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Plan for the Second Life Idol RAW novel - Chapter (342)
342화
“유하야!”
“유하야, 정신 들어?”
눈을 떴을 때, 나는 번쩍대는 손전등 불빛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이게 무슨.’
온몸이 축 늘어진 채 누군가에게 업혀 이동 중이었던 탓에 상황을 파악하는 데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지만.
“네! 여보세요, 여기 XX학교 있는 곳인데…….”
“…구급차 부르지 마세요.”
순간 머리 위로 얼음물이라도 끼얹는 듯한 말에 금세 제대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조금만 더 늦게 깨어났으면 자칫 큰일날 뻔했으니까.
“형, 내려 주세요.”
“안 돼. 일단 여길 나가서…….”
“…저 진짜 괜찮아요. 걸을 수 있어요.”
나는 날 업은 채 계단을 내려가고 있던 주단우에게 그렇게 말하곤 숨을 몰아쉬었다. 아직까지 머리가 지끈거리긴 했지만, 움직일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
“부탁드려요.”
“…….”
주단우는 내 재촉에 잠시 머뭇거렸지만, 곧 나를 내려 주었다. 그에 작게 심호흡한 나는 내가 있는 곳이 어딘지 확인해 보았다. 이제 막 출구 앞까지 와 있는 걸 보니, 아무래도 그리 오랜 시간 정신을 잃고 있던 것은 아닌 듯했다.
“유하 씨, 그래도 구급차는 불러야…….”
“아뇨, 그러지 마세요. 별일 없었으니까.”
“별일이 없어? 무슨 별일이 없어요?”
나는 구급차를 불러야 하지 않겠느냐는 PD에 말에 대답하다 말고 날카롭게 쏘아붙여지는 말에 고개를 돌렸다. 천세림이 기가 막히다는 듯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별일이 없는데 학교 문이 잠기고, 촬영하러 들어간 사람이 수납함에 감금돼 있어요? 형은 정신 잃고 있고? 이게 어떻게 별일이 아니야, 그럼 대체 뭐가 별일인데요?”
“세림아, 잠깐… 너 너무 흥분했어.”
“흥분 안 하게 생겼어요? 저 손을 좀 봐요. 저걸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
나는 흥분한 천세림이 삿대질하는 것을 따라 시선을 옮기고는 잠시 침음을 흘렸다. 줄끈을 잡고 있던 손이 온통 피투성이였기 때문이었다.
‘…너무 꽉 쥐었나.’
버그가 수납함을 열려고 하는 것에 맞서 줄끈을 너무 세게 쥐어 잡았기 때문일까, 손에는 찰과상이 깊게 나 있었다. 살갗이 패여 피가 배어 나오는 상처가 천세림을 더 화나게 한 모양이었고.
자각하고 나니 몰려오는 듯한 쓰라림에 나는 잠시 손을 움직여 보다가 이내 힘을 풀었다. 그리고는 제가 하겠다는 양 휴대폰을 꺼내 드는 천세림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응급실엔 갈게. 하지만 구급차는 안 돼. 상황이 너무 커져.”
“상황은 이미 커질 대로 커졌어요. 여기서 뭘 더 무서워하는데요?”
“무서워할 건 많지. 여기서 더 나빠질 수도 있고. 오히려 한도 끝도 없이 일이 커져 나갈 수도 있단 걸 알아서 구급차를 부르지 말라는 거야. …너도 모르는 거 아니잖아, 천세림.”
“…….”
그제야 천세림은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깨달은 모양이었다. 그가 곧 입술을 짓씹더니 휴대폰을 든 손을 내린 것이다.
‘구급차에 실려 가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어진다.’
이미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것만으로도 수많은 억측이 나올 만했다.
사생 피해를 다수 입은 것으로 유명한 아이돌이 촬영 도중 누군가에게 쫓기다 갇힌 채 정신을 잃고 발견된 것이지 않나. 누구나 흥미로워하고 전말을 추측하고 싶어 할 이야기다.
그나마 이곳에 있는 게 원디어와 오랫동안 촬영을 함께한 ‘메큐원’ 스태프들이기에 망정이지, 다른 촬영장이었다면 벌써부터 어딘가에 말이 나가도 나갔을 것이다.
‘이 사건을 완전히 묻을 순 없겠지만.’
사람의 입은 막을 수 없다. 그러니 촬영장에서 뭔가 일이 있었다더라, 하는 소문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유하 씨? 기억하시는 게 있어요?”
하지만 지금이라면 아직 적당한 선에서 수습이 가능했다. ‘메큐원’ 쪽도 원디어도 더한 피해를 입지 않는 선에서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에게 쫓겼다는 건 기억 나요. 수납함에 들어간 건 스스로 한 거고요. 어떻게든 몸을 지켜야 할 것 같아서.”
그렇기에 나는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 짓기 위해 거짓과 진실을 대충 섞기로 했다.
누군가에게 쫓긴 건 진실. 수납함에 스스로 들어간 것도 진실.
“침입 흔적 같은 건 있었어요?”
“아뇨, 여러 번 뒤져 봐도 침입할 만한 구역은 없었어요. 잠금이 풀려 있는 곳도 없고요. 애초에 이 주변은 줄곧 저희 스태프들이 지키고 있었는데 어떻게 된 건지……. 그래서 더 유하 씨의 기억에 의존해야 할 듯한데, 정말 기억나는 게 아무것도 없으세요?”
“네, 그냥 뭔가에 쫓겼다는 기억만 흐릿하게 남아 있어서요.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어떻게 생겨 먹은 사람이었는지도 기억이 안 나고요.”
“아니, 무슨 이런……. 진짜 귀신이라도 있었던 건지…….”
누가 날 쫓은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건 거짓말.
내 대답에 ‘메큐원’ 제작진들은 모두 혼란에 빠진 듯했다. 몇 번이나 학교를 다시 확인해 보아도 출입구를 제외하고는 몰래 침입할 만한 곳이 없는 데다가, 추격자들이 대기할 곳을 따로 마련해야 했을 만큼 학교에는 숨어 있을 공간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제작진 몰래 촬영 전에 외부인이 몸을 숨기고 있었을 가능성도 없고, 그렇다고 이게 사람의 소행이라 보기도 뭣했다.
“제가 있던 교실에 아무런 흔적도 없었다고요?”
“네. 문도 제대로 닫혀 있었고, 걸쇠가 부러진 곳도 없었고 책걸상도 다 제자리에 있었고요.”
온통 난장판이 되었던 교실이 제작진들이 들어설 때쯤에는 완벽하게 정리가 돼 있었단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내가 몸을 지키기 위해 교실을 뒤집어엎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제작진들은 그에 경악하는 듯했다. 나 또한 헛웃음을 지었고 말이다.
‘가지가지 하는군.’
내가 들어가 있던 수납함을 나무 조각으로 틀어막은 것을 생각해 봤을 때, 버그는 내가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길 바라며 교실을 정리해 놨던 것일 터.
놈과 마주했을 때 느꼈던 적의가 그대로 묻어난 듯한 행동에 나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어찌 됐든 일이 이렇게 돌아간다면 이 지독하게 비현실적인 사건도 대충 둘러댈 수는 있을 듯했다.
“경찰에 신고하는 건 소용이 없을 것 같습니다. 막상 저도 제대로 기억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고, 일이 커져 봐야 ‘퍼니앤위트’ 쪽도 저희도 좋을 게 없으니까요. 앞으로도 오래 ‘퍼니앤위트’랑 같이 일을 하고 싶은 만큼 잡음이 생기는 걸 바라지 않아서요.”
“유하 씨, 하지만 경찰엔 신고해야 하지 않을까요.”
“신고해 봐야 할 말이 없어요. 귀신에 쫓겼다고 말할 순 없으니까요. 괜히 자세한 상황이 새어나가면 일만 더 커지겠죠. 그러니 이 일은 여기서 마무리 짓는 걸로 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서로 입조심하는 걸로 하고요. 촬영분도 폐기할 필요까진 없을 것 같습니다.”
내 말에 PD는 머뭇거리는 듯했다. 사고가 난 촬영분을 그대로 써도 될지에 대해 염려하는 듯했지만, 나는 내 입장을 바꿀 생각이 없었다.
이번 사고로 촬영분을 쓰지 못하는 건 두 배로 손해 보는 짓이었기 때문이었다. 버그가 원디어의 활동을 사사건건 방해해 왔던 걸 생각하면 더더욱 그랬고.
때문에 나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대신 페널티 관련 이야기 나오기 전까지 잘 잘라서 마무리해 주세요. 따로 클로징하는 컷은 못 딸 것 같은데… 이 점만 양해 부탁드립니다.”
“…양해는 저희가 부탁드려야죠. 감사합니다, 유하 씨. 이번 일은 말씀 주신 대로 하되 조금 더 잘 편집해 보겠습니다. 촬영분에서 혹시 오늘 일에 대한 단서가 있는지도 찾아볼 거고요. 이번 일은 정말 죄송합니다. 저희 측이 안전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퍼니앤위트 측 잘못 아니니까 사과하실 필요 없습니다. 안전 관련해서 얼마나 신경 쓰셨는지는 잘 압니다. 이런 일이 발생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저도 너무 무감했고요, 제 안전에. 이번 일은 운이 없었던 걸로 치죠. 다행히 절 발견해 주셨으니까요.”
이번 일로 ‘퍼니앤위트’ 측에 잘못을 물을 순 없었다. 정말로 그들이 잘못한 건 없었고, ‘퍼니앤위트’와의 계약이 종결되면 그 손해는 오로지 원디어에게 있었으니까.
나는 죄책감에 물든 얼굴로 내게 고개를 숙이는 PD에게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현장에 있던 붕대 따위로 대충 처치가 된 손에서는 이제 피가 나오지 않고 있었지만, 제대로 된 치료를 위해서는 응급실에 따로 들러야 할 듯했다.
그렇기에 평소와는 달리 제대로 된 마무리도 하지 못한 채 나는 멤버들을 따라 차에 올라탔고, 이내 문을 닫는 순간에야 조용히 속삭였다.
“…자세한 이야기는 숙소에서 하겠습니다. 지금은 저도 정리가 필요해서.”
“…….”
내가 PD와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있는 힘을 다해 참고 있던 멤버들과도 대화를 나누어야 함을 잊은 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 * *
응급실에 들러 손을 치료하고 숙소에 도착했을 때쯤, 시간은 자정을 넘긴 상태였다.
서울로 오는 동안 내내 아무런 말이 없던 멤버들은 숙소로 오자마자 짜기라도 한 것처럼 나를 바라보았다.
그에 신발을 벗고 거실로 들어간 난 대충 자리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한 가지만 확실히 해 둘게요. 거짓말한 건 없어요. 누군가에게 쫓겼고 그 사람에게서 절 지켜야 할 듯해서 스스로 수납함에 들어갔어요. 손을 다친 건 그 사람이랑 힘 싸움 하느라 줄끈을 너무 오래 쥐어 잡았기 때문이고요.”
“힘 싸움을 하느라 정신을 잃었다고요? 그게 말이 돼요?”
내 말을 되받아친 건 내내 어두운 표정으로 내 손을 노려보고 있던 천세림이었다.
놈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그렇게 물었다. 기껏해야 힘 싸움을 했을 뿐인데 손을 제외하곤 어떤 외상도 없는 놈이 정신을 잃은 게 이해가 가지 않는단 얼굴이었다.
“말 돼. 나 폐소 공포증 있으니까.”
“…뭐라고요?”
그렇기에 나는 스스로 밝힐 생각이 없던 약점을 내 입으로 내뱉고 말았다. 지금은 어떤 말로도 상황을 덮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건 굳이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는데.’
강현진과 에이든 리는 [디자인 유어 아이돌> 시절 이미 내가 좁은 곳을 견디지 못하는 것을 목격한 바 있다.
그렇기에 멤버 모두가 모르던 것은 아니었다지만, 스스로 내가 견디기 어려워하는 것을 입 밖으로 꺼내는 건 예상보다 더욱 껄끄러운 기분을 들게 했다.
“그럼 더… 이상하잖아요. 폐소 공포증이 있는데 스스로 수납함에 들어갔다고요? 대체 누가 뒤를 쫓았던 건데요?”
이런 약점이 멤버들을 더욱 의아하게 할 것임을 모르지 않았으니까.
멤버들은 뒤를 쫓던 사람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한 내 말을 믿는 기색이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메큐원’ 측에는 말할 수 없음을 인지하고 설명을 기다렸던 듯했다.
“그 사람이야?”
그에 대해 대꾸하려던 내 대신 에이든 리가 입을 연 건 그때였다.
나는 조용히 에이든 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내내 말없이 동행하던 에이든 리는 아주 무감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무언가 할 말이 많은 것 같음에도 꾹 눌러 참고 있는 듯한 얼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조금도 가늠할 수 없는 표정.
그리고 지금까지 봐 온 에이든 리는 이때를 제일 조심해야 했다.
“유하 죽이려고 한다는 사람. 맞지? 그거 아님 그럴 수 없잖아.”
“…….”
“죽을 것처럼 무서워하는데 스스로 들어갔다는 건 들어가지 않으면 백 퍼센트 죽는다고 생각했었단 거니까.”
이런 표정을 할 때의 에이든 리는 절대 물러서지 않았으니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