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Plan for the Second Life Idol RAW novel - Chapter (368)
368화
김민기는 내 여유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원유하! 씨X, 정신 좀 차려. 나한테 이래도 되냐? 너 이렇게 멍청한 새끼 아니었잖아. 좋게 갈 수 있는 기회를 줬는데도 왜 이따위로 뻗대. 진짜 영상 풀어도 된다, 이거냐?”
뭐가 됐든 주도권은 결국 자신이 쥐었다는 듯 의기양양한 말투.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김민기가 이전과는 달리 초조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바뀐 분위기. 어딘가 변화한 자신의 위치. 김민기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형, 뭐 좀 물어봐도 돼요?”
“뭐?”
“형은 일이 잘못될 때는 생각 안 해 봤어요? 형이 만들려고 했던 관계도가 조금의 진실조차 없는 조작으로 밝혀질 경우나, 형이 가지고 있다는 그 영상을 풀어 루머를 퍼뜨렸을 때 원디어를 비롯해 에이넷이 어디까지 손해를 보게 될지에 대해서요.”
주도권을 쥔 건 이제 자신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을.
내 말에 김민기는 바쁘게 눈을 굴렸다. 무어라고 대답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듯하기도 했고, 뜬금없는 질문을 던진 내 의도를 가늠하려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다 김민기의 눈이 내 뒤쪽의 문을 향했을 때, 나는 김민기가 드디어 자신이 어디에 있는 것인지 깨달았음을 알 수 있었다.
놈과 내가 있는 곳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촬영장. 어디에 CCTV와 녹음기가 있을지 알 수 없는, ‘약점’을 잡히는 게 너무나 쉬운 공간이었으니까.
나는 촉각을 곤두세운 채 내 뒤를 주시하는 김민기의 앞에서 천천히 말을 이었다.
“형이 만들어 내고 싶은 서사가 약점이 되긴 너무 쉽잖아요. 형과 내가 그렇게 인연이 깊지 않다는 건 KRM 소속이었던 연습생들이라면 누구나 아는 거고, 언제 어떻게 폭로가 터져 나올지는 누구도 모르는 거니까. 형 그렇게까지 떳떳한 사람은 아니잖아요.”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는데. 내가 왜 떳떳하지 못한데?”
“형 텃세에 KRM 박차고 나간 연습생만 몇 명이죠? 그중 하나라도 형한테 앙심 품고 있지 않은 사람이 있다고 정말 확신할 수 있어요?”
“이해가 안 되네……. 카르마 나간 애들이 나랑 무슨 관계가 있는데? 내가 걔들 등 떠밀어서 내보내기라도 했냐? 적응 못 하고 나간 애들이 나랑 무슨 상관이야. 나한테 별로 좋지 않은 감정 가지고 있는 건 알겠는데 거기까진 너무 갔어, 너. 난 한 게 없으니까.”
김민기는 이제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부정하겠다는 투였다. 필사적으로 나를 훑는 꼴이 내가 놈에게 해를 끼칠 녹음이라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확인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아뇨, 형은 한 게 많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고요. 맞죠?”
“…….”
그렇다 해서 묻는 걸 그만둘 생각은 없었지만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민기에게 무슨 말을 하든 놈이 제대로 된 대답을 해 줄 리 없다는 걸 모르지는 않았다.
김민기는 이전과는 달리 더 이상 솔직할 생각이 없겠지. 본인의 솔직함이 그 자신에게 해가 될 거란 걸 모를 리 없으니까.
“형은 [디자인 유어 아이돌>이 어떻게 되든, PD가 무슨 경질을 당하든 상관없이 데뷔만 하면 그만이잖아요. ‘디어돌’도 그렇고 데뷔 그룹이 망해도 실은 상관없죠? 그 상황에서 형만 살아남고 KRM로 다시 되돌아갈 수만 있다면요. 애초에 그걸 위한 출연이었으니까.”
김민기는 멍청한 놈은 아니었다. 애초에 그런 놈이었으면 권 실장과 협상해 [디자인 유어 아이돌> 시즌 3의 테마송 센터로 낙점되지도 못했겠지.
그러니만큼 김민기는 권 실장과 손을 잡고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을 터였다. 때문에 권 실장의 지원을 받아 호의적인 편집을 얻어 내는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닌, 굳이 나를 끌어들인 거겠지.
“이 서사 만들기는 저, 권 실장, PD까지 한 번에 엮어 넣을 또 하나의 약점 잡기였고요.”
어떻게든 ‘조작’ 서사가 만들어질 필요성이 있었으니까.
‘에이넷 시청자들은 조작에 예민하지.’
물론 [디자인 유어 아이돌>은 방송의 재미를 위해 몇 차례 프로그램 내부에서 조작을 시도하긴 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시청자들이 알고도 넘어가는 수준에서 그쳤다. 경연마다 연습생들의 배분을 조금쯤 속 보이게 할 정도에서 끝나곤 했으니까.
하지만 누군가의 폭로로 인해 밝혀지는, ‘진실’이 조금도 없는 조작은 이야기가 달라진다.
‘에이넷의 다른 프로그램에서 이미 조작으로 망한 경우가 여럿 있으니까.’
에이넷과 엔터사의 밀접한 관계도는 문제가 되어 떠오를 것이고, 높은 확률로 PD는 경질당하며 데뷔 그룹은 피해를 입게 된다. 거기 엮여 들어간 이름들은 질타를 면치 못하겠지.
“형은 거기서 빠져나올 방법까지 다 계산해 둔 상태일 테고.”
“…….”
김민기를 제외하면 말이다.
‘유일하게 빠져나갈 퇴로가 있는 건 김민기뿐이니까.’
이유는 하나다. 김민기는 ‘연습생’이기 때문이다.
이 협상의 주가 된 건 PD와 KRM의 권 실장이다. 조력한 건 나고. 이런 상황에서 대중이 보기에 김민기는 얼결에 이 협상에 말려 들어가게 된 연습생으로 보일 터였다.
에이넷의 PD, KRM의 실장, 데뷔한 선배 아이돌. 자리를 잡고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셋과는 달리 김민기는 어떤 발언권도 없는, 힘없는 존재로 여겨질 테니까.
‘먼저 서사를 만들자고 제안한 게 김민기라는 것, 놈이 날 끌어 오기 위해 협박을 했다는 건 누구도 모른다. 그러니 김민기는 대중의 눈길을 피할 수 있어.’
피해를 입어 봤자 어느 정도의 자숙 끝에 동정 여론을 딛고 다시 일어설 수 있을 테고.
그와는 달리 협상에서 충분히 힘을 쓸 수 있는 위치에 있는 PD와 권 실장, 나는 조작 논란이 났을 때 질타를 면할 수 없을 터였다. 때문에 김민기를 잘 단속해야 했고.
‘그게 자신의 권력이 될 거라는 걸 안 거겠지, 김민기는.’
에이넷도, KRM도, 로드 엔터도 자신을 쉽게 버릴 수 없게끔 판을 짜려 한 거다. 휘둘리는 척 휘두르는 것으로.
“다시 한번 느껴지네요. 형은 정말 팀으로 데뷔하면 안 된다는 거. 형은 스스로를 위해 사람 여럿 잡아 거꾸러뜨릴 사람이잖아요.”
내 비난에 김민기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분노한 듯한 얼굴이었지만, 김민기는 이전과는 달리 내 도발에도 쉽게 넘어오지 않았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는데.”
“당당한 거 아니었어요? 그게 아니고서야 그렇게 몰염치한 짓을 대놓고 꾸밀 리가 없겠다고 생각했는데.”
“하…….”
김민기는 분명 염치도 없고 저열하다. 그런 주제에 눈치를 잘 보고 머리를 잘 굴려서 귀신같이 치고 빠질 곳을 잘 알아낸다. 덕분에 사람을 짓밟고 올라서는 데 탁월한 재능을 보였고.
때문에 김민기는 누가 지켜보고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내 말에 긍정하지 않을 터였다.
“…뭐가 나쁜데? 이용할 수 있는 건 이용하는 게 맞잖아. 각자 제 역할만 잘해 주면 괜한 논란 날 일은 없어. 그냥 안전장치로 좀 가지고 있겠다고 하는 게 나쁘냐? 논란 내기 싫으면 알아서 잘하면 될 거 아냐? 연습생 X밥으로 생각하는 놈들 허 좀 찔러 보겠다는데……!”
그래서 강제로 끌어내야겠다고 생각한 거고.
『지정 문답: 오로지 진실만을(1회)』
단 한 번, 원하는 진실을 상대방에게서 들어 낼 수 있습니다.
조건: 상대방의 ‘답변’을 미리 알고 있을 경우
딱 그걸 위한 아이템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 씨, X발, 방금 뭐야?”
짜증스럽다는 듯 말을 뱉어 내던 김민기는 곧 정신을 차린 듯 혼란스러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 순간이었다.
덜컹-
“……!”
아래쪽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난 건.
“잠, 잠깐……!”
다급히 계단 아래쪽을 바라본 김민기는 자신이 예상하지 못한 누군가의 뒤통수라도 본 모양이었다.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곧장 아래쪽 계단으로 뛰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놈과 내 대화를 엿듣던 사람이 김민기를 기다려 줄 리 없었다. 곧 다시금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으니까.
이어지는 침묵. 그제야 나는 놈을 따라 가벼운 걸음으로 밑으로 내려갔고, 이내 우두커니 서서 문고리만 바라보고 있는 김민기를 마주할 수 있었다.
그 황망하기 짝이 없는 표정에 나는 물었다.
“PD님이 화 많이 나신 것 같아요?”
“……!”
보지 못한 PD의 얼굴이 조금 궁금했던 것이다.
김민기는 내 말을 듣자마자 빠르게 뒤돌아 나를 노려보았다. 알고 있었느냐는 얼굴에 나는 안타깝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조심 좀 하시지. 아까 그렇게 큰 소란을 일으켰는데 PD님이 안 따라왔겠어요? 서바이벌 프로그램 하면서 싸운 연습생 말린 짬이 벌써 3년 차인데, 형이 폭력을 쓴 것까지 봤으니 걱정돼서 말리려고 오셨겠죠. 그러니까 말조심하셨으면 좋았을걸.”
애초에 김민기가 ‘그런’ 상황을 연출해 준 이상, PD가 따라올 건 확실했으니까.
PD는 김민기와 내 서사가 완전한 조작이라는 건 몰랐을 것이다. 김민기가 조금쯤 관계도를 부풀렸을 뿐이라고 생각했겠지.
‘그런 와중에 김민기가 내게 폭력을 쓰는 걸 봤고.’
PD로서 출연자들 간의 불화를 막아야 한다는 의무감 반, 개인적인 호기심 반으로 따라왔을 것이다. 때문에 나는 PD가 도착해 자리를 잡고 이야기를 충분히 엿들을 때까지 김민기의 개소리를 좀 더 들어 줬고.
“뜨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을 생각해 봐야겠네요, 형. PD님이 이제 조작 서사를 만드는 걸 거들어 주지는 않을 것 같은데.”
“이 개X끼가……!”
솔직히 업적 보상으로 받은 아이템이 아니었다면 일이 이렇게까지 순조롭게 돌아가지는 못했겠지만 말이다.
안쓰러워하는 듯하면서도 결국 놈을 향해 이죽대는 내 말에 김민기는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 흉흉한 기세로 한 걸음 더 내게 다가섰다.
그에 나는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밀기라도 하려고요?”
“……!”
지금의 상황이 회귀 직후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CCTV가 없는 계단참. 계단을 등지고 있는 나, 내게 악심을 품고 있는 김민기.
하지만 이전과는 달리 걱정할 건 없었다.
“그렇게 하면 정말 빼도 박도 못하게 매장될 텐데. 괜찮아요? 여기서 더 PD님한테 미운털 박히는 짓은 안 해야 할 거잖아요. 그쪽이 너무 많은 약점을 쥐고 있는데.”
“…뭐라고?”
“그렇잖아요. 형이 지금까지 다른 연습생들 제치고 자기 자리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그쪽은 다 알고 있으니까. 영상으로도 충분히 남아 있고요.”
“……!”
김민기는 더 이상 나도, 다른 연습생들도 해칠 수 없었으니까.
스스로 만들어 낸 약점이 쌓여 있는 이상.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