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Plan for the Second Life Idol RAW novel - Chapter (181)
181화
“내가 설마 KRM 연습실까지 가 보게 되다니.”
음방 스케줄이 끝나고 차에 타 KRM 엔터테인먼트로 향하며 유찬희가 새삼스럽다는 듯한 말투로 중얼거렸다.
그 한탄인지 감탄인지 모를 중얼거림에 멤버들의 시선이 유찬희에게로 쏠렸다. 그중 천세림이 한 건을 물었다는 듯 장난기 어린 얼굴로 넌지시 말을 꺼냈다.
“그러고 보니 찬희 원래 KRM 싫어하지 않았나? 경쟁심 있다고 했잖아, [디어돌> 인터뷰에서. 그래서 유하 형한테도 지고 싶지 않다, 뭐 이렇게 이야기했었던 것 같은데.”
“아, 아니, 그건…….”
천세림의 물음에 화들짝 놀란 얼굴로 슬쩍 내 눈치를 본 유찬희가 머쓱한 얼굴로 답했다.
“그냥 방송용이었지, 뭐… 변명이기도 했고…….”
그러면서 말을 흐리는 게, 새삼스럽게 [디어돌> 시절 했던 인터뷰에 대해 멋쩍은 기분이 든 모양이었다.
-원유하 연습생님이요? 아… 네. 그냥, 지고 싶지는 않다……. 그런 마음이 들긴 하죠. 아무래도 저는 DIO고 그분은 KRM이니까.
2차 경연 당시, 곡을 정하는 부분에서 나와 대립한 이유를 묻는 스태프에게 유찬희는 떨떠름한 얼굴로 그렇게 답했다.
정확히 당시 유찬희가 나를 배척하려 한 건 다른 이유에서였지만, 대중이 어느 정도 납득하면서 또한 뒷말이 나오지 않는, 무엇보다도 방송용으로 써 먹힐 라이벌 서사를 살리는 데는 KRM과 DIO의 적대 관계를 언급하는 게 제일 효과적이었기 때문인 듯했다.
“…솔직히 약간 선입견이 있기도 했지만. 유명했잖아, KRM 연습생들 콧대 높다는 거. 그래서 좀 얕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도 있었지, 뭐.”
“이젠 아니고?”
“아, 당연하지!”
정말로 몰라서 물었다기보다는 그냥 잠깐 유찬희를 골려 보는 게 목적이었던 듯, 천세림은 씩 웃고는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정말 살고 볼 일이긴 하네, 설마 연말 연습 때문에 KRM에 갈 줄은 몰랐는데.”
“나 KRM 직원 식당 유명하다고 들었는데, 우리도 거기 갈 수 있어요?”
“아마 그 정도까지는 시간이 안 되지 않을까? 내일 사녹 시간이 좀 빠르잖아. 아마 파트 정하고 좀 맞춰 보다 해산하지 않을까 싶은데.”
“에이~ 아쉽다.”
눈을 빛내던 에이든 리가 도지혁의 말에 대놓고 입을 내밀며 툴툴거렸다. 그 옆에 앉아 있던 강현진이 고개를 돌려 내게 질문을 건넨 바로 그다음의 일이었다.
“유하는 LON 선배님들이랑은 오랫동안 연습했다고 했지?”
“네, LON 데뷔까지 치면 가장 오래 한 건 4년 정도. 입사 동기도 있고요.”
“그… 메인 보컬분? 현지오 씨?”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현지오가 KRM 연습생 입사 동기였다는 것은 이미 [디어돌> 때 현지오가 진행한 U앱을 통해 대중들에게 알려진 상태였다.
“형도 마지막까지 LON 데뷔조에 있었던 거죠?”
“어.”
“형이랑 같이 메보 포지션 고려됐었던 거면 그분도 되게 잘하시겠다. 실제로도 잘해요?”
“응, 잘하시던데.”
그 말에 호기심을 느낀 듯 유찬희가 물은 말에 나와 함께 콘서트에 갔던 에이든 리가 순순히 긍정했다. 그 반응에 천세림이 놀란 듯 입을 벌렸다.
“오, 이든이 형까지 저럴 정도면 진짜 잘하시나 봐.”
“현지오는 한 번도 A반 아래로 떨어져 본 적 없어. 들어왔을 때부터 메인 보컬감이라고 이야기되던 애였고.”
“흠, KRM 전설의 연습생답네요.”
“전설의 연습생? 그게 뭐야?”
뜬금없이 천세림이 중얼거린 말에 도지혁이 흥미를 느낀 듯 물었다. 그 말에 천세림은 또 한 번 장난기가 담긴 얼굴로 씨익 미소 지었다.
“KRM에 탑급 보컬리스트 둘 있다고 소문 자자했거든요. 형은 데뷔했어서 몰랐었나 봐. 아마 어느 정도 연습생으로 생활했다 싶으면 다들 알걸요.”
“아, 나도 들어 봤어. 그래서 우리 회사 실장님이 우리 쪽은 왜 이렇게 보컬 라인 없냐고 한탄했던 적도 있었는데. 근데 그분이랑 같이 메인 보컬 포지션이었으면…….”
“우리 지금 그 전설의 연습생을 리더로 뒀단 거네?”
“정답~!”
손가락을 맞부딪치며 경쾌하게 목소리를 낸 천세림에 이어 능글맞은 투로 말을 덧붙인 도지혁이 짜기라도 한 것처럼 이쪽을 바라보았다. 왠지 칭찬을 빙자한 몰이가 시작될 듯해 내가 부러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입을 다물고 있을 때였다.
“그럼 좀 걱정이 되긴 하는 것 같은데.”
“응? 무슨 걱정이요?”
문득 강현진이 살짝 미간을 찌푸리는 것에 멤버들의 시선이 그쪽을 향해 쏠렸다. 집중된 시선에 약간은 당황한 듯 강현진은 잠시 침묵하다가, 곧 조심스럽게 서두를 꺼내 놓았다.
“…비교를 피해 갈 순 없을 것 같아서.”
“아~.”
그 말에 천세림은 바로 이해를 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는 흠, 작게 침음하고는 대꾸했다.
“확실히 그럴 가능성도 있겠네요. 뭐… 애초에 비교가 안 되는 게 불가능하겠지만. 곡도 곡이지만 접점이 너무 많아서.”
나는 그 말에 조용히 동의했다. 확실히 이번에는 비교를 피해 가긴 어려울 터였다. 비교당하지 않기가 애매한 곡을 하게 된 데다 LON과는 겹치는 부분이 꽤 많았던 것이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가.’
게다가 이 비교는 어쩔 수 없는 필연적인 흐름이기도 했다. 이미 사라진 미래에서도 아이딘과 LON의 대립은 연말 무대에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문제는 큐시트였지만.’
논란의 시발점이 된 건 에이넷의 연말 시상식인 ‘A 뮤직 어워드’의 큐시트 유출이었다.
당시 에이넷이 무대 순서를 꾸리며 그룹으로서는 1년 선배인 LON의 무대를 아이딘보다 앞서 배치했던 것이다.
보통은 연차가 높고 인지도가 높을수록 무대 순서는 하이라이트 부분에 배치되기 마련이다. 때문에 무대 순서는 매번 팬덤의 높은 주목을 받고 있고.
그런 와중에 하필 LON의 무대 바로 다음 순서가 아이딘으로 배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유출된 큐시트는 결국 논란으로까지 발전되었다.
‘LON의 팬덤, 피오니의 반발이 컸지.’
데뷔 전부터 신드롬을 일으켰던 아이딘은 데뷔 당시 ‘역대급 신인’이라고 불렸던 LON의 수식어를 빼앗아 왔던 상태였다. 기자들도 신이 나서 두 ‘역대급 신인’을 비교하던 차였고.
최근에야 각 팬덤들의 경계가 많이 허물어져 타 그룹이나 팬덤에도 호의를 보이는 팬들이 많아졌다고는 하지만, 결국 그건 내 ‘본진’에 해가 가지 않을 때의 일이다.
여러 가지 면에서 거슬리던 아이딘이 결국 ‘LON’의 무대 순서까지 빼앗았다고 생각하게 된 피오니는 반발했고, 때문에 ‘A 뮤직 어워드’의 스태프는 간접적인 방식으로 해명을 해야 했다.
아이딘은 그해 에이넷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았던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주인공들인 데다, LON보다 연차가 높은 도지혁이 끼어 있어 부득이하게 배치 순서를 따로 구성했다는 것을 연말 특별 무대에 대한 보도 자료를 돌리며 함께 끼워 전달한 것이다.
완벽한 해명은 아니었다고는 하나 납득하지 않기도 애매한 변명이었기에 결국 피오니의 반발은 사그라들었지만,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된 두 그룹의 대치는 여기서부터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 대립은 아마 이번 생에서 더욱 심해질 터였다.
“근데 아예 싸우라고 붙여 놓은 것 같지 않아요? 한 곡을 1절, 2절로 나눠서 커버한 다음에 3절에서는 같이 무대를 꾸리라니. 서바이벌로 너무 재미를 톡톡히 봤다니까, 에이넷은.”
“파트 정하는 것부터 좀 힘들 것 같네…….”
이번 생에서 원디어와 LON은 오키드의 곡으로 합동 무대를 꾸리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 * *
“유하야, 잘 왔어.”
“오랜만이에요, 형. 월드 투어는 잘 다녀오셨어요?”
LON은 지난 9월 열린 단독 콘서트 이후 약 2달간 첫 월드 투어를 다녀온 후였다. 투어 직후 바로 연말 무대 준비에 돌입한 상태인 데다 LON도 최근 자체 콘텐츠 촬영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을 테지만, 최한결은 무던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잘하고 왔어. 재미도 있었고. 아, 맞아. 신곡은 잘 들었어, 노래 좋더라. 준비는 언제 한 거야?”
“곡은 데뷔 때부터 나와 있었어요. 기획이나 안무 창작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고.”
“창작은 멤버들이 같이 한 거지? 안무는 이쪽의 그, 현진 씨… 아, 이렇게 불러도 될까요? 선배님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선배님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은데요.”
“그럼 저희 나이도 같은데 괜찮으시면 반말로…….”
나는 강현진과 이야기를 시작한 최한결을 바라보다 주변을 슬쩍 훑었다. 에이넷에서 온 스태프들이 연습실 안쪽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있었다.
이번 LON과의 합동 무대 준비 과정은 KRM에서 한 번, 로드 엔터에서 한 번 촬영된 후 비하인드로 풀릴 예정이었다. 덕분에 에이넷이 이번 무대를 통해 뭘 기대하고 있는지가 확연하게 보였고.
‘정말 라이벌 구도에 맛이 들린 모양인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금 시선을 앞쪽으로 두었다. 에이넷의 노림수는 알겠지만, 지금 분위기를 봐서는 대충 중도만 지키면 무난하게 상황을 넘길 수도 있을 것 같아 보였다.
‘큐시트 사건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그때완 달리 지금은 접점이 있으니까.’
지난 생에서 아이딘과 LON은 서로 접점 없이 데면데면한 사이였다. 때문에 두 그룹의 팬덤이 더 거리낄 것 없이 싸울 수 있었고.
하지만 이번 생에서는 달랐다. 내가 현지오와 함께 LON 데뷔조 메인 보컬로 고려되었다는 점은 분명 대중이 우리 둘을 비교할 거리가 되기도 하겠지만, 반대로 LON 멤버들과 내가 오랫동안 연을 이어 왔다는 사실은 두 팬덤이 서로를 친근하게 여길 수 있는 계기도 될 터였기 때문이다.
‘최근 콘서트 때 에이든과 내가 포착된 것도 있고, 현지오도 날 자주 언급했었으니까.’
원디어와 LON이 친분이 있다는 사실은 이미 유어원과 피오니, 각 팬덤에게 모두 알려져 있다.
여기에 팬덤 싸움이 일어나 봤자 좋을 게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각 팀의 멤버들 최대한 무난하게 상황을 넘기자고 생각하고 있을 터.
‘다행히 서로 호의가 있어 보이니 잘됐군.’
지금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만 유지한다면 문제될 건 없을 것 같아 보였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시선을 돌렸다. 어느새 현지오가 내게 다가와 있었다.
“몸은… 괜찮아? 잘 해결된 거야?”
내 얼굴을 보자마자 현지오는 조심스러운 어조로 그렇게만 물었다. 흘긋 멤버들과 함께 연습실로 따라 들어온 매니저 형들을 보는 것에, 나는 그가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 걱정 안 해도 돼.”
“그럼 다행이지만…….”
“지오 형이 기념품이랍시고 이것저것 사 온 거 숙소에 널려 있는데 나중에 가져가요, 형.”
현지오의 뒤에서 불쑥 나타난 닉이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그러다 그는 문득 유찬희와 주단우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찬희 씨랑 단우 씨죠? 래퍼분들은.”
“아, 네.”
유찬희가 인사말 없이 바로 물어오는 직설적인 물음에 약간 당황한 투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살피듯 둘을 응시한 닉이 입을 열었다.
“혹시 2절 랩 어떻게 하셨는지 좀 봐도 돼요? 3절에서 합 맞추려면 서로 공유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3절 파트도 나눠야 하긴 하는데…….”
우리는 오키드의 곡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1절은 LON이, 2절은 원디어가, 3절은 합동으로 무대를 하는 것으로 미리 합의를 해 둔 상태였다. 3절의 초입은 바로 랩이 나오는 부분이었고.
그렇기에 파트 배분을 언급한 닉은 살짝 눈을 굴려 내 쪽을 한번 바라보고는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이었다.
“가사는 제가 써도 돼요? 아무래도 의견 조율하기가 좀 애매할 것 같아서, 웬만해서는 제가 다 하고 싶어서요. 저희 팀에서는 랩 가사는 대부분 다 제가 쓰고 있어서 익숙하기도 하고.”
그리고, 나는 그 말에 문득 유찬희의 눈썹이 꿈틀거리는 것을 보고는 작게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죄송한데 그건 저희도 마찬가지여서요. 아시겠지만 저희는 아예 전체 작업에 멤버들이 다 참여하거든요. 그래서 의견 조율에 익숙하기도 하고요. 만약 의견 합치는 게 어려우시면 저희가 알려 드릴까요? 아예 저희 주도로 가도 되고요.”
아마 의도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닉의 말이 유찬희의 승부욕을 아주 제대로 건드려 버린 모양이었기 때문이었다.
“…의견 조율하는 방법은 저도 아는데요?”
“아, 진짜요? 모르시는 거 같…….”
“유찬희.”
“닉.”
그리고 그런 유찬희의 날 선 태도를 몰라볼 닉이 아니었다. 닉이 의아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기울이며 대꾸하는 말을 공격적으로 받아치는 유찬희의 모습에, 나는 결국 그의 이름을 불러 과열되기 시작한 유찬희를 멈춰 세워야만 했다.
여기에 현지오 또한 비아냥거리는 듯한 기색이 섞인 목소리를 느끼고는 익숙하게 닉을 불러 세워, 유찬희와 닉은 각기 불만스럽다는 얼굴로 우리 쪽을 돌아보며 대꾸했다.
““왜요?””
…방금 전까지는 싸우고 있었으면서 합창하듯 대꾸하기는.
문득 머리가 지끈거리는 듯해 나는 머리 위로 손을 짚었고, 그러던 중 나와 동일하게 지친 표정을 한 현지오와 시선을 마주했다.
그리고 현지오와 나는 대화 없이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망했지?’
‘X됐지.’
아마도 이번 합동 무대가 평탄하게 흘러갈 일은 없겠다는 것을.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