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Plan for the Second Life Idol RAW novel - Chapter (363)
363화
-저 사람이지? 너랑 연습생 같이했던 거.
김민기를 다시 만난 건 놈과 내가 동일하게 갓 2년 차가 됐을 때쯤이었다.
설을 기념해 온갖 아이돌을 불러다 놓고 진행되는 방송사 주관의 체육 대회. 어떻게든 기회를 놓치지 말고 분량을 만들고 오라는 사장의 압박하에 참석한 촬영에서 나는 김민기를 마주했다.
-알은 척도 안 하네. 안 친했냐?
-…안 친했지.
권혁규의 물음에 나는 그렇게만 대꾸했다. 체육관에 입장하기 전,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은 채 입장을 기다리고 있는 김민기는 좋아 보였다.
아이딘 멤버들 사이에 섞여 여유롭게 휴대폰을 바라보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등 편안해 보였으니까.
그런 놈의 얼굴이 바뀐 건 나와 시선이 마주했을 때였다.
-……!
나와 마주친 김민기는 못 볼 것을 보기라도 한 것처럼 바로 시선을 돌렸다. 그렇게 해 놓고서는 제가 본 것이 맞는지 확신하고 싶다는 듯 다시 한번 이쪽을 바라보곤 곧 불쾌한 듯 인상을 찌푸렸지만 말이다.
그 순간 깨달았다. 김민기가 나를 마주하는 걸 거북해하고 있다는 것을.
이유야 추측할 것도 없었다. 김민기는 날 밀치고 대신 [디자인 유어 아이돌>에 나갔지 않나. 내가 자신의 일터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자신이 저지른 죄를 아무렇지도 않게 마주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까.
‘굳이 뻗댈 생각은 없었는데 말이지.’
로빈슨의 사장과 라이트닝의 멤버들은 한창 떠오르는 신인이던 김민기와 어떻게든 챌린지라도 찍어 보라고 성화였지만, 나는 묵묵부답으로 응대했다.
김민기 같은 놈에게 들러붙고 싶지 않은 것도 이유였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스스로 경계하고 있었기 때문도 있었을 것이다.
김민기라는 놈이 어떤 인간인지 나는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경계는 합당했던 듯했다.
-아, 저 새끼 왜 자꾸 쳐다봐……. 빡치네. 쳐다볼 거면 와서 알은 척이라도 하든가.
-형, 저 사람이랑 싸웠어요? 왜 자꾸 저렇게 봐?
-뭐 마음에 안 드는 거 있음 직접 얘기라도 하든가, 저거 시비 트는 거 빼박이지? 성질 같아선 진짜 한 대 치고 싶네.
김민기는 더없이 노골적인 시선으로 이쪽을 바라보는 걸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체육관에 입장한 후부터 김민기는 굳이 우리를 쳐다보는 걸 숨길 생각을 하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보면 내내 스치듯 시선이 마주할 정도였으니까.
김민기는 나를, 그다음으로 라이트닝 멤버들을 계속해서 훑었다. 라이트닝이라는 팀이 어떤 팀인지 판단하고 싶다는 듯, 혹은 빌미를 주려는 것처럼.
처음이야 멤버들도 태도를 잘 관리했다. 사장에게 괜한 사고를 치지 말라고 한소리 얻어 들은 상황이기도 했고, 다들 김민기와 괜히 나쁜 쪽으로 얽혀 봤자 좋을 게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김민기의 불쾌한 시선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것에 인내심이 짧아지는 것만은 어쩔 수 없었다.
멤버들은 곧 김민기의 시선을 맞받아치듯 아이딘이 있는 쪽을 노려보기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곧 아이딘의 다른 멤버들과도 시선이 마주치게 됐다.
서로 표정이 안 좋아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터.
-그만해. 쳐다보지 마.
-아, X발. 어떻게 안 쳐다봐. 저 새끼가 계속 시비 거는데.
-시비에 넘어가지 말란 소리야. 말조심하고. 괜한 거 찍혔다간 우리만 손해야.
제지는 했다. 멤버들도 수긍하곤 화를 숨긴 채 어떻게든 촬영에 전념하려 애를 썼고.
그렇게 상황을 정리하려는 건 나뿐만이 아니기도 했다.
-민기랑 사이가 좀 안 좋나?
-…예?
-우리 쪽 친구가 자꾸 시비 거는 것 같아서. 민기가 그쪽한테 뭔가 억하심정이라도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조심해요. 괜히 넘어가지 말고. 나도 조심이야 시키겠지만, 내 말을 매번 따라 주는 건 아니라. 괜한 사고라도 나면 서로 안 좋잖아. 주의해야죠.
당시 계주로 뽑혀 나갔다가 아이딘의 리더를 맡고 있던 도지혁에게 그런 말을 듣기도 했었으니까.
계주로 선발된 아이돌끼리 자리를 맞추고 있을 때, 스스로 내 옆에 선 도지혁은 거리를 가늠하듯 정면을 바라보는 자세로 그렇게 이야기했다. 촬영으로 잡히지 않을 만큼 입 모양을 최소화한 채였다.
내가 자신을 돌아보는 것에 맞추어 가볍게 인사를 할 뿐이라는 듯 눈인사한 도지혁은 다시 정면을 바라보고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계주를 끝낸 다음에는 말한 대로 아이딘 쪽으로 돌아가 김민기를 주의시키는 듯 보였고.
‘…당연하기야 하겠지, 저쪽 팀에 김민기 같은 놈만 있을 리 없으니까.’
이제 생각해 보면 그게 최초였던 듯싶다. 아이딘이라는 팀에 대한 인상이 바뀌었던 게.
김민기가 소속되어 있는 팀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이딘이라는 팀의 멤버들이 저놈과 비슷할 거란 생각을 했었던 거다.
-괜한 짓할 생각하지 마요, 형. 왜 자꾸 이상한 행동을 해요?
-내가 뭘 어쨌는데?
-자꾸 시비 걸잖아요, 다른 팀에. 그럴 이유가 대체 뭐가 있는데요?
-시비라니, 오해 살 만한 말을 하네. 그냥 보는 거야, 같은 소속사였던 애가 있어서. 어떻게 사나 궁금해할 순 있잖아.
-…뭘 하든 형 마음이지만 제발 사고만 치지 마요. 괜한 잡음 나는 건 사절이니까. 남한테 피해 끼치고 싶지도 않고.
-결과적으로는 우리한테만 피해 안 오면 되는 거 아냐? 나도 머리는 굴려~. 쓸데없는 걱정할 필요 없으니까 눈치 좀 그만 줘, 너나 도지혁이나. 누가 보면 라이트닝 리더가 멤버인 줄 알겠네.
-지금 제가 걱정하는 건 그게 아니라……. 하, 어디 가요.
-화장실. 애초에 그러려고 나온 거니까. 뭘 더 들을 이유를 모르겠다, 난. 괜히 사람 피곤하게 하지 마, 현진아. 괜한 데 신경 쓰는 것도 그만하고.
당연히 모두의 이해관계가 다를 수밖에 없을 텐데. 성격도, 원하는 것도 다를 테고.
도지혁의 주의에도 이어지는 시선에 결국 내가 화장실을 가겠답시고 체육관을 나선 김민기를 따라나섰을 때였다. 강현진과 김민기가 대화하는 걸 목격한 건.
골치 아픈 듯 내내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강현진은 김민기가 저를 지나쳐 화장실로 들어가는 것에 결국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러다 이내 어정쩡하게 서 있던 나와 눈이 마주치고는 놀란 듯 얼굴을 굳혔고.
-…죄송합니다.
이내 어색한 대치 끝에 그 한마디를 남긴 채 나를 스쳐 지나갔었다.
덕분에 나는 아이딘의 멤버들이 생각보다 친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것을, 저쪽도 저쪽 나름대로 문제가 많아 보인다는 걸 알게 됐었고.
그 때문에 생각이 많아져 경계가 소홀해졌기 때문이었을까. 혹은 촬영이 거의 막바지에 다다를 때까지도 아무 일이 없다는 것에 미리 안심해 버렸기 때문이었을까.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먼저 들어가요, 저 포커즈 선배님들한테 인사 좀 하고 갈래요. 언제 또 볼 수 있을지 모르니까.
-알겠어. 인사 마치면 바로 팬석으로 와. 팬분들한테 인사 좀 하고 가자. 나머지 애들은 흩어지지 말고 조심히……. 권혁규, 너 내가 저쪽 보지 말라고 몇 번을….
-아니, 저 새끼 지금 이쪽으로 오고 있잖아. 이제 와서 알은 척하려는 건가? 아니, 이쪽으로 오는 게 아닌 것 같……. 뭐야, 무슨… 야, 이희민! 조심……!
-아악!
선배들부터 시작해 출연진들이 클로징을 하고 천천히 퇴장을 시작했을 때쯤이었다. 북적대는 인파를 따라 김민기가 이쪽으로 다가오다 스스로 거꾸러진 것은.
타이밍이 기가 막혔다. 출연진들 사이에서 평소 동경하던 선배 아이돌을 발견한 이희민이 인사를 위해 우리와 떨어진 사이 김민기가 사고를 쳤으니까.
인파 사이를 파고들던 이희민 쪽으로 다가간 김민기는 놈에게로 바짝 붙어섰고, 곧 이희민과 시선이 마주쳤을 때쯤 놈과 스치며 일부러 바닥을 굴렀다.
-민기 형! 괜찮아요?
-뭐야? 무슨 일이야?
-여기 부상이요!
이희민이 발을 걸기라도 한 것처럼 아주 교묘하게 말이다.
김민기는 구르자마자 냅다 제 발을 부여잡았다. 덕분에 인사하고 있던 팬분들 사이에서는 비명이 터져 나왔고 말이다.
이희민은 굳은 채 제앞에서 구르는 김민기를 두고 어떤 행동도 하지 못한 채 머뭇거렸다. 그러다 도망가기라도 할 것처럼 놈이 뒤도는 것을 보고 나는 이희민을 잡아끌었다.
-가면 안 돼.
-내, 내가 한 거 아니야. 나, 나는 아무런 상관이…….
-알아. 그래도 가면 안 돼. 나랑 같이 가자. 이리 와.
이희민이 여기서 자리를 뜨면 상황이 더 심각해질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동료의 발을 건 다음 도망친 아이돌로 퍼질 게 분명했으니까.
‘여기서 이름을 빼긴 글렀다.’
퇴장을 찍고 있던 팬들만 수십이다. 이희민과 부딪친 김민기가 바닥을 굴렀다는 사실은 곧 온갖 커뮤니티로 퍼져 나갈 것이다. 직전까지 김민기와 라이트닝이 서로를 대치하고 있던 만큼, 온갖 영상이 짜깁기돼 이희민이 발을 걸었단 식으로 이야기가 퍼져 나가겠지.
-죄송합니다. 저희 멤버랑 잘못 부딪쳐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 같아서……. 저희가 도울 일이 있으면 뭐든 말씀 주세요. 일단 자리를 옮겨서 치료부터…….
-아, 만지지 마세요. 다리 더 삐면 책임지실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죄송합니다. 희민아, 스태프분 어디까지 오셨어? 네가 좀 데려와. 빨리 치료해야 할 것 같다.
-어, 어? 알, 알겠어. 죄… 죄송합니다.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그렇다면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이라도 해야 했다. 어떻게든 ‘실수’였음을 표면화하기 위해선 김민기에게 미안하단 말을 해야 했고.
내내 머뭇대기만 하는 이희민에게 우선 직원을 불러오는 역할을 맡긴 채 놈이 붙잡고 있는 다리를 확인하고 있을 때였다.
-그니까 왜 눈앞에 나타나. 거슬리게.
-…….
김민기가 귓가에 대고 이죽거린 것은.
그에 내가 놈을 바라보고, 김민기가 다시 제 다리를 부여잡고 제 다리에 대해 엄살을 부리려 할 때였다.
-괜찮아요? 형.
-어, 현진아. 괜찮아. 그냥 다리를 좀 삔 것 같은데…….
-…그러네요. 괜찮을 것 같네요.
-…어?
-걱정 안 하셔도 되겠다고요, 형. 다친 거 아니니까. 삔 건 아니고 기껏해 봐야 쓸린 상처 정도니까.
다가온 강현진이 김민기를 보며 표정 없는 얼굴로 그렇게 내뱉은 건.
그에 김민기의 표정이 이상해진 직후였다.
-아프겠네. 민기야, 괜찮아?
-…어, 어. 좀 쓰리긴 한데…….
-그러니까 내가 뛰어다니지 말라니까. 우린 몸이 재산인데 크게 다치면 어쩌려고. 일단 오늘내일 정도는 연습하지 말고 쉬는 게 좋겠다. 라이트닝 리더분도 멤버 잘 챙겨 주시고요.
-…….
-‘서로’ 부주의해서 일어난 일 같으니까. 멤버분도 많이 놀라셨잖아요.
-지, 직원분 데려왔어요.
-감사해요. 이쪽 봐 주시면 됩니다. 민기야, 다리 좀 보자.
도지혁이 가세하듯 말을 얹은 건.
멤버를 걱정하는 듯하지만, 한편으로는 탓하는 듯한 말투. 이희민이 일방적으로 발을 건 게 아니라 서로가 부주의해 일어났을 뿐인, ‘실수’였음을 단정 짓는 말투.
그에 나는 깨달았다.
-…죄송합니다. 폐를 끼쳤네요.
-저희가 더 죄송하죠. 이번 일이 서로에게 힘들 건 확실하잖아요.
도지혁과 강현진이 라이트닝을 도우려 한다는 것을.
-이번 아이돌 체육회에서 듣보그룹 멤버가 ㅇㅇㄷ 김ㅁㄱ한테 기싸움 존나 걸다가 발 걸어서 넘어뜨렸다는데 찐임?
그 조력에도 불구하고 라이트닝은 예정된 논란을 피해 가지는 못했지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