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Plan for the Second Life Idol RAW novel - Chapter (165)
165화
“서두를 필요는 없지, 앞으로 시간은 많으니까.”
백이현은 당황하지 않았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정도는 금방 알아챘을 텐데도.
나는 가만히 백이현을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선선히 호응했다.
“그렇죠, 저희 ‘아이돌나잇’ 청취자 여러분들과도 그 이야기를 앞으로 함께 나누고 싶고요.”
“기대하신 만큼 많이 보여 드려야죠.”
“네.”
나는 그렇게 답하곤 카메라를 보며 미소 지었다.
“기회는 많으니까요.”
* * *
‘아이돌나잇’은 한 시간가량 진행된 후, 이번 시즌의 첫 게스트로 백이현이 소속된 오키드의 멤버이자 최근 솔로 컴백을 앞둔 우찬의 출연을 예고한 후 끝났다.
방송이 모두 끝나고 스태프분들과 인사를 나눈 후, 나와 백이현은 서로의 대기실로 향하기 위해 함께 스튜디오를 나섰다.
“생각보다 반갑더라.”
“뭐?”
“유하, 너한테 형 소리 듣는 거. 생각해 보니 다시 만나고 나서 한 번도 들은 적 없었잖아.”
그러던 중 뜬금없이 백이현이 건넨 말에 나는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멈추어 설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나와 함께 걸음을 멈춘 백이현이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어릴 때 얘기도 좀 재미있었고.”
“…그게 너한테 의미가 있기는 했고?”
“아하하, 오늘 한 이야기 중에 의미 없이 한 건 없어.”
내가 말없이 놈을 바라보자, 백이현은 왜 그러냐는 듯한 얼굴로 고개를 기울이더니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런 표정 하지 마, 진심이니까.”
“내가 어떻게 그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그게 더 이상한 거 아냐?”
“유하 너는 안 믿겠지만, 어린 시절 기억은 내게도 꽤 뜻깊거든. 내가 떠올릴 수 있는 뚜렷한 기억은 꽤 적어서.”
백이현은 잠시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하더니 말을 정정했다.
“…그래, 어쩌면 소중하다는 감각에 가까운 것 같기도 하네.”
“백이현.”
그 말에 나는 결국 방송 내내 참아 왔던 말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행동 똑바로 해. 대체 내가 어디까지 네 장단을 맞춰 줘야 하는지 그 선을 좀 잘 그으라고.”
백이현이 오늘 어떤 기분을 느끼며 방송을 했는지는 알 바 아니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공적인 자리에서 네가 추억팔이 하는 것까지 뭐라 할 생각은 없어. 하지만 그걸 사적인 자리까지 끌고 오려고 하지는 마, 네 동생으로 사는 건 오래전에 끝났으니까.”
놈이 뭘 바라는 건지는 몰라도 나는 거기에 말려들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없고, 이제 그 과거가 내게 불러일으키는 건 해묵은 배신감밖에는 없다는 것.
속이 뒤집어지는 감각에도 불구하고 내가 놈을 마주하는 이유는, 이미 대중이 우리의 공통점을 알아 버린 탓에 놈을 떼어 낼 수 없게 되어 버렸다는 것뿐이었다. 놈이 나를 이용하는 걸 참아 주는 것도 그게 현재의 내게는 득이 되기 때문이었고.
“오늘처럼 굳이 내 주변을 신경 쓰거나 할 필요도 없어. 네가 진심으로 걱정한다는 생각도 안 들고 만약 진짜 그렇다고 해도 역겨울 뿐이니까.”
그렇기에 이번처럼 백이현이 ‘정말로’ 날 걱정하는 것처럼 구는 건 불쾌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여섯 살이고 놈이 열두 살이던 그때와 변한 게 아무것도 없다는 양 구는 게 자꾸만 신경 줄을 건드렸으니까.
“내가 너를 진심으로 걱정하지 않았다고 생각해?”
“네가 누구를 걱정할 줄 아는 사람이기는 했나?”
내가 되물은 말에 백이현은 뜻밖이라는 얼굴이었다. 그 모습에 나는 작게 한숨을 쉬며 덧붙였다.
“백이현, 넌 어릴 적부터 그랬잖아.”
“…….”
“너 말고는 아무것도 몰랐지.”
백이현은 어릴 때부터 무언가가 빠져 있는 사람 같았다.
좋아하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원하는 것도 없는 이상한 어린아이. 그런 주제에 눈치는 빠르고 무엇이 자신에게 유리할지에 대한 상황 판단 능력이 좋았고.
“기회를 누구보다도 잘 잡고 빼앗았잖아. 그게 누구 건지는 신경도 안 쓰고.”
무엇보다도 학습이 빠른 아이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렇게 학습한 대로 백이현은 계속해서 자신을 만들어 나갔다. 마치 더 나은 환경으로의 생존을 위하듯, 매사 그런 식으로 살면서 누군가를 진심으로 신경 쓰거나 위하려 들지 않고 먹어 치우면서 성장을 거듭했다.
“그 대상에 나까지 포함될 줄은 몰랐지만.”
알고 있었음에도 어릴 때는 믿었다. 백이현이 유일하게 신경 쓰고 가족이라고 불러 주는 사람은 보육원에서 나 혼자뿐이었으니까.
“…신기하네. 그때 넌 어렸는데도 다 기억하는구나.”
“그때의 기억이 ‘뜻깊은’ 건 너뿐만은 아니니까.”
그 믿음의 대가는 꽤 크게 돌아왔고.
백이현에게 그 기억이 좋게 남을 수 있었던 건 놈이 그 기억을 통해 이득을 봤기 때문이다. 놈과 달리 호되게 당한 배신은 내게는 다른 ‘뜻깊음’으로 되돌아왔고.
그러니 쓸데없는 위선은 그만 떨라는 뜻으로 한 말이었으나, 백이현은 또 한 번 뜬금없는 말을 내뱉어 나를 의아하게 했다.
“역시 너는 다른 애들과는 좀 달랐던 것 같아. 그래서 좋았는데, 그때 너랑 같이 있는 게.”
“…….”
“정말 아쉬웠어, 널 두고 떠날 수밖에 없다는 게. 걱정도 됐고.”
“됐다, 너랑 무슨 말을 더…….”
또 한 번 이어지는 자기중심적인 말에 내가 놈을 지나치려 할 때였다.
“네가 여기저기 빼앗길 게 보였거든.”
“뭐?”
나는 문득 들려온 말에 대기실로 빠지려는 것을 멈추고 다시 한번 놈을 올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백이현은 무언가를 가늠하는 듯한 얼굴로 조용히 인정했다.
“네 말이 맞아, 유하야. 나를 가장 잘 알고 있는 건 너지.”
“…….”
“그런데 그 말은 딱 그만큼 너를 가장 잘 알고 있는 것도 나라는 소리 아닐까?”
곧이어 백이현의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놈이 여유로운 태도로 내가 아까 전 물어보고 싶었던 말을 꺼낸 것은 그 직후였다.
“내가 어떻게 네가 말없이 일을 벌인 걸, 그리고 네 멤버들이 널 골치 아프게 한 걸 알고 있었는지 궁금해?”
“무슨 말을 하고 싶은데?”
“넌 항상 그런 애였잖아.”
백이현은 손을 꼽으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항상 누군가를 열심히 위해 주고, 양보해 주고, 네 잘못이 아닌 것도 뒤집어써 주고, 너 스스로를 아끼지 않고. 그래서 이번 사건도 비슷했겠구나 싶었어. 멤버 대신 앞에 나서서 더 큰 화를 입었겠구나 했지.”
“…….”
“LON 콘서트 때 봤던 에이든 씨가 널 대하는 걸 봤을 때, 네가 뭘 하든 금방 알아챌 만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고. 한 명이 그러면 다른 멤버들도 아마 비슷하겠다 여겼어. 그래서 안 거야, 꽤 시달렸을 거란 걸.”
백이현의 얼굴 위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가 말했다.
“너는 언제나 사랑받는 사람이었잖아. 딱 그만큼 손해를 보고.”
“…….”
“그럼 도움이 필요하겠구나 싶었지.”
매번 웃고 있던 것과 달리 지금의 백이현의 얼굴 위로는 어떤 표정도 없었다. 백이현은 덤덤히 고개를 기울였다.
“그런데 정말 쉽지가 않네. 왜 이렇게 도움을 준다는데 싫어할까? 이용당해 주겠다는데 왜 이용해 먹지 않지? 내가 속죄를 한다고 생각하면 네 마음이 조금 편해질까?”
“가장 크게 뭔가를 빼앗아 갔던 사람은 너야. 그런데 널 믿으라고? 또 무슨 꼴을 당하라고?”
“더 이상 너한테서 무언가를 가져갈 생각은 없어, 유하야. 그러니까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오히려…….”
백이현은 문득 인상을 찌푸리고는 중얼거렸다.
“…이상하게 네가 망가지는 걸 그냥 두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최대한 이용당해 주고 싶은 마음이거든.”
“……?”
놈답지 않게 확신이 없는 말이었다. 그에 이질감을 느끼고 더 자세한 말을 캐물으려 했지만, 그 전에 백이현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유하야, 전에도 이미 말했지만 나는 이 정도의 품을 들여서까지 너를 도울 이유가 없어. 널 위하는 건 내게도 어느 정도의 득은 되지만 굳이 힘을 빼 가면서까지 얻을 필요까지는 없거든.”
그러면서 백이현은 고개를 들었다. 사람 없던 복도 끝쪽에서 매니저 형이 우리가 있는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놈은 조용히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너는 사적인 자리까지 추억팔이를 끌고 올 생각을 하지 말라고 했지만, 애초부터 내가 널 대하고 돕는 데는 사적인 이유밖에는 없었어. 지난번 일로 기분이 상했다는 건 이해하지만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는 마, 내 최선과 네 최선이 다를 뿐이니까.”
“…….”
“믿고 믿지 않고는 상관없어. 하지만 하나만 알아 둬, 나는 우리가 공생할 수 있는 선에서라면 언제든 네게 이용당해 줄 수 있고…….”
지척까지 다가온 매니저 형에게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백이현이 인사하듯 내 어깨를 짚고 마지막으로 말했다.
“…뭐가 됐든, 너를 그냥 둘 생각은 없다는 거. 네가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기분이 들 때는 더더욱.”
“……!”
“그래서 말인데, 정말 주변에 놓친 게 없는 건 맞지?”
백이현은 그렇게 말하고는 내게서 손을 떼고 멀어졌다. 그런 백이현의 뒷모습을 내가 말없이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유하야, 이현 씨랑 이야기는 다 했어? 이제 갈까?”
“…네.”
다가온 매니저 형이 묻는 것에 나는 놈에게서 시선을 떼고 우선 매니저 형과 발걸음을 옮겼다.
‘…이상한데.’
그러면서도 머릿속이 복잡해, 나는 놈이 했던 말들을 곱씹을 수밖에 없었다. 대체 무슨 의도로, 무엇을 알고 백이현이 내게 그런 말들을 했었던 건지.
단정짓듯 내 현재 상황을 판단하던 놈의 말, 마치 예고와도 같았던 물음.
그에 이질감을 느끼며 옷을 갈아입던 바로 그때였다.
띵동!
“……!”
또 한 번 뜻하지 않은 알림음과 마주한 건.
* * *
“극락이었다…….”
직장인 팬은 조용히 중얼거리며 열심히 캡처를 딴 원유하와 백이현의 사진을 위스퍼에 게재했다. 물론 그러면서 눈에 띈 원유하의 ‘팬들을_너무_사랑한_패션_JPG’ 짤을 무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사랑하지만 너 정말 잘못 입었다, 유하야…….’
다행히 콘셉트에 맞추어 옷을 갈아입고 ‘아이돌나잇’을 진행한 덕에, 캡처한 사진들의 원유하는 흡족한 모습이었다. 팬덤의 분위기 또한 더없이 활기를 띠었다.
호불호는 갈린다 쳐도 원유하의 패션으로 인해 유어원들이 시름을 잊은 데다 방송 또한 성공적으로 끝이 나, 팬덤 전체가 흥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 원유하 경력자설 다시 한번 민다… 무슨 데뷔한 지 이제 막 3개월차 되는 신인 아이돌이 첫방에서 이렇게 안 떨 수가 있지? 얘는 진짜 데뷔부터 경험치 만렙인 것 같아;;
-백2현이랑 유하 조합 말로만 들었지 얘네 실제로는 접점 보여 준 적 없어서 어떨지 엄청 궁금했는데 생각보다 엄청 좋았던 것 같음 일단 얼굴부터가 극락ㅋㅋㅋㅋㅋㅋ 이 둘 조합을 이제 매주 2번씩 볼 수 있다는 거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누가 기획했든 절받으세요
-월요병을 낫게 하는 최고의 특효약: 아이돌나잇 투호스트 원유하 백이현
이렇듯 호의적인 반응이 계속해서 위스퍼에 쏟아지고 있던 중이었다.
지잉-
“……?”
12시 정각.
직장인 팬을 비롯한 유어원들은 급작스럽게 원디어의 공식 계정의 알람을 받고 의아한 마음으로 각 SNS에 접속했고.
-헐 미친 뭐야?????????
-아니 뭐야? 뭔데?
-헐 미친 이게 뭐
모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원디어(ONEDEAR) @ONEDEAR_Official
“When I First Saw You”
→metu.be/ZJAQOR…
20XX. 11. 29
Coming Soon
#원디어 #ONEDEAR
누가 봐도 의미심장한 문구와 함께 링크가 게재되어 있던 것이다.
유어원들이 다급하게 링크에 접속한 순간, 동영상이 재생되었다.
오래된 필름이 재생되기라도 하듯 스크래치가 낀 흐릿한 화면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들려오는 것은 마른 나뭇잎이 굴러가는 것 같은 사각거리는 소리뿐.
느릿한 무빙은 곧 유럽식의 건물을 훑고, 걸음을 옮기듯 건물의 안쪽으로 이어진다.
차가운 조각상들이 세워져 있는 복도를 지나 도착한 곳은 앤티크한 가구와 소품들이 드문드문 세워져 있는 응접실이다. 따뜻하기보다는 딱딱하고 공허한 분위기를 내는 응접실 안쪽에서 한 소년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머리에는 금빛 수가 놓인 베레모를 쓰고 사립학교에서 입을 듯한 고급스러운 교복을 입은 밝은 호박색 눈동자의 소년이다.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 건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무감한 모습. 영혼조차 없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빛이 없는 눈동자.
그러나, 그런 차가움은 오래 이어지지 않는다.
곧 창밖을 바라보던 얼굴이 비스듬히 기울여지고, 소년이 카메라 쪽을 바라보았을 때.
“…와.”
직장인 팬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천천히 화면이 깨끗해지며 따뜻한 색감으로 주변이 물들고, 조각상의 그것처럼 무표정하던 소년, 에이든 리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감돌았기 때문이었다.
필름의 재생이 끊긴 듯 어두워진 화면, 그리고 그 위에 뜬 문구.
「ONEDEAR 2nd Mini Album」
First Projects for : REALIZE
그 순간 직장인 팬은 깨달았다.
어떤 예고도 없이, 유어원에게 준비할 시간조차 주지도 않고 원디어가 두 번째 활동의 신호탄을 던져 버렸다는 것을.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