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Plan for the Second Life Idol RAW novel - Chapter (2)
인생이 어그러지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태어나자마자 버림받았을 때? 가기로 한 입양을 가지 못하고 보육원에 남겨졌을 때? 어떻게 입양은 됐는데 집안이 풍비박산 났을 때?
객관적으로 봤을 때 ‘아, 불행 서사네.’ 싶은 수준의 이야기들뿐이어서 딱히 하나를 고르기는 어렵지만, 그중 굳이 하나를 꼽아 보면.
-엄마, 아빠! 아아악……!
결국 양부모님까지 돌아가셨을 때일 것이다.
양부모님들은 좋은 분들이었다. 열두 살 정도면 이미 머리가 다 컸다고 입양 순위에서도 밀리는데, 그런 나를 입양하신 후 잘 키워 주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셨다.
풍족했던 양아버지의 사업이 망하고 나서는, 솔직히 친아들도 아니니 나를 애물단지 취급했을 수도 있는데.
-우리 유하만큼은 끝까지 책임져야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만은 변하지 않아서.
그래서 더 아팠다, 그분들의 죽음이.
사인은 교통사고였다. 열아홉의 여름, 두 분은 연습을 마친 나를 데리러 오다가 덤프트럭에 치여 생을 달리하셨다.
홀로 남은 나는 한동안 방황해야만 했다. 당시의 나는 4년 차 연습생으로, 한창 데뷔를 위해 고등학교까지 자퇴한 후 연습에 매진하고 있었다.
하지만 부모님의 죽음 이후 정신을 차리는 것이 쉽지 않았다. 잠을 잘 수가 없었고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우울증이 시작되었고 당연히 컨디션 난조가 따랐다.
데뷔조에서 미끄러지고 점차 망가져 가던 나에게 소속사가 마지막 기회를 준 건 바로 그때였다.
-유하야, 여기 한번 나가 보자.
[디자인 유어 아이돌>. 국내에서 제일 잘나간다는 음악 방송사에서 소속사 연습생들만을 대상으로 만든 서바이벌 프로그램이었다.지금이야 그런 기획을 가진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많아졌지만, 당시에는 기획사가 모두 다른 연습생들이 정해진 기간 동안 계약을 맺고 한 그룹으로 묶여 활동을 한다는 게 꽤 신선한 플롯처럼 여겨졌다.
그 때문에 리스키한 도전이라 여겨 발을 빼는 소속사도 많았지만, 인지도와 영향력을 필요로 하는 중형과 소형 엔터테인먼트는 적극적으로 참여 의사를 밝혔다.
그중 내가 소속된 KRM은 참가 의사를 표명한 엔터들 중 유일한 대형으로, 기획 단계부터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굳이 방송 노출을 통한 이득을 꾀하지 않아도 되었던 KRM이 자사의 연습생을 내보내기로 한 건, 당시 회사와 [디자인 유어 아이돌>의 제작사인 에이넷이 오랜 시간 이어져 오던 신경전을 끊고 관계를 돈독히 하려 했기 때문이었다.
대표는 에이넷에 선심을 쓸 필요가 있었고, 덕분에 내게 [디자인 유어 아이돌>의 출연권이 주어진 것이다.
당시 데뷔조로 결정되지 못한 연습생들 중에서는 바짓가랑이라도 붙드는 심정으로 그 프로그램에 나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 번 데뷔조가 나오면 몇 년 동안은 기약이 없었으니까.
제안을 받았을 때 내가 어떤 마음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좋은 기회인지, 리스크를 뒤집어써야 하는 나쁜 기회인지를 판단할 정신이 아니었으니까.
다만 데뷔조에서 떨어진 이상 남은 길은 이것뿐이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그러니 받아들이는 것 말고는 선택지가 없었다.
그런데.
-유하야, 나한테 양보해 줘라.
당시 같이 데뷔조에서 떨어진 김민기가 사정해 온 것은 그때였다.
-너도 알잖아. 나 진짜 이번에 데뷔 못 하면 끝이야. 물론 여기 나가서 데뷔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지. 근데 기회라도 잡고 싶어. 나 진짜 급한 거 너도 알잖아.
나는 갓 스물을, 김민기는 벌써 스물네 살을 앞두고 있었다. 연습생으로서는 거의 끝자락에 다다른 나이라고 할 수 있었다.
-미안해요, 형. 양보 못 해요.
하지만 급한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데뷔를 못 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제 내게는 돌아갈 가족도 아이돌이 아니면 될 꿈도 없었다. 나도 정말 이것뿐이었다.
-이기적인 새끼.
나는 김민기의 목소리를 들으며 뒤를 돌았다. 같은 처지이기에, 그 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에 마음속으로 미약한 죄책감이 들었다. 하지만 이 기회를 놓칠 순 없었다.
그런데.
-으아악!
그 새끼는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 계단에서 내 등을 쳐 나를 떠밀어 버린 것이다.
계단을 한 바퀴 굴러서 땅으로 떨어진 후에는 정신을 잃었다. 눈을 떴을 때는 다리가 부러진 후였다.
두 달은 깁스를 하고 있어야 했으므로 당연히 바로 앞으로 예정된 서바이벌 프로그램에는 참가할 수 없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왜 계단을 굴러?
-…….
당시 연습생들을 관리하던 권 실장님이 물었지만 답할 수 없었다. 김민기와 내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곳은 연습생들이 음식을 몰래 먹을 때 이용하는 CCTV가 없는 계단참이었다. 당연히 증거 같은 건 없었다.
김민기는 나를 위로해 주고 있던 도중에 내가 발을 잘못 헛디뎌 땅으로 굴렀다고 말했다. 그걸 잡아 주지 못해서 죄책감이 든다고 눈물을 짜 내면서.
회사에 김민기가 그랬다, 라고 말이라도 했으면 뭔가 달라졌을까?
이미 회사 윗선과 연습생들 간의 분위기는 김민기가 휘어잡아 놓은 상태. 증거 없는 고발은 소용이 없을 터였다.
무엇보다도 내게는 이제 체력이 없었다. 이미 서바이벌 출연이 물 건너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나는 그냥 모든 것을 포기하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사건의 전말을 말하지 못했고 놈은 어떤 제지도 없이 나를 대신하여 [디자인 유어 아이돌>에 나가게 됐다.
그리고 한마디로, 대박을 터뜨렸다.
[디자인 유어 아이돌>은 대박이 났다. 유명 모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사X의 구슬 조각처럼 뿔뿔이 흩어져 있던 아이돌 팬들이 본진을 두고 [디어돌>에 빠져들었다. 한 화, 한 화가 방송될수록 팬덤은 커져만 갔다.그리고 결국, [디어돌>은 공전의 히트를 거두고 데뷔부터 기록을 세우는 아이돌 그룹을 탄생시켰다.
김민기는 그중 한 명이었고.
그 즈음 나는… 라이트닝으로 데뷔했다.
똑같은 해에 데뷔했지만 [디어돌> 출신과 타 신인 그룹들은 하늘과 땅보다도 더 큰 차이가 났다. 그들을 상대할 수 있는 그룹은 없었고, 라이트닝은 애초에 비교할 급도 되지 않았다.
내가 점차 밑으로, 밑으로 추락하는 동안 김민기는 위로, 위로 올라갔다.
시간이 지나니 이제 김민기에 대한 증오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허탈함, 자괴감, 약간의 자기혐오가 그 자릴 대신 채웠다.
그리고 마음속에 차오르는 건 단 하나의 공상이었다.
‘내가 저곳에 있었다면.’
내가 그 기회를 잡았더라면. 그때 정신을 놓지 않고 김민기의 손을 피했더라면. 굴러떨어지지 않아서, 결국 내가 [디자인 유어 아이돌>에 출연했다면…….
나는 과연 어떻게 됐을까?
* * *
“…야.”
“…….”
“…하야!”
“…어?”
띵, 하고 뭔가가 들어맞은 것처럼 갑자기 정신이 확 들었다.
나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코끝으로 퀘퀘한 먼지 냄새가 와 닿았다.
“듣고 있는 거야?”
꾸민 듯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누군가가 내게 말을 걸었다. 나는 그에게 초점을 맞추었다. 그리고 얼떨떨하게 상대방의 이름을 내뱉었다.
“…김민기?”
“뭐?”
김민기가 눈앞에서 인상을 찌푸렸다. 그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김민기? 말이 짧다?”
“네가 어떻게 여기…….”
“말 돌리지 말고, 똑바로 말해.”
김민기가 다시 얼굴 표정을 바꾸며, 살짝 비굴하기까지 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디자인 유어 아이돌> 출연, 나한테 양보해 줄 거지?”
“……!”
“너는 아직 기회가 있잖아, 어? 아직 어리니까 뭐든 할 수 있잖아. 너도 알다시피 난 이번 아니면 기회가 없어. 이제 조금 있으면 소속사에서 나보고 나가라고 할 거라고.”
“…….”
이게 대체 무슨 일일까.
나는 눈가를 좁히고 눈앞의 김민기를 바라보았다.
최근에는 전광판이니 광고니 하는 것으로만 봐 왔던 김민기의 얼굴은 회춘이라도 한 것처럼 젊어져 있었다.
‘이건 꼭… 연습생 시절 김민기 같은데.’
데뷔 후 김민기는 카메라 마사지를 비롯해 소속사의 전폭적인 푸시 덕에 시술을 받고 리즈 시절을 누렸지만, 어쨌든 거기에는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얼굴에서 느껴지는 풋풋함은 존재하지 않았었다.
상황을 파악하기가 어려워 나는 잠깐 고개를 저었다. 분명 강물에 빠졌었는데, 대체 왜 내가 이런 곳에 김민기와 함께 있는 걸까.
“싫다는 거야?”
그런데 이놈은 또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건가. [디어돌>이 끝난 지가 언젠데.
나는 인상을 찌푸리고 놈을 바라보았다. 김민기는 서늘하게 가라앉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고개를 저은 게 제 부탁을 거절하기 위한 제스처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나야 머리도 아프고 상황이 이해가 안 돼서 고개를 저은 거긴 하지만.
“어, 싫은데.”
“뭐?”
“싫다고.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근데 굳이 그걸 해명할 필요가 있나.
대체 무슨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김민기의 애원을 받아 줄 이유는 없었다.
미쳤냐, 6년 전에 한 번 당한 것으로 충분한데.
“이기적인 새끼.”
6년 전의 그날처럼 김민기는 씨근덕거리며 욕설을 내뱉었다. 더 이상 놈의 말을 들어 줄 이유를 못 느끼겠어서 발걸음을 옮겨 자리를 뜨려고 했을 때였다.
“……!”
순간 누군가의 팔이 억세게 내 어깨를 치는 느낌이 났고, 내 몸은 이전과 동일하게 앞으로 훅 쏠렸다.
눈앞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계단이 보였다. 6년 전, 내가 [디어돌> 출연 기회를 빼앗겼던 그날처럼.
‘…구른다!’
곧 다가올 고통에 내가 눈을 질끈 감은 그때였다.
띠링!
경쾌한 소리와 함께 어떤 게임 시스템 같은 것이 눈앞에 뜬 것은.
『튜토리얼 : 인생의 분기점!』
룰렛을 돌려 당신의 운명을 결정하세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