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Plan for the Second Life Idol RAW novel - Chapter (305)
“와, PTSD.”
“으… 진짜 싫다.”
연습실에 들어선 후 냅다 앉기부터 한 멤버들은 평소와는 달리 지긋지긋함에 가까운 신음부터 토해 내고 봤다.
그럴 만했다.
“우리, 서바이벌에서는 벗어난 거 아니었나…….”
“왠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 기분이에요. 연습복 입고 모르는 사람들이랑 둘러앉아 있었던 그때…….”
“하하, 그래도 그때보다는 낫지. 그때 우린 개인이었지만, 지금은 팀이라 서로를 잘 알잖아.”
평소의 연습과 달리 우리는 [디자인 유어 아이돌>에 출연하던 때처럼 손에는 하나씩 종이와 태블릿을 든 채 회의를 위해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익숙한 풍경이긴 하군.’
다들 [디자인 유어 아이돌>의 테마였던 파란색 연습복이 아닌 사복을 입고 있다는 점에서 그때와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었으나, 어찌 됐든 충분히 과거를 떠올릴 만한 상황이긴 했다.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도 ‘디어돌’ 때랑은 다르고. 그때는 어떻게 하면 개인이 돋보일지에 대해 고민했다면, 오늘은 어떻게 하면 원디어가 LON을 이길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하니까.”
우리는 오늘, 어떻게 LON을 이길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를 하러 둘러앉은 것이었으니까.
‘LON을 이긴다라.’
나는 손가락으로 가볍게 종이를 두드렸다. 하얀 A4용지 위에는 LON이 이쪽으로 넘겨준 수록곡 리스트가 프린트되어 있었다.
K-AREA에서 우리에게 준 조건은 간단했다. 이번에 컴백하는 앨범의 타이틀을 비롯해 커플링 곡 등으로 무대를 꾸리되, 각자 상대 팀의 수록곡들을 선택해 커버 무대를 꾸릴 것.
‘특별 무대는 한 그룹당 둘씩.’
하나는 미리 방송사 측에서 지정해 준 보컬라인들의 무대고, 남은 하나는 참여하는 인원과 콘셉트를 모두 스스로 정하는 자유곡이었다.
“보컬 쪽 곡으로 뭐 할지는 정했어?”
“네. 극야요.”
그중 보컬라인의 곡은 이미 정해진 상태였다. 에이든 리는 수록곡 리스트를 받자마자 냅다 얼티밋뮤직 측에서 만든 곡을 짚고 봤으니까.
얼티밋뮤직 측에서 만든 다크 미디엄 팝 장르의 곡인 극야는 LON이 발매한 지난 앨범의 수록곡으로 어둡게 가라앉은 분위기와 나른한 템포가 특징으로 꼽히는 곡이었다.
딥한 느낌의 가사를 메인보컬인 현지오와 리드보컬인 최한결이 특유의 음색을 살려 부담스럽지 않게 잘 소화해 냈다는 평을 듣고 있었고.
“…음, 꽤 까다로울 것 같은데.”
“까다로우니까 더 재밌을 거 같지 않아요?”
때문에 ‘극야’는 소화하기가 어려웠다. 기존 보컬의 잔상이 너무 뚜렷하게 남아 있는 만큼, 나와 에이든 리가 어떻게 노래하든 이질적이라는 평을 듣게 될 테니까.
‘K-AREA를 보는 시청자층이 대부분 K팝 팬이거나 출연하는 가수들의 팬덤이라는 점에서 더 그럴 테고.’
차라리 LON의 앨범에서 덜 알려진 곡이었다면 모를까, 하필 극야는 지난 LON 앨범 타이틀곡의 커플링 곡으로 LON의 팬덤인 피오니에게서 많은 사랑을 받은 곡이었다.
그만큼 화제도 된 덕에, 웬만큼 K팝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노래를 한 번쯤은 들어 봤을 테고.
그렇게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노래는 경쟁을 위한 커버로 선택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모두에게 친숙한 이미지를 파고드는 건 어려우니까.
-나 극야 할래.
-…어려울 텐데.
-응. 근데 리스트 본 순간 이거밖에 안 보였어.
하지만 나는 그런 위험 부담에도 불구하고 결국 ‘극야’를 편곡해 소화해 보고 싶다는 에이든 리의 편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극야밖에 안 보였다는 건, 내가 이거 안 하면 안 된다는 뜻이야.
에이든 리가 드물게 진지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으니까.
‘…어차피 그 상태에서 반대를 하고 다른 곡을 선택해 봤자 에이든 리는 집중하지 못했겠지.’
그렇다면 위험 부담을 안고서라도 놈이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두는 게 나았다. 에이든 리가 어떤 성격인지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으며.
『버프: YOU ONLY LIVE ONCE』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기에도 인생은 짧다”
관심사 한정 능력치 +200
비관심사 한정 능력치 –50
능력적으로만 봐도 그건 비효율적인 선택이었을 테니까.
어차피 어떤 곡을 선택하든 경쟁 상대의 곡을 커버해야 한다는 점에서 위험 부담이 없을 순 없다.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에이든 리가 집중할 수 있는 곡을 선택하는 게 나았다.
겨우 일회성으로 진행되는 서바이벌이라고는 하지만, LON과의 경쟁에서 질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당연하겠지만 방송도 우리 초동 집계되는 주네. 이걸 좋은 일이라고 해야 할지, 나쁜 일이라고 해야 할지.”
“장점이 있다면 사람들이 궁금해서 더 많이 K-AREA를 보려고 할 거란 점이고… 단점이 있다면 그 승패에 따라 사람들이 이후 활동의 결과도 그럴 거라 지레짐작하게 될 거란 거겠네요.”
도지혁과 천세림이 말하는 것처럼 K-AREA의 방영일이 두 그룹의 컴백주에 잡혔다는 건 이번 활동에서 벌어질 두 팀의 경쟁을 사람들이 미리 보게 된다는 뜻이고.
“…그럼 우리가 지면 팬분들은 컴백주부터 실망하시게 되겠구나.”
“그건… 좀 싫은데.”
그에 따라 만약 우리가 지게 되면, 당장 멤버들부터 시작해 팬분들의 사기가 대폭 꺾인 상태로 활동을 시작해야 할 터이기 때문이었다.
‘사기는 중요하지.’
사람은 당연히 지고 있을 때보다 이기고 있을 때 화력이 더 높다. 그건 당장 무대를 해야 하는 우리도, 우리를 지원해 주시는 팬분들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가능성이 보일 때 더 많은 표를 던지니까.’
지고 있는 팀보다는 상승세를 탄 팀을 응원하고 표를 던지는 게 더 쉽고 재미있지 않나. 애초에 좌절보다는 즐거움을 드리는 게 아이돌이라는 직업의 본분이기도 하고.
뭣보다.
-미쳤나 원디어랑 LON이랑 동발? 유어원들아 진짜 총알 개장전하고 딱 대기타고 있어 이번엔 스밍 안하면 뒤진다고 생각하자
-ㅎㅎ우리애들 이제 월클문턱도 밟았는데 뭐>[ 울애들만한 라이징스타가 어딨음 좀쉬엄쉬엄해도 되지않을까?
…이딴 개소리하지마라!!!! 총력을다해라!!! 성적에 존나 연연하자!! 존나 성적이 중요함 이번이 마지막인 것처럼 팬질해라!!!
-그냥 한마디만 하겠음 음방 시상할 때 애들이 뻘쭘하게 박수만 치게 하고 싶으면 스밍하지 마세요 예
“다른 팀 팬분들이 환호하고 있을 때, 옆에서 응원봉 내린 채로 울먹이시는 거 보고 싶진 않기도 하고요.”
“……!”
그런 건 나도 별로 보고 싶지가 않았다.
팬분들이 우리의 기를 세워 주고 싶어 하신다면, 우리도 당연히 팬분들의 기를 세워 주는 게 당연하지 않나.
1등을 못 만들어 주셨다고 팬분들이 미안해하는 건 보고 싶지 않았다. 다른 팬분들의 환호에 가려 유어원의 목소리가 묻히는 것도 싫고.
“오…… 그렇게 말하니까 갑자기 경쟁심이 미친 듯이 치솟는데.”
“그렇게 생각하니까 진짜 싫어지네… 정말 할 수 있는 만큼, 아니 그 이상은 해 봐야 할 것 같다.”
“열심히 하자. 우리도 이번이 마지막인 것처럼 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아.”
“받은 만큼 돌려드리는 게 우리 목표니까~!”
“응원해 주는 유어원 기대 배반하고 싶지도 않고… 솔직히 LON한테 지기도 싫고요.”
“닉한테 지면 저 음악 방송 MC 하차할래요.”
“아니, 그 발언은 철회해. 그건 아니야.”
그건 모두가 마찬가지인 듯, 멤버들은 곧 순식간에 불이 붙은 눈으로 변하는 듯했다. 팬분들의 자부심이 되어 주고 싶다는 건 멤버 모두가 가지고 있는 공통 목표였으니까.
“유하 형, 역시 사기 높이는 방법을 잘 아네요. 원디어 리더 2년이면 치어리더 버금간다.”
“…칭찬 맞냐?”
다만 그에 따라 높아진 사기에 대해 내가 한 가지 간과한 게 있다면.
『에이든 리』
상태: 초조(확인 가능)
“음, 절대 기대 배신하면 안 되겠네.”
그 높아진 사기에는 당연하게도 부담도 따라온다는 것이었을 터였다.
…당시에는 아직 알지 못한 사실이었지만.
* * *
“형, 진짜 만렙 알바생 같아요. 역시 ‘찐’은 다르다.”
“……입 다물어라. 너도 다르진 않아.”
나는 촬영을 끝내고 돌아온 내게 엄지손가락을 내미는 천세림에게 으르렁거리듯 대꾸했다. 앞치마를 걸치고 있는 천세림은 셰프들이 쓰는 요리 모자까지 머리에 쓴 채였다.
평소 요리를 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 줘서 그런지, 아니면 허우대가 번듯해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천세림은 그런 복장이 꽤 잘 어울렸다.
그런 놈을 바라보다 내가 대충 의자에 앉자, 천세림은 씩 웃으며 말했다.
“근데 진짜 잘 어울리긴 하네요, 이미지 찰떡인데? 형 처음에 만렙 알바생으로 떴던 것도 생각나고요. 팬분들은 반가워하실 만한 광고 같아요.”
“다른 멤버들도 이런 모습 보여 주는 건 처음이니까 좋아하실 것 같은데.”
“하하, 그건 그래요. 약간 역할놀이 하는 기분 아니에요?”
천세림은 그렇게 말하며 제가 머리에 쓴 모자를 툭 건드렸다. 나는 그런 놈을 바라보다 이제 막 다음 촬영을 시작하는 멤버들을 바라보았다.
멤버들은 누구는 작가, 누구는 공연장 스태프, 누군가는 사무직 직원 같은 느낌으로 각자 역할을 달리한 채 구직 사이트의 광고를 촬영하는 중이었다.
‘[호호식당>이 잘되긴 했군, 이런 광고까지 들어온 걸 보면.’
원디어가 [호호식당>에서 보여 준 활약이 있었기 때문일까, 원디어는 최근 다양한 광고를 받고 있는 중이었다. 그중 이십 대부터 삼십 대가 자주 이용하는 구직 사이트의 TV광고가 들어와 오늘은 그것을 촬영 중이었고.
“그러고 보니 형은 진짜 아르바이트 많이 해 봤었죠? 떠오른 목격담만 봐도 한두 개가 아니던데.”
“몇 개 정도.”
“에이~ 몇 개가 아니던데? 그때 거의 잠을 잤나, 할 정도로 많이 하고 다니는 것 같던데요. 난 형이 어떻게 안 쓰러지고 다음 경연 합숙 때 왔나 궁금했잖아요. 그때 그 체력은 다 어디 간 거예요?”
“…먹고살아야 하니까 잠깐 버텼던 거지.”
나는 대충 그렇게 대답하며 뒷말을 흐렸다. 차마 그때 그 체력이 시스템이 준 붕붕드링크의 힘을 빌린 것이라 말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가, 오늘 촬영도 엄청 잘된 것 같고. 뭐… 찰떡처럼 잘 어울리는 건 저쪽에 또 한 사람 있긴 하지만요.”
천세림은 그렇게 말하며 턱짓으로 촬영 중인 멤버 한 명을 가리켰다. 그곳에서는 홀 서빙 시늉을 하고 있는 유찬희 뒤로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피아노에 손을 얹고 있는 에이든 리가 있었다.
‘잘하네.’
에이든 리는 그저 시늉에서 그치지 않고 진짜로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었다. 자신에게는 오히려 시늉을 하는 게 더 어렵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였는데, 덕분에 멤버들은 처음으로 에이든 리가 정말 ‘각 잡고’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있는 중이었다.
피아니스트 유망주로 이름을 꽤 날렸다는 과거를 증명하듯 에이든 리의 자세는 여유롭고 또 편안해 보였다.
연주하는 것 자체를 즐기는 듯한 느낌도 있어 나중에 광고 비하인드가 공개될 때 팬분들이 좋아해 주실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
“이든이 형 저렇게 좋아하는 거 간만이네요. 저 형, 최근에 잠도 못 자고 편곡에 집중하는 것 같았는데.”
무엇보다도 멤버들이 피아노를 연주하는 에이든 리를 흐뭇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건, 에이든 리가 최근 어깨에 긴장을 풀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일 터였다.
“극야 편곡은 아직 완성 안 됐죠?”
“어. 놈도 나도 만족스럽지가 않기도 하고…….”
비교적 빠르게 완성된 다른 멤버들의 자유곡과는 달리, ‘극야’는 데드라인이 며칠 남지 않은 지금까지도 줄곧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었다.
이유는 하나였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에이든이 아직 고민 중이라서.”
에이든 리가 처음으로 길을 잃은 듯한 느낌으로 방황 중이었으니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