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Plan for the Second Life Idol RAW novel - Chapter (189)
189화
늦은 저녁 식사가 끝난 후, 멤버들은 휴식을 위해 각자의 방으로 흩어졌다. 그 후에야 대충 씻고 정리를 마친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 대충 겉옷을 챙겨 입었다.
그에 이번 일정에서 나와 함께 방을 쓰게 된 주단우가 의아한 듯 물었다.
“유하야, 어디 가?”
“잠깐 현지오랑 약속이 있어서요. 이야기 좀 하고 올게요.”
뜻밖에도 이번 일정에서 LON과 우리는 묵는 호텔이 같았다. 덕분에 연말 무대가 끝나고 현지오에게 초대를 받을 수 있었고.
나는 현지오가 보내 놓은 호텔 방의 룸 번호를 확인하고 한 층 위로 올라갔다. 어느새 새벽이 깊어 있었기 때문에 주황빛 조명이 켜져 있는 복도는 조용했다.
그 가운데 현지오의 방 앞에 도착해 방문을 두드리자, 잠깐 안쪽에서 부산스러운 인기척이 났다. 그리고 지체할 것 없이 문이 열렸다.
“유하야, 어서 와.”
“…잠깐 들어갈게.”
현지오는 약간 당황한 듯한 얼굴이었다. 그에 의아해하며 방 안으로 들어섰을 때, 나는 뜻밖의 광경과 마주할 수 있었다.
“…술 마셨냐?”
“으응…….”
호텔 방 한쪽 테이블 위에 치우다 만 듯 보이는 술병 몇 병이 올라와 있던 것이다.
나는 말없이 현지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현지오가 당황한 듯 제 얼굴을 만지며 물었다.
“…마, 많이 빨개?”
“…아니.”
오히려 너무 멀쩡한데.
현지오는 방을 혼자 쓰고 있는 듯 보였는데, 딱히 누군가와 함께 술을 마시다 헤어진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그럼 저걸 다 혼자 마셨다는 건데…….’
그에 나는 어쩐지 복잡미묘한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스물을 넘긴 지도 이제 한참 되었으니 술을 마시는 게 이상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미 중학생 때부터 연을 이어 오고 있는 현지오가 이러는 걸 보니 어쩐지 어색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딱히 취한 것 같지도 않고.’
게다가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술병의 개수치고 너무나도 희고 말끔해 보이는 얼굴에 나는 약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말투 또한 단정해 딱히 취한 느낌도 없어 보였던 것이다.
이 상황에 어색함을 느끼는 건 나뿐만은 아닌 듯, 현지오는 테이블 위의 술병을 부끄러워하는 듯한 기색으로 안절부절못하다 내게 물었다.
“음, 한잔할래……?”
“아, 나는…….”
나는 현지오의 제안을 거절하려다 말고 잠시 멈칫했다. 약속을 잡아 두고 현지오가 술을 마신 게 어쩐지 놈이 긴장을 풀기 위해 한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럼 맥주 한 캔만.”
“응!”
현지오가 제정신으로는 말하기 어려운 마음에 술을 마신 것이라면 적어도 장단 정도는 맞춰 주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 밝아진 얼굴로 현지오가 호텔의 미니 바에서 맥주를 꺼내 내게 내밀었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자신 또한 또 다른 술을 가져와, 우리는 나란히 앉아 어색하게 각자의 술을 깠다.
그러는 동안 잠시 어색한 침묵이 호텔 방에 깔렸다. 술을 마시면서도 나는 현지오를, 현지오는 나를 살피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고.
“오늘 재밌었어, 유하야.”
그러다 문득 그 침묵을 깬 건 현지오였다. 조심스럽게 눈을 굴리던 현지오가 슬그머니 입을 연 것이다.
“우리 연습생 때 생각났어. 그때 서로 브릿지 파트 한다고 엄청 싸웠는데, 기억 나?”
“기억 안 날 리가 없지, 그때 새벽까지 그 문제로 싸웠는데.”
월말 평가로 ‘Nightmare’를 커버하게 됐을 때, 비교적 쉽게 정해진 다른 파트와는 달리 현지오와 내 파트는 쉽사리 결정이 나지 않았다.
“아하하, 맞아… 그러다가 결국 닉이랑 우빈이 형이랑 민기 형이 투표해 줬었지.”
때문에 거의 아침이 밝아 올 때까지 서로 고성 수준의 논의를 이어 가다 결국 우리 둘만으로는 결정하지 못해 다른 팀원들에게 결정권을 넘길 수밖에 없었고.
“그게 데뷔조 뽑히기 바로 직전이었으니까 실은 얼마 안 된 건데, 지금 돌아보니까 되게 시간이 오래된 것 같네.”
나는 말없이 맥주를 마셨다. 현지오에게는 아직 그 일이 2년도 채 안 된 일이었겠지만.
“…오래됐지.”
그것은 이제 내게는 거의 8년이 다 되어 가는, 정말로 오래전의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안 지고 싶었어, 그때.”
“그래서 안 져 줬잖아. 애초에 너는 한 번도 나한테 뭘 양보한 적 없었어.”
“맞아, 유하 너도 그랬고. 그래서 좀 치사했어, 닉이나 리히토나 다른 애들한테는 잘 양보해 줬으면서.”
“걔네는 어리잖아. 어린애들이 받는 대우를 너도 받고 싶어? 생일도 나보다 빠른 놈이…….”
“아하하, 맞아. 내가 맨날 툴툴거리면 유하 너는 형답게 굴라고 했었잖아. 막상 우리도 어렸는데.”
“그리고 너랑 나랑은 매번 경쟁해야 했잖아.”
나는 문득 나를 바라보는 현지오에게 덧붙여 말했다.
“같은 날에 입사했는데 이미지도 비슷하고 둘 다 메인 보컬 지망이었지. 그런데 너한테 어떻게 양보를 해 줄 수가 있었겠냐. 언젠가 데뷔조가 생기면 둘 중 하나는 떨어질 거란 걸 모를 리가 없었는데.”
“…….”
“너도 그래서 나한테 안 지려고 했던 걸 테고.”
“…맞아. 그래서 너무 힘들었는데…….”
현지오는 씁쓸하게 긍정하곤 중얼거렸다.
“한편으로는 정작 네가 없었으면 1년도 못 하고 그만뒀을 것 같아.”
“…….”
“경쟁은 힘들었는데, 솔직히 재밌었어. 평가 때 널 이기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고, 그러다 지면 하루 종일 기분이 나빴어.”
알고 있었다. 그래서 평가가 가까워졌을 때의 현지오는 그 누구도 쉽사리 건들지 못했으니까. 나 또한 그런 현지오에게 지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그때마다 놈과는 말도 섞지 않고 연습에 몰두했었고.
“하지만 LON으로 발탁됐을 때는 기분이 하나도 좋지 않았어.”
“…….”
그렇기에 내가 잠자코 현지오의 말을 듣고 있을 때였다. 순간 조곤조곤 말을 잇던 현지오가 내뱉듯 꺼낸 말에, 나는 놈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정말로 내가 이긴 게 아니었다는 걸 알았거든.”
술잔을 꽉 쥔 현지오가 고개를 푹 숙인 채 말을 이었다. 어딘가 두려워하는 듯 조금은 어렵게.
“유하야, 저번에 내가 네 자리를 훔쳤을 뿐이라고 말했지. 너는 죄책감 가질 일 없다고 했었고…….”
“…그래.”
“…그런데 내가 어떻게 죄책감을 안 가질 수가 있었겠어.”
현지오는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끝내 나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은 채 지금껏 혼자 묵혀 왔었을 말을 내뱉었다.
“원래 LON 메인 보컬로 발탁된 건 너였었는데.”
“…….”
“알고 있었지? 유하, 너도.”
나는 현지오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맥주 캔을 쥐고 다시 들어 올려 한 모금을 더 마셨다.
정확하게 알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 다만, 짐작했을 뿐이었다.
-유하, 너와 오랫동안 함께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돼서 우리도 마음이 안 좋다. 준비한 게 많았는데 아쉬워.
KRM 엔터테인먼트에서 퇴출될 때, 권 실장에게 그런 말을 들었으니까.
처음에는 의례적으로 하는 말인 줄로만 알았다. 중학생 때부터 5년간 KRM에서 나를 연습시켰던 만큼, 그 시간과 들인 공을 아쉬워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다음부터 바뀐 현지오의 태도를 보며, 무엇보다도 오랫동안 권 실장의 말을 곱씹으면서 문득 생각한 것이 있었다.
“그때 마지막 평가 끝나고 얼마 안 되어서였나… 실장님 찾아갔다가 신인 개발 팀 직원분이랑 이야기하시는 걸 들었어.”
“…….”
“데뷔 멤버를 모두 확정했고 메인 보컬로는 유하, 너를 올리기로 했다고.”
어쩌면 LON의 멤버로 뽑혔던 게 나였을 수도 있겠다고.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
힘든 시기였다. 라이트닝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진, 그저 해체만을 기다리던 때.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면서도 언제 다시 할 수 있을지 모르는 컴백을 위해 연습을 지속했다. 더 이상 로빈슨이 나나 라이트닝을 지원할 생각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활로를 조금도 찾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자꾸만 과거를 곱씹는 것뿐이었다.
내가 괜히 튈 행동을 하지 않고 멤버들과 잘 섞여 들어갔으면 어땠을까.
애초에 로빈슨에 들어오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어떻게든 KRM 엔터테인먼트에 남아, 김민기의 수작질에 말려들지 않고 [디어돌> 에 출연했다면 어땠을까.
그리고.
‘…만약 내가 LON이 되었다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들을 했었지.’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괴로웠다. 좋은 마음으로 현지오의 성공을 축하해 주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서 부러 그런 생각이 들 때면 빠르게 지워 버리려 애썼다.
하지만, 그런 의심은 마음 한구석에 계속해서 찜찜하게 남았다.
“…뭐가 중요하냐, 그게.”
죽기 직전까지.
나는 잠시 내 손에 들려 있는 맥주 캔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미지근해진 맥주 캔 위로 맺힌 이슬방울이 손가락을 적시고 바닥으로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말했지, 죄책감 느끼지 말라고. 넌 잘못한 게 없다고.”
나는 어느새 울고 있는 현지오를 바라보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맥주 캔을 완전히 비우고 테이블 위에 올려 두었다.
“그때 부모님이 그렇게 되신 것도, 내가 슬럼프에 빠진 것도 어쩔 수 없었던 일이야. 거기 네가 한 건 아무것도 없어.”
어쩌면 오래전 이런 말을 들었으면 나는 지금처럼 반응할 수 없었을 수도 있다.
내가 라이트닝으로서 무너지고 있을 때였다면 오히려 절망했겠지. LON의 성공이 어느 정도였는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자책할 필요 없어. 오히려 나는… 지금 너와 내가 각각 다른 팀으로 데뷔한 걸 다행이라고 생각하니까. 내가 LON으로 잘해 나갔을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고.”
하지만, 이제는 알 수 있다. 만약 내가 LON이 되었다면 회귀 전, LON은 내가 알고 있는 그 팀과는 다른 팀이 되었을 거라는 걸.
‘데뷔가 다가 아니니까.’
정말 중요한 건 데뷔까지의 과정이 아니다. 데뷔 후다.
멤버들과 어떤 관계도를 쌓는지, 어떤 식으로 노래하고 춤을 추고 합을 맞추는지 등, 현지오는 성실하게 노력하며 데뷔 후 LON 멤버들과 함께 다양한 모습을 선보이고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 사랑을 내가 동일하게 받았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난 지금 팀에 만족해, 원디어로 데뷔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무엇보다도 지금, 원디어 원유하로서 살아가는 삶이 생각보다 괜찮기 때문에 더 그랬고.
“현지오, 너도 나도 이제 정말로 예전과는 달라.”
“…….”
“그러니까 정말 괜찮아, 이제는.”
나는 지난번 현지오에게 했던 말을 다시 한번 말해 주었다. 그럼에도 현지오가 머뭇거리는 듯해, 나는 문득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뭐가 됐든 정말로 LON으로 데뷔하는 건 좀 힘들었을 것 같다. 나는 닉 급발진 못 막아.”
내 말에 현지오는 잠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는 내가 반쯤 장난식으로 닉을 입에 올렸다는 걸 깨달은 듯, 저도 모르게 픽 웃고는 덩달아 툴툴거렸다.
“나도 닉은 어려워……. 차분한데 가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종잡을 수가 없어서. 어디까지 잡아 줘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지난번에도 찬희 씨한테 그런 말을 해서…….”
“아, 그때… 우리 팀 급발진즈 중 하나가 유찬희라서 잠깐 아찔했지. 닉이랑 유찬희는 최대한 붙여 놓으면 안 될 것 같은데.”
“개인 톡 하던데.”
“…싸웠잖아?”
“얘기해 보니까 재밌다고 마음에 든대. 동갑이잖아. 리히토랑도 같이 이야기하는 것 같던데. 단우 씨도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고…….”
“단우 형만 등 터지겠군…….”
나는 막내 라인의 급발진에 등이 터지는 주단우를 상상해 내곤 웃었다. 현지오는 내가 내려놓은 맥주 캔이 빈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미니 바에서 캔을 하나 더 가져다주었다.
‘…더 마시면 안 될 것 같은데.’
문득 그렇게 생각했지만, 운 탓에 붉은 기가 남아 있을 뿐 여전히 말간 현지오의 얼굴을 보고는 나도 모르게 캔을 받아 들 수밖에 없었다.
“근데 나도 원디어분들은 좀 어려워… 이든 씨도 좀, 만만치 않은 분인 것 같더라.”
“아, 그 자식… 진짜 만만치 않지……. 그러고 보니 오늘 에이든이 너 재밌다던데 웬만해서는 그놈한테 전화번호랑 숙소 주소 가르쳐 주지 마라.”
“왜?”
“언제 뜬금없이 장어 젤리 보낼걸.”
“……?”
그리고, 나는 어쩌다 보니 그날 거의 아침이 밝아 올 때까지 현지오의 방에 머무르다 어느 순간 정신을 잃고 말았다.
“하, 나는 몰랐잖아요. 형이 이렇게나 사랑이 가득한 사람인지.”
“…치워라.”
그게 또 하나의 흑역사를 창출해 낼 줄 모르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