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Plan for the Second Life Idol RAW novel - Chapter (336)
336화
“이건 순서가 잘못된 거 아니야……? 어떻게 약을 먼저 주고 그다음에 병을 주지?”
“좀… 이상한 것 같아. 난 우리가 피로 풀러 온 줄 알았는데…….”
“우욱, 토 나와. 일단 해장부터 하면 안 돼요?”
“찬희야, 숙취해소제에 해장국에 토마토 주스까지 마셨는데도 안 되는 거면 그건 시간이 해결해 줄 숙취란 뜻이야. 기다려야 해.”
“혹시 모르지~ 깜짝 놀라면 숙취가 해소될지도.”
멤버 단체 MT가 끝난 다음 날 저녁. 멤버들은 모두 초췌해진 얼굴로 한 폐건물 앞에 서 있었다. 이유는 하나.
“뭔…. 딸꾹질이냐? 깜짝 놀라서 해소되는 숙취가 어딨어? 그리고 귀신 같은 걸로 깜짝 놀라고 싶진 않다고!”
“으……. 진짜 싫다.”
역시나 이대로 우리를 놓아줄 생각이 없던 ‘메큐원’ 제작진이 준비한 다음 촬영인, 이른바 ‘담력 시험’을 위해서였다.
생각해 보면 담력 시험 콘텐츠는 ‘메큐원’ 제작진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별러 온 아이템이기는 했다. 언젠가 기획 관련 회의 때 종이를 들춰 보던 PD가 이렇게 말한 것이다.
-근데 원디어 멤버분들 중에는 귀신 싫어하시는 분들이 많으시더라고요?
-…표정이 수상한데. 혹시 뭐 꾸미시려는 건 아니죠?
-에이~ 저희가 뭘 꾸밉니까. 원디어분들은 우릴 너무 불한당처럼 보신다니까. 믿어 주세요, 저희는 항상 구독자분들을 즐겁게 해 드리려는 순수한 목적만 가지고 있을 뿐인걸요.
-재미 좋죠…… 그래야 조회수도 늘고 화제성도 얻고 광고도 오니까. …근데 이게 과연 순수한 걸까요?
-재미를 추구하는 저희의 마음만큼은 순수하다고 자부합니다.
-항상 재미를 저희의 허를 찌르는 쪽에서 찾으려고 하시긴 하지만요, 하하.
-하하하, 예상 가능한 촬영은 재미없잖아요. 어쨌든 알겠습니다. 뭐, 별건 없어요. 그냥 첫 촬영 때 싫어하는 게 뭐냐는 질문에 꽤 다수의 멤버분들이 귀신을 싫어한다고 답해 주셔서, 그게 좀 흥미로웠을 뿐이거든요.
그때 알았어야 했다, 콘텐츠 제작자의 ‘흥미’란 곧 창작으로 이어진다는 걸.
‘왠지 후하다 했다.’
나는 짜게 식은 눈으로 얼굴에 방실거리는 웃음을 매단 제작진들을 바라보았다. 우리를 꽤 잘 속여 넘겼다 생각한 듯, 얼굴에는 만족감이 가득했다.
다만 그 와중에도 제작진들은 한 가지만은 못내 아쉽다는 얼굴이었는데.
“어제 마주치지만 않았어도 완벽했는데. 그건 조금 아쉽습니다.”
“마주쳤어서 마음의 준비라도 좀 했지, 그거 아니었으면 여기 도착하자마자 기가 막혀서 첫 멘트도 못 쳤을 거예요.”
바로 어젯밤, 밤바다를 산책하고 돌아오던 멤버들과 마주쳐 서프라이즈를 망쳤기 때문이었다.
-우리 옆 숙소에 제작진들 있잖아요. 돌아오는 길은 같고.
-그렇지. 그게 왜?
-아니, 산책 마치고 돌아오고 있는데 숙소에서 제작진이 나와서 급하게 어딜 가고 있는 거예요. 오밤중에 어딜 가나, 했는데 손에 뭘 들고 있어. 그게 뭐냐고 하니까 아무것도 아니라면서 숨기고. 그게 말이 돼요? 자정에 왜 빨간 페인트를 들고 있어?
-여기저기 찢어진 흰 천에 이상한 마네킹 같은 것도 들고 있고……. 영 이상하잖아. 캐물으니까 대답해 주더라, 내일 저녁에 또 다른 촬영이 준비돼 있다고.
이상하다는 건 처음부터 알았어야 했다. 징조는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진짜 웃겨. 무슨 펜션에 레이트 체크아웃이 있어.”
“나는 그냥 우리 좀 느긋하게 있다 가라고 한 이틀 정도 빌렸겠구나 했지.”
“체크아웃 시간이 늦어서 술 깨고 온수 풀도 다시 들어가고 좋긴 했는데… 그게 이런 대가를 동반할 줄은. 포상 휴가 다음 바로 벌칙이라니…….”
떨떠름한 얼굴로 그렇게 말한 강현진은 영 불안하다는 얼굴로 완전히 어둠에 가려진 건물을 바라보았다. 그런 멤버들의 불만스러운 반응에도 제작진들은 당당했다.
“벌칙이라뇨, 오늘 촬영은 엄연히 포상의 영역에 들어 있는걸요. 말했지 않습니까, 건물 곳곳에 보물이 적힌 종이쪽지들이 숨겨져 있다고요. 여러분은 폐교를 탐험하시면서 그 포상 쪽지들을 가져오시면 됩니다. 그럼 그 안에 적힌 물품은 다 여러분 거예요.”
오늘 촬영은 제작진이 우리에게 약속한 ‘포상’의 영역에 들어 있으며, 이 모든 것은 우리들을 위해 준비돼 있단 것이었다.
“물론 그냥 얻는 건 재미없을 것 같아서 이런저런 장애물을 준비해 보긴 했지만요.”
다만 콘텐츠 제작자로서 구독자들의 즐거움도 놓쳐선 안 된다는 게 제작진들의 입장이었고.
‘뭐, 덕분에 좀 느긋하게 쉬긴 했는데.’
이틀 빌린 숙소 덕에 멤버들은 어제에 이어 오늘 마음껏 늦잠을 자고 온수 풀과 찜질방, 게임까지 한바탕 즐기고 온 후였다. 덕분에 숙취로 속은 아파도 체력만은 쌩쌩해 보였고.
‘그렇다고 포상 다음에 벌칙은 좀 빡세긴 하다 싶지만.’
으슬으슬한 기운에 나는 외투를 여미고 바로 옆에 자리한 폐교를 바라보았다. 불이 전부 꺼져 있는 폐건물은 과거 학교로 쓰였지만, 이 지역에 점차 인구 수가 줄어든 바람에 이제는 완전히 사용하지 않는 건물이 되었다고 했다.
“심령 스폿이라면서요… 이게 어떻게 벌칙이 아니야……?”
“아니죠, 심령 스폿이라기보다는 소원을 들어주는 장소라고 해야 옳지 않을까요.”
‘아예’ 사용되지 않는 건 아닌 듯했지만 말이다. 본래의 용도와는 완전히 다른 목적으로 사람들이 방문하고 있어서 그렇지.
제작진의 설명은 이랬다.
“1층부터 3층까지 모든 교실에 구비해 둔 촛불에 불을 붙이고 옥상에 올라가 손에 들고 있는 촛불을 내려 두신 채 소원을 빌면 그게 이루어진다지 않습니까. 간단한 행동으로 최대의 효율이 나오는 거죠.”
“대체 누가 심령 체험에 효율을 따져요.”
사람이 모두 사라진 폐교는 언젠가부터 신비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해, 이제는 사람들이 소원을 비는 장소로 사용되고 있단 것이었다. 새해가 밝은 만큼 모두의 염원이 이루어지는 일 년을 기원하기 위해 이런 콘텐츠를 제작했다는 게 제작진의 변명이었고.
“소원을 비는 장소란 건 알겠어요. 근데 이상한 일도 자주 일어난다면서요…….”
“에이, 별거 아니에요. 가끔 물건이 흔들리거나 창문에 누군가가 비친다거나 하는 일만 있을 뿐인데, 다 소문일 뿐이니까요. 설마 그런 일이 있겠습니까? 21세기인데요.”
“귀신이 없다고 생각하면 소원은 대체 왜 빌라고 하는 거예요? 동일하게 판타지 영역인데!”
다만 그 ‘신비함’은 소원의 영역에서만 그치지는 않는 듯했다. 신비한 힘이 있다는 건 그만한 기운이 있단 뜻이고, 덕분에 사람들은 이곳에서 자주 귀신을 목격한다는 듯했으니까.
“자,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해 주실 일은 간단합니다. 우선 세 팀으로 인원을 나누어 한 분당 하나씩 저희가 촛불을 나눠 드릴 거예요. 그럼 여러분은 그 촛불을 들고 1층부터 3층까지 모든 교실에 구비해 둔 촛불에 불을 붙여 주시면 됩니다.”
“보물쪽지도 설마 모든 방에 다 숨겨져 있는 건 아니죠? 그럼 수색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은데.”
“저희도 그렇게까지 박하진 않아요. 보물쪽지는 한 층당 한 교실에만 있습니다. 쪽지가 숨겨져 있는 교실은 1층은 첫 번째 방, 2층은 두 번째 방, 3층은 세 번째 방이고요. 괜히 이상한 곳에 들어가 수색하진 마세요.”
“…다른 곳을 수색하면 어떻게 되는데요?”
“하하, 글쎄요? 어떻게 될까요?”
“이거 봐, 분명 뭐 엄청 숨겨 놓은 거잖아!”
겁을 먹은 얼굴로 경악하는 유찬희를 두고 PD는 하하 웃고는 말을 이었다.
“그렇게 모든 방마다 불을 붙이고 옥상에 올라가셔서 촛불을 내려두고 오시면 끝입니다. 참 간단하죠? 아 참, 각자 건물을 나올 때까지 손에 든 촛불이 꺼지지 않게 주의하세요. 촛불이 꺼지면 그 멤버가 찾아낸 보물쪽지는 전부 압수입니다.”
“…….”
설명을 들은 멤버들은 할 말은 많지만 참겠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런 멤버들을 보고 아무리 ‘메큐원’ 제작진이라 한들 눈치가 보였는지, 곧 PD는 헛기침을 한번 하고는 말했다.
“대신, 팀은 여러분이 스스로 나누어 주셔도 됩니다. 이번에는 완전히 랜덤으로는 가지 않을게요. 원디어 멤버 여러분 중 과반수가 귀신을 싫어하시기도 하고, 역시 오늘 촬영은 포상 개념이니까요.”
“하… 그건 진짜 다행이다……. 혹시 이든이 형이나 현진이 형이랑 단둘이 가게 되면 힘들었을 것 같은데.”
그에 멤버들은 대놓고 안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럼 정리할게요. 귀신이 좀 쥐약이다, 하는 사람들이 이든, 찬희, 세림, 현진이 형. 맞죠?”
“네.”
“응.”
말마따나 원디어 멤버 중에서는 과반수인 4명이 오컬트 분야에 약했기 때문이었다.
“세림이도 귀신 무서워했구나. 그건 처음 알았네.”
“아니, 무서워하는 건 아니에요. 전 그냥 깜짝 놀라는 게 싫다는 것뿐이니까.”
“…모든 귀신은 깜짝 놀라게 나타나잖아. 그게 그냥 귀신이 싫다는 거랑 뭐가 다르냐?”
“세림이 서프라이즈 중독자 아니었어?”
“…말이 그렇게 되긴 하는데, 어쨌든 좀 달라요.”
그중 처음으로 천세림이 귀신에 약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멤버들은 흥미로워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세상 두려울 것 없다는 듯 사는, 무엇보다도 현실을 중시하는 천세림이 의외의 약한 곳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난 단우 형이 의외인데. 형 오컬트 같은 거 싫어할 줄 알았어.”
“좋아하는 건 아니야. 그냥 해만 안 끼치면 되지 않나, 싶어서…….”
그리고 또 의외성을 보여 준 멤버가 있다면, 그건 바로 주단우였다. 평소 돌발 상황에 취약한 만큼 오컬트에도 약할 거라 생각한 것과 달리 주단우는 귀신은 무서워하지 않는다 말한 것이다.
“오히려 진짜 무서운 건 사람이잖아. 귀신이 없다고는 생각 안 하는데, 해만 안 끼치면 괜찮을 것 같아…….”
“…단우 형은 의외로 기가 센 거 같아.”
뭔가 다른 쪽으로 뭔가 서늘한 말이 나오긴 했지만.
“그럼 우선 귀신 안 무서워하는 사람들을 한 팀당 하나씩 배정하는 걸로 하죠.”
어찌 됐든, 그렇게 모든 멤버의 이야기를 들은 후, 우리는 팀을 나누었다.
그렇게 재미를 추구하되 중심을 잡아 줄 멤버를 하나씩 넣어 배정된 결과는 이랬다.
“잘 부탁해, 단우야……. 최대한 버텨 볼게.”
“편하게 해도 돼, 현진아. 혹시 이상한 거 보인다 싶으면 눈 감으라고 말할게.”
“…그, 그러지 마. 그게 더 무서울 거 같아.”
동갑즈인 주단우와 강현진.
“하, 지혁이 형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지혁이 형의 기라면 믿을 수 있어요.”
“형만 믿을게요.”
“그럼. 형만 믿어. 최대한 빠르고 안전한 길로 이끌어 줄게. 아, 그런데 내가 그 이야기한 적 있나? 형이 군대 때 일인데, 밤에 점호하다가 이상한 걸 본 적 있거든…….”
“아아악! 그만 얘기해요!”
어쩐지 ‘역대급’ 장면이 다수 나올 것이란 예감이 드는 맏막즈, 도지혁과 천세림, 유찬희.
“유하, 있잖아.”
“……?”
“그냥 들어가자마자 촛불 끄면 리타이어되는 거야? 그럼 안 해도 되나?”
“…되겠냐?”
귀신 소리를 들을 때부터 어떻게든 최단기간 돌파를 꿈꾸며 별 해괴한 방법을 쏟아 내는 에이든 리와 나까지.
어떻게든 도망칠 궁리만 하는 에이든 리에게 어이없음을 담아 대꾸한 후,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불이 꺼져 있는 폐교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뭐, 별일이야 있겠어.’
스스로 ‘이거 공포 영화 시작될 즈음 주인공이 하던 소리 아닌가.’라고 뒤늦게 떠올리게 된 말을.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