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Plan for the Second Life Idol RAW novel - Chapter (193)
193화
“드디어 이날이 왔어요.”
“……?”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가는 새벽. 마지막 3대 가요제 스케줄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내내 이어진 연말 스케줄에 지친 멤버들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새해 분위기에도 축 늘어져 있을 때였다. 비장한 얼굴로 입을 연 천세림이 문득 자신의 가방을 뒤져 지갑을 꺼내는 것에 멤버들의 시선이 주목되었다.
천세림은 그 시선들 사이에서 조용히 괴상한 행동을 했다.
착.
“…뭐 하냐?”
“이제 진짜 성인이잖아요. 세리머니 같은 거죠.”
“아하하!”
지갑에서 주민등록증을 꺼낸 천세림이 제 이마에 그것을 붙인 것이다.
그 모습에 차에 탄 멤버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 또한 어이가 없어 픽 웃고 있자니, 옆에 붙어 앉아 있던 유찬희가 쪽팔린다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절대 밖에 그러고 나가진 마. 이미지 망친다…….”
“하, 아쉬워. 원래 스무 살은 이마에 주민등록증 붙이고 편의점으로 앞구르기 하면서 들어가서 소주 사는 게 국룰이라고 알고 있는데.”
“언제 적 국룰이야, 그거?”
“우리 아기 찬희는 모르겠지, 1년간 주민등록증을 묵혀만 왔던 내 마음을…….”
또래 친구들은 대부분 나나 에이든 리와 동갑이지만, 실제 나이는 우리보다 한 살 어린 탓에 발급받은 주민등록증을 1년간 쓸 일이 없던 천세림이었다. 그게 무척 한이 되기라도 했다는 듯한 천세림의 모습에 나는 어이가 없어 물었다.
“민증 쓸 일이 뭐 얼마나 있다고. 너 사고 칠 생각이냐?”
“형은 무슨 그런 말을? 저 아이돌 활동에 진심인데요. 아이돌이 멀리해야 할 요소들은 충실하게 멀리할 생각이라고요.”
그에 반갑다는 듯한 얼굴로 도지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바른 생각이다, 세림아. 그치, 웬만해서는 꼬투리 잡힐 일은 안 하는 게 나아.”
“근데요.”
천세림은 그러다 씩 웃으며 말했다.
“일단 어떤 건지는 알고 피해야 하지 않겠어요?”
* * *
“…그게 술이야?”
“네!”
천세림은 당당하게 말하며 자신이 막 편의점에서 사 왔다는 술병들을 테이블 위에 늘어놓았다. 천세림과 유찬희, 보호자 자격의 (동시에 혹시 놈들이 괴상한 걸 사 오진 않을까 두려웠던) 강현진이 편의점에 간 동안 우리는 대충 배달 음식을 주문하고 새해를 맞아 집을 조금 청소했다.
이후 천세림이 술병들을 늘어놓는 동안, 유찬희는 어딘지 초조한 기색이 가득했다.
“근데 이거 먹어도 되나. 이제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고는 하는데, 아무래도 갓 스물 된 아이돌이 술을 마신다는 게 좀…….”
“그래서 형들한테 좀 배워 보는 거지. 어디 가서 실수하면 안 되잖아. 원래 이런 건 부모님한테 배우는 거라지만… 우리 부모님은 연세가 좀 많으셔서.”
천세림은 1남 1녀 집안의 막내로 누나와는 스무 살 차이가 난다고 했다. 게다가 집안사람들이 각자 퍼스널 스페이스를 지킨다며, 그렇게까지 친밀하게 지내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상관없지만… 그럼 주의점을 하나 알려 줄게. 시야가 손바닥만큼 좁아지면 더 이상 마시지 마.”
“…시야가 왜 좁아져요?”
유찬희가 고개를 기울이며 물은 말에 도지혁은 씩 웃고는 잔을 돌렸다.
“그건 마셔 보면 알아. 자, 얘들아. 우선 휴대폰 다 끄고.”
“술 안 마시는 사람 누구야?”
“저요.”
“아, 저도…….”
손을 든 것은 나와 주단우였다. 그러자 도지혁이 장난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유하, 우리랑 같이 있을 땐 마셔도 되는데. 딴 데에서는… 음. 자제하는 게 좋겠지만…….”
“…됐습니다.”
또 술을 마셨다가 어떤 놀림을 받으려고.
그런 내 대꾸에 천세림은 아쉽다는 듯 툴툴거렸다.
“아, 형의 취중 사랑 고백 오늘도 들어 보려고 했는데 아쉽다.”
“다신 그렇게 마실 일 없을 테니까 기대도 하지 마.”
“쳇.”
술이 약한 탓도 있지만, 애초에 나는 술을 좋아하지도 않는 편이었다. 마셔서 딱히 좋을 게 없기도 한 데다 이제는 습관이 되어 버린 버릇 때문이었다.
-아… 진짜 귀찮게. 내가 알아서 한다고요…….
-…됐으니까 일어나라. 그만 마시고. 너 여기서 더 마시면 큰일 나.
-하, 진짜… 존나 재미없어. 무슨 지만 바른생활 인간이지.
라이트닝 당시 하도 술을 좋아하는 놈들이 많았다 보니, 꼭 한 명쯤은 상황을 정리할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한 번 마시면 한계를 모르고 마시던 놈들이 결국 어떤 사고를 쳤는지 너무 잘 알고 있는 만큼 더욱 술을 경계할 수밖에 없었고.
“그럼 유하랑 단우가 애들 휴대폰 좀 잘 지켜봐 주고. 까딱 잘못하다가 이상한 데 연락하거나 U라이브 틀면 큰일 나는 거 알지.”
“네.”
때문에 나는 술을 마시는 멤버들의 휴대폰을 받아 들고 대충 방에 가 숨겼다. 그 직후에야 도지혁은 술병을 까며 말했다.
“그럼 천천히 마셔 보자. 일단 딱 한 병만. 페이스 조절해 가면서.”
“네~!”
그리고, 대부분 단체로 모인 술자리가 그렇듯 그 계획은 말처럼 되지 않았다.
“…….”
“…….”
나는 주단우와 함께 조금은 황망하게 눈앞의 광경을 바라보았다.
“후…….”
강현진은 같이 마시던 것을 그만두고 어느새 자신만의 병을 따 연거푸 자작을 하고 있었다. 얼굴은 완전히 새빨갛게 달아오른 주제에 너무 조용하게 마시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욱 이상했고.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아요~! 응? 뭐 하냐고? 아~! 술 마셔요!”
에이든 리는 평소에도 높은 텐션이 이제는 거의 하늘까지 치솟은 채 한 명 한 명 영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전화를 돌리고 있는 중이었다.
“찬희야, 너 취한 거 아니야?”
“네? 안 취했는데요?”
유찬희는 거의 잠에 빠져들기라도 한 것처럼 고개를 상하좌우로 빙빙 돌리다가도 제 이름만 불리면 퍼뜩 일어나 절대 자신은 취하지 않았음을 주장했다.
“흠, 그래? 그럼 다행이고.”
도지혁 또한 조금은 들뜬 얼굴로 그렇게 말하며 비어 있는 잔에 끝없이 술을 따르고 있었다. 딱 그만큼 계속 마시는 중이었고.
마지막으로 이 모든 상황을 주도한 천세림은…….
“아, 술 다 떨어졌다. 더 사 올게요~!”
“같이 갈까?”
“괜찮아요! 형은 찬희랑 현진이 형 상대 좀 해 주세요. 이든이 형은… 음. 지금은 영어 패치 버전인 것 같고.”
너무나도 멀쩡하게 잔 속의 술만 비우고 있는 중이었다.
‘…저번에 집안이 대대로 주당이랬나.’
부모님도 그렇고 누나도 그렇고 취한 모습을 본 적이 없다더니, 아무래도 천세림 또한 그 유전의 영향을 받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천세림의 술주정을 알아내긴 그른 듯해 나는 작게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랑 같이 가.”
“오, 형이 같이 가 줄 거예요?”
“혹시 모르니까.”
나와 천세림은 커다란 패딩을 챙겨 와 대충 껴 입고 밖으로 나섰다. 술 냄새가 가득한 숙소를 벗어나는 순간 차가운 공기에 속이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오, 눈 온다.”
어느새 새벽 4시가 거의 가까워져 가는 새벽. 가로등 불빛 아래로 눈이 떨어지고 있었고, 천세림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모자를 제 머리에 눌러썼다.
그러면서도 약간 취한 건 맞는 듯, 걸어가다가 목에 대충 둘렀던 목도리를 떨어뜨려 나는 그것을 주워 놈의 목에 둘둘 감아 주었다. 그리고.
“그래서 실은 뭣 때문에 이 자리 마련한 거야?”
“오.”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천세림이 답지 않게 술자리를 주도할 때부터 묻고 싶었던 것을.
천세림은 내 질문에 의외라는 것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잠깐 침묵했다. 그러고는 이내 씩 웃으며 말했다.
“단합?”
“거짓말하지 말고.”
단합을 위한 거였으면 지난번 내 생일 파티로도 충분했을 터였다. 이제 와 또 한 번 술자리로 단합을 하려 들 이유는 없었겠지.
‘애초에 술에 관심이 있기도 했겠지만, 굳이 천세림이 우리에게 술을 알려 달라고 한 것도 이상하고.’
천세림이라면 오히려 우리에게 술을 배우기보다는 어디 가서 혼자 배워 오는 쪽을 택했을 텐데, 굳이 오늘 분위기를 풀려 애쓰며 자리를 주도했다는 게 수상할 수밖에 없었다.
“지혁이 형 때문이냐?”
“…….”
무엇보다도 천세림이 뭣 때문에 자리를 주도하려 했는지는 대충 알 것 같기도 했고.
내 말에 천세림은 잠깐 당황한 것처럼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는, 아주 잠깐 눈을 굴리고는 답지 않게 순순히 속내를 털어놓았다.
“형도 봤어요? 이동현 별스타그램.”
블랙오션의 이동현은 음주 운전으로 인해 벌금형과 함께 면허 취소를 받은 후 여자 연예인들과의 양다리 사실이 밝혀지며 활동을 중단했었다. 그러다 군대로 도피했었고.
그렇게 활동을 중단한 게 벌써 3년째. 이런저런 추문을 속죄하겠답시고 활동을 중단했으면서 이제 와 별스타그램을 개설하고 사진을 올린 건 한 가지 이유 때문일 터였다.
“봤어. 내년 상반기에 유닛으로 데뷔하겠지.”
지난번 백이현이 말한 ‘비베스트 엔터의 남자 아이돌 유닛’의 멤버가 되어 복귀하기 전, 그 신호탄을 쏘아올린 것이다.
“저희 앨범도 봤고요?”
“어.”
못 봤을 리가 없었다. 애초에 보라고 올린 것일 테니까.
누가 봐도 설정인 것처럼 올려진 사진 끝에는 하나의 문구가 기재되어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동생과의 즐거운 한때니 같이 힘내자 같은, 동행한 사람이 연예인임을 은연중 암시하는 듯한 문구.
거기에 테이블 위에 원디어의 앨범을 올려놨다는 건 동행한 사람이 도지혁이라는 암시나 다름없지 않나.
“지혁이 형, 블랙오션 멤버들이랑은 연 다 끊었다고 했죠?”
“…실제로 그렇게 입에 담은 건 아니었지.”
그렇게 ‘추측만’ 할 뿐. 도지혁은 누구와도 교류를 이어 가지 않고 있다는 듯한 모습을 보여 주며 그런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대중들에게 각인시켰으니까.
천세림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 빡센데…….”
머리가 지끈거린다는 듯한 얼굴로 천세림은 말을 이었다.
“이제 와서 그쪽 멤버랑 교류하는 거 알려지면 이미지에 타격 엄청 입을 것 같은데요. 이동현이라는 사람이 그냥 활동 중단한 것도 아니고 사고 쳐서 거의 강제 중단된 거잖아요. 게다가 해체된 그룹 멤버랑 계속 연 이어 가는 건…….”
“…지혁이 형한테도 그렇고, 원디어한테도 안 좋지.”
가뜩이나 현재 원디어는 ‘서바이벌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위하는, 가족 같은 분위기’라는 이미지가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와중에 도지혁이 불미스러운 일들이 연이어 터진 탓에 결국 해체된 블랙오션 측 멤버들과 다시 교류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퍼지면 현재 만들어지고 있는 원디어 멤버들과의 관계성에도 타격이 갈 수밖에 없게 될 터였다.
“그쪽 추문이랑 연루되는 게 제일 최악일 테고.”
뭣보다 ‘끼리끼리’라는 말에 엮여 도지혁의 이미지까지 타격을 입게 되면 정말 돌이킬 수 없게 된다.
도지혁은 블랙오션 멤버들과의 연을 전부 끊고 [디자인 유어 아이돌>에 나와 ‘탈주자’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었다.
하지만, 도지혁은 그 탈주자라는 별명을 겸허히 받아들였다. 문제 많은 멤버들과 연을 이어 간다는 찝찝한 이미지보다는 그런 문제와 자신은 조금도 연루되지 않았음을 대중에게 알리는 게 자신에게 더 좋다고 판단했을 테니까.
하지만 이제 와 그것이 전부 거짓이었다는 식의 이야기가 대중들 사이에 돌게 되면.
“이번엔 거짓말쟁이니 사기꾼이니 하는 이미지까지 붙겠지.”
“네.”
도지혁이 [디어돌>에서 살아남기 위해 연을 끊은 척 연기를 하고 몸을 사렸다는 평을 받게 될 테고.
그렇기에 천세림은 답지 않게 자신과 유찬희가 성인이 된 날이라는 점을 빌어 술자리를 마련해 보게 된 듯했다.
“어떻게든 듣긴 해야 할 것 같아서요. 대책이라도 세우려면.”
언제나 웃음을 머금고는 있지만 결국 현재까지 누구에게도 틈을 내어 주지 않은 도지혁을 떠보기 위해.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