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Plan for the Second Life Idol RAW novel - Chapter (254)
254화
“이번 유닛 무대는 나이순으로 가르는 게 어때요?”
단독 콘서트의 첫 세트 리스트 회의. 나는 현재까지 공개된 곡과 공개될 예정인 곡, 그리고 아직 작업 중인 에이든 리의 곡들을 확인하고 의견을 내놓았다.
“포지션별로 안 가르고요?”
“포지션별로 가르는 것도 재미있는 무대가 나올 것 같긴 하지만… 그건 나중에요.”
원디어라는 팀의 특징 중 하나는 서바이벌 당시 내내 ‘메인’ 타이틀을 꿰찼던 멤버들이 모여 있다는 것이다. 그런 만큼 이른바 ‘메인 포지션별 유닛’을 보고 싶어 하는 팬분들도 많았지만, 나는 지금은 시기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지금 분위기는 한동안 그대로 이어져야 하니까.’
원디어 데뷔 이후 이제 1년. 서바이벌을 타고 데뷔한 그룹 특성상 개인 팬덤이 강세였던 유어원은 이제야 겨우 서로를 적대하던 분위기를 벗어난 상태였다.
이는 그간 리얼리티와 자체 콘텐츠를 통해 멤버들이 경쟁 구도를 벗어나 서로 친해지는 과정을 빠짐없이 공개한 덕도 있었지만, 주된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바람 잘 날이 없었지, 원디어는.’
외부적인 위기가 하도 많다 보니 오히려 팬분들끼리 내부적으로 결집하게 되었던 것이다.
멤버 중 하나가 일방적인 잘못을 저질렀다면 모를까, 지금까지 원디어가 좋지 않은 일로 언급되었던 일들은 대부분 억울하게 말려든 일들뿐이었다.
때문에 원디어라는 팀을 지키기 위해 공공의 적을 함께 격파하다 보니 서로 돈독해지게 된 셈이었으니,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그 일들이 아예 없었다면 좋았겠지만.’
결국 팬분들께 마음고생을 시키게 된 덕에 목표로 하던 돈독한 분위기가 이루어졌다는 데에서는 좀 입맛이 쓰긴 했지만, 어찌 됐든 지금의 분위기가 바뀔 계기를 주는 건 좋지 않았다.
내부적인 분위기가 조금 더 정돈된 후라면 모르겠지만, 현재로써는 또 한 번 경쟁 구도가 잡힐 수 있는 포지션 무대는 시기상조였던 것이다.
“그럼 형 라인, 동생 라인으로 3:4로 나누는 걸로 가실까요?”
“네, 그게 좋을 것 같습니다. 마침 나온 곡 중에 형들이 해 주면 좋을 것 같은 곡도 있으니까.”
“이 곡 말이지? 그, 콘셉트로 치면…….”
함께 세트 리스트를 짜는 A&R 직원분의 내가 그렇게 대꾸하자, 주단우는 곡을 확인하고는 약간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 그 얼굴에 천세림이 장난스럽게 말을 받아 대신 내뱉었다.
“본격적인 섹시 콘셉트요~!”
“…유어원이 좋아해 주실 곡 같긴 하다. 동생 라인이랑 분위기도 확 갈리고. 하지만 기대만큼 해낼 수 있을지는…….”
“하하, 잘할 수 있겠지. 안 해 본 콘셉트는 아니잖아, ‘디어돌’ 때도 잘해 냈었고. 자신감을 가지자.”
데뷔 이후 줄곧 청량에 가까운 분위기를 주로 소화해 낸 만큼, 강현진은 새로운 콘셉트를 자신이 잘 표현해 낼 수 있을지 걱정을 하는 듯했다. 이미 ‘디어돌’에서 섹시 콘셉트로 호평을 얻었던 도지혁은 한결 편안해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물론 이쪽도 걱정하는 멤버가 없는 건 아니었다.
“귀여운 거… 할 수 있을까…….”
‘디어돌’에서도 줄곧 귀여운 콘셉트의 무대를 피하곤 했던 유찬희가 드물게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DIO라는 소속사의 특성 때문인지 평소에도 힙합 쪽의 분위기에 익숙한 유찬희는 평소에도 애교에 굉장히 취약한 멤버 중 하나이기도 했다. 애교를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막상 판이 깔리면 굉장히 뚝딱대곤 했던 것이다.
‘뭐… 소화 못 할 일은 없을 것 같긴 하지만.’
유찬희는 자신이 막내답지 못한 막내라고 생각하는 것 같고 집안에서도 장남인 만큼 평소에도 의젓한 모습을 보여 주곤 했지만, 나는 유찬희가 말 그대로의 ‘막내다움’을 뽐내지 못할 거라 생각하진 않았다.
-찬희야 어디 가서 니가 막내답지 않은 것 같다고 말하지 마라… 너 그 말하는 동안에도 앙탈부리듯 말하고 있었다
-너진짜최악이다 맨날 자기 너무 막내같지 않다고 해놓고 생활애교부리고진짜질렷어
한마디만해도돼요?
어 해
ㅠ유어원한테 귀여워보이고 싶은데 맨날 기대만큼 못해드려서 죄송해요(아래에서 위로 쳐다보는 얼굴로)
..너진짜최악이ㅇ,
-애교는 못하지만 생활애교의 달인인 우리 찬희.. 작정하고 귀여운 콘셉트를 해주면 어떨까?
판이 깔렸을 때 못한다는 뜻이지 평소에 못한다는 뜻은 아니었으니까.
때문에 팬분들까지도 유찬희가 귀여운 콘셉트를 해 주면 좋겠다, 이전부터 원하기도 하셨고.
그에 같이 유닛 무대를 하게 될 예정인 나와 에이든 리가 그냥 웃고 넘기는 동안, 천세림은 또 한 번 건수를 잡았다는 듯 씩 미소를 지으며 유찬희에게 시비를 걸었다.
“왜? 우리 찬희는 존재 자체가 귀엽잖아. 지난 팬미팅에서 BINGO도 잘했으면서 겸손하기는~. 막내의 귀여움을 보여 줘!”
“너 자꾸 너는 막내 아닌 것처럼 굴래? 그러는 너도 이 무대 같이해야 하는 거 잊지 마라.”
“세림이는 존재 자체가 귀여움이죠.”
“…다신 3인칭으로 네 이름 말하지 마, 짜증 난다.”
“아, 너무해~.”
유찬희를 골려 먹는 게 재미있다는 듯 그런 식으로 유찬희가 킬킬거리는 동안, 나는 곡을 두고 토론하는 눈앞의 세 명을 살폈다.
“소품도 사용하는 게 좋겠지?”
“독무도 넣으면 좋을 것 같은데요.”
“…….”
정확히는, 어딘가 고뇌하는 듯한 한 명.
“단우는 어떻게 생각해?”
“…아, 저도 좋을 것 같아요.”
주단우를.
* * *
“하, 오늘도 진짜 좋았다. 백 번 반복해서 하라고 해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콘서트 연습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온 에이든 리는 신발을 털듯이 벗고는 거실 소파에 몸을 던지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아니…….”
그 만족스러운 표정에 이제 막 거실로 들어선 유찬희의 얼굴 위로 어이없는 기색이 번졌다.
무엇부터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입만 벙긋거리던 유찬희는 연거푸 한숨을 내쉬던 끝에 곧 나와 눈을 마주했는데, 덕분에 할 말을 정한 듯했다.
“…형은 저걸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와요?”
놈이 곧 손가락으로 이쪽을 가리켰으니까.
평소였다면 뜬금없이 웬 손가락질이냐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말하는 대신 눈을 감는 것으로 대꾸를 대신했다.
“…음, 한 번으로 충분한 걸로 바꿀까? 백 번 하면 리더를 잃을지도…….”
말마따나 그럴 체력도 없었던 것이다. 숙소에 들어와 거실에 발을 딛자마자 엎어진 상태였으니까.
“형, 들어가서 자요…….”
“…안 자. 잠깐 쉰 거지.”
나는 에이든 리에 이어 들려온 유찬희의 목소리에 그렇게 대꾸하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움직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방전이 되기라도 한 것처럼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오, 이거! 이거 추가하자!
-그것도 좋은데 그럼 이런 동작도 추가하죠?
-그럼 이런 소품도 추가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다 추가할 순 없는 거 알지. 지금 그리고 다들 결이 다르니까 하나로 통일하자. 다들 양보할 수 없는 것부터 말해.
첫 단독 콘서트라고 흥분한 세 명의 의견이 빗발친 탓에 그 조율에 꽤 애를 먹었으니까.
‘급발진즈가 한 팀에 몰리면 이렇게 되는군…….’
‘디어돌’ 시절에도 무대와 관련된 토론을 좋아하던 에이든 리는 그렇게 이것저것 튀어나오는 아이디어를 한데 모으는 과정이 즐거운 듯했다.
물론 나도 그걸 싫어하는 건 아니었지만, 한편으로 힘이 부친 것도 사실이었다. 처음에는 신이 난 듯 이것저것 의견을 내놓던 유찬희도 나중 가서는 끝없는 토론에 나가떨어지기도 했었으니까.
그에 천세림이 혀를 차며 말했다.
“맏형도 멀쩡한데 이러면 어떡해요. 지금 형 체력만 보면 나이보다 여섯 살은 더 먹은 것 같네.”
“…….”
이상한 부분에서 예리한 자식.
정신적인 나이는 지금보다 정말로 여섯 살 이상 먹었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나는 홀로 찔리는 기분을 느끼며 비척비척 몸을 일으키며 한숨을 내쉬었다.
‘B- 서러워서 살겠나.’
말마따나 멤버들의 체력이 평균 이상인 것이지만, 차마 그렇게 말할 수 없는 게 어쩐지 억울해진 탓이었다.
지금까지 확인해 본바 평균 남성의 체력은 B+정도. 그러니 물론 내가 평균 미달인 것도 맞았지만, 멤버들의 체력이 이상할 정도로 높은 것도 사실이었다.
‘같은 활동을 했으면 결과도 같아야 하는 거 아닌가?’
나는 역시 환약을 더 가져와야겠느니, 같은 소리를 하고 있는 천세림을 바라보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디자인 유어 아이돌> 시절 B+였던 천세림의 체력은 최근 데뷔 후의 바쁜 활동기로 단련이 되기라도 한 듯 스텟이 무려 두 단계나 올라 있었다. 그렇게 A로 올라선 천세림에 비해 내 체력은 여전히 서바이벌 때와 다름이 없었고.‘원래도 일정 이상 근육이 붙기 어려운 체질인 건 알고 있긴 했지만.’
그래도 같은 스케줄을 소화했으면 비슷한 결과가 나와야 하는 게 아닌가, 내가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영양제 먹자, 유하야.”
“…….”
…도지혁 덕분인가?
나는 불쑥 내게 영양제를 건네는 도지혁에게서 약을 받아 들며 생각했다. 최근 스케줄이 없을 때마다 도지혁을 따라다니며 운동을 좀 하는 듯했던 천세림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밥도 먹을래?”
“…아뇨, 밥은 괜찮아요.”
어쩌면 그냥 선천적인 것일 수도 있고.
나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이쪽을 바라보며 묻는 주단우에게 대꾸하며 영양제를 입 안에 털어 넣었다.
지난 공방 이후 새롭게 붙은 건강 요정과 밥 요정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자신들의 분야를 빠짐없이 챙기는 두 명은 원디어 내에서는 체력으로 탑을 달리고 있었다.
‘두 명 다 S-였지.’
그중에서도 주단우는 도지혁이 같이 가자고 할 때가 아니면 굳이 운동을 다니지 않았음에도 팀 내에서도 손꼽히는 수준의 체력을 유지하는 중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쉽게 지치지 않았고.
“…형은 괜찮아요? 아까 전에 보니까 형도 좀 힘들어하는 것 같던데.”
“아…….”
하지만 평소와 달리 오늘의 주단우는 어딘가 지쳐 보이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래서인지 오늘은 중간에 잠깐 휴식 시간도 가지는 듯했고.
“…응, 괜찮아. 그냥 조금 쉬면 괜찮을 것 같아.”
때문에 물은 질문에 주단우는 잠시 침묵하더니 곧 고개를 끄덕이며 살짝 미소 지었다. 다만 어딘가 영혼이 빠진 듯 힘없는 웃음에 내가 의문을 느낄 때였다.
“혹시 좀, 빼면 좋겠다든가 변경되면 좋겠다는 게 있으면…….”
“아니야, 없어.”
강현진의 말을 자르듯 대꾸한 주단우의 단호함에 문득 멤버들의 시선이 그에게 가 닿았다.
순식간에 말이 잘린 강현진은 당황한 듯 바로 입을 다물었다. 주단우 또한 그렇게 대꾸한 자신에게 놀란 듯 잠시 침묵했고.
“…미안. 말 잘라서.”
“…아니야, 괜찮아.”
그에 아주 어색한 침묵이 이어지던 중 먼저 입을 연 것은 주단우였다. 그는 강현진의 눈을 피하며 사과를 하고는 먼저 방 안으로 들어갔다. 강현진은 잠시 동안 주단우가 들어간 문을 바라보다가 잠시 뭘 좀 사 오겠다며 지갑을 들고 숙소 밖으로 나갔고.
“…연습하다 무슨 일 있었어요?”
“음…….”
그렇기에 거실에 남은 마지막 형 라인인 도지혁에게 질문이 쏟아지는 것도 당연했다. 멤버들 모두가 이상한 기류를 느끼지 못할 수가 없었으니까.
“글쎄… 이걸 의견 차이라고 해야 하는 게 좋을지 아니면 입장 차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잠시 고민하던 도지혁은 방 안쪽의 주단우에게 들리지 않을 수 있게끔 목소리를 낮추어 대답했다. 그는 복잡한 얼굴로 잠시 방 쪽에 시선을 두었고.
“현진이가 제시한 의견을 단우가 받아들이지 않고, 단우가 제시한 의견을 현진이가 받아들이지 않고 있거든. 둘 다 간절해서.”
곧 순순히 현재 형 라인 쪽에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어쩌면 미리 예견돼 있었던 일을.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