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Plan for the Second Life Idol RAW novel - Chapter (185)
185화
회귀 전, 데뷔조에서 떨어지고 KRM 엔터를 나온 이후 나는 LON 멤버들과 연락하지 않았다.
살길을 찾느라 바빴던 탓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제 같은 회사도 아니게 된 놈이 무슨 주제로 연락을 한다고.’
몇 년간 한 숙소에서 살며 연습을 해 왔다고 한들, 나는 이제 KRM 소속 연습생이 아니었다.
가뜩이나 데뷔 준비로 빡센 나날을 보내고 있을 사람들에게 괜한 연락을 해서 혼란을 주고 싶지는 않았다. KRM을 좋게 나오게 된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렇기에 LON 멤버들과는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데면데면한 사이가 되었다. 내 퇴사 후에도 몇 번 소식을 주고받긴 했지만, 내가 자신들을 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에는 그쪽에서 먼저 연락을 해 오는 일이 드물어진 것이다.
서운한 감정이 들지는 않았다. 그들이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쉽게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나를 배려하고 있다는 것을 모를 리 없었고, 무엇보다도 스케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선배들이 데뷔하지 못한 연습생 동료들과 그러했듯, 나는 내가 그들과 자연스러운 수순을 밟아 나가며 서로 멀어지겠거니 싶었다.
-유하야, 잘 지내? 혹시 괜찮으면 이번에 한번 만날 수 있을까 싶어서…….
하지만 현지오는 달랐다.
내가 연락을 하지 않고, 단답으로 일관하거나 대놓고 피하는 기색을 보여도 현지오는 꾸준히 내게 연락을 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느꼈다. 바쁜 스케줄 중간중간 소식을 알려 오며 연을 이어 가려는 모습에서는 고마움이, 그걸 편한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할 때는 미안한 감정이 들 수밖에 없었으니까.
“지난번에 내가 너에게 죄책감 가지지 말라고 했었지.”
하지만, 나는 곧 다른 이유로 현지오의 연락을 피하게 되었다. 그의 태도가 이전과는 어딘가 달라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저번에도 말했던 것처럼 내가 그때 데뷔조에서 떨어졌던 건 네 잘못이 아냐. 그걸 네가 보상해 줘야 할 이유도 없고, 내가 어떻게든 잘되어야 한다는 강박을 느낄 필요도 없어.”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현지오는 내게 마음의 빚을 지기라도 한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고, 그에 따라 나를 놓지 못했다.
나는 그게 죄책감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현지오는 내게 무언가를 갚아 주지 못해 안달인 것처럼 굴었으니까.
“…알아, 유하야. 지난번에 네가 말해 준 이후로 오랫동안 거기에 대해 생각했었어. 내가 너무 주제넘게 굴었…….”
“그게 아냐. 현지오, 너는…….”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 행동에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랑 이제 조금도 부딪치려고 들지 않잖아. 마치 내가 무섭기라도 한 것처럼.”
정말 이상한 말이지만, 현지오가 나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내가?”
현지오는 당황한 얼굴로 되물었다. 점점 핏기 없이 하얗게 질려 가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현지오가 나와 부딪치기도 전에 모든 것을 양보하고,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한에서 내가 잘되기를 빌어 주는 게 자신의 잘못이 아닌 일로 죄책감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다기에는 현지오가 비굴하기까지 할 정도로 낮은 태도를 보인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아니라면 미안하다. 널 계속 보면서 그런 생각밖에 안 들었어. 이상한 일이지.”
“…….”
“분명 네가 날 위해 해 주는 것들은 내게 도움이 됐고, 그렇다면 너는 거기서 뿌듯함을 느꼈어야 하는데…….”
나는 가라앉는 현지오의 얼굴을 보며 조용히 말을 이었다.
“그럴수록 네가 더 조급해 보였거든.”
동정심을 느껴서 베푼 행동이 좋은 결과를 불러일으켰을 때, 보통 선의를 베푼 당사자는 기쁨과 만족을 느껴야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현지오는 스스로 자신의 행동에 혼란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면서도 그 사실조차 부정하기라도 하는 듯 점점 몸을 낮췄고.
‘어떻게든 ‘잘 보여야 한다’고 느끼기라도 하는 사람처럼.’
마치 내가 현지오가 가지고 있는 무언가를 언제든 빼앗을 수 있다고 느끼기라도 하는 것처럼…….
‘…회귀 전에는 절대 그럴 일은 없겠다고 생각했었지.’
현지오가 위로, 더 위로 올라가는 동안 나는 자꾸만 밑으로 내려앉고 있었으니까.
그때는 LON의 메인 보컬이 라이트닝의 리더를 두려워할 이유가 뭐가 있나, 생각했다. 애초에 데뷔 후 격차가 벌어지며 놈과 나의 접점은 점점 사라져 갔고.
때문에 당시의 나는 현지오가 나를 동정할 이유는 있어도 나를 견제하고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고 여기며 그에 대해 깊이 생각하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회귀 후에도 동일한 현지오의 태도를 보며 나는 문득 깨닫게 됐다. 그때 내가 느꼈던 그 감정이 어쩌면 맞을 수도 있겠다고.
현지오는 나를 동정하고, 죄책감을 느끼면서.
“…네가 나와 부딪치고 싶어 하지 않는 이유가 내가 그럴 가치가 없다고 느껴서인 거야, 아니면 두려워서인 거야?”
한편으로는 연습생일 적 우리가 매순간 그랬던 것과는 달리, 이제는 나와 충돌하는 것 자체를 무서워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고.
마치 자신이 질까 두렵다는 듯, 혹은 단 한 번이라도 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래서 모든 순간, 오히려 몸을 낮추고 있는 걸 수도 있겠다고.
“나는…….”
현지오는 내 말에 무어라 대답하지 못하고 주먹을 말아 쥐었다. 쉽사리 생각을 정리하지 못하겠는 듯, 현지오는 도망치고 싶다는 듯한 얼굴로 계속해서 침묵을 유지했다.
“…….”
나는 현지오가 말을 꺼내기를 기다려 주었다. 오랫동안 지속되던 의문을 풀고 싶었으니까.
연거푸 한숨을 내쉬며 마른세수를 하듯 얼굴을 쓸어내리던 현지오는 곧 내가 쉽사리 물러나지 않을 것임을 깨달은 듯 망설이면서도 결국 천천히 말을 꺼냈다.
“…나는 네가 잘됐으면 좋겠어. 그건 정말 진심이야.”
“알아. 그게 거짓말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 없어.”
“…하지만.”
현지오는 어렵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러나 결국 뒷말을 잇지 못하고 다시금 입을 다물고 말았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그 말을 꺼내도 될지 망설이는 듯한 태도에, 나는 현지오가 숨기고 있는 게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연습실로 돌아가자.”
지금 현지오를 찌르면 안 된다는 것도.
‘…4년이지.’
현지오와 내가 함께 연습실로 들어서, 놈이 LON으로 데뷔할 때까지 함께 지낸 게.
그동안 나는 현지오와 같은 등급을 받고 같은 포지션에 배정되었고, 같이 연습을 하고 모든 생활을 함께했다. 그렇게 꼬박 4년의 시간을 보낸 만큼 현지오가 어떤 성격인지 모르지 않았다.
“지금 대답을 듣진 않을게. 대신 한 가지만은 똑바로 해.”
“…….”
현지오는 결국 제가 숨기고 있는 것을 다 말해 줄 놈이었다. 태도가 바뀌었다 한들, 나는 현지오가 그것까지 변화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은 필요할 터였다. 그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면 그건 이유가 있다는 뜻일 테고, 높은 확률로 그건 현지오가 숨기고 있는 게 놈의 트라우마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일 테니까.
아주 잠깐, 시스템을 이용해 놈의 트라우마를 확인할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기다리자.’
나는 현지오를 기다리기로 했다.
‘지난 생에… 거의 마지막까지 연락을 한 게 현지오였나.’
회귀 전, 그가 내게 그렇게 해 주었던 것처럼.
현지오와 직접적으로 만나진 않았어도, 그가 보내오는 연락은 내가 죽기 거의 직전까지 끊임없이 지속되었다.
현지오는 당시 내가 정신을 추스르고 답장을 보낼 때를 기다려 줬었다. 그래서 슬럼프를 온전히 극복했을 때쯤에는 현지오와 자잘한 소식 정도는 주고받을 수 있게끔 되었고.
“대충하려고 하지 마. 정말 네가 내가 잘됐으면 바란다면.”
“…….”
그러니 이 정도쯤은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현지오가 지금의 태도를 계속 유지할 거라 생각하지도 않았다.
“하던 대로 해. 져 주지 마, 나한테.”
나는 현지오만큼 승부욕 강한 놈을 본 적이 없으니까.
* * *
“으으, 죽을 것 같아…….”
“근육통…….”
연습을 모두 마치고 숙소로 돌아온 후, 멤버들은 거실 여기저기에 늘어졌다. 나 또한 체력이 모두 닳은 탓에 소파 한구석을 차지하고 드러누울 수밖에 없었다.
“…저희 얼마나 잘 수 있어요?”
“…모르겠네. 1시간 반 정도?”
“……깨어 있는 게 낫겠다, 그럼. 지금 자면 영원히 못 깰 것 같아요…….”
“이동할 때 좀 자자……. 오늘 메이크업은 찬희가 제일 마지막으로 하고. 그동안 대기실에서 좀 자.”
“아싸…….”
12월부터 1월까지 연달아 이어지는 시상식 준비에 겹쳐 2집 활동을 소화하게 된 탓에 멤버들은 체력적인 한계를 여실히 느끼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 붕붕드링크만 회수당하지 않았어도…….’
그건 나 또한 마찬가지였고.
[디어돌> 막방 때, 뜬금없는 버그의 개입으로 회수당했던 붕붕드링크와 우황청심환이 그리워질 지경이었다. 그걸 먹고 개고생을 했으면서도.“다들 홍삼 하나씩 먹자.”
“그럼 나는 탄단지 주스를 갈아 줄…….”
“죄송한데 그건 안 먹을게요.”
“…차갑다, 세림아. 형 상처받게.”
그나마 평소 운동을 좀 하는 도지혁과 주단우만 약간의 체력이 남아 있는 듯, 두 명은 부엌에서 부지런히 홍삼이나 영양제를 가져와 멤버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대충 몸을 세워 앉아 그걸 받아 들고 먹는 동안, 옆으로 다가온 에이든 리가 풀썩 소파에 몸을 들이밀고는 퀭한 눈으로 날 보며 물었다.
“아까 얘기 잘했어?”
“…….”
나는 먹던 것을 멈추고 에이든 리를 내려다보았다. 아까 전 현지오와 연습을 할 때 놈의 기색을 살피는 듯하더니만, 중간에 나와 현지오가 따로 빠졌던 것까지 확인한 모양이었다.
“…그건 모르겠는데.”
잘했냐고 물어보면 잘했다고 답하긴 어려울 터였다. 목적했던 대답은 듣지 못했고 결국 내가 할 말만 한 셈이었으니까.
내 대답에 에이든 리는 흠, 침음하더니 또 한 번 물었다.
“잘할 거 같긴 해? 달라진 건 딱히 없어 보였는데.”
현지오는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연습실에 들어와서도 그다지 달라진 모습을 보이진 않았다. 여전히 고뇌하는 듯한 얼굴로, 조금은 소극적이게 연습에 임했던 것이다.
“일단 아무 말 안 하긴 했는데, 유하가 하지 말라고 해서.”
연습의 중요성이나 의욕을 중시하는 에이든 리는 그에 꽤 답답해하는 눈치였지만, 일단은 입을 다물고 있어 주었고.
“그건 고맙다.”
“근데 오히려 더 복잡해 보였어, 그쪽. 애티튜드도 별로 재미없었고.”
에이든 리는 툴툴거리며 도지혁이 건네준 영양제를 슬쩍 옆으로 밀어놓았다. 그 모습을 본 도지혁이 엄한 얼굴로 다시금 영양제를 놈에게 내밀고는 내게 고개를 돌렸다.
“그보다는 본방이 걱정인데. 봤어? 팬덤석도 가까이에 있는 것 같더라.”
에이넷은 원디어와 LON의 대결구도를 잡는 데 맛을 들리기라도 한 것처럼 이번 A어워즈에서 유어원과 피오니의 팬석을 가깝게 잡아 두었다.
그에 두 팬덤이 더더욱 과열될 것임은 뻔해 보였지만.
“괜찮을 거예요.”
나는 그렇게 답하곤 문자 메시지가 도착한 휴대폰을 내려다보았다.
[닉: 형, 지오 형이랑 무슨 이야기 했어요? 지오 형 연습실 간다고 나가 놓고 지금까지 안 오는데]현지오를 비롯해 LON 멤버들이 역할만 잘해 준다면 그리 문제될 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스케줄 끝나고 안 쉬고 바로 연습실 가도 돼요?”
“가야지, 연습실…….”
“…최대한의 효율로 최대한의 효과, 잊지 말아야지… 하.”
물론 그보다도 더 중요한 건, 원디어가 그에 지지 않을 만큼의 퀄리티를 보이는 것이었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