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Plan for the Second Life Idol RAW novel - Chapter (332)
332화
“뭐야, 유하 형 어디 갔어요?”
“어, 유하? 저쪽으로 가는 것 같았는데.”
“형!”
‘이런 젠장, 도망치자.’
점심을 먹고 약 네 시간이 흐른 뒤, 나는 천세림을 피해 펜션이 있는 건물을 빙 둘러 도망치고 있었다.
이유는 하나였다.
“형! 같이 탁구 치기로 했잖아요! 벌써 팀도 다 짜 놨는데!”
천세림이 도저히 날 놔줄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형들은 이제 뭐 할 거예요?
-일단 온수 풀부터 들어가 볼까 하는데. 제일 기대된 게 그거였거든. 옆에 찜질방도 있으니 그것도 들어가 볼까 하고.
-딱히 생각나는 게 없는데… 막상 이렇게 풀어놓고 자유롭게 노세요, 하니까 생각 나는 게 없어. 뭐 하고 놀지?
-그건 걱정할 필요 없어요. 놀 거 천지니까. 온수 풀, 찜질방, 농구나 탁구 같은 거 할 수 있는 공간이랑 레트로 게임부터 신식 게임, 보드게임도 구비해 달라고 부탁했었거든요. 포상은 최대한 뽑아 먹어야 하니까.
점심을 다 먹고 뒷정리까지 마친 후, 멤버들은 식탁에 모여 앉아 각자 저녁까지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지에 대한 계획을 나누었다.
촬영이라고는 하지만 간만에 주어진 휴식 시간. 그에 천세림은 오늘 하루를 최대한으로 즐길 생각을 한 듯했다. 사전에 ‘메큐원’ 스태프들에게 최대한 놀거리가 많은 숙소로 골라잡아 달라고 한 것을 보면 말이다.
-그래서 말인데, 계획 없는 사람들은 같이 팀 나눠서 농구 한판 하는 거 어때요? 진 팀이 이긴 팀이 시키는 거 하나씩 하는 전제로.
-오, 농구? 그건 못 참지. 그럼 온수 풀은 뒤로 미뤄야겠다. 나도 참여.
-…일곱 명 다 참여하는 거면 쪽수가 안 맞는데, 나는 빼고…….
-에이, 무슨 섭섭한 소리를? 그건 괜찮아요. 팀 밸런스를 잘 나누면 되니까. 우리한테는 전 농구부였던 단우 형과 운동이라면 춤 빼곤 젬병인 현진이 형이 있잖아요. 둘을 같이 두고 다른 팀에 한 명 더 끼워 넣으면 완벽하다고요.
-…세림이가 사실을 말한 거긴 한데 왜 상처지?
-같이 열심히 하자, 현진아…….
그에 우선 팀부터 나눠 농구 게임을 계획한 천세림은 그 이후로도 줄곧 단체 게임을 제안했다.
-온수 풀에 찜질방이 있다면 서로 얼마나 참을 수 있는지 대회를 하란 뜻 아니에요? 개인전으로 가죠.
운동을 다 끝냈다 했더니, 이번에는 피로도 풀 겸(정말 피로를 풀기 위함인지는 의심되었지만) 단체로 참기 대회를 하자고 하지 않나.
-이렇게 많은 게임기가 구비돼 있는데 한 번도 안 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봐요. 팀 나눌까요? 아니면 개인전?
그다음에는 레트로 게임부터 스X치에 이르기까지 모든 게임기를 한 번씩 건드려 보고.
-오, 노래방 기계 있다! 이쯤에서 한번 K-POP 릴레이 해야 하지 않아요? 명색이 가수인데. 점수제 가죠?
그다음에는 차에서의 퀴즈 대회에 이어 단체 노래방을 제안하는 식으로 숨 돌릴 틈 없는 내기를 이어 갔던 것이다.
때문에 나는 물을 수밖에 없었다.
-뭐 있는데?
-뭐가 있어요?
-‘메큐원’ 쪽이랑 뭐 숨기고 있냐고. 네가 내기에 너무 집착하는 게 좀 이상해서. 지금 쌓은 점수로 뭐 숨기고 있는 거라도 있냐?
역시 뭔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치지 못했던 것이다.
수많은 게임을 하다 보니 질 때도 이길 때도 있었다. 다만 천세림은 바로 페널티를 부여하기보다는 그것을 적립시키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굴었는데, 때문에 나는 이게 본 촬영을 위한 초석 쌓기가 아닌지에 대한 의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천세림의 대답은 단호했다.
-에이, 형은 너무 방송에 과몰입해요. 이건 그냥 멤버들끼리 재미 삼아 하는 점수제라고요. 아, 이든이 형 쪽은 실제로 페널티 주라고 전화하긴 했지만.
-…정말 멤버들끼리만 하는 거라고?
-당연하죠. 이번 촬영 콘셉트는 MT잖아요. 뭣보다 포상 휴가고. 우리끼리 재미있게 놀아 보자는 뜻에서 하는 거예요. 다들 경쟁에 진심이다 보니 등수랑 점수 매기는 게 더 재밌는 판이 나오잖아요.
정말 숨기고 있는 건 아무것도 없으며, 단순히 재미를 위해 하고 있단 것이었다.
몇 번 더 캐물어 봐도 대답이 변치 않는다는 데서 나는 결국 대충 수긍하고 넘어가는 척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심의 시선을 떼지 못한 채 놈을 관찰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다 언제 ‘본 촬영이 따로 있다.’는 말이 나올지 알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해서 나는 천세림을 따라 여러 게임에 참여했지만.
‘한계다. 튀자.’
그도 잠시, 나는 결국 리타이어를 선언하고 말았다. 실제로 무슨 촬영이 준비돼 있대도 더 이상은 체력이 버틸 수 없다 판단한 것이다.
덕분에 나는 천세림이 슬슬 다음 게임을 위한 각을 재고 있는 것을 보고 본채에서 탈출해 찜질방 옆에 자리한 작은 별채 쪽으로 몸을 숨기게 된 것이었고.
“하…….”
탁구 게임을 안 할 거냐며 나를 찾는 천세림의 목소리가 멀어지고 나서야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엎어졌다.
천세림의 뒤에 숨어 있다가 놈이 별채를 한 번 뒤지고 멀어지는 것을 본 후 이곳에 숨어든 것이었으니, 한동안은 들키지 않을 듯했다.
‘뻐근하다, 진짜.’
분명 단 일 분도 빠짐없이 놀았음에도 불구하고 연습실에서 여섯 시간 동안 내리 연습을 하는 것보다 더 지치는 느낌에 나는 그대로 몸을 늘어뜨렸다.
‘안 해 봤던 걸 많이도 했군.’
그럴 법도 했다. 이렇게 목적 없이 대뜸 놀기부터 하는 건 정말 간만이었기 때문이었다.
‘…생각해 보니 거의 처음인가?’
그러다 문득 떠오른 것은, 이런 시간을 보내는 게 어쩌면 거의 처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회귀 전도 마찬가지였지만, 회귀 후에도 이런 식으로 시간을 때운 적은 거의 없었다. 그 시간에 차라리 연습을 하거나 모니터링을 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봤으니까.
촬영 때문에 이런저런 게임을 해 본 적은 많았지만, 그건 휴식이라기보다는 ‘게임을 하는 멤버들의 반응을 촬영’한다는 목적이 있었기에 긴장을 놓을 수도 없었고.
오늘 또한 완전히 놀기만을 위해 움직일 수 있는 것만은 아니었다. 당장 별채에도 카메라가 설치돼 있는 데다 바깥에는 제작진도 몇 명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수가 현저히 적어 거의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일까, 포맷 자체가 없기 때문일까. 나는 왠지 오늘의 촬영에서는 평소와는 조금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진짜 놀러온 것 같네.’
딱히 촬영이 아니라 정말 멤버끼리 휴가를 즐기고 있는 것 같았던 것이다.
온몸에 힘이 쭉 빠지는 건 그 때문일 수도 있었다. 내내 긴장하고 있던 평소와는 달리 얼결에 여기저기 끌려 다니며 해 보지 않은 것들을 다수 손대 본 덕에 피로까지도 막을 새 없이 몰아치듯 밀려왔던 것이다.
그 때문일까, 아니면 보일러가 잔뜩 틀어진 바닥이 너무 따뜻했기 때문일까. 나는 문득 눈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고.
‘조금 있다가 저녁 해야 되는데.’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가는 생각조차도 붙잡지 못한 채 결국 눈을 감고 말았다. 간만의 낮잠이었다.
* * *
“형, 일어나요.”
“……!”
가볍게 어깨를 흔드는 손과 귓가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퍼뜩 눈을 떴을 때, 날은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
나는 혼몽한 정신을 바로잡으려 애쓰며 머리 위에 손을 얹고 물었다.
“뭐야? …저녁이야?”
“네. 형 한두 시간 잔 거 같던데?”
잠들기 전까지만 해도 어슴푸레하게 노을빛이 차 있던 방 안은 이젠 완전히 어둠으로 가득 차 있었다. 천세림은 씩 웃는 얼굴로 손을 내밀어 나를 일으켰다.
‘생각보다 너무 잔 것 같은데.’
그에 나는 천세림을 따라 별채 바깥으로 나와 바비큐장이 있는 본채 쪽으로 간 후, 약간 놀라고 말았다.
“유하야, 얼른 와서 먹어.”
“준비 다 됐어~!”
내가 잠든 사이 이미 저녁 준비는 전부 끝이 나 있었던 것이다.
음료수와 술, 다 구워진 고기나 곁들여 먹을 밑반찬과 찌개는 이미 테이블 위에 세팅되어 있었다. 더 이상 손댈 건 없다는 것처럼.
그에 나는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오래 찾았겠네. 미안하다. 알람이라도 맞추고 잤어야 했는데.”
아무래도 내가 너무 오래 잠든 데다 숨어 있었던 탓에 멤버들이 날 못 찾고 저녁을 한 게 하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같이 저녁을 준비하기로 한 이상 미안해할 일이 맞았고.
하지만 천세림은 고개를 기울이며 이렇게 대꾸할 뿐이었다.
“별로 오래 안 찾았는데요? 형 별채 들어간 거 알고 있었어요.”
“……? 그럼 왜 안 깨웠는데?”
그에 나 또한 의문을 느끼며 자리에 앉아 묻자, 천세림은 간단하게 대답했다.
“형 자라고요.”
“뭐?”
“기껏 편하게 자고 있는 것 같으니까 좀 더 자게 두려고 했죠. 형 잠 못 잤잖아요, 어제도.”
“…어제 잘 잤는데.”
“못 잤어요.”
천세림은 그렇게 말하고는 내 앞에 음료수 한 잔을 놓아주었다. 이미 페널티가 몇 번 쌓인 탓에 내 앞에 맥주를 놓아 줄 것이라 생각한 것과는 다르게 너무나도 순순히, 딱히 강제로 술을 먹일 생각은 없다는 것처럼.
그에 의아해하는 날 보며 천세림은 물었다.
“실컷 놀았더니 잠 잘 오지 않았어요? 형 엄청 깊게 잠든 것 같던데, 깨우기 아쉬울 정도로.”
“…잘 자긴…… 했지.”
나는 어리둥절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천세림의 말이 맞긴 했다. 하도 끌려다니면서 진을 뺐기 때문일까, 아예 꿈조차 꾸지도 못하고 잠들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단 두 시간을 잤을 뿐인데도 피로감이 사라져 있었고.
그 대답에 천세림은 기분이 좋아진 듯했다.
“그럼 성공이네요, 오늘은. 그러라고 이것저것 하자고 형 끌고 다녔던 거니까.”
“…?”
그는 곧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며 씩 웃었던 것이다.
그에 의아해하던 중 던져진 말에 나는 잠시 말을 잃고 말았다.
“유하 어제도 여러 번 깼지? 바로 잠드는 것 같진 않던데. 휴대폰 보고 몇 번 시간 확인했잖아, 날 밝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형 최근에 잠 제대로 자는 것보다 못 자는 날이 많았잖아요. 잠을 못 자니까 연습할 때도 더 무리하게 되고.”
긍정을 해도 될지 우려되는 말이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포맷 자체가 없다 한들 우리는 지금 촬영을 하고 있고, 이런 건 좋은 화제는 아니었으니까.
“딱히 말조심할 필요는 없어, 메큐원은 우리 쪽 촬영이잖아. 혹시 잘못 편집되어서 유어원 걱정할까 봐 우려하는 거면 이런 대화는 다 잘라 내면 될 일이니까. 애초에 제작진분들도 그렇게 해 주실 거고.”
“…어떻게 알았어요? 최대한 소리 안 냈다고 생각했는데.”
그에 대해 도지혁이 가볍게 대꾸하며 걱정을 덜어주는 것에 나는 결국 입을 열었고.
“형 안 시끄러웠으니까 그건 걱정 안 해도 돼요. 저희한테 피해 온 것도 없고요, 깬 것만 확인하고 우리도 바로 다시 잠들곤 했거든요. 근데 뭐, 같은 방 쓰는데 모를 수가 없죠. 다른 멤버들도 알던데요, 형 잠 못 자는 거.”
“지난번에도 비슷했던 것 같아서. 연말이 되면 신경이 좀, 예민해진다고 해야 되나. 묘하게 잠을 못 잤잖아. 자주 물 마시러 나가고.”
이어진 말에 또 한 번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천세림의 뒤를 이어 작년에 나와 같은 방을 썼던 강현진이 그렇게 말한 순간, 내가 작년 이맘때쯤에도 비슷하게 잠을 못 잤었다는 사실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해마다 이어지는 불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파악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그러네요. 아무래도 일 년이 마무리될 때쯤이라 그런가. 큰 이유가 있는 건 아닌데 좀, 잠이 안 오더라고요.”
이유는 단 하나일 터였으니까.
일 년이 끝난다는 건 시스템이 나의 일 년을 판단한다는 뜻이고, 그 결과에 따라 당장 나의 생이 더 이어질지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유독 좀 길긴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고요. 어차피 이러다 말 테니까.”
그리고 아직 이번 일 년의 정산이 돌아오지 않았다는 점에서 나는 해가 바뀌었음에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직 나의 목숨은 유예 중이었으니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