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Plan for the Second Life Idol RAW novel - Chapter (354)
354화
“너는 뭔가를 잃어 본 적이 없지. 잃을 생각조차 해 본 적 없을 테고.”
어쩌면 그래서였을 것이다. 백이현이 또 한 번 내 ‘운명’을 빼앗게 된 건.
‘어떻게 내가 되돌아오게 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계속 생각해 왔었지.’
인생을 두 번 살 수 있는 기회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닐 텐데, 훨씬 더 절박한 사람이야 차고도 넘칠 텐데, 어째서 나였나.
누구도 아닌 ‘원유하’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진 건 왜인가.
그에 대한 이유는 수납함에서 정신을 잃으며 떠올린 여섯 살 때의 기억으로 알게 되었다.
-네가 받을 건 내가 대신 받아 줄게. 약속했으니까, 지켜 주기로.
백이현에 의해 한 번 인생이 바뀌었던 그날처럼,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을지도 모른다고.
-…이상하게 네가 망가지는 걸 그냥 두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최대한 이용당해 주고 싶은 마음이거든.
내게 주어진 두 번째 삶은 또 한 번 누군가가 운명을 바꿔 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 말이다.
‘백이현은 자기 자신을 오류라고 칭했다.’
백이현이 기억하는 어릴 적의 나 또한 어떤 오류였다는 듯싶고 말이다.
다만 백이현과 나의 다른 점은, ‘누군가’가 나를 보통 사람들처럼 만들려고 했던 것이었다.
‘아마 그건 관리자, 혹은 그에 준하는 어떤 존재였겠지.’
이유는 오래 생각할 것도 없다. 백이현이 말했던 것처럼 모든 것을 순리대로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였겠지. ‘운명’이라는 틀 안에 나를 포섭시켜 쉽게 다룰 수 있게끔.
그렇게 생각해 보면, 나는 이른바 ‘예상 가능한 선에서의’ 오류였을 터였다.
‘운’이라고 불리는 일종의 수치값이 편중된 채 태어나게 된 오류. 다만 상정하의 오류이기에 언제고 ‘운’을 다시 조작하여 ‘운명’이라는 시스템에 편입시킬 수 있는 존재.
‘하지만 백이현은 다르다.’
그러나 백이현의 경우, 예상치 못한 오류로 태어나게 된 듯했다. 놈에게는 ‘운’ 자체가 없으니까.
시스템에 의해 휘둘리지 않는, 그렇기 때문에 위협적인 존재. 주변으로부터 ‘운’을 빼앗아 제 것으로 삼으며 ‘운명’이라는 거대한 틀을 조금씩 좀먹어 가는 존재.
그래서 백이현은 필연적으로 탐욕적일 수밖에 없었다. 텅 비어 있는 만큼 주변의 것을 어떻게든 빼앗아 와 자신의 존재를 채워야 했으니까.
호오의 개념이 없기 때문에 오로지 생존에만 집착한다. 그 생존에 필수적이라고 생각하는 존재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런 백이현이 과연 내 죽음을 그저 받아들였을까. 나를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 주는 유일한 도구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놈이.
“…넌 그래서 내가 선택한 마지막마저 빼앗아 버린 거야.”
아마 아니었을 터였다. 백이현은 자신의 존재를 그렇게 쉽게 포기하려 할 놈이 아니니까.
놈은 타인의 운을 제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 내가 시스템을 통해 얻어 낸 ‘운을 보는 눈’을 가지고 있으며, 그로 인해 앞날을 어느 정도 예견까지 할 수 있다.
‘시스템과 비견될 정도의 힘이야, 그건.’
그런 백이현이기에, 어쩌면 가능했던 건지도 모른다.
“…넌 KRM과의 교섭을 내가 [디자인 유어 아이돌>에 나오기 전부터 시작했었지. 정확한 시기를 기억해? 네가 언제 날 찾아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는지. 왜 이전과는 달리 날 찾아와도 되겠다는 판단을 내렸는지.”
“네가 [디자인 유어 아이돌>에 나오기 전의 겨울이었을까. 그때쯤 이상한 꿈을 꿨었어.”
또 한 번 변화를 일으키는 것.
“네가 죽은 날의 꿈 말이야.”
내가 선택한 죽음까지도 바꿔 낼 정도의 ‘오류’를.
백이현은 가만히 눈을 내리깐 채 중얼거리듯 말을 이었다.
“나는 기사를 보고 있었어. 무명 아이돌이 삶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기사. 1보로 나와 자세한 내용조차 적혀 있지 않은, 헤드라인만 쓰여 있던 속보.”
“…….”
“어떤 경위로, 어떻게 네가 거기까지 가게 됐는지 쓰여 있지 않았는데도 알았지. 네가 어떤 경로로 죽음까지 가게 되었는지.”
그때 생각했어, 백이현은 말했다.
“되돌려야 한다고.”
백이현은 고개를 든 채 나를 응시했다. 여전히 속내를 알 수 없는 낯빛이었다.
“겨울이 되었을 때 잠에서 깨어나고 알았지. 내가 본 건 환상이니 꿈 따위니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실제로 일어난, 혹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확신한 이유는?”
“난 단 한 번도 꿈을 꿔 본 적이 없거든. 그런데 갑작스럽게 그런 걸 꿈으로 꿨다는 건 결국 그게 네게 이뤄질 미래기 때문이라는 뜻이겠지.”
그래서였던 것이다. 내가 그 어느 때도 아닌 [디자인 유어 아이돌>이 시작할 때로 되돌아온 건.
‘백이현은 내가 또 한 번 ‘운’을 빼앗기기 전으로 나를 돌려보내려 했던 거다.’
또 한 번 라이트닝으로 데뷔하게 둘 순 없어서. 내가 아직 KRM에 소속되어 있고, [디자인 유어 아이돌>을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있을 때.
즉, 아이돌로서 제대로 된 커리어를 쌓아 나가 내가 목숨을 잃는 일을 막을 수 있게끔.
“그러다 네가 [디자인 유어 아이돌>에 나갔을 땐 뭔가 바뀐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됐지만.”
하지만 백이현이 간과한 게 있다면, 이 ‘회귀’에 백이현의 의지만 끼어 있던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시스템’ 또한 내 운명에 끼어들었으니까.
‘백이현이 가져간 게 내 운명이라면, 백이현과 내 커리어가 일정 부분 닮아 있는 것도 이해가 가.’
원래 ‘원유하’의 운명은 백이현과 비슷했을 것이다. 열악한 환경에서 딛고 일어나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나가 팀을 얻게 되고, 그렇게 아이돌이 되었겠지.
하지만 그 운명은 백이현에게 빼앗겼고, 나는 줄곧 실패만 하다 완전히 거꾸러지고 말았다. 그렇게 선택한 마지막마저 백이현에 의해 되돌려졌고.
‘그걸 ‘시스템’이 중간에 조율하려 한 거다.’
어떻게든 운명을 정상 궤도로 돌려놓기 위해서.
하지만 그 또한 쉽지 않았다. 과거 그랬던 것처럼 백이현이 시스템이 조율 중이던 내 운명에 손을 대게 된 거다.
자신과의 연관성을 전면에 드러내 나를 돕고, 그로 인한 반발과 응원을 동시에 불러일으켜 마침내 나를 1위로 올려놓는 것으로.
원래 시스템이 생각한 내 데뷔는 조금 더 순조로웠을 것이다. 억지스럽지도 않았겠지.
‘그저 운명에 맞춰 적당한 수준에서 응원받으며 아무런 탈 없이 데뷔하면 그걸로 됐었던 걸 테니까.’
하지만 백이현이 선택한 방법은 과격했다. [디자인 유어 아이돌>의 성공에는 엄청난 도움이 되었고 나를 향한 응원도 다수 늘렸지만, 그만큼의 반발도 불러일으키지 않았나.
‘바로 최근까지도 백이현 버프라는 말을 들었으니까.’
놈이 만들어 낸 건 나라는 아이돌이 과연 1위를 할 만한 자격과 능력, 실력이 있느냐는 논란이었다. 원래 시스템이 예정해 둔 것과는 다른 분위기가 형성된 거다.
‘그리고 그게 새로운 버그를 낳았다, 는 건가.’
그것은 백이현도, 시스템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운명’을 조율하려는 시스템과 모든 운명을 빗겨 나가는 백이현의 조합이 그런 위험을 불러일으킬 줄은.
“…하.”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대체 언제부터, 어디서부터 꼬인 건지를 알 수 없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모든 전말을 알았음에도 여전히 버그에 대한 단서를 잡아낼 수 없다는 것이었고.
“다시 아이돌이 되고 싶었던 거 아니었어?”
“뭐?”
그때였다. 백이현이 뜬금없는 말을 입에 올린 건.
나는 손을 내리고 백이현을 바라보았다. 놈은 표정 없는 얼굴로, 정말 의문이라는 것처럼 고개를 기울인 채였다.
“나는 네가 살고 싶어 하는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왜 화가 났는지 모르겠어서.”
“…대체 어떻게 생각해야 그런 결론이 나오는 건지 모르겠는데. 넌 단 한 번도 내 동의를 구한 적이 없잖아.”
여섯 살 때도 스물다섯 살 때도,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로 놈에게 운명을 빼앗겼을 뿐이었다.
나를 다시 되살려 낸 것에 대해 백이현을 탓할 생각은 없다. 회귀 초반부터 다시금 얻게 된 두 번째 생에 대해서는 별다른 불만이 없었으니까. 오히려 백이현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게 준 유일한 ‘운’이라고 생각하고 있기도 하고.
다시 아이돌을 하게 된 것도 운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기회는 아무나 얻을 수 없겠지. 어쩌면 감사하게 생각할 일일지도 모른다.
“내가 어떻게 화가 안 날 수가 있지? 나에게는 널 인간으로 인정해 주길 바란다면서, 넌 단 한 번도 나를 제대로 된 인간으로 인정한 적이 없는데.”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건, 애초에 백이현은 내 의사를 조금도 신경 쓰지 않기 때문이었다. 놈은 결국 나를 도구로 쓸 뿐이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이제야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어떻게 너랑 다시 형제니 뭐니 하는 이름을 달 수가 있겠어. 그 이름하에 넌 언제고 내 운명을 휘두르려 들 텐데.”
대체 왜 내가 백이현을 이렇게나 경계할 수밖에 없는지.
“나는 너에게 해를 끼치지 않아. 내가 왜 그렇겠어, 네가 살기를 가장 바라는 건 나인데.”
내 말에 백이현은 미간을 찌푸렸다. 내 말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처럼. 그러면서 놈이 한숨을 쉬듯 한 말에 나는 대답했다.
“아니, 달라. 네가 제일 위협적이야, 백이현. 날 죽일 가능성이 제일 큰 건 바로 너니까.”
분명한 사실을, 그러나 분명한 목적을 담아서.
“당장 이번 생에도 넌 나를 죽일 뻔했고.”
“…뭐?”
백이현은 날 도왔다고 생각했겠지만, 실은 그 누구보다도 손쉽게 나를 죽일 뻔했을 이번 생의 일. 백이현이 그토록 내 생에 집착한다면 아마 순조롭게 놈의 입을 다물게 할 수 있을 카드를.
‘나도 모르는 새 몇 대 얻어 처맞았다는 걸 알았다면 나도 한 대쯤은 패 줘야 하니까.’
그 정도는 말해야 할 것 같았으니까, 나 또한.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