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Plan for the Second Life Idol RAW novel - Chapter (361)
361화
‘권 실장이군.’
PD가 입을 연 순간 바로 알 수 있었다. 지금 김민기의 뒤에 있는 건 권 실장이라는 사실을.
계기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나다.
‘꼴 받으셨다, 이거지.’
지난번의 도발로 권 실장의 심사가 틀어진 거다. 딴 우물도 한 번 파 볼까, 하는 생각을 할 정도로.
‘시기상으로 따졌을 때 애초부터 짜고 김민기를 내보낸 건 아니겠지.’
내가 알기로 ‘디어돌’의 출연 신청은 11월에 마감되었고, 나는 12월쯤 본격적으로 권 실장의 눈 밖에 났으니까.
즉, [디자인 유어 아이돌>에 나오게 됐다는 소식을 듣고 권 실장이 김민기에게 먼저 연락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김민기야 권 실장의 도움을 받지 않을 이유가 없었을 테고.
그렇게 권 실장을 뒷배로 두었음에도 김민기가 다시 KRM 소속이 아닌 개인 연습생으로 출연한 이유는 이어지는 인터뷰를 통해 알 수 있었다.
“같은 KRM 소속이었던 김민기 연습생이 개인 연습생으로 출연하게 된 것에 대해서는 복잡한 심경이 드셨을 것 같습니다. 첫 테마 송 센터로 낙점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그랬을 것 같고요. 힘든 길이니만큼 응원의 마음도 컸을 것 같은데요.”
“…….”
이번 시즌에서 PD가 선택한 이야기는 개인 연습생의 성공 신화라는 것을 몰라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시즌1과 시즌2의 1위는 전부 대형 기획사 소속 연습생이었지.’
시즌 1의 1위는 나. 시즌 2의 1위는 센터를 맡았던 3대 연예기획사 출신 연습생.
‘1위를 할 만했다.’는 의견이 있다면 한편으로는 ‘결국 스포트라이트는 대형 기획사 소속 출신들에게만 주어진다.’는 비난 의견이 따라온 것도 당연했다.
여기에 저조한 시청률에 따른 자극적인 소재의 필요성까지 더해진 지금. KRM과 연이 닿아 있으면서도 신분적으로는 어떤 소속사도 없는 김민기를 발견했을 때, PD는 생각했을 것이다.
“자신이 먼저 걸었던 길의 초입에 선 김민기 연습생에게 할 말이 있다면요? 혹은 예감하고 있을 수도 있겠는데요. 함께 고락을 나누던 김민기 연습생과 같이 활동하게 될 날을요.”
어떤 손해도 보지 않는 상황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한 편 만들어 내 볼 수도 있겠다고.
‘뻔하군.’
KRM와 에이넷의 관계도를 좀 더 공고히 하면서, 시즌이 진행되는 내내 이어져 온 고질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법도 같이 꾀한다. 여기에 먼저 데뷔한 나를 불러다 놓고 시즌 1에서 충분한 효과를 봤던 감동 서사까지 노리고 있는 거다.
연습생 하나를 추켜세워 주는 대신 얻어지는 게 수도 없이 많은 장사다. 굳이 뺄 필요가 없다.
‘그건 권 실장에게도 그럴 테고.’
권 실장 또한 나쁠 건 없다. 아직 김민기와 정식으로 계약을 체결한 게 아닌 이상 서바이벌이 진행되는 중 혹시나 김민기가 거꾸러진대도 책임지지 않아도 되니까.
김민기가 무사히 데뷔를 하면 이후 개인 활동의 매니징을 맡아 준다는 명목하에 새로 계약을 체결하면 되고, 데뷔에 실패한다면 지원을 끊으면 될 일이다.
‘여기에 내게 경고까지 해 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겠지.’
KRM가 [디자인 유어 아이돌>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아이돌은 나 하나뿐만이 아니라는 경고 말이다.
지금 내 자리는 결국 KRM에 의해 얻어진 것이니 주제 파악하라는, 활동 종료 후 KRM가 준비해 둔 자리는 언제든 다른 놈으로 대체될 수 있다는 협박까지도 함께 할 수 있겠고.
“지금 이 시점에서 확신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 민기 형의 노력 여하에 따라 다를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걸어 본 길이라 해서 뭔가를 많이 알고 있는 건 아니지만, 쉽지 않다는 것만은 확실하게 알고 있으니까요.”
“그, 그런가요?”
다만 그건 협박을 협박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놈에게나 효과가 있는 거다.
‘KRM이 나를 내쳐 준다면 오히려 이득 아닌가?’
생각했던 대답이 아닌 듯, 답지 않게 당황하며 말을 더듬는 PD를 향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쪽이 무슨 대답을 원하는 것인지는 뻔했지만, 굳이 맞춰 줄 생각은 없었다.
“출연 소식을 들었을 때도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쉽지 않은 길이니만큼 꽤 힘든 여정이 되겠다고요. 그러니 민기 형에게 해 줄 말이 있다면 최선을 다하라는 말밖에 없지 않을까요, 그거 말고는 지름길이 없으니까.”
애초에 김민기에게도 [디자인 유어 아이돌>에도, KRM에도 애정이 없는데 굳이 장단 맞춰 줄 이유가 뭐 있겠나 싶었던 것이다.
‘대놓고 삐딱선 탈 생각도 없지만, 신파극에 어울려 줄 생각은 더더욱 없어서.’
[디자인 유어 아이돌>과 KRM가 주도한 신파극은 이미 시즌 1때 충분히 겪었다. 상대를 바꿔 시즌 3에서 비슷한 구도를 연출하는 데 또 한 번 이용당해 줄 생각은 없었다.“…그게 전부인가요?”
“네.”
예상과는 다른 내 대답에 PD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무래도 같은 KRM 출신인 만큼 실제 관계가 어떻든 대충 장단을 맞춰 줄 거라 지레짐작했던 모양이었다.
제멋대로 설정한 관계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해도, 저쪽이 원하는 서사를 살릴 만한 말을 조금도 해 주지 않는다는 쪽에서 나는 기대를 저버린 거고.
“아니, 뭐……. 음, 그럼 이쪽은 어떨까요. 오늘 평가에서 유독 김민기 연습생에게 엄격한 모습을 보였는데요. 자신의 데뷔곡을 커버하는 형을 보며 했던 생각은요? 연습생 시절과 비교해 본다면 어땠나요?”
그러니만큼 PD는 어떻게든 유의미한 대답, 혹은 김민기와 내 관계도를 좀 살려 볼 수 있게끔 편집으로 만져 줄 수 있는 말을 원하는 듯했지만.
“민기 형의 연습생 시절에 대해서는 별달리 덧붙일 말은 없을 것 같습니다. 시간이 지난 만큼 형도 바뀌었을 테고, 그렇게 바뀐 형에 대해선 저보다는 같이 연습하는 분들이 더 잘 알 테니까요. 오늘 퍼포먼스에 대해서는 현진이 형에게 물어보시는 게 더 유의미한 답을 얻을 수 있을 테고요. 창작자는 그쪽이라.”
나는 이번에는 대답을 아예 회피함으로써 PD의 의도를 무시하는 길을 택했다. 평가 쪽으로 두루뭉실한 대답을 하면 어떤 쪽으로든 편집에 의해 이용당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장 내가 출연할 때도 비슷하게 편집당한 적이 있고.’
당시 강현진의 실력에 대해 주어를 넣지 않고 호평을 한 것이 그를 까는 쪽으로 활용된 걸 목격했던 적이 있으니까.
김민기의 실력에 대해 무슨 말을 하든 편집에 의해 이용될 가능성이 충분하다면, 아예 대답하지 않는 게 더 나았다.
“그리고 민기 형과 제가 같은 연습생 시절을 보낸 만큼 제가 말을 얹는 게 맞나 싶기도 하고요. 혹시 모르잖아요. 편파 판정 논란이라도 날지.”
“……! 허.”
그에 PD 쪽에서 헛웃음이 터졌다. 내 의도를 알아챈 듯, 이것 보라는 듯한 얼굴이었다.
‘굳이 억지 부려서 신파 끼워 넣는 걸로 괜한 말 만들어 내고 싶냐?’
내 말은 결국 그런 의미였으니까.
적당한 수준의 신파야 프로그램에 재미를 준다. 하지만 정도 이상의 신파, 그것도 시즌 1에서의 캐릭터를 다시 한번 꺼내 이용하는 것도 프로그램적으로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닐 터였다.
애초에 시즌 1 때와 달리 김민기와 내 서사는 없는 것을 만들어 내는 무리수에 가까우니 반발이 올라올 여지도 충분하고 말이다.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가 보셔도 돼요. 남은 촬영은 자유롭게 부탁드립니다.”
그에 경고 차원에서 꺼낸 말을 PD는 받아들이기로 한 모양이었다. 무슨 말을 해 봤자 내가 김민기에 대해 협조적으로 굴어 줄 일은 없을 거란 걸 이제야 깨달은 듯이.
“수고 많으셨습니다.”
때문에 나는 더 이상 괜한 질문을 들을 것 없이 방을 나설 수 있었고.
“원유하, 얘기 좀 하자.”
“…….”
영 보기 싫은 얼굴과 마주칠 수 있었다.
* * *
‘또 계단이군.’
나는 김민기를 따라 걸음을 옮겨 도착한 곳에서 헛웃음을 터뜨렸다. 김민기가 벌써부터 CCTV가 설치돼 있지 않은 계단참을 파악한 후 나를 데려왔다는 점에서 깨닫는 점이 하나 있었던 것이다.
“너 정신 나갔냐?”
“말 참 예쁘게 하시네요, 형. 정말 바뀐 게 없어 보여요.”
“나 엿 먹이려고 하는 거냐고.”
이 자식이 달라진 게 조금도 없다는 것 말이다.
김민기는 주변에 누구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에는 거리낌 없이 욕부터 내뱉고 봤다. 연습실에서부터 내내 참는 듯하더니 굳이 더는 참을 필요가 없다 판단한 듯했다.
“연습실에서도 그렇고… 너 권 실장님한테 얘기 들은 거 없어? 인터뷰하는 거 다 들었어. 무슨 정신머리로 그따위 말들이나 해? 더 좋게 말할 수도 있잖아. 관계도 꾸며 내는 게 그렇게 어려워? 분위기 파악 못 해? PD가 너한테 무슨 말 하길 바라는지 진짜 몰랐냐?”
“몰랐죠.”
“모른다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원유하! 너처럼 눈치빠른 새끼가 뭘 모른다고…….”
“몰라야 하는 게 당연하지 않아요? 전.”
“뭐?”
“굳이 형 살리겠답시고 위험을 무릅쓸 이유가 저한테 없단 뜻이에요.”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말이다.
마이크는 껐고, CCTV는 없다. 솔직히 이 대화가 녹음되어도 상관없기도 했지만 말이다.
“절박한 건 형밖에 없으니까. 형의 데뷔를 응원할 만큼 저희가 친했던 건 아니잖아요.”
이 대화가 유출돼 봤자 손해를 보는 건 김민기뿐이니까.
‘KRM와 [디자인 유어 아이돌> 제작진이 꾸며 낸 서사를 팔기 위해 나를 이용하려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고.’
이 사실이 밝혀지면 손해를 보는 건 김민기와 KRM, ‘디어돌’ 제작진뿐이다. 내가 저 서사팔이에 도움을 줬다면 모를까 선을 그은 입장에서 나는 피해를 볼 게 없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분명 서사를 좋아해. 그게 어느 정도 꾸며진 이야기라는 걸 짐작했다 해도 적당히 눈감아 줄 만큼.’
하지만 그것도 정도껏이다. 약간의 진실을 기반으로 부풀려진 이야기나 주작이라는 걸 대충 눈치 깠다 해도 아직 증거가 나오지 않아 조작되었다는 걸 짐작할 수만 있는 이야기까지. 딱 그 정도가 사람들이 서사를 소비할 수 있는 한계선이었던 것이다.
“굳이 약점 잡힐 만한 일을 사서 만들고 싶진 않거든요, 전.”
그러니 김민기와의 관계도는 어느 쪽으로 보나 내겐 득 될 것이 없었다. 언제든 들통날 수 있는 뻔한 거짓말에 힘을 보태 주는 것만큼 바보 같은 일은 없으니까.
‘이런 놈에게 힘 실어 주고 싶은 생각도 없고.’
김민기가 나와의 관계도를 꾸며 내려고 하는 이유는 결국 투표 때문이었다. 나 때문에 [디자인 유어 아이돌>을 봐 주시는 유어원이 의리를 위해 김민기에게 투표해 주는 걸 원하는 것이다.
누구에게 투표하든 그건 팬분들의 자유이니만큼, 굳이 억지로 막을 생각 같은 건 없었다.
“씨발, 그게 아니라 그냥 네 인지도 때문이겠지. 괜히 뺏기기 싫다 이거잖아.”
“부정은 안 할게요. 그 이유도 없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그 투표의 이유에 내가 있다면 굳이 김민기에게 투표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김민기는 팀 활동을 해선 안 되는 놈이니까.’
자신을 위해 쉽게 주변을 희생시키고, 깎아내리고, 이용하는 놈이다. 내가 계기가 되어 그런 놈에게 투표가 들어가는 것이 달가울 리 없었다.
김민기가 데뷔하고 말고는 솔직히 알 바 아니다. 데뷔를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었던 것이다.
‘애초에 나랑 같은 팀으로 활동할 것도 아니고.’
데뷔에 성공한다 해도 놈과 내가 얼굴을 마주할 일이 많지는 않을 터였다. 같은 로드 엔터라 한들 팀이 다르고 관리하는 부서가 다를 테니까. 그런 만큼 김민기가 소속된 팀이 망하든 말든, 그것도 내 알 바가 아니었고.
그러니 굳이 힘을 빼 가며 저놈이 데뷔하지 못하게 막을 필요까진 없었지만.
“제 팬분들이 형한테 속아 넘어가는 걸 보고 싶진 않거든요, 저.”
“이 새끼가…….”
날 거쳐 저놈의 팬이 되는 분들이 있다면 거기에 힘을 실어 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 마음에 보답할 생각을 할 놈이 아니니까, 저 자식은.
“…그딴 식으로 굴어도 되냐? 너도 웬만해서는 내가 데뷔하는 게 마음 편할 텐데. 우리 사이엔 얽혀 있는 문제가 좀 있잖아. 여기랑 비슷했지? 그때 내가 굴렀던 장소 말이야.”
오히려 배신한다면 모를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