리 길쭉한 키는 한층 더 고압적인 분위기를 내 주는 듯했다.
“…아, 뭐. 그렇죠. 분명 멘토님들이 이유가 있으셨겠죠. 그냥 D에서 A로 한 번에 올라오셨으니까 대단해서 한 말이에요.”
유찬희는 대충 그렇게 말을 주워섬기며 분위기를 정리하려 들었다. 아마 다른 연습생이었다면 또 한번 물고 늘어지려 했었을 테지만, 상대방이 상대방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갑자기 나와 유찬희의 대화에 끼어든 낯선 연습생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강현진.’
배우 부부의 아들로 이번이 두 번째 서바이벌 프로그램 참가인, 현재 데뷔할 확률이 가장 높다고 여겨지는 연습생 중 하나였다.
유찬희가 생각이 있다면 이놈에게 밉보이고 싶진 않을 터였다. 현재 프로그램에 참가한 연습생들 중, 이놈보다 더 압도적인 인지도와 배경을 가지고 있는 연습생은 없었으니까.
‘근데 그런 놈이 대체 왜 날 도왔지?’
유찬희가 머쓱한 얼굴로 내게서 멀어지자, 강현진의 눈이 내게로 와 닿았다.
잠시간 어색한 침묵이 감돌고, 곧 먼저 입을 연 건 강현진이었다.
“…연습생 기간 5년 차라고 했지?”
“아, 네.”
“…처음에는 폼이 좀 무너져 있었던 것 같은데. 어떻게 잘 극복했나 봐. 그것도 5일 만에.”
“네?”
내 물음에 강현진은 생각이 좀 복잡한 듯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다가, 이내 몸을 휙 돌려 내게서 멀어졌다.
‘…뭐야?’
나는 그런 놈의 뒷모습을 보며 벙벙한 기분을 느낄 뿐이었다. 어째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만 일어나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런 일들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 * *
“센터 후보로 선발된 연습생은.”
연습생들이 모두 모인 강당에서, 나는 화면에 뜬 사진들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등 뒤로 차가운 바람이 지나가기라도 하는 것처럼 어쩐지 가슴속이 싸늘했다.
“A등급 드림엑터스 소속 강현진 연습생, 비베스트 엔터테인먼트 소속 도지혁 연습생, 나인히트 엔터테인먼트 소속 에이든 리 연습생, DIO 엔터테인먼트 소속 유찬희 연습생.”
마이크를 쥔 MC의 눈길이 내게 와 닿았다. 더없이 반짝거리는 얼굴이었다.
…나완 달리.
“그리고 KRM 엔터테인먼트 소속 원유하 연습생입니다.”
“…….”
카메라가 보는 앞이기에 차마 한숨조차 쉬지 못하고, 나는 그저 그 자리에 가만히 굳어 있을 뿐이었다.
‘…진짜 되는 게 하나도 없다…….’
또 한 번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