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Plan for the Second Life Idol RAW novel - Chapter (334)
334화
‘몇 시지?’
나는 뻐근해진 목을 풀며 시계를 바라보았다. 자정이 가까워진 시각, 술자리는 이제야 겨우 끝날 기미를 보이고 있었다.
“현진이 형 또 혼자 마시고 있네. 찬희야, 거기 병 좀 빼앗아… 자?”
“…뭐, 뭐? 누가 자? 안 자!”
“음, 그래. 믿기진 않지만 믿어 줄게. 어쨌든 너도 술병 빼앗을 정신은 아닌 것 같으니까 이든이 형이… 아, 또 가족이랑 전화하는구나?”
“어어, 나도 보고 싶어요~! 누나 빼고. 근데 잘 시간인데 왜 다 깨 있어? 응? 거긴 아직 밝다고……? 전등 켜 놨어요?”
“…제가 너무 늦게 끝냈나 봐요. 생각했던 것보다 더 취했네.”
“덕분에 재미있는 장면 꽤 뽑았다고 좋아했잖아.”
“오, 형은 그래도 완전히 깨어났나 보네요. 그나마 다행이다.”
천세림의 주도하에 끝도 없이 이어지던 술 게임은 내가 한 번 취했다가 술이 깬 다음에야 완전히 마무리되었다.
-됐다. 이제 방송 분량 뽑았어요.
편집 없고 날조 없다더니, 재미있는 방송을 만들 의욕은 넘치는 천세림답게 술 게임을 통한 방송 분량을 충분히 확보한 이후였다.
꽤 재미있을 만한 장면들이 다수 나왔다는 건 멤버들의 텐션이 한없이 높아졌다는 뜻. 즉, 마이크를 떼어 냈을 즈음의 멤버들은 이미 대부분이 술에 취한 후였다.
그러나 오늘치 촬영이 모두 종료되었음에도 멤버들은 다들 숙소로 들어갈 생각은 조금도 없어 보였다.
“온수 풀 들어가고 싶어요!”
“안 돼, 찬희야. 술 취한 채로 따뜻한 물 들어가면 큰일 나. 술 깨고 가는 걸로 하자.”
“현진이 형, 여기서 자면 입 비뚤어져요. 추운 데 웅크려 있지 말고 들어가서 자요.”
“어? 어어… 아니, 나 산책하고 싶은데……. 아직 바다 못 봐서…….”
“아, 그것도 좋지. 애들 지금 이대로 자면 내일 숙취 좀 심할 것 같은데, 차라리 좀 더 깨어 있게 단체로 산책 나갔다 올까? 바다 다녀올까, 얘들아?”
“오, 바다? 좋아요! 그럼 우리 불꽃놀이 하면 안 돼요? 나 바다에서 불꽃놀이 하고 싶은데!”
“안 돼, 그거 불법이야, 밤도 늦었고. 할 거면 하늘에 터뜨리는 거 말고 손에 들고 하는 걸로 마당에서 조용히 해. 지혁이 형, 에이든 단속 좀 부탁드려요.”
“오케이, 걱정 마. 세림아, 현진이 챙겨 줄 수 있어? 내가 찬희랑 이든이 챙길게.”
“네, 이쪽은 제가 맡을게요. 유하 형이랑 단우 형은요?”
오히려 촬영이 끝났단 생각에 더 텐션이 올라간 데다 다음 날의 컨디션을 위해 즉흥적으로 밤바다 산책을 하기로 한 것이다.
“편하게 하고 와. 난 정리 좀 할게.”
하지만 나는 건네지는 제안에 고개를 저었다. 술 냄새를 빼고 싶기는 했지만, 그대로 나서기엔 숙소가 꽤 어질러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먹다 남은 음식물하며 과자 봉지들, 갖가지 술로 채워져 있는 잔과 궤짝으로 널브러져 있는 술병들, 여기저기에 널려 있는 옷가지까지.
내일이 되면 숙취로 몸부림칠 놈들이 한둘이 아닌 듯 보이니, 오늘 정리를 하는 게 여러모로 편할 터였다.
그런 나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난 건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술을 마시지 않은 주단우였다.
“그럼 나도 남을게. 같이 정리하자.”
“괜찮아요, 형도 아직 바다 못 봤잖아요. 같이 보러 갔다 와요. 저는 도착하자마자 애들이랑 같이 다녀오기도 했고 오늘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 해서 뒷정리라도 하려는 거니까.”
“괜찮아, 바다는 내일도 볼 수 있는걸. 혼자 정리하면 오래 걸리기도 하고… 유하 너도 술 마셨잖아. 옆에 있을게.”
“겨우 한 캔인데요. 술도 다 깼고.”
“두 캔 주량인데 한 캔 마신 거면 적게 마신 건 아니긴 하죠. 음, 아니면 그냥 형들 정리 얼추 끝나면 천천히 뒤따라오는 건 어때요? 어차피 여기 취한 사람 많아서 속도도 못 낼 것 같고… 단우 형이 괜찮다면 둘이 같이 있어 주는 것도 좋을 거 같은데. 어차피 유하 형 혼자 있는 거 금지잖아요.”
“…그 룰 아직 있었어?”
“당연하지. 앞으로도 취소할 생각 없는데? 그럼 조금 있다가 천천히 와, 얘들아.”
그렇게 말하며 웃는 도지혁이 이내 유찬희와 에이든 리를 인솔해 나가는 걸 보며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도지혁과 천세림이 세워 놓았던 ‘최소 2인 1조 룰’이 아직 유효한 줄은 몰랐던 것이다.
‘최근에는 아예 언급이 없길래 자연스럽게 사라진 줄 알았는데.’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던 중, 나는 곧 새삼스러운 사실을 깨닫곤 바다로 향하는 멤버들의 뒷모습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되짚어 보니 내가 최근 혼자 있을 때가 없었다는 게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스케줄 대부분은 멤버들과 함께였지. 가끔 있는 휴가 때는 꼭 누구 한 명은 같이 있었고.’
원디어는 단체 스케줄이 많다. 때문에 나는 평소 혼자 있을 일이 없었는데, 그나마 있는 개인 스케줄 때는 매번 매니저 형이 숙소 문 앞까지 마중을 나왔다가 똑같이 그 장소로 바래다주곤 했기 때문에 홀로 움직일 일이 없었다.
그러다 가끔 휴가가 주어질 때는 대부분 밀린 잠을 보충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숙소에 틀어박히거나 외출을 한다 해도 꼭 멤버 중 한두 명씩과는 함께 나서곤 했었는데.
‘그때는 그냥 동선이 겹치는 거겠거니 싶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멤버들이 대놓고 신경을 쓴 결과물이었던 듯했다. 아무리 그래도 단 하루도 혼자일 때가 없었단 건 이상하니까.
“…….”
멤버들은 사생이라고 알고 있는 버그가 나타난 것도 이제 거의 일 년이 다 되어 간다.
버그가 위험하다는, 무엇보다도 그 손에 ‘죽고 싶지 않다’고 말한 내 말에 멤버들이 줄곧 신경을 써 준 것도 일 년이 되어 간단 뜻이다.
‘공감해 주는 걸 넘어서 실제적으로도 계속 내 상태를 살펴 주고 있단 건데.’
그에 접어 두려던 우려가 다시금 튀어나오는 듯해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게 쉬운 일일 리가 없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멤버들이 계속해서 날 살피고 있다는 건 내내 본인들의 안전이나 일정보다도 더 내 안전을 우선시해 주고 있다는 거니까.
술을 마셨기 때문일까, 아니면 아까 전 짐을 나눠 지자고 말하던 멤버들과의 대화가 떠올랐기 때문일까.
“…고민이라도 있어? 유하야.”
그런 착잡함은 미처 갈무리되기도 전에 표출되고 만 모양이었다. 함께 정리를 하고 있던 주단우가 어느새 손을 멈춘 채 조심스럽게 내게 물어온 것을 보면.
“생각이 좀 많아 보여서. 혹시 혼자 있고 싶었는데 내가 남은 거라면…….”
“아뇨, 그건 아니고…….”
난 그제야 내가 다른 멤버들이 숙소를 나선 이후부터 줄곧 아무 말도 없이 정리만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과 함께 남은 후부터 줄곧 묵묵부답이었던 셈이니, 주단우로서는 신경이 쓰일 만도 했던 듯했다.
그에 어떻게 대꾸해야 할지 고민하던 나는 이내 순순히 입을 열었다. 굳이 뭘 숨길 필요가 있나, 싶었던 것이다.
“…좀, 잠깐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던 거예요. 형도 그렇고 다른 멤버들도 그렇고 본인들 챙기기도 벅차잖아요. 그 와중에 굳이 매 순간 절 챙기게 하는 게 좀 그래서요.”
최대한의 기쁨을 주기도 하지만 그만큼 쉽게 사람이 갉아먹히기도 하는 게 이 일이다. 체력적으로도 힘들고 멘탈적으로도 빡셀 수밖에 없어 제 한 몸 잘 챙기기만 해도 다행인 일.
그 와중에 같은 팀 멤버라 한들 결국 타인까지도 줄곧 신경을 쓰게 하는 건 못 할 일이 아닌가 싶었다. 그러니 최소한 그런 부담 정도는 없애 줘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고.
“굳이 힘들게 하고 싶진 않아요. 어떻게 하면 덜 걱정하게 할 수 있나, 하고 방법을 좀 생각하고 있던 것뿐이에요.”
“그런 건 생각하지 않아도 돼, 유하야. 아마 걱정하지 않게 될 날은 없을 것 같아서.”
“네?”
하지만 나는 곧 들려온 주단우의 말에 고개를 기울였다. 이야기를 듣던 주단우가 안심했다는 듯한 얼굴로 그렇게 대꾸한 것이다. 자신은 그것을 절대 고민거리라 생각하지 않는단 것처럼.
“유하는 예전부터 멤버들에게 부담 주는 걸 싫어했지. 그건 알지만… 나는 우리가 서로 걱정하고 있는 게 좋아. 그게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유하 네가 그런 부담을 덜어 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주단우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 것인지 가늠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서로 걱정하는 게 좋은 신호 같진 않았으니까.
그런 내 반응에 주단우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천천히 말을 이었다.
“유하도 언제나 우리를 걱정하고, 우리가 도움이 필요할 때면 돕잖아. 만약 도움이 필요하다는 게 보이는데도 우리가 거절하면 어떨 것 같아?”
“…답답하겠죠.”
나는 건네진 질문에 오래 생각할 것도 없이 즉답했다. 그리고 대답을 마친 이후에야 주단우가 어째서 그런 질문을 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우리도 그래. 도울 수 있는데 돕지 않으면 답답하고 힘들 거야. 그래선 안 되지만 혹시 무슨 문제가 생기면 두 배로 괴로울 거고.”
“…….”
“그러니까 나도 그렇고 멤버들도 오히려 지금에 만족하고 있어. 무슨 일이 생기고 나서는 늦잖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유하 널 걱정할 수 있는, 혹시 모를 일이 발생하기 전 미리 지킬 수 있는 지금이 좋아. 그러니까 정말 부담 가질 필요는 없어, 유하야.”
주단우는 아주 완곡한 방법으로 내게 권유한 것이었다. 멤버들의 걱정을 그대로 받아 주라고. 오히려 그 편이 멤버들의 부담을 덜어 줄 수 있는 길이라고 말이다.
그에 내가 뭐라 대꾸해야 할지 말을 고르고 있을 때였다.
“그리고 나는 이게 멤버들이 스스로를 위하는 방법이라고도 생각하거든. 모두 이런 관계가 필요했던 게 아닐까, 싶어서. 어쩌면 나 혼자만의 넘겨짚기인 걸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나는 그래서.”
“……?”
나는 주단우의 말에 의문을 느끼고 또 한 번 고개를 기울였다.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갈피를 잡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내 의문을 보았는지, 주단우는 빙긋 미소 지었다. 그러고는 아주 오래 전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내가 잠깐 할머니랑 같이 살았던 적이 있다고 말했던 거 기억 나, 유하야?”
“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주단우가 할머니랑 살았던 시절이라면 아마 엄마가 일을 그만두기 전이었을 터였다.
일 때문에 도저히 주단우를 케어할 시간이 없었다던, 주단우에게는 외로움으로, 엄마에게는 미안함으로 남았던 때. 반대로 나와 백이현을 비롯해 보육원에 있던 아이들에게는 행운이었던 시간이지만.
내 긍정에 주단우는 쑥스럽단 듯 웃었다. 그러곤 조용히 다시 정리를 위해 손을 놀리며 말을 이었고.
“나는 그때 엄마랑 함께 있는 시간을 좋아했어. 간만에 엄마와 만나는 것도 좋았지만, 엄마가 해 주는 이야기들도 좋아했거든. 나랑 비슷한 또래의, 엄마가 또 다른 자식으로 둔 친구들의 이야기 같은 것들.”
“…….”
“어쩌면 그래서였는지도 모르겠어. 내가 처음부터 유하 널 낯설게 느끼지 않았고, 엄마가 [디자인 유어 아이돌> 첫 방송을 보다가 울음을 터뜨렸을 때 그다지 놀라지 않았던 건.”
이어지는 말을 듣던 나는 곧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미 오래전에 네 이름을 들은 적이 있었던 거니까. 내겐 없는 형제를 가지고 있다는, 유하 네 이름을.”
뜻하지 않은 곳에서 과거의 기억을, 그것도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의 입으로 전해 듣게 된 것이었으니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