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Plan for the Second Life Idol RAW novel - Chapter (218)
218화
나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에이든 리의 부모님을 만나 뵙기 전까지만 해도 공연의 뒷정리를 위해 움직이던 스태프들로 혼잡했던 복도는 어느새 조용해져 있었다.
그렇게 텅 비워진 복도에서 누군가가 조용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매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눌러쓴 캡모자 아래로는 얼굴을 가리려는 목적인 듯 마스크를 쓰고 있었는데, 표정조차 가늠할 수 없는 얼굴이었으나 나는 문득 깨달을 수 있었다.
“…잠시 지나가겠습니다.”
뭐가 됐든 이 자리를 피해야 한다는 것을.
저 사람이 이곳에 있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내내 시선이 느껴진 대로 나와 에이든 리를 따라왔기 때문이라는 걸.
뒤돌아갈 순 없고 그렇다고 멈춰 서 있을 수만도 없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걸음을 옮겨 지나치려 했다.
“……!”
그 사람이 내게 손만 뻗지 않았더라면.
순간, 나는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아주 느리게 시간이 지나가는 것만 같은 착각.
반사적으로 뻗어지는 손을 쳐 내려다가도.
-아! 씨X, 피 나잖아!
머리를 울리는 것 같은, 떠오르는 목소리에 문득 그조차도 하지 못하고 멈칫했을 때.
“원유하 씨, 물품 보관소에 꽃다발 두고 가셨죠?”
나는 순간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뒤를 돌았다.
그리고.
타다닥!
“……!”
곧 내게 손을 뻗으려던 사람이 언제 그랬냐는 양 뒤돌아 사라지는 것을 멍하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괜찮아요?”
그때 옆에 다가온 사람이 하는 말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손에 나와 에이든 리가 준비했던 꽃다발을 들고 있는 어셔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혹시 맞거나 이상한 말 들은 거 있어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나는 그렇게 대답하고 손을 내밀었다. 어셔분이 내게 건네주는 꽃다발을 들고, 나는 다시 한번 덧붙여 감사 인사를 전했다.
“감사합니다, 엘리노어 씨.”
“…오.”
그에 어셔의 유니폼을 입고 있던 에이든 리의 누나, 엘리노어 리가 눈을 크게 뜨고 재미있다는 양 고개를 기울였다.
“알고 있었어요? 언제?”
“인터미션 끝나기 직전 즈음요.”
“이든도 알아요?”
“이야기 안 했어요.”
나는 그렇게 이야기하며 에이든 리의 누나를 살펴보았다.
머리를 가다듬고 단정한 어셔 복장을 입고 있는 에이든 리의 누나는 아까 전, 어셔들과 섞여 있을 때와는 달리 한눈에 봐도 에이든 리의 누나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을 것처럼 놈과 닮아 있었다.
약간 옅은 갈색 눈하며 전체적인 얼굴형, 무엇보다 전신에서 느껴지는 듯한 장난기 섞인 분위기가 특히.
“아~ 아쉬워. 나 꽃다발 들고 깜짝 방문처럼 놀라게 해 주려고 한 건데. 눈앞에 두고 못 찾았단 거 알면 이든, 엄청 자존심 상할 테니까.”
“이기긴 하신 것 같은데요. 에이든은 아예 눈치도 못 채고 있었던 것 같으니까.”
그렇게 열심히 주변을 뜯어 보면서도 에이든 리는 아예 의심 대상에 어셔들을 두지도 않는 듯했다.
안 그래 보여도 각자의 분야와 직업에 대한 존중심이 있는 놈인 만큼, 에이든 리는 열심히 공연장을 탐색하면서도 최대한 어셔들을 비롯한 공연 스태프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 신경을 썼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엘리노어 리는 내내 우리 근처에 있었으면서도 에이든 리에게 들키지 않을 수 있었던 듯했다. 유니폼을 입은 것만으로 에이든 리의 경계 대상에서 완전히 제외되었으니까.
‘나도 주변에서 느껴지는 시선 때문에 주변을 좀 더 살피다가 알게 된 거기도 하고.’
누군가가 줄곧 따라다니는 듯한 느낌은 들었으나, 그게 정확히 어떤 사람인지를 알지 못해 주변을 살피다 나는 문득 엘리노어 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인지하기 전이라면 모를까, 인지한 후에는 에이든 리와의 연관성을 눈치채지 못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곧 모습을 드러내겠구나 하고 있었던 거고.
“괜히 저 때문에 계획이 어그러진 것 같네요. 죄송합니다.”
“어차피 좀 있으면 나오려고 했어요. 이든, 걔가 너무 감이 없어서. 나 찾아낼 때까지 기다렸다간 오늘 호텔도 못 돌아갔을걸요. 솔직히 공연 끝나고 걔 문밖으로 나갈 때 나도 있었는데 그것도 못 알아봤잖아요. 걔 완패지.”
그렇게 대꾸하며 씩 웃은 엘리노어 리는 문득 고개를 들곤 누군가가 사라진 자리를 잠시 바라본 후 내게 물었다.
“일단 진짜 어셔들한테 가 보는 게 좋을 것 같기도 한데. 이야기는 하는 게 맞죠? 이거 이대로 내버려 두면 안 되는 거 같아서.”
“우선 언질이라도 해 두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이쪽으로 들어오신 건지도 확인해야 하고, 정말 저랑 에이든을 따라다닌 건지도 자세히 파악은 해야 할 것 같아서.”
“그럼 일단 차림새랑 생김새 정도는 좀 더 확실하게 정리해 두는 게 낫겠네. 가까이서 봤을 때 어땠어요? 멀리서 봐서 난 여잔지 남잔지도 모르겠던데.”
“아, 인상착의는…….”
엘리노어 리와 함께 스태프들이 있는 쪽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걸음을 옮기던 중, 나는 그녀의 물음에 답변하려다 말고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유하 씨?”
“…….”
정말 이상하게도.
“…그러게요.”
“응?”
“어떤 사람이었지?”
조금도 기억이 나지 않았으니까.
여자인지, 남자인지, 어떤 식의 옷을 입고 있었는지도 전부.
* * *
“유하, 더 먹어.”
“배불러서.”
“왜요? 더 먹어요. 고생했으니까 더 먹어야지.”
“맞아요, 더 먹어요. 원래 이렇게 못 먹어요?”
“아닌데, 유하 평소에 되게 많이 먹는데.”
“연예인들이 어쩔 수 없단 건 알아도 이렇게 마른 친구는 또 처음 보네. 좀 살쪄도 되겠다. 딱 이만큼만 더 먹어요.”
나는 에이든 리의 아버지가 내 그릇에 담아 주는 음식을 보고 결국 다시 포크를 들 수밖에 없었다. 오늘따라 영 음식이 목구멍 너머로 들어가지 않는 듯한 기분이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멤버 부모님이 주시는 음식까지 거절할 순 없었던 것이다.
‘신경 쓰이는 게 있어서 그런가.’
평소와는 달리 맛조차 제대로 느껴지지 않는 듯한 기분에 나는 턱을 움직이며 그렇게 생각했다. 바로 어제, 공연장에서 있었던 일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찍힌 게 없다고요?
-네, 누군가가 지나간 건 확실한 것 같은데 명확하게 파악이 어렵네요……. 이게 왜 이러지.
내가 마주친 게 누구였는지 대해 조금도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게 없다는 걸 깨달은 순간, 나는 바로 CCTV를 확인했다.
그러나 CCTV를 확인한 후에도 뭔가 달라진 건 없었다. 공연장을 열심히 돌아다닌 에이든 리와 내 모습은 잘 찍혀 있었지만,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던 ‘누군가’는 끝내 찾아낼 수 없었던 것이다.
‘어떤 경로로 대기실이 있는 쪽에 들어온 건지도 알아내지 못했고.’
찍힌 것도 거의 없는 데다 그조차도 흐릿하고 분간이 어려워 공연장 스태프들 또한 적잖이 당황한 기색이었다.
이후 조금 더 면밀히 살펴보고 정밀 분석을 해 보겠다고는 하셨지만, 나는 더 찾아보는 것을 그만두기로 했다.
‘나오는 게 없을 것 같다.’
누가 봐도 명백하게 이상한 상황. 여기서 뭔가를 더 해 봤자 나올 게 없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눈앞에 분명히 사람이 있었고, 그 누군가가 나와 에이든 리를 계속해서 따라다닌 것만은 확실했다. 엘리노어 리 또한 누군가를 발견하고 나를 구해 주었으니까.
하지만 바로 눈앞에서 마주친 사람을 기억하지 못하는 건 이상했다. 분명히 어딘가에는 찍혀야 마땅했을 자료가 없는 것 또한 이상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고.
‘…시스템? 아니면 버그?’
때문에 나는 그게 어쩌면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사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저 사생팬이라기에는 걸리는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시스템이 아니라면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사람의 인식을 흐리고 현실에 이토록 교묘히 개입하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나를 회귀시키고 지금까지 이끌어 왔으며, 죽음이든 삶이든 자꾸만 나를 어딘가로 밀어 넣으려던 것. 즉, 시스템 혹은 버그가 이번 일을 벌였다는 게 제일 가능성이 큰 가설이었지만.
‘…시스템은 단 한 번도 이렇게 직접적으로 손을 뻗은 적이 없었어.’
한편으로는 정말 ‘인간처럼’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게 정말 시스템이었을까, 하는 생각에 그조차도 확신을 하지 못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시스템은 자신의 의도를 퀘스트와 시스템창으로만 보여 주었을 뿐, 눈앞에 직접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적은 없었다. 그 때문에 나는 시스템을 굴리는 ‘관리자’를 찾아낼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고.
그런 와중에 지금까지 숨어 있던 관리자가 급작스럽게 모습을 드러낸다는 건 이상했다. 그렇기에 나는 나와 에이든 리를 따라다닌 게 관리자는 아니었을 것이라 조심스럽게 짐작할 수밖에 없었다.
어제 모습을 드러낸 그건 관리자라고 보기에는…….
“너무 걱정하지 말고 밥 먹어요. 잡을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열심히 뒤따라다녔던 거면 또 나타나려고 하겠지. 그럼 그때 잡으면 돼요.”
…명백하게 위협적이었으니까.
“도움 안 돼, 누나.”
“그러는 너야말로 도움 안 되거든. 그리고 난 오히려 도움 됐거든? 유하 씨 잘 빠져나온 게 누구 덕인데. 그때 넌 뭐 하고 있었더라?”
“허? 난 누나 찾고 있었지. 그렇게 치면 누나가 처음 시작한 거잖아.”
“오, 다 내 잘못이다? 그러는 너는 유령 아니냐고 갑자기 이상한 말 했잖아!”
“그거 유령 맞아.”
곧 나는 에이든 리와 엘리노어 리의 투닥거림에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어제부터 계속해서 이런 식의 투닥거림이 지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엘리노어 리는 사람이었을 거라고 주장하고, 에이든 리는 CCTV를 확인한 후 어떻게 생긴 사람이었는지 생각이 안 난다는 내 말에 드물게 기겁하는 표정을 했다.
-그럼 그거 유령이야…….
-너 바보야? 유령이 어딨어? 유령이 조명등 아래 나타나? 나도 봤는데.
-그럼 왜 CCTV에 안 찍혀?
-기계 고장 났나 보지.
-기계 멀쩡하게 돌아갔잖아. 안 멀쩡한 건 누나야.
-와아. 내 동생 이든, 간만에 만나니까 진짜 싫다~!
-오, 나도~!
서로 극딜을 먹여 가며 이어져 온 신경전은 결국 오늘까지 지속되고 있는 중이었다. 그 두 명의 부모님은 익숙한 일인 것처럼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었고.
“유령이든 사람이든 어쨌든 별일 없었으니 괜찮습니다. 신경 쓰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괜히 걱정시켜 드려서 죄송합니다.”
“괜한 걱정은 아니죠. 연예인한테 안전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우리도 잘 알아요. 신경 쓸 수밖에 없는 게 당연하지.”
“뭣보다 오히려 유하 씨랑 이렇게 길게 하루 보낼 수도 있게 됐으니까 우리로선 좋고요.”
“원래는 가족분들끼리만 보내셨어야 했는데… 같이 시간 보내자고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 뭘. 솔직히 이든이랑만 같이 안 보낼 수 있게 해 줘서 나는 너무 고마운데?”
“오, 완전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랑 똑같아~!”
나는 이어지는 에이든 리의 부모님의 말에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전한 후 또 한 번 이어지는 두 명의 투닥거림을 흐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원래는 어제저녁, 에이든 리의 가족분들과는 저녁을 먹고 헤어질 예정이었다. 그러다 뜻하지 않은 일이 발생하는 바람에 시간이 너무 지체되어 결국 저녁 식사는 취소되었고.
-유하 씨, 내일 시간은 괜찮아요?
-나 내 최애를 이렇게 허무하게는 못 보내겠는데. 괜찮으면 하루만 더 같이 보내 줘요.
그러다 에이든 리의 부모님과 엘리노어 리가 제안하는 것을 나는 엉겁결에 수락했다.
숙소에 있던 강현진 또한 설 다음 날은 동생들과의 약속이 있고 일찍 되돌아온다던 천세림도 저녁 즈음에야 도착한다 했기에, 숙소에는 어차피 나 혼자 남아 있어야 했었으니까.
“자, 그럼 다음은 어디 갈까? 아직 시간 많이 남았는데.”
“언제 또 한국 올지 모르니까 최대한 즐기고 가야지. 이든, 최대한 잘 구경시켜 줘. 솔직히 기대는 안 되지만.”
“오, 완전 기대될 만한 여행 만들어야지~!”
그렇기에 나는 오늘 에이든 리의 가족들과 함께 하루를 보낸 후, 에이든 리와 함께 저녁 즈음 세 분을 공항까지 배웅할 예정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