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Plan for the Second Life Idol RAW novel - Chapter (208)
208화
“하…….”
“……?”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까치집이 된 상태로 부엌에 들어선 천세림은 털썩 의자에 주저앉더니 냅다 한숨부터 쉬었다. 그에 그릇에 밥을 담던 주단우가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안 좋은 꿈 꿨어, 세림아?”
“아아뇨… 오히려 꿈은 너무 잘 꿨죠.”
“그럼 아침 댓바람부터 왜 그러는데?”
“오늘이잖아요.”
주어도 없이 대뜸 그렇게 말한 천세림의 말을 주단우는 당연히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다만 천세림은 그렇게 대꾸하고는 다른 생각에 빠진 듯 우울한 얼굴이 되었기 때문에, 나는 주단우에게 그릇을 받아 식탁에 내려놓고는 대신해 설명해 줄 수밖에 없었다.
“오늘 콘텐츠 팀이랑 회의 날이에요.”
“아, 혹시 그… 우리 자체 콘텐츠?”
“네.”
곧 주단우가 납득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천세림의 저조한 기분이 이해가 간 듯했다.
최근 데뷔하는 아이돌들에게 정기적인 자체 콘텐츠란 빼놓을 수 없는 요소 중 하나였다. TV보다도 오히려 미튜브에 대한 접근성이 더 높아진 지금, 팬분들을 위한 떡밥이자 새로운 유입을 불러올 수 있는 중요한 콘텐츠가 되어 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원디어 또한 당연히 그에 맞추어 자체 콘텐츠를 낼 준비를 해 오고 있었다. 회의 또한 지난해부터 계속해서 이어져 오고 있었고.
‘생각보다 늦어진 감이 있기는 하지만.’
원래대로라면 데뷔와 함께 빠르게 준비해 나왔어야 할 자체 콘텐츠가 늦어진 이유는 단 하나뿐이었다.
“근데 솔직히 기대가 너무 안 돼요. 안 팀장님 진짜 감이 없으신 분이라.”
속된 말로 콘텐츠 팀의 팀장이 꼰대기 때문이었다.
-아, 반가워요. 나는 뉴미디어 콘텐츠 팀 안 팀장. 그냥 안 팀장이라고 불러요.
멤버들과의 첫 대면에 무려 20분을 지각한 안 팀장은 40대 초중반의 중년 남성으로, 내내 어딘가 불편하고 못마땅한 기색을 숨기려 하지 않았었다.
그럼에도 사회생활이다. 어찌 됐든 함께 해야 할 일이 무궁무진한 만큼 멤버들, 그중에서도 콘텐츠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던 천세림의 주도하에 몇 가지 아이디어가 제시되며 회의는 어떻게든 흘러갔다.
하지만 안 팀장은 전혀 집중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바쁘기라도 한 것처럼 손목시계를 계속해서 들여다보며 부러 얼른 회의를 끝내고 싶다는 티를 내더니, 마침내 한 말은.
-근데 솔직히 말해서 이 회의가 필요할까요? 콘텐츠야 우리 같은 사람들이 다 만들어 주면 되는 거고, 여러분은 짜인 기획에 출연이나 하면 되는 거고. 솔직히 전문가보다 더 나은 기획을 여러분이 낼 리가 없잖아. 아, 무시하는 건 아닌 거 알죠? 그냥 서로 영역을 존중하잔 거지.
명백하게 원디어를 배척하는 말이었다.
-말이 영역 존중이지 그냥 자기들 하는 거에 군말 없이 따르란 거잖아요.
그 말을 들은 천세림이 회의가 끝난 후 날선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린 것도 당연했다.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자, 말이야 좋았다. 솔직히 대부분의 팀 또한 콘텐츠 기획에까지 손을 뻗고 있지 않기도 하고. 만들어진 기획에 원디어가 참여만 하는 쪽도 정말 좋았단 말이다.
-기획?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까지도 없어, 팬들 원하는 게 다 똑같은데. 그냥 적당히 우리가 이렇게 예쁜 팀이다, 이게 중요하잖아요. 팬들 그렇게 큰 거 안 바라.
콘텐츠 팀이 ‘정말로’ 일만 했다면 말이다.
본인이 정말로 뚝심이 있고 제대로 된 기획이 있어 원디어를 배척하는 것이라면 오히려 천세림도 납득했을 터였다.
하지만, 천세림이 뿔이 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콘텐츠 팀이 어떤 대책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 안이한 태도로 응수하려 들었기 때문이었다.
“난 진짜 영상 팀이 우리 바비큐 갔을 때 영상 편집한 거 생각하면 미치겠다니까요…….”
거기에 더해 콘텐츠 팀 산하의 영상 팀이 선보인 극악의 편집 실력은 천세림을 미치게 만들었고.
“으음, 그건 좀 심각하긴 했지.”
“난 그 감성을 아직도 모르겠어.”
하나둘 방에서 빠져나와 아침밥을 먹던 멤버들이 천세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전시회 준비도 있기는 했지만, 실은 바비큐 영상이 늦게 나온 데에도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거기 감성이랄 게 있긴 했나.’
당시 콘텐츠 팀에서 보내 준 첫 바비큐 영상 편집본을 본 멤버들은 할 말을 잃었다. 재미있는 장면은 놓치고 불필요한 장면을 굳이 부각시킨, 어떻게든 ‘다듬으려고’ 노력한 티가 나는 영상이 기가 막히게 재미가 없었던 것이다.
애초에 원디어의 바비큐 영상은 팬분들에게 재미있는 썰로 알려져 있지 않나. 멤버들의 티키타카며 소재 자체가 재미있는 쪽이라면 그걸 부각시켜 편집하는 게 더 팬분들의 니즈에 맞는 쪽이었을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팀장이 의도적으로 재미를 모두 날려 버리고 느린 호흡과 작위성을 추가해 영상의 분위기를 아예 바꿔 버렸을 때, 천세림은 참지 않았다.
“그것도 솔직히 성에 안 차요. 여섯 번 정도 갈아엎으니까 그쪽도 슬슬 제가 원하는 쪽에 맞춰 주는 시늉이라도 해 줘서 저도 타협한 거지.”
“그것도 갈 길이 멀긴 했지만… 난 아직도 그때 생각만 하면 아찔하다.”
“그때 찬희랑 세림이가 많이 고생하긴 했었지.”
천세림은 어릴 적 영상 편집을 해 본 데다 평소 미튜브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유찬희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같은 소스로 다르게 만든 편집본까지 콘텐츠 팀에 제출했다.
-…직종을 아주 잘못 선택하셨네. 이쪽 길이 더 맞았던 거 아니에요?
‘제 영역’을 침범당했다 느낀 안 팀장이 불쾌해했던 것도 당연하고.
칭찬하는 듯 빈정거리는 투로 그렇게 말한 안 팀장과 천세림의 대치는 그 이후로도 몇 번을 더 지속되었다.
“솔직히 정말 능력이 없어서 그런 거면 이해라도 하겠어요. ……아니, 실은 이해 못 하긴 해요. 근데 더 빡치는 건 매니지먼트 팀 갈려 나가고 나서 갑자기 잘하는 거였잖아요. 할 수 있는데 안 한 거잖아, 그거.”
매니지먼트 팀이 대거 교체되기 전까지.
콘텐츠 팀이 갑자기 각성한 건 수정 편집본과 피드백 사항이 몇 번이나 오가던 중, 전 매니저 형의 사건을 계기로 매니지먼트 팀이 갈려 나가고 났을 때였다.
콘텐츠 팀이 갑자기 각성이라도 한 것처럼 천세림의 모든 요구를 담아 새 편집본을 만들어 주었을 때, 뭣보다 그 결과물이 꽤나 안정적이란 걸 확인한 후에야 천세림은 지금까지 안 팀장이 의도적으로 천세림의 모든 요구 사항을 무시해 왔단 사실을 깨달았다.
‘매니지먼트 팀과 비슷하게 그쪽도 하승혁 라인은 아니라는 거겠지.’
그래서 매니지먼트 팀이 그랬듯 초반에는 뻗대다가 동료가 갈려 나가고 난 후에야 눈치를 보게 된 거겠고.
그때까지는 갓 데뷔한 신인이, 게다가 형제의 눈치를 보고 있다 여겼을 하승혁이 자신들을 몰아낼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대중의 요구와 명분만큼 엔터 사업에서 중요한 건 없다. 대중을 상대로 하는 장사이니만큼 명분만 생긴다면 얼마든지 하승혁이 칼을 휘두를 수 있다는 사실을 안 팀장은 그제야 일을 하는 시늉이라도 하게 된 것이다.
“밀려 있던 활동 비하인드도 그제야 풀어 주기 시작하고 편집도 제대로 해 주는 걸 보고 내가 얼마나 기가 막혔는데요. 전시회도 그제야 A&R 팀이랑 제대로 이야기 나눠서 준비해 줬고.”
어찌 됐든 그 덕분에 이후 활동에서는 나름대로 콘텐츠 팀과 대치하지 않을 수 있었다. 콘텐츠 팀이 책잡히지 않기 위해 이후로는 천세림과 다른 멤버들의 피드백대로 영상을 잘 수정해 주곤 했으니까.
“자체 콘텐츠 외주 맡길 회사도 세림이, 네가 찾아다 준 거 아냐?”
“네.”
“날로 먹네?”
“네…….”
다만 콘텐츠 팀은 애초부터 잘하려 들지는 않았다. 요구에 맞춰 주긴 하겠지만 열심히 할 생각도 없단 듯 굴었던 것이다.
게다가 자체 콘텐츠 제작에도 천세림과 콘텐츠 팀은 의견이 갈렸다.
콘텐츠 팀은 회사 내부 영상 팀으로도 대강 어느 정도의 자체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고, 콘텐츠 팀에 대한 신뢰도가 0에 수렴하는 천세림은 다수의 엔터사가 그렇듯 자체 콘텐츠는 전문적인 회사에 외주를 맡기자고 요청했다.
오히려 말이 안 통하는 내부 팀보다 외부 팀을 더 신뢰할 수 있다 여긴 것이다.
“세림이 PPT 잘 만들더라.”
“하, 가끔 난 내 재능이 무서워요. 안 팀장님 말처럼 그쪽으로 가도 잘했을 거 같아.”
때문에 천세림은 결국 또 한 번 시간을 빼 다수의 외주 회사들을 찾아 그에 대한 PPT를 만들었고.
아티스트가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대신해 준 만큼 그때는 안 팀장도 더는 뻗대지 못했다. 결국 외주를 맡기기로 결정이 나며, 그에 대한 최종 결정 회의가 바로 오늘 있었던 것이다.
“근데 세림이가 찾아다 준 회사들이니까 뭐가 됐든 괜찮지 않을까. 일단 외주 회사에 맡기고 나면 결과물도 지금보다야 잘 나올 거고, 피드백도 중간 다리 없이 바로 할 수 있게 되면 지금보다야 상황은 나아질 것 같은데.”
“그렇겠죠?”
위로하는 듯한 강현진의 말에 천세림은 푹 한숨을 내쉬고는 그제야 숟가락을 들어 늦은 아침 식사를 시작했다. 표정은 아까 전보다 한결 편안해져 있었다.
‘…정말로 그쪽이 천세림이 보내 준 리스트대로만 선택해 준다면, 말이지만.’
다만 나는 찜찜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하, 차라리 빨리 회의 끝내고 싶다~ 걱정 그만할래~!”
“…….”
왠지 안 팀장이 이대로 천세림이 요구하는 걸 들어주지는 않을 것 같단 생각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아무래도 보내 준 회사들로만은 부족할 것 같아서 내가 새 회사를 좀 물색해 왔는데. 여긴 어때요?”
그 예감은 아주 강하게 적중했고.
* * *
“…….”
“어때요? 괜찮지?”
안 팀장이 자신 있게 건넨 새 외주 후보 회사의 포트폴리오를 보는 천세림의 표정은 심상치 않았다. 화를 낼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 듯한 그 표정을 보고 나는 대신해 입을 열었다.
“…많이 실험적인 것 같은데요.”
“아, 그쪽이 원래 미튜버 출신이라 그래요. 그래서 더 믿음 가지 않아?”
믿음……? 불신이겠지.
그렇게 대꾸하지 못하고 눈으로만 욕을 하고 있는 천세림은 사회생활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듯, 하얗게 보일 정도로 주먹을 말아 쥐고 있었다.
화딱지가 날 법도 했다. 기껏 보내 준 믿을 만한 회사들을 버리고 신생 회사를, 그것도 이쪽 계통에는 조금도 경력이 없어 보이는 콘텐츠 회사를 택한 것이니까.
“매번 세림 씨가 그랬잖아, 사람들은 신선하고 빠르고 창의적인 걸 좋아한다고. 내가 아티스트 니즈 맞춰 주려고 진짜 엄선해 고른 거예요.”
그런 천세림을 앞에 두고도 안 팀장은 자신만만해 보였다. 그제야 천세림은 솟아오르는 분노를 겨우 가라앉히고 낮은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제가 원하는 신선함과 창의성이랑은 좀 다른 것 같은데요. 이분은 우선 예능 쪽과는 조금도 관련이 없어 보이잖아요. 미튜브 시절에도 실험적인 영상 위주로 많이 하신 듯하고.”
“그래서 더 창의적이란 거지. 남들 다 하는 거만 하는 건 싫다면서요?”
“안정성을 기반으로 한 창의성을 요구하고 싶었던 건데요, 저는.”
사람들이 분명 신선하고 창의적인 걸 좋아하는 건 맞다. 자극적인 것도 그렇고. 뭣보다 그런 실험적이고 자극적인 영상만큼 대중의 눈길을 끌기 쉬운 것도 없을 터였다.
“하지만 이런 식의 콘텐츠는 오히려 원디어 이미지를 망치게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건 ‘절박할’ 때의 일이었다. 안정성보다는 어떻게든 대중의 눈길을 끄는 게 급선무일 경우에만 택해야 하는, 현제 상승세인 원디어가 절대 택해서는 안 되는 방향.
‘만약 라이트닝 시절이었다면 그런 기획이라도 출연하려 들었겠지. 뭐가 됐든 대중의 주목을 받는 것부터 시작해야 했을 테니까.’
하지만 원디어는 라이트닝이 아니다. 주목은 충분할 정도로 받고 있고 팬덤도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지 않았나.
그렇다면 팬분들은 생각지도 못한, 오히려 실험에 가까운 창의성보다도 어느 정도 틀을 벗어나지 않는 안정성을 원할 터였다.
창의적인 기획은 바로 그 안에서 꿈꿔야 할 테고. 그래야만 논란을 피해 가고, 뭣보다 팬분들의 니즈가 충족될 테니까.
‘하지만 이 회사는 기존의 아이돌 자체 콘텐츠 같은 영상은 전혀 만들 수 없을 것 같은데.’
그렇기에 천세림뿐만이 아닌 다른 멤버들 또한 포트폴리오를 보며 복잡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듯했다. 그에 안 팀장은 어이가 없단 듯 볼멘소리를 내뱉었다.
“아니, 대체 뭘 바라는 거예요? 신선함을 추구한대서 신선한 회사를 찾아다 줬더니 이젠 이 회사가 별로라고 하고.”
“이 회사도 이 회사만의 장점은 있겠죠, 그런데 이 회사가 저희랑 어울릴지, 뭣보다 팬분들이나 대중에게 보편적일지는…….”
“콘텐츠 팀에서는 만장일치로 이 회사 쪽으로 투표지가 모였어요. 이게 대중성이지 뭐야?”
게다가 나를 찜찜하게 한 것은 한 가지 더 이유가 있었다.
나는 가만히 포트폴리오에 적힌 회사의 이름을 내려다보았다.
‘트릭오어즈.’
그 이름이라면 낯이 익었다.
왜냐하면.
‘여기는… 표절로 망했지 않나?’
지난 생에 이미 한 번 본 적이 있는 회사였으니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