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Plan for the Second Life Idol RAW novel - Chapter (21)
“…뭘 생각하는 건지는 알겠다.”
에이든 리가 가사지에 적어 놓은 대강의 편곡 구성을 확인한 우리들은 조금쯤 안심한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대략적인 느낌이긴 했지만, 어쨌든 에이든 리가 그냥 기세대로 우리들을 끌어 온 건 아니라는 걸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대단하긴 하네.’
나는 에이든 리가 대충 끄적인 구성안을 보며 생각했다. 아주 간략한 구성이었지만 왜 개별 평가 첫날 전문가들로부터 칭찬을 들었는지 알 만한 수준이었다.
‘게다가 이놈, 평가곡을 보자마자 거의 바로 떠올린 거지 않나?’
평가곡을 확인한 건 겨우 몇십 분 전이었다. 에이든 리는 평가곡 확인을 끝내자마자 바로 ‘BINGO’를 선택했고.
즉, 그 짧은 순간 ‘BINGO’를 어떻게 편곡하고 콘셉트를 맞출지 바로 떠올렸단 거다. 그제야 나는 에이든 리가 데뷔를 할 수 있었던 이유를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왜 천재 캐릭터를 얻었는지 알겠군.’
모르긴 몰라도 과거에도 비슷한 식으로 미션을 통과해 나갔을 거다.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불도저 같은 행동력으로 팀원들을 꾸려서 원하는 대로 해결해 나갔겠지.
어디서 어떻게 폭탄을 터뜨릴지 모른다는 게 불안 요소기는 하지만, 난 놈은 난 놈이었다.
에이든 리는 우리가 수긍하자 씩 웃으며 다시 한번 동의를 구했다.
“그럼 우리 소년청량게임물로 가는 거죠?”
“…소년청량게임물……. 음, 그래. 난 찬성.”
“솔직히 ‘BINGO’를 어떻게 청량 콘셉트로 바꿀지 감이 안 잡혔는데 나도 저런 구성이면 좋은 것 같아.”
“그럼 유하 메인 보컬 시켜도 돼요?”
“그거 말인데.”
기다리던 주제였다. 나는 에이든 리의 폭주가 다시 시작되기 전 빠르게 그의 말을 끊어 내고 입을 열었다.
“다시 생각해 보자.”
“응?”
내 말에 에이든 리의 미소가 굳는 게 느껴졌지만, 나는 멈추지 않고 말을 이었다.
“메인 보컬은 중요한 포지션이야. 그걸 다른 팀원들 상의 없이 너와 나 둘이서만 정하는 건 좀 아닌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연습생들을 죽 둘러보며 천천히 말을 끝냈다.
“…분명 메인 보컬 하고 싶으신 분도 있을걸.”
말을 못 했을 뿐이지.
메인 보컬은 노래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가져가는 포지션이었다. 그런 만큼 어느 정도 보컬이 되는 연습생들은 한 번쯤 도전해 보고 싶을 거란 뜻이었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곧 팀원들이 서로의 눈치를 보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잠깐 동안의 침묵이 오가고, 가장 먼저 손을 든 건 F등급의 황영오였다.
“실은… 나, 메인 보컬 도전해 보고 싶어.”
황영오는 아까 전에도 인지도에 대한 걱정이 크다고 말한 연습생이었다. 첫 레벨 평가에서는 보컬적으로 어느 정도의 실력을 인정받아 초반 B등급을 받아 냈었던.
레벨 재평가에서는 첫 등급 평가만큼의 실력을 보여 주지 못했는지 단번에 B에서 F등급으로 떨어진 상태였지만, 그런 만큼 어떻게든 더 만회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만회를 위해서는 메인 포지션을 타는 게 제일 효과적일 테고.
물론 메인 포지션은 주목을 받는 자리인 만큼 어느 정도의 리스크도 짊어져야 했다.
우선 실력적으로 받쳐 주지 않는다면 호기롭게 도전해 봤자 중간에 교체될 가능성이 크고, 실수를 할 경우에는 더 큰 질타를 얻어맞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리스크를 짊어질 만큼 메인 포지션이 가지고 있는 주목성은 상당해.’
그런 만큼, 황영오는 적당히 서브를 타서 다른 팀원들에게 묻힐 바에야 차라리 어느 정도의 리스크를 짊어진다 해도 메인 보컬에 도전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 듯했다.
“난 내 목소리도 청량이라는 콘셉트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 노래를 잘 표현할 자신도 있고, 도전해 보고 싶어.”
그리고 한 명이 말을 꺼내자 뒤이어 다른 팀원들도 슬슬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난 영오도 좋고 유하도 좋은데, 팀원으로서 의견을 내자면… 에이든, 네가 메인 보컬을 맡아 줬으면 좋겠어.”
“저요?”
에이든 리가 뜻밖의 말을 들었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그에 B클래스의 김태영이 머리를 긁적대며 이유를 설명했다.
“이 노래를 편곡하는 건 에이든, 너잖아. 그리고 난 우리 중에서 네 실력이 가장 탄탄하다고 생각해서. 메인 보컬은 곡의 토대가 돼 줘야 하니까, 실력이 가장 좋은 사람이 나서서 잡아 주는 게 낫지 않을까?”
“음, 전…….”
나는 난감해하는 얼굴의 에이든 리를 보며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슬슬 내가 메인 보컬이라는 포지션에서 벗어날 길이 보이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에이든 리는 당황한 얼굴로 다시 한번 자신이 진행할 편곡의 분위기와 그에 맞는 보컬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에 황영오와 김태영이 말을 얹어 가며, 분위기는 조금씩 과열되어 가고 있었다.
그들이 서로의 의견을 나누는 모습을 보며, 나는 조용히 생각했다.
‘메인 보컬은… 도의적으로 내가 아니라 다른 연습생이 하는 게 맞다.’
에이든 리는 나를 제 콘셉트 곡의 메인 보컬로 삼고 싶어 했지만, 그건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그리고 다른 연습생들이 원하는 바도 아닐 터였다.
‘다들 조금이라도 더 좋은 포지션을 가지고 싶어 할 테니까.’
우리가 참여한 프로그램은 서바이벌이었다. 100명의 연습생들이 모두 각자 데뷔라는 한 가지의 목표를 위해 달리는, 협력자이자 경쟁자라는 뜻이다.
그리고 언제나 이런 서바이벌에서 이기는 건 가장 간절한 놈들이었다.
데뷔의 기회 또한 그런 이들이 가져가는 것이 옳았고, 무엇보다도 나는 나 스스로가 감히 다른 연습생의 기회를 빼앗아 갈 만큼 간절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목표는 탈주라니.’
누군가는 욕을 할지도 모른다. 이해가 안 된다고 할지도 모르지.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를 모욕으로 알지도 몰랐다.
그러나 나에게는 애초에 선택의 기회가 없었다.
‘참여하지 않으면 죽으니까.’
내가 회귀한 것이 행운인지 불행인지는 아직 나 스스로 판단할 수 없었다. 그러나 확실한 건, 지금의 내게는 역시나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거였다.
나는 누군가의 의지에 의해 강제로 달리고 있었다. 뜻하지 않게 누군가를 기만하고 기회를 빼앗아 가면서.
그렇기에 나는 될수록 빠르게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더 이상 뜻하지 않은 길을 걷지 않을 수 있게, 오래전에 포기한 길을 다시 되돌아보지 않을 수 있게끔.
그러니 대화의 주제가 바뀌고 있는 이 순간, 내가 해야 하는 행동은 하나였다. 입을 다물고 더 좋은 메인 보컬이 발탁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
‘일단 ‘하기 싫은 게 아니라 팀을 위해 더 좋은 메인 보컬을 선택하고 싶은 것’이라는 느낌을 남겨야 해.’
그렇게 되면 악편을 피해 가면서 적당히 재미없는 캐릭터로 묻어갈 수 있을 터였다. 팀원들이 각자의 파트를 나눠 가지고 나 또한 서브 보컬로 빠지면, 더 이상의 임팩트를 내지 않을 수 있을 테고.
내가 그런 생각으로 에이든 리가 난감해하는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기만 하고 있을 때였다.
“근데 전 유하 형이 좋아요!”
쯔쉬안이 불쑥 얼굴을 들이밀고 반짝이는 눈으로 입을 연 것은.
“유하 형 목소리 ‘봐’에도 잘 어울렸잖아요. 분명 소년청량게임물에도 잘 어울릴 거예요! 그리고 유하 형도 보컬 쌤한테 칭찬 들을 만큼 실력 좋아요. 목소리도 좋고!”
…넌 또 왜 갑자기 이러냐.
내가 급작스럽게 받은 추천에 당황하든 말든, 에이든 리는 뜻하지 않은 지원 사격이라도 받은 것처럼 환한 얼굴로 반색했다.
“역시 그렇지? 어, 음. 나 말 놔도 돼?”
“앗, 네! 편하게 쯔쉬안이라고 불러 주세요!”
“나, 이든이라고 불러 줘.”
그러고서는 둘이 뜬금없는 친목을 나누는 게, 서로 마음 맞는 친구를 얻었다는 듯한 느낌이었다.
지원 사격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나도 유하가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
주단우 또한 갑자기 나를 추천하고 나선 것이다.
“이든이 짠 구성에서 애드리브는 중요한 구절이라고 생각해. 황영오 연습생님 목소리는 분명 청량이라는 콘셉트에 잘 어울리고, 이든도 보컬적인 실력이 좋지만 두 명 다 애드리브와 곡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살리기는 조금 어렵지 않을까.”
“맞아요, 맞아요!”
“…가성으로 살리면 임팩트가 없고 그렇다고 너무 힘 준 목소리를 내면 곡의 분위기를 망칠 테니까. 이든은 톤이 낮기도 하고.”
“그렇죠? 그렇죠, 형?”
“나는… 유하의 장점이 이 노래에서 빛날 거라고 생각해.”
에이든 리와 쯔쉬안의 맞장구 아래, 주단우는 자신이 어째서 그렇게 생각했는지에 대해 조리 있게 털어 놓았다. 내 목소리의 장점이 고음역대에서 자유로우면서 나쁜 버릇 없이 목에 힘을 주지 않고 부드럽게 음을 연결시켜 부르는 것이라는 거다.
“이 애드리브는 올라가는 구절도 음역대의 변동이 심해서 조절이 어려워. 그러니까 이 애드리브를 살리는 게 이든의 목적이라면, 지금 유하만큼 잘 살리는 사람은 없을 것 같아.”
“맞아, 내가 하고 싶은 말이 그거예요!”
에이든 리는 이제 완전히 만개한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자칫하다 제 계획이 엎어지기라도 할까 두려웠던 모양이었다.
황영오는 주단우와 쯔쉬안의 지원 사격에 약간 어두워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팀 내에서 벌써 세 명이 나를 지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메인 보컬을 가져가기 어렵다 판단한 모양이었다.
에이든 리를 추천한 김태영 또한 주단우의 말이 일리가 있다 생각한 듯 결국 에이든 리를 추천하려던 것을 포기했다.
‘…이게 아닌데.’
아까 전에 잠시 과열되려던 분위기가 수그러드는 것을 보며 나는 난처함을 느꼈다. 내가 손쓸 새도 없이,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상황이 전개됐기 때문이었다.
“그럼 메인 보컬은 유하로 결정하는 거죠?”
“잠…….”
“네!”
“좋아!”
“그래.”
“그럼 결정!”
땅땅땅, 판사가 휘두르는 법봉이라도 두들기는 듯한 태도로 에이든 리가 바닥을 두들겨 댔다. 그에 쯔쉬안이 옆에서 폴짝 점프하며 오히려 저가 더 신이 난 표정을 지었다.
막상 내 암담함은 꿈에도 생각 못 하는 표정으로…….
‘…….’
그렇게 나는 결국 메인 보컬이라는 포지션을 얻게 되었다.
에이든 리가 처음 계획했던 그대로.
* * *
“하…….”
팀원들과 함께 밥을 먹으러 가면서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은 우선 어떤 식으로 창작 과제를 분담하고 포지션을 정할지에 대해 결정한 후 일과가 마무리되었다. 에이든은 이제 오후 시간 동안 러프하게라도 편곡을 진행해 당장 내일부터 우리가 안무와 가사를 짤 수 있도록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그 전에 앞서 최종적으로 정리된 포지션은 이랬다.
「메인 보컬-원유하
메인 래퍼-주단우
서브 보컬1-에이든 리
서브 보컬2-황영오
서브 보컬3(리더)-김태영
서브 보컬4-쯔쉬안
서브 보컬5(메인 댄서)-박원효」
그리고 가장 중요한 곡의 얼굴, 센터는.
-센터는… 쯔쉬안!
-정… 정말 제가 해도 돼요?
-당연하지. 너만 한 상큼청량의 대명사가 어디 있겠냐!
바로 쯔쉬안이었다.
‘그건 다행이었지…….’
쯔쉬안은 나, 박원효, 김태영, 주단우의 표를 얻어 곡의 최종 센터가 되었다. 황영오 또한 센터에 도전하기는 했지만, 결국 선택되지 못했고.
‘…불만스러워하는 것 같긴 했는데 괜찮을지 모르겠군.’
하고 싶다는 것마다 얻어 내질 못했으니 불만스러워할 만도 하지만, 생각이 있다면 사고를 내진 않을 거였다. 기껏해야 인터뷰에서 좀 심경을 털어놓고 마는 수준이겠지.
-유하… 포카리남…….
솜사탕을 놓쳐 버린 라쿤 같은 얼굴로 에이든 리가 그렇게 중얼대긴 했지만, 나는 그놈의 말은 무시해 버렸다.
나는 배식 받은 식판을 앞에 두고 자리에 앉아 멍하니 수저를 들어 식사를 시작했다. 속이 허한 만큼 배가 고파 밥은 끊임없이 위장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식판을 거의 다 비워 갈 때쯤이었다.
툭.
“……?”
“유하, 먹어.”
문득 에이든 리가 내 식판 위로 놈이 가져온 돈까스를 올려 줘, 나는 의아한 얼굴로 놈을 바라보았다.
에이든 리는 그렇게 내 식판 위로 돈까스를 올려놓고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제 식판 위의 반찬들을 집어 들어 먹고 있었다.
‘왜……?’
첫 합숙에서 내 식판 위로 바나나를 올려 주었던 게 문득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노래 부르려면 힘 좋아야 해.
‘노래 잘 부르라고 주는 건가.’
생각해 보면 그날도 그런 식의 말을 하긴 했었다.
나는 적당히 고맙단 인사를 하고 에이든 리가 준 돈까스를 젓가락으로 집어 들어 입에 넣었다. 그런 내가 먹는 모습을 바라보던 에이든 리가 지나가는 듯한 어투로 조용히 속삭인 건 바로 그때였다.
“하기 싫은 거 해야 하는데, 힘 좋아야 해.”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