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Plan for the Second Life Idol RAW novel - Chapter (144)
144화
“형! 형섭이 형 맞죠?”
유찬희가 환해진 얼굴로 다가가 말을 건 것은 카메라를 옮기고 있던 스태프 중 한 명이었다.
갑작스런 접근에 안경을 쓰고 있던 스태프가 놀란 듯 유찬희를 바라보았다. 쓰고 있던 모자를 벗은 남자가 머쓱하게 고개를 끄덕인 것은 그다음이었다.
“맞아. 오랜만이다, 찬희야.”
“형이 왜 여기 있어요? 1년 반 만이죠?”
“아… 응, 벌써 그렇게 됐네……. 잘 지냈어?”
“전 잘 지냈죠! 형은요? 왜 아는 척 안 했어요? 저 처음에 봤을 때 긴가민가했잖아요, 형 같은 사람 있는데 맞나 싶어서. 알아보셨으면 말 좀 해 주시지!”
유찬희는 반가운 듯 그렇게 이야기하며 남자에게 가까이 다가가 덥석 손을 붙잡았다. 그러고는 아차 싶었던 듯, 함께 그릇을 옮기고 있던 내게 고개를 돌렸다.
“아, 죄송해요. 그릇 옮겨야 되는데…….”
“아냐, 됐어. 아는 분이야?”
“네! DIO에서 신인 개발 팀 직원으로 계셨었어요, 저랑 연습생 숙소에서도 같이 살았었고. 그러다 퇴사하셨는데 그때 하필 제가 잠깐 본가 가 있었어서 마지막 인사도 못 했었는데…….”
유찬희는 아쉬운 얼굴로 그렇게 말하며 남자의 손을 잡고 붕붕 흔들었다.
적잖이 반가워하는 유찬희의 살가운 태도에 처음에는 조심스러워하던 남자의 긴장도 풀린 듯했다. 굳어져 있던 얼굴이 조금은 느슨해진 채, 남자가 대답했다.
“미안, 그때 좀 갑자기 그만두게 됐거든. 촬영 전이라 정신없어 보여서 말을 못 걸었어. 아는 척해 줘서 고맙다. 솔직히 기억하고 있을 줄 몰랐는데…….”
“어떻게 기억을 못 해요? 같은 숙소에서 살았는데! 형 가시고 나서 애들끼리 아쉽다고 얘기 많이 했어요, 형이 저희 정말 잘 챙겨 주셨잖아요. 저희 테스트 영상도 언제나 섬세하게 잘 찍어 주셨고……. 이직하신 거예요?”
“응, 카메라 스태프로.”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눈치를 보듯 눈을 굴린 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리고… 늦었지만 데뷔 축하해, 활동하는 거 정말 잘 보고 있어. 좋은 팀으로 데뷔한 거 보고 나도 기분 좋더라. 하이어스 데뷔하고 얼마 안 돼서 내가 퇴사하게 됐었잖아.”
“아…….”
“마지막에 봤을 때 너무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걱정됐었는데…….”
그 말에 유찬희의 표정이 약간은 어두워졌다. 데뷔조에서 떨어졌던 과거를 생각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도 잠시뿐, 누구도 예상치 못한 말이 들려온 것은 그 직후였다.
“지금 와서 하는 말이지만, 솔직히 연습생 중에 너보다 잘하는 애는 없었잖아. 너무 잘해서 탈이라고 모두가 그랬었으니까…….”
“…네?”
유찬희의 얼굴이 어리둥절해졌다. 남자가 잠깐 아차 하는 듯한 얼굴을 하며 내가 있는 쪽을 흘긋거렸다. 타인이 들어서는 안 될 소리를 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나는 조용히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유찬희의 어깨를 툭 쳤다.
“천천히 얘기하고 와, 설거지 마무리는 우리가 할 테니까.”
“아, 네…….”
나는 유찬희를 두고 설거짓거리를 든 채 그대로 수돗가로 향했다. 대충 이쪽 상황을 보고 있었던 듯, 멤버들은 별다른 동요 없이 그대로 설거지를 이어 나갔다.
“…….”
유찬희가 수돗가로 온 것은 그로부터 시간이 오래 지나지 않아서였다. 뭔가 고심에 빠진 듯한, 반쯤은 영혼이 빠진 듯한 표정으로 다가온 유찬희는 내내 멍하니 손만 놀렸다.
더없이 복잡해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이전과는 달리 그 얼굴 위로 어두운 기색은 사라져 있어 나는 유찬희가 놈에게 꼭 ‘필요한’ 말을 듣고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해가 완전히 졌을 때, 우리는 드디어 늦은 퇴근을 할 수 있었다.
* * *
“먼저 씻을게요~!”
“하… 피곤하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멤버들은 각자의 방으로 흩어졌다. 차로 오고 가는 시간하며, 내내 실시간으로 송출되는 카메라를 신경 써 가며 하루를 보낸 탓에 모두 녹초가 된 듯했다.
“형, 이거 여기다 두면 돼요?”
“아, 내가 정리할게.”
“아니에요, 제가 할게요. 형 옷 갈아입으러 들어가요.”
“…음, 그럼 부탁할게.”
아이스박스에 담긴 한우 세트를 든 채 유찬희가 고집스럽게 고개를 젓자, 주단우는 곧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내가 있는 쪽을 한번 흘깃댔다. 숙소로 오는 동안에도 유찬희가 내내 조용했던 것에 걱정을 하고 있는 듯했다.
나는 괜찮으니 들어가라는 뜻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주단우가 옷을 갈아입겠다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본 후, 나는 유찬희의 곁으로 다가가 얼음이 담겨 있는 아이스박스를 정리했다. 그렇게 잠시 동안의 침묵이 흐른 후.
“형, 있잖아요.”
예상했던 것처럼 유찬희는 부엌에 둘만 남자 조용히 말을 꺼냈다.
“어.”
일부러 덤덤하게 말을 받자, 유찬희는 잠시 동안 망설이듯 침묵했다. 하지만 곧 용기를 내듯 고개를 들고 조심스럽게 내게 물었다.
“저번에… 제가 그랬었잖아요. 만약 멤버를 고를 수 있었다면 굳이 저를 고르진 않았을 거 아니냐고.”
“그랬지.”
“거기에 형이, 저는 그럴 만한 실력이 있어서 뽑힌 거고 제가 할 수 있는 이상의 것을 바라지 않을 거라고 했었던 거 기억나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유찬희가 이어 물었다.
“그럼요… 하나만 더 물어봐도 돼요?”
“뭔데?”
“…정말 제가 잘하고 있는 게 맞아요?”
“…….”
“아, 그러니까 제 말은…….”
유찬희는 냉장고 문을 닫고 머쓱한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다. 그러고는.
“…오늘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어서요.”
라며 망설이면서도 운을 뗐다.
“형도 아시죠, 제가 하이어스 데뷔조에서 밀려나서 떨어진 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유찬희가 연줄을 잡고 들어온 낙하산에 밀려 데뷔조에서 제외되었다는 것은 이미 업계 내에서는 파다한 소문이었다. 그 때문에 [디어돌>에서도 유찬희를 흘긋대던 녀석들이 많기도 했고.
‘유찬희 자체가 유명한 연습생이었으니까.’
연습생 바닥은 소문이 빠르다. DIO에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랩에 재능이 있는 연습생이 있다는 소식은 이미 예전부터 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모두가 의문스러워할 수밖에 없었지.’
애초에 그렇게 정평이 나 있을 정도의 실력자가 왜 데뷔조에서 제외된 것인지에 대해.
“데뷔조를 결정하기 위한 마지막 카메라 테스트를 받았을 때, 반응이 좋았어요.”
그리고 그건 당사자인 유찬희 자신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저도 잘했다는 감각이 있었고. 애초에 직원분들께서도 매번 잘한다, 잘한다 말씀해 주셨기 때문에 테스트를 마치고 나서는 ‘아, 이제 됐다.’ 했었고요. 그간 노력해 온 만큼 보상받는구나, 나 진짜 데뷔하는구나, 그렇게 생각했어요.”
자신의 실력에 충분한 자신감이 있었고, 그 자신감을 유지하기 위해 아마도 지속적으로 노력해 왔을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뷔조에서 밀려났다면.
“…근데 떨어졌죠.”
…그 충격은 클 수밖에 없다.
자신의 실력과 노력에 대한 자신감, 미래에 대해 품었던 기대가 모두 박살이 난 거니까.
“김진우의 성장세가 뚜렷한 만큼 어차피 몇 년이 지나면 실력은 비등해질 테고, 그렇다면 팀을 더 단단하게 만들 수 있는 애가 데뷔조가 되어야 한다는 게 이유였어요.”
내가 놈의 트리거를 통해 본 것을 간략하게 설명하는 유찬희의 얼굴은 어두웠다. 씁쓸한 얼굴로 잠시 침묵하던 유찬희는 복잡한 듯 머리를 손으로 흐트러뜨리곤 말을 이었다.
“그런데 오늘 들었어요. 카메라 테스트 끝나고 제가 방 밖으로 나갔을 때, 직원분들끼리 그러셨대요.”
“……….”
“너무 잘해서 탈이라고, 뽑을 수도 없는데.”
나는 그제야 유찬희가 오늘 남자로부터 무엇을 들었는지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카메라 테스트를 직접 찍었다면 같은 팀 직원들의 대화도 충분히 들었겠지.’
DIO의 전 신인 개발 팀 직원이었던 남자는 실시간으로 유찬희가 낙하산인 김진우에게 밀려 떨어지는 것을 확인한 거다. 그를 통해 유찬희가 충격을 받은 것도 봤을 테고.
‘하지만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겠지.’
회사의 비리로 평생의 꿈이 좌절된 연습생에게 그런 걸 말할 순 없었을 테니까.
다만 오늘 유찬희를 대하는 모습을 보아하니, 그는 계속해서 유찬희에게 죄책감을 느껴 온 것 같았다. 같은 숙소에서 살며, 그리고 연습생들을 관리하며 유찬희가 얼마나 열심히 연습해 왔는지 동료 연습생들을 제외하고 가장 가까이에서 보았으니까.
그렇기에 퇴사를 한 지금에서야 말을 꺼내게 된 거다. 유찬희가 더 이상 연습생이 아니고, 자신이 DIO의 직원이 아니게 된 현재에 와서야.
“저도 바보는 아니에요, 김진우가 부당하게 데뷔조로 밀고 들어갔다는 것 정도는 알았어요. 소문 짜하잖아요. 근데 증거도 없고 소문에 불과하니까, 긴가민가했었거든요.”
“…….”
“…그래서 오히려 더 김진우가 싫었나 봐요. 내 잘못이 아니고 김진우가 잘못된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싶어서. 솔직히 처음에 형한테 하는 태도가 나빴던 것도… 김진우 생각나서였고요.”
유찬희는 눈치를 보듯 눈을 굴리며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내가 묵묵히 듣고만 있자, 용기를 내듯 말을 이었다.
“처음엔 형도 김진우처럼 뒷배 차고 들어와서 캐릭터 만드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재수 없다고 생각했었고, 또 조작하는 놈이 내 앞길 막는구나 싶기도 했어요. 형이 제 앞길 막은 적은 한 번도 없는데 김진우랑 동일시한 거죠.”
유찬희는 그렇게 말하며 냉장고에서 손을 떼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죄송해요, 형.”
조금은 뒤늦은 사과를 건넸다.
나는 가만히 유찬희를 바라보았다. 유찬희는 머뭇거리면서 말을 이었다.
“형이 처음에 저 받아 주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요. 그냥 거기에 대해서 죄송하다는 말을 한 번도 한 적 없는 거 같아서.”
“…됐어, 이제 와서 뭘.”
나는 유찬희가 내게 사과를 할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직접 입 밖으로 내진 않았어도 그 이후 [디어돌>에서 유찬희는 내게 끊임없이 미안하다는 듯한 눈빛과 행동을 보여 왔던 것이다.
게다가.
[원유하 연습생과 사이가 많이 좋아 보이시던데.] [정말요? 그렇게 보였어요? (살짝 웃다가 멈추고) 음… 솔직히 제가 처음에는요, 형과 친해지는 걸 많이… 어려워했어요. 저 진짜 형한테 못되게 굴었거든요, (침묵 후) 근데 형이 먼저 손 내밀어 주시고 챙겨 주시고 함께하자고 말해 주셨어요. 사이가 좋아 보였다면 그건 정말 형이 다 저 챙겨 줘서 그런 거예요…….]정말로 그 죄송하다는 인사는 이미 들은 후였다.
나 또한 [디어돌> 방송을 매번 확인했던 만큼, 2차 경연 때 유찬희가 인터뷰를 통해 한 말을 조금의 시간이 지난 후에 알게 되었으니까.
어떻게든 시청자들에게 예뻐 보여야 하는 서바이벌 경연에서 자신의 태도가 나빴음을 고백하며 관계도가 개선된 것에 대한 공을 모조리 내게 돌린 유찬희다.
얼굴을 마주하고 한 게 아닌 카메라를 바라보며 건넨 사과였지만, 나는 유찬희가 그저 방송용으로 내게 사죄한 것이 아님을 바로 알 수 있었다.
그 서투름 자체가 거짓말일 리는 없었으니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