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Plan for the Second Life Idol RAW novel - Chapter (151)
151화
“오, 사람 많다.”
“가자.”
매니저 형의 픽업을 받아 에이든 리와 내가 공연장에 도착한 것은 6시 공연이 시작되기 얼마 남지 않았을 때였다.
따로 마련된 초대객 게이트를 통해 공연장에 입장한 우리는 좌석에 가 앉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이제 막 초대객들이 들어오기 시작한 듯했는데, 나는 그중 익숙한 얼굴을 발견하고 잠시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저놈도 왔군.’
백이현이 나와 에이든 리의 자리와는 조금 떨어진 좌석에 느긋하게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최근 계약 만료에 따라 KRM 엔터테인먼트로의 이적을 공식적으로 발표한 백이현은 새 영화의 크랭크인을 앞두고 있었다. 덕분에 오늘 볼 일은 없겠지, 생각했으나 아무래도 그것은 섣부른 판단이었던 듯했다.
다만 자리가 떨어져 있고, 뭣보다 사람들이 붐비는 만큼 굳이 남들 시선을 신경 쓰며 인사를 할 이유는 없겠지 싶어 고개를 돌리려 할 때였다.
“……!”
시선을 느끼기라도 한 듯 백이현이 고개를 돌리는 것에 나는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그에 백이현이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빙긋 미소 짓고는 제 손에 들린 휴대폰을 툭 쳤다.
‘…뭐야?’
나는 찜찜하게 놈을 바라보다가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문자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백이현: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나는 굳이 답장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휴대폰을 꺼 버렸다.
지잉-
“…….”
하지만, 곧장 무시하지 말라는 듯 또 한 번 문자가 도착해 나는 결국 휴대폰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백이현: 섭섭하다, 인사 정도는 해 주지.] [원유하: 굳이 필요하실까요, 얼굴 봤으면 됐지.] [백이현: 할 이야기도 있는데, 좀 있다가 백스테이지 쪽에서 볼래? 어차피 지오 보러 갈 거지?]‘…하.’
다 안다는 것처럼 구는 것이 못내 못마땅해, 나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놈을 바라보았다. 백이현이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에 알겠다는 듯 대충 고개를 끄덕이자, 백이현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내가 짜증스럽게 한숨을 쉬자 옆에서 에이든 리가 고개를 내밀고 오른쪽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백이현을 발견한 듯, 에이든 리가 흠, 작게 침음을 냈다.
“백이현 선배님이야?”
“어.”
“무시는 못 하지?”
“아무래도.”
에이든 리의 물음에 그렇게 대답하며 나는 무슨 문자가 도착하든 더 이상은 상대하지 않을 요량으로 휴대폰을 가방 속에 집어넣었다.
‘최소한만 하자.’
피할 수 없는 건 애초에 알고 있으니, 놈이 뭘 바라든 딱 해도 되는 것까지만 맞춰 주는 거다.
놈이 이득을 위해 나를 이용하려는 것이라면 나도 딱 그 정도까지만 놈을 대하면 될 터였다. 딱 그 정도까지는 할 수 있으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또 한 번 솟아오르는 불쾌함을 가라앉히려 심호흡했다.
-……♩♪
그때 전광판 속 LON의 뮤직비디오에 맞춰 흘러나오던 노랫소리가 커져, 나는 고개를 들고 정면을 바라보았다.
콘서트가 곧 시작되리란 것을 직감한 관중들의 함성 소리가 거세지고, 원격으로 제어가 되는 LON의 응원봉이 색색으로 만발하기를 몇 번.
“와아아아!”
곧 장내의 불이 완전히 꺼지고 LON의 콘서트가 막을 열어, 나는 덕분에 백이현에게서 신경을 끊고 눈앞의 무대를 바라볼 수 있었다.
* * *
“고마워요!”
“고마워요, 피오니!”
LON의 콘서트는 숨 쉴 틈 없이 돌아갔다.
미니와 정규 수록곡을 비롯해 콘서트에서 처음으로 공개된 멤버들의 유닛 곡까지, 다양한 구성으로 퍼포먼스를 선보인 LON은 내내 체력적인 텐션을 잘 유지하며 공연을 안정적으로 이끌어 나갔다.
3일간 이어진 콘서트의 마지막 날. 실력적으로도, 멘탈적으로도 가장 무르익었을 터. 팬들의 만족도와 흥분은 극에 달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잘한다.”
에이든 리 또한 공연을 제대로 즐겼는지, 팬들의 이벤트가 끝이 났을 즈음 먼저 좌석을 나서는 동안 미처 숨기지 못한 진심을 내뱉었다.
“네 생각만큼 충분히 잘하는 것 같고?”
얼마나 잘하는지 보고 싶다는 듯 호승심 가득했던 표정을 지은 것이 떠올라, 나는 에이든 리에게 물었다.
나는 그렇게 질문하면서도 에이든 리가 자존심을 세우며 자신이 더 잘할 수 있다는 식으로 툴툴거릴 것이라 예상했다.
“응.”
하지만, 불퉁한 기색을 내보이지 않고 의외로 순순히 대답하는 것에 나는 의문을 느끼고 놈을 돌아보았다. 에이든 리는 무언가를 깊게 생각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네가 비춘 불빛에 내 마음이 환해져
더 이상 숨길 수 없어져
그에 에이든 리에게 무언가를 물으려던 나는 문득 뒤에서 들려오는 LON의 팬 송 소리에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LON 멤버들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어두워진 장내를 밝히는 응원봉들이 어둠 속에서 반짝거리며 흔들리고 있었다.
‘…별 같네.’
그렇게 생각한 난 굳이 무언가를 깊이 고민하는 듯한 에이든 리를 건드리지 않고, 놈과 함께 백스테이지로 완전히 빠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최한결입니다. 이쪽은 저랑 동갑인 박우빈, 이쪽은 리히토랑 닉이고요. 마지막으로 이쪽은 유하랑 동갑인 현지오. 이든 씨… 셨죠?”
우리는 콘서트가 완전히 끝나고 땀에 젖은 채 백스테이지로 돌아온 LON과 마주할 수 있었다.
막 무대에서 내려와 선풍기 바람으로 땀을 식히던 LON 멤버들 중 가장 먼저 우리에게 인사를 건넨 건 리더인 최한결이었다.
나와 현지오가 KRM에 입사하기 전에도 이미 2년가량을 연습생으로 보냈던 최한결은 데뷔 직전까지 KRM의 제일 오래된 장기 연습생으로 있었으며, 나와도 4년간 함께 연습을 해 온 사이였다.
나와 인사를 한 직후 최한결은 호의적인 태도로 에이든 리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에 에이든 리가 씩 웃으며 답했다.
“네~ 에이든 리라고 합니다. 선배님이라고 불러도 돼요?”
“이든 씨만 괜찮으시면 그냥 형이나 한결 씨로도 괜찮습니다.”
“오, 저 기회 주시면 절대 사양 안 하는데. 그럼 형이라고 부를게요.”
변죽 좋은 에이든 리의 모습에 최한결은 마음에 든다는 듯 웃어 보였다. 그렇게 두 명이 신변잡기식 질문을 이어 가던 때였다.
“유하야, 와 줘서 고마워.”
“초대해 줘서 고맙다. 잘 봤어.”
뒤를 이어 현지오가 내게 인사를 해 와, 나는 맞인사했다. 수건으로 땀을 닦던 현지오는 소감을 말하다 운 탓에 아직도 눈가가 붉고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나는 스태프에게 건네받았던 얼음물을 그에게 전달했다.
“수고했어.”
“아, 고마워. 음, 하필 울어 버려서……. 못난 꼴 보였네.”
“그렇게 생각 안 해.”
내 대답에 현지오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첫 단독 콘서트인 데다 현장 반응이 너무 좋았던 탓에 흘린 기쁨의 눈물이었기에, 정말로 현지오는 못난 꼴을 하고 있지 않았다.
“그래? 다행이다. 재미는… 있었어?”
“응, 잘하던데. 준비 열심히 했더라.”
다만 그제야 안심이 된 듯, 얼음물을 제 눈가에 가져다 대던 현지오는 내 대답을 듣고서야 안도하기라도 한 것처럼 몸의 긴장을 풀었다.
그런 그에게 콘서트에 대한 소감을 말하려 할 때였다.
“형, 오랜만이에요.”
“형~!”
현지오 뒤에서 물을 마시던 두 명이 페트병을 내려놓고 다가와,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인사했다. LON의 막내 라인이자 각각 미국과 일본에서 온 외국인 멤버, 닉과 리히토였다.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저희는 잘 지냈죠. 형 이번에 활동하신 거 잘 봤어요. 이제 몸 완전히 괜찮아지신 거예요? 형 [디어돌> 초반까지는 아직 슬럼프인 것 같았는데.”
“형, 잠깐! 무슨 그런 질문을 만나자마자……!”
“됐어, 몸은 완전히 괜찮아졌으니까 걱정 안 해도 돼. 고맙다.”
무던한 성격의 닉이 직구로 물어 오는 것에 리히토가 다급하게 내 눈치를 보았지만, 나는 굳이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를 느끼지 않고 대답했다.
괜한 심력 소모보다는 빠른 핵심 추구를 모토로 하는 닉의 성격을 알고 있기도 하고, 그 질문에 담긴 우려를 모르는 바가 아니었기에 한 말이었으나 막상 옆에 있던 현지오는 달랐던 모양이었다.
“닉, 실례잖아.”
“유하 형이 별로 안 예민해할 거 알아서 한 거예요.”
“그래도 그런 질문을 처음부터 꺼내는 건 실례야.”
“…알았어요, 주의할게요.”
우리의 대화를 듣고 굳은 얼굴로 꾸중하듯 말한 현지오의 말에 닉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다시 한번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진짜 별생각 없으니까. 걱정해 줘서 고마워, 모두. 수고했고.”
“유하는 여전히 막내들한테 약하네.”
그때 다가온 최한결이 웃으며 말하는 것에 에이든 리가 장난기 담긴 얼굴로 최한결에게 물었다.
“원래 막내한테 약해요, 유하가?”
“자기보다 나이가 어리면 좀 약하더라고요.”
“오, 찬희랑 세림이한테 져 주는 이유가 있었구나?”
놀려 먹을 건더기를 하나 물었다는 듯한 얼굴에 어쩐지 골치가 아파져 내가 놈의 시선을 피하니, 최한결이 내게 말했다.
“진짜 와 줘서 고맙다, 유하야. 너 첫 활동 때 만났어야 했는데, 미안. 하필 콘서트 준비랑 겹쳐서…….”
“괜찮아요, 데뷔할 때 연락 주셨던 걸로 충분해요. 형도 수고하셨습니다. 우빈이 형도요.”
“땡큐, 세림이도 왔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
뒤이어 다가온 박우빈이 최한결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말하는 것에 나는 천세림이 안부를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는 말을 전했다. 그에 박우빈이 천세림에게 연락해 봐야겠다며 휴대폰을 꺼내 들었을 때였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문득 박우빈이 내 뒤를 바라보고는 휴대폰을 집어넣고 인사를 건네,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공연 잘 봤어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유하도 안녕.”
그곳엔 예상대로 백이현이 있었다. 가까이 다가온 놈이 내 어깨에 손을 짚고 친근하게 말하는 통에 잠깐 표정 관리에 실패할 뻔했지만.
“…….”
그 순간 걱정스러운 듯한 얼굴로 바라보는 현지오의 얼굴과 마주해, 나는 결국 작게 한숨을 내쉬곤 남들 눈에 이상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움직여 백이현의 손을 떨어뜨리며 떨떠름하게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에요, 형.”
“응, 공연 재밌었지. 즐기는 것 같아 보이던데 보기 좋더라. 중간에 태블릿은 누구 아이디어였어?”
“…당연히 얘죠.”
나는 그렇게 답하며 에이든 리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물끄러미 백이현을 살피고 있던 에이든 리가 빙긋 웃었다.
“아, 선배님도 보셨구나. 그걸 기억해 주실 줄은 몰랐네요.”
…백이현뿐만이겠냐?
나는 에이든 리의 태연한 대답에 차마 그렇게 쏘아붙이지 못하고 작게 한숨을 쉬었다. 오늘 콘서트에 에이든 리와 내가 왔었다는 사실은 아마 벌써부터 위스퍼를 비롯한 SNS에 알려졌을 터였다.
‘그럴 만하지.’
LON이 앵콜 곡을 하는 것에 맞추어 카메라가 팬들을 비출 때, 에이든 리가 태블릿을 이용해 일종의 간이 플래카드를 든 게 화면에 잡혔기 때문이었다.
「론 위X리 저리 비켜!
이젠 내가 제일 멋진 L.O.N」
…게다가 놈이 들고 있던 태블릿에 적힌 내용이 더없이 어그로를 끄는 문구였기에, 백이현이 아니더라도 잊을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어떤 식으로 에이든 리의 플래카드가 SNS에 돌아다닐지에 대해 상상하니 또 한 번 머리가 지끈거리는 듯해 한숨을 쉬는데, 곧 스태프가 다가왔다.
“멤버분들, U라이브 준비됐습니다!”
“아, 네!”
“저, 선배님 죄송합니다…….”
“아, 괜찮아요. 인사했으니까 이제 저도 가 볼게요. 오늘 수고 많으셨고요.”
“유하야, 내가 나중에 연락할게. 오늘 정말 와 줘서 고마웠어.”
3일간의 콘서트를 정리하는 U라이브를 진행하기 위해 스태프가 부르는 대로 따라가던 멤버들 사이에서 현지오는 그렇게 인사하고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리고 지난번에 한 말, 무슨 뜻인지 알아. 정확히는… 알려고 노력 중이고. 혹시 시간이 괜찮으면, 나중에 따로 한번 만나서 이야기할래?”
나는 그 말에 현지오를 바라보았다. 반쯤은 조급해하고 반쯤은 두려워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시간이 필요하겠지.’
감정을 정리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게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라면, 또한 트라우마와 얽혀 있다면 더더욱 그러할 테고.
‘…과거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오래전, 놈의 단독 콘서트 초대를 거절할 수밖에 없었던 때를 떠올리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언제든지.”
현지오는 내 대답에 희미하게 미소 지은 후, 멤버들을 따라 사라졌다.
“유하야, 지금 갈래?”
“아, 잠시만요.”
뒤이어 픽업을 위해 온 매니저 형이 시계를 바라보며 물었으나, 나는 잠깐 시간을 달라고 말하고는 백이현을 바라보았다.
백이현이 미소 짓는 얼굴로 고개를 까닥거렸다.
“저쪽으로 갈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