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Plan for the Second Life Idol RAW novel - Chapter (34)
그때는 별 이상한 걸 다 준다 싶어 어이가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시스템이 정말 ‘운’을 뱉어 내 주긴 했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생활 전선에 내몰린 지금, 붕붕드링크가 없었으면 나는 벌써 병원 신세를 지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진짜 미래라도 읽나…….’
동기화와 스텟 선택 상승권으로 얻어 낸 내 현재 체력 스텟은 C. 겨우 C급으로 올라서기는 했지만, 피로를 씻어 주는 회복제가 없었다면 이 지독한 일과를 이겨 내지 못했을 터였다.
나는 생각이 난 김에 오늘을 이겨 내기 위해 붕붕드링크를 쓸 생각으로 상태창을 열었다. 내 이름과 스텟이 적혀 있는 가장 아래쪽 하단부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없는 아이콘 하나가 새겨져 있었다.
유명 회사의 피로 회복제 병을 그대로 본뜬 이모티콘을 누르자, 곧 눈앞에 반투명한 시스템 창이 떴다.
『붕붕드링크(잔여: 27개)』
24시간의 피로를 1초 만에 해결!
당신을 최상의 컨디션으로 회복시켜 주는 특제 피로 회복제
※누적 소비 시 일정 확률로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한 병을 소비하시겠습니까?
YES◀/ NO
망설임 없이 YES를 누르자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근육통으로 후들거렸던 팔뚝의 고통이 씻은 듯 가라앉는 게 느껴졌다.
‘어떤 알고리즘을 거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효과 하난 확실해서 좋네.’
나는 현재 붕붕드링크의 힘을 이용하여 거의 80시간째 깨어 있는 중이었다. 오후 6시까지는 연습실에서, 저녁 시간대와 새벽을 이용해서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작용이 걸리긴 하지만…….’
그렇다고 붕붕드링크를 쓰지 않고 버티기에는 내 상황이 너무 급했다. 당장 살 곳이 있어야 뭘 하든 말든 할 것 아닌가.
나는 이대로 아이템을 이용해 한 달 정도 빡세게 나 자신을 굴릴 예정이었다. 최소한 [디어돌>이 끝날 때까지는 생활비 걱정 없이 활동할 수 있게끔 말이다.
나는 작게 한숨을 쉬며 잠깐 목 운동을 하고 다시 손을 놀렸다. 어서 일을 마친 후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했다. 오늘의 아르바이트는 아직 하나가 더 남아 있었다.
* * *
새벽에 물류 센터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돌아온 후, 나는 다시 소속사로 돌아왔다.
가장 먼저 오전에 잡혀 있던 댄스 트레이닝을 끝내고 점심 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이동하는데, 그러는 동안 나는 뜻밖의 인물과 마주할 수 있었다.
“유하야, 안녕.”
“안녕, 오랜만이다.”
나는 눈앞의 현지오에게 가볍게 인사하며 배식판에 반찬을 받았다. 적갈색 염색모를 하얀 비니로 대충 눌러 가린 현지오가 옆에 자연스럽게 붙어 자신 또한 식판을 받아 들었다.
나와 함께 옆으로 조금씩 이동하며 식판에 밥과 반찬을 담는 동안, 현지오는 눈치를 보았다. 그 시선을 느꼈음에도 내가 잠자코 있으니, 놈이 결심한 듯 곧 조심스럽게 내게 말을 걸었다.
“잘… 지냈어? 1차 미션 잘했다는 얘기는 들었어.”
나는 현지오를 바라보지 않고 식판에 배식을 받으며 답했다.
“아는 연습생이라도 출연했어? 아직 방송도 송출 안 됐는데 어떻게 알았냐.”
“스포일러 벌써 다 떴잖아, 그거 좀 찾아봤어. 궁금해서.”
나는 마지막으로 국그릇을 받아 들고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현지오가 바로 앞에 자리를 잡았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같은 수업을 들었던 연습생들은 제각각 뿔뿔이 흩어져 식사를 하면서 우리를 힐끔대고 있었다.
‘…뭐, 괜찮겠지. 굳이 눈치 볼 이유 없으니까.’
물론 원래대로라면 우리 둘은 이렇게 사이좋게 마주 앉지 못했을 터였다. 지금 놈은 데뷔한 선배가 되었고, 나는 연습생에 불과했으니까.
같은 연습실에서 오랫동안 동고동락한 연습생이라도 데뷔만 하면 서로 사는 세상이 달라지게 된다.
그런 만큼 KRM에서는 데뷔한 아이돌과 연습생이 대놓고 친분을 나누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다. 연습생들 또한 이미 데뷔한 선배들과 친분이 있는 놈들을 부러워하면서도 고까워하곤 했고.
나와 현지오가 대화하고 있는 모습은 연습생들을 비롯해 회사 사람들 눈에는 별로 좋아 보이지는 않겠지만, 나는 뭐 어떠냐 싶었다.
내가 먼저 말을 건 것도 아니고, 겨우 한두 마디 나눈 것으로 뭐라 하기엔 [디어돌>에 출연하게 된 이후 현재 내 입지가 좀 애매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현지오, 돌아오고 나서는 처음 대화해 보는 것 같은데.’
현지오는 작년에 KRM에서 내보낸 신인 아이돌 그룹 ‘LON’의 메인 보컬이었다.
나와는 입사 시기가 겹쳐 그가 데뷔하기까지 4년간 같이 연습생 기간을 거친, 일종의 동기.
그와 나는 과거 연습생 기간 내내 비슷한 등급에서 연습을 한 데 이어 데뷔조에까지 함께 들었던 전적이 있었다.
당시 우리 둘은 서로 메인 보컬 포지션을 노렸었는데, 이후 현지오는 무탈히 데뷔에 성공해 현재는 팬들에게 인정받는 멤버가 되어 있었다.
“응원 영상 봤어. 한결이 형이랑 우빈이 형, 리히토랑 닉한테도 고맙다고 말해 줘.”
“아냐, 소속사에서 시켜서 한 건데. 인사 안 해도 돼.”
얼마 전 연습생 PR 영상이 떴을 때, 내 영상의 뒤로는 KRM의 선배 아이돌들의 응원 영상이 붙어 나갔었다. 그중에는 이번에 데뷔한 LON의 멤버들, 즉 나와 함께 연습을 했던 멤버들의 영상도 있었고.
현지오가 멋쩍어하는 것 같았기에, 나는 손사래를 치는 현지오에게 그의 최근 근황에 대한 축하 인사를 건네며 화제를 돌렸다.
“늦었지만 1위 축하한다. 노래 좋더라.”
“아, 고마워. 운이 좋았지.”
LON은 작년 하반기 데뷔를 하고 한 달 반 만에 1위를 해내는 기염을 토했다. 빈집털이가 가능한 시즌도 아니었는데 과연 KRM 출신답게 발매와 함께 국내 최대 음원 사이트 24Hits에 바로 차트인하며 그 이후로도 좋은 성적을 거둔 것이다.
‘연말이랑 연초에 열린 시상식에서 상도 좀 탔고.’
KRM이 오랫동안 칼을 갈고 내보낸 그룹답게 어렵지 않게 승승장구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쪽이 아마 과거 아이딘이랑 대결 구도 타지 않았나.’
나는 문득 든 생각에 몇 년 전의 일들을 다시 회상해 보았다. LON과 아이딘이 동발로 컴백했던 때 우후죽순으로 쏟아져 나오던 비교 기사들이 떠올랐던 것이다.
한쪽은 데뷔와 함께 어느 정도의 인지도를 기본으로 얻고 선배 그룹들의 팬들로부터 내리사랑을 받는 대형 출신 그룹.
한쪽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으로 다수의 코어 팬들을 데리고 출격한 프로젝트 그룹.
두 그룹 모두 각기 만만찮은 배경과 팬층을 가지고 있는 터라 이 두 그룹은 라이벌 그룹으로도 꼽혔던 것 같다.
‘중간쯤부터는 아이딘 멤버들이 찢어지면서 격차가 벌어지긴 했지만.’
어쨌든 내가 죽기 전까지도 LON은 끝까지 잘나가는 그룹으로서 빛나는 커리어를 쌓아 나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라이트닝과는 한 번도 컴백 시기가 겹치지 않아서 방송 쪽에서 마주친 적은 없지만.
그 때문에 현지오를 보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회귀 이후에는 LON이 막 데뷔를 했을 때여서 그쪽이 정신없이 바빴고, 이후에는 내가 [디어돌> 준비를 하느라 바빴기 때문이다.
애초에 연습생과 데뷔한 아이돌이 뭘 얼마나 마주칠 일이 있겠느냐만은.
“유하야, 이제 괜찮아?”
한가로이 그런 생각이나 하며 내가 밥을 먹고 있을 때였다. 수저를 내려놓은 현지오가 망설임이 섞인 목소리로 그렇게 물어 온 것은.
“뭐가?”
“…그……. 몸 상태.”
“…….”
돌려서 말했지만, 나는 현지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건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정신 괜찮냐는 거겠지.’
아마 데뷔 직전, 마지막 즈음 봤던 내 모습에 걱정을 하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나는 답 없이 놈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뭐라 대답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던 것이다.
‘이놈에겐 몇 달 전 일이겠지만, 나한테는 솔직히 몇 년 전 일이라…….’
솔직히 내가 그때 어땠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끔찍하게 힘들었고 거의 몇 달 동안 제정신이 아니었다는 것 정도만 어렴풋이 기억에 남아 있었다.
부모님의 사고에 대한 충격으로 데뷔조에서 떨어진 후, 나는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소속사의 암묵적인 허락하에 한동안은 연습에도 나오지 못했었고.
사람을 제대로 만나지도 않았고 나 자신을 돌보지도 않았는데, 아무래도 현지오가 본 내 마지막 모습은 그때에 멈추어 있는 모양이었다.
-유하야, 미안, 미안해……. 미안해… 원래는 네 자리였는데…….
“…….”
그리고 왜인지, 놈은 내가 데뷔조에서 탈락한 후 자신이 LON의 메인 보컬로 데뷔한 것에 대해 기묘한 부채감을 가지고 있기라도 한 듯했다.
그가 데뷔를 한 건 순전히 현지오 자신의 공이자 노력의 대가일 뿐인데도.
“괜찮아.”
잠시 망설였지만, 나는 더 무슨 말을 덧붙이려 하지 않고 그렇게만 답했다. 그러자 현지오의 얼굴이 안도한 듯 부드럽게 풀렸다.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식사를 했다. 그러던 중 현지오가 다시 한번 입을 열어 나로서는 조금 뜻밖인 화제를 꺼냈다.
“민기 형 소식은 들었어?”
“아, 어.”
김민기는 퇴출당해 소속사를 떠났다. 나이도 찼는데 실력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고, 무엇보다도 이번 월말 평가를 말아먹은 탓이 컸다.
‘과거 내 행보를 그대로 따라간 거지.’
나 또한 과거 극복하지 못한 슬럼프와 우울증, 다리 부상에 따른 연습 부족의 여파로 인해 KRM에서 나와야 했었다. 현재 내 상황과 놈의 상황을 빗대어 보니 정말 운명이 뒤바뀌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은 난 네가 퇴출당할 거라고 생각했었어.”
현지오는 그렇게 툭 내뱉고는, 내가 뭐라 반응을 하기도 전에 지레 놀라 바로 변명하듯 말을 덧붙였다.
“아, 물론 네가 그렇게 되길 바랐단 게 아냐. 넌 정말 잘하지만…… 회복되기까지 소속사가 기다려 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걱정했었고. 알잖아, 우리 회사.”
“…그래, 마지막 기회를 잡아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네 예상대로 이번에 퇴출된 건 아마 나였을걸.”
나는 적당히 그렇게 답했다.
현지오의 말은 틀린 게 없었다. 소속사는 정말 마지막 기회로 내게 [디어돌> 출연권을 안겨 준 것이었고, 과거 내가 그걸 놓치자마자 바로 나를 내보냈었기 때문이다.
KRM은 효율 좋은 소속사였다.
아직 신선한 상품은 최대한 많이, 그리고 열심히 팔아먹고 상품성이 떨어져 가는 것들은 일찍이 버렸다.
그건 KRM이 칭찬받는 이유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욕을 먹는 이유이기도 했다.
“…유하야, 나는.”
두서없이 이런저런 말들을 주워섬기며 잠시 헤매던 현지오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어딘가 불안해하는 듯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냐, 열심히 해. 응원할게. 꼭 데뷔했으면 좋겠다.”
뭔가를 이야기하고 싶은 것처럼 갈등하는 기색을 내비치던 현지오는 결국 본론을 꺼내지 못하고 입을 닫았다.
의미심장한 태도였지만, 나는 현지오의 의중을 굳이 캐물으려 하지 않았다.
‘보는 눈이 많아.’
지금 뭘 듣는 게 그리 좋은 선택 같지는 않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주변에 널리고 깔린 게 회사 사람들이고 연습생들이다. 쉽사리 꺼내지 못할 뭔가 민감하고 예민한 이야기라면 지금 이 자리에서 그걸 듣는 건 현명하지 않았다.
‘모르는 게 약이기도 하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적당히 응원해 줘서 고맙다는 말을 건넸다.
“바뀐 번호 보내 줄게. 그러니까 혹시…….”
그러자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현지오는, 곧 잠시 망설이다가 한마디를 덧붙이고 먼저 자리를 떠났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얘기해, 알았지?”
“…….”
나는 현지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거 뭔가 있는 것 같은데.’
아마 나에 대한 뭔가를 듣고 날 찾아오기라도 한 것 같은데, 막상 현지오가 이야기해 주지 않으니 그게 뭔지 알 방법이 없었다.
‘저렇게 조심스러워할 만한 일이… 뭐가 있지.’
회사 내에서 눈치를 보며 쉽게 꺼내지 못할 만한 이야기라면 회사와 관련된 이야기일 테다.
‘KRM에서 새 데뷔조를 짜려고 하진 않을 거야. 솔로 출격도 어림없고.’
[디어돌>로 어느 정도 인지도를 얻은 연습생을 데뷔조에 포함시키기 위해 일찍이 탈락시키는 소속사는 생각보다 꽤 많았다. 그러나 KRM까지 그러려 하진 않을 터였다. LON을 데뷔시킨 지도 얼마 안 된 만큼 또 한 번 새 그룹을 데뷔시키려 하진 않을 테니까.그렇다고 가동되기 시작한 LON에 나를 합류시킬 생각인 건 또 아닐 것이다. 포지션은 꽉 찼고 난 이미 한번 그쪽 데뷔조에서 떨어진 연습생이었으니까.
‘그럼 대체 뭐지?’
의문이었으나, 나는 아무리 생각해 봐야 나 혼자서는 답을 도출해 낼 수 없을 것임을 일찍이 인정하고 그에 대한 생각을 그만두었다.
‘정 무슨 일이 있으면 물어보면 되겠지.’
생활비 걱정을 하기도 바쁜 마당에 굳이 심력을 쏟아 가며 홀로 결론을 내지 못할 일에 골몰해 있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해가 될 일만 아니면 된다. 그리고… 딱히 내가 소속사에 밉보인 게 없는 만큼, 굳이 내게 해를 끼치려 들진 않겠지.’
그럼 지금은 그걸로 충분하다.
나는 그렇게 생각을 마치고 오후 수업을 듣기 위해 연습실로 향했다.
그런 식으로 터무니없이 한가로운 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다는 걸 끝까지 알지 못하고 말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