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Plan for the Second Life Idol RAW novel - Chapter (370)
370화
“하~ 속이 다 시원하네. 이제야 좀 볼만하잖아.”
마침내 찾아온 1차 평가 당일. 촬영이 모두 끝나고 대기실로 들어서며 제인이 만족스럽다는 듯 중얼거린 말에 나는 조금쯤 허탈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나 참. 누나, 촬영할 때는 조심 좀 해요. 그러다 누구 좋아하고 누구 싫어하는지 방송 탑니다? 까딱 잘못하면 우리 아이돌 메이커들한테 싸잡혀서 몰매 맞아요~.”
“아니, 내가 뭘 어쨌다고?”
“무슨 모르는 척이야? 당연히 민기 얘기죠. 걔 지금 팬층 좀 붙었는데, 민기 파트 줄어든 거에 그렇게 좋아하면 너무 티 나잖아.”
지난 평가 때와 완전히 달라진 ‘UTOPIA’ A팀의 모습에 제인이 너무나도 흡족한 티를 냈던 것이다. 같은 댄스 멘토인 리오가 나서서 눈치를 줄 만큼.
그에 제인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짓더니 이내 빈정 상했다는 투로 대꾸했다.
“뭐래? 촬영 끝났잖아. 지금부터는 사석이야, 이 자식아. 내가 그것도 모르고 내뱉었을까. 그리고 나중에 방송분 봐 봐, 내가 사감 섞어 말 내뱉은 게 있나. 나도 공사 구분은 철저히 해. 너보다 방송 짬을 몇 년을 더 먹었는데?”
“그렇다기에는 아까 너무 날 선 말만 하지 않았어요?”
“민기 대신 자의식 과잉이냐? 할 말만 했어, 나는. 걔 못했잖아. 못하는 놈한테 못했다고 한 게 뭐가 나빠? 그러려고 우리가 있는 거 아니야?”
제인의 말에 리오는 영 불만스럽다는 듯한 얼굴이었지만, 뭐라 더 말을 덧붙이진 못했다.
‘엉망이었지.’
제인의 말마따나 오늘 김민기의 퍼포먼스는 지금까지 본 중 제일 나빴던 것이다.
-무대는 좋아요. 민기가 연습 부족인 거 빼면.
-리허설 때도 불안불안하긴 했는데… 민기는 혼자 분위기 파악을 못 하고 있네. 웃어야 되는 타이밍에 저렇게 죽상이면 어떡하자는 거지? 저러고 어떻게 어필을 하려고.
대부분의 멘토들이 혹평을 쏟아 내고, 김민기를 두둔하려는 리오조차 빈말로라도 퍼포먼스 퀄리티를 긍정하지 못할 만큼.
센터를 빼앗긴 후, 김민기는 영 마음을 잡지 못한 듯했다. 3차 평가 때는 본인의 파트조차 제대로 숙지하지 못했던 데 이어 본방인 오늘은 전체적으로 낮은 퀄리티를 보여 줬으니까.
‘테마 송의 센터라고 보기에는 너무 부족한 무대긴 했지.’
덕분에 객석에서도 의아함을 느끼는 팬들이 꽤 많았던 듯싶고 말이다. 테마 송의 센터였던 놈이 무대에서 돋보이지 못한 것으로도 모자라 팀에서도 겉도는 모양새였으니까.
“맞긴 하죠. 오늘 민기 전체적으로 컨디션이 나빠 보이긴 하던데. 노래도 음정 다 나가서 두 배로 실망이기도 했고……. 1차 평가 때 이러면 앞으로 괜찮으려나 몰라. 무슨 일이 있나?”
때문에 대기실 의자에 앉던 차미나가 고개를 기울이며 하는 말에 리오는 한숨을 푹 내쉬곤 내가 있는 쪽을 흘긋 바라보았다.
“눈치 봤던 거 아니야? 얘기 들어 보니까 유하 씨랑 싸웠다는 것 같던데. 코치랑 척졌으면 애가 기죽을 만도 하지. 팀 내에서도 영 기를 못 펴는 것 같던데.”
“아, 밀쳐졌댔지. 근데 그건 민기가 잘못한 거잖아. 괜히 유하는 왜 탓해? 선배 아이돌 팬 놈이 잘못이지?”
그리고는 들으라는 듯 입을 여는 것이, 아마 내가 김민기에게 눈치를 줬다 생각하는 듯했다. 김민기와 내 불화설은 이미 [디자인 유어 아이돌> 내에 짜하게 퍼져 있었던 것이다.
‘애초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실랑이를 벌였으니 퍼지지 않을 리가 없긴 했지만.’
그러니만큼 리오의 의심은 나름대로 합리적이긴 했지만, 제인의 의견은 다른 모양이었다. 바로 인상을 찌푸리며 나를 두둔하고 나섰으니까.
제인은 그렇게 말을 내뱉은 후, 곧 무언가가 생각난 듯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곤 부러 무심한 어조로 빈정거리듯 말을 이었다.
“뭣보다 걔가 팀에 적응 못 하는 건 본인 잘못이지, 애들 휘두르려다가 역공당한 거니까. 너야말로 사감 숨겨라. 최근에 너 KRM 쪽으로 들어가기로 했다는 건 알겠는데, 너무 속 보이잖아. 정작 다른 애들이 민기한테 눌려서 찍소리 못 할 땐 아무 말도 안 하던 놈이.”
“…!”
알고 보니, 이제 와 리오가 답지 않게 김민기를 두둔하려는 이유가 있는 듯했던 것이다. 리오는 곧 KRM 쪽의 댄스 디렉터로 들어갈 예정이었으니까.
때문에 리오는 정곡을 찔렸다는 듯 잠시 침묵했지만, 그대로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더 반항적인 투로 대꾸한 것이다.
“누나는 뭔 말을 그렇게 해요? 그냥 애가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지. [디자인 유어 아이돌>을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나온 애잖아요. 나이가 스물여섯인 애니까 이거 아니면 아이돌은 이제 완전히 그만둘 수밖에 없을 거란 거 알면서…….”
“그건 다른 연습생들도 마찬가지죠.”
하지만 그 말은 내내 제인과 리오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랩 멘토, 브리디에 의해 끝을 맺지 못하고 잘려 나가고 말았다.
“‘디어돌’을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나온 연습생이 몇 명이겠어요. 그러니 우리는 더 중립을 지켜야죠, 누구 한 명을 편애하지 않게끔.”
냉담하게 그렇게 대꾸한 브리디는 주시하듯 리오 쪽을 바라보다 이내 다른 멘토들이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니 연습생들 간의 신경전에는 모두 신경 끄죠. 애들 싸움에 멘토까지 나서 싸울 일이 뭐 있어요. 이건 이거 나름대로 말 나올 거리가 되기도 할 테고.”
브리디는 보통 멘토들끼리의 설전에 끼지 않는 편이었지만, 누구 한 명을 대놓고 옹호하는 리오에겐 한 마디를 해 줘야 된다 생각한 모양이었다. 방송이 아직 한참 남아 있는 만큼, 연습생들에 이어 멘토들 사이의 분위기도 흐려지면 곤란할 터였으니까.
“…아니, 내가 뭐 몰라서 그러나. 그냥 한마디 한 것 가지고 왜 다들 이렇게 죽자고 달려들어요?”
“난 원래 애들이 어떻게 싸우고 말고 같은 데 관심 없었어요~. 연예인 하겠다는 애들이 알아서 살아남아야죠. 역공당해서 지가 거꾸러져도 제 팔자지 누굴 탓해?”
그에 리오가 떨떠름한 얼굴로 말하는 데 이어 제인은 씩 미소 짓는 얼굴로 어깨를 으쓱했다. 그 넉살 좋은 제스처에 리오는 짜증이 난 듯 담배를 태우고 오겠다며 밖으로 나섰지만 말이다.
그렇게 리오가 끝내 제 분을 숨기지 못하고 밖으로 나서는 것을 바라본 후, 나는 제인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관심이 아예 없진 않았잖아요, 선생님은.”
“시시비비 작작 가려라. 너까지 뭐라 할 생각이야?”
휴대폰을 들고 밀린 연락을 바라보던 제인이 짜증스러운 한숨을 내쉬며 한 말에 나는 결국 픽 웃고 말았다.
-영악한 놈? 김민기지. 멘토라는 게 연습생 가지고 이런 말 하면 안 되는 건 아는데, 어떡하겠어? 나도 사람인데. 싫은 건 어쩔 수 없더라. 그런 애가 데뷔하는 건 별로 보고 싶지 않거든.
실은 그 누구보다도 연습생들 간의 신경전에 관심을 쏟던 게 제인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김민기가 어떤 식으로 [디자인 유어 아이돌>에서 생활했는지를 알 수 있었지.’
첫 등급 평가 때부터 테마 송을 거쳐 1차 평가까지, 김민기가 어떤 식으로 연습생들 사이에 자리를 잡고 포커스를 빼앗았는지 파악하기 위해서는 놈을 줄곧 지켜보았던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야 했다. 제인은 숨김 없이 김민기에 대해 알려 주었고.
그 이야기 덕에 연습생들의 현재 상황을 파악하고 김민기에 대한 반감이 표출될 틈을 만들 수 있었던 만큼, 나는 다시 한번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덕분에 이야기는 잘 끝났습니다. 감사해요.”
“내가 한 게 뭐 있다고. 실질적으로 애들 도운 건 너랑 현진이잖아. 나는 멘토랍시고 이름 달고 평가나 해 줄 뿐 뭘 제대로 돕지도 못하는데. 에이넷이랑 계약된 바도 있으니 대놓고 편애해 줄 수밖에 없기도 했었고. 뭐… 그건 너희 때도 마찬가지이긴 했지만.”
그에 제인은 조금쯤 씁쓸하게 대꾸했다. 시즌 1 때도 그렇고 시즌 3 때도 제작진의 입김 아래 자유롭게 행동하지 못하는 제 처지가 조금쯤 답답하게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너 아니었으면 민기한테 눌려서 그 애들 다 빛 못 봤겠지. 개인적으로 좀 놀랐어, 난. 희민이나 하오란이 그렇게 잘할 줄 몰랐거든. 결과는… 좀 아쉬웠지만.”
그러면서 제인은 아쉽다는 투로 대꾸했다. 오늘의 퍼포먼스는 연습생들도 그렇고, 그들을 지켜보던 제인과 다른 멘토들도 조금쯤 아쉬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1위: 김민기」
적은 파트, 아쉬운 퀄리티에도 불구하고 김민기는 조 1위를 차지했으니까.
‘지금은 당연한 결과지만.’
[디자인 유어 아이돌>은 이제 갓 1화가 방송되었을 뿐이다. 그 1화는 김민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편집이 되어 있었고.거기에 테마 송의 센터로서 미리 얼굴을 비추기까지 했으니, 김민기의 초반 독주는 당연했다. 100명의 연습생들 중 현재 가장 눈에 띄는 건 김민기였으니까.
“2위와 3위는 그 두 연습생이 가져갔잖아요. 그리고 이게 거품이라는 건 오히려 저보다 더 잘 아시지 않아요? ‘디어돌’만 벌써 3년째시잖아요.”
“아하하, 그렇긴 하지. 뭐… 네 말이 맞아. 벌써부터 걱정할 필요는 없지. 이후 분량이 안 나오거나 악편 한번 당하면 금방 꺼질 투표 수긴 하니까.”
다만 그건 그리 오래 가지 않을 터였다. PD는 앞으로 집요하게 김민기를 깎아내림과 동시에 분량을 줄여 나갈 테고, 당장 1차 평가에 대해서도 김민기가 아닌 이희민과 하오란 쪽으로 포커스가 맞춰질 것임은 확실해 보였으니까.
‘독재하는 김민기, 그에 반기를 들고 좋은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두 명이 맞서 싸우는 식으로 구도를 만들어 내겠지.’
즉, 김민기의 표는 1차 평가를 기준으로 확 떨어지게 될 것이다.
반대로 이희민과 하오란 쪽에는 좋은 분량에 따른 우호 표가 붙을 테니, 지금 받지 못한 표는 그때 수십 배로 되돌려받을 수 있게 될 터였다.
‘괜히 사고만 치지 않으면 파이널까지도 갈 수 있겠고.’
그런 만큼, 나는 이번에는 그 두 명이 다른 길을 걸을 수 있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었다.
-감사합니다! 저희 진짜 꼭 데뷔하겠습니다. 덕 많이 봤어요, 진짜. 솔직히 그냥 우릴 진짜 도와준다기보다는 얼굴 비추러 오는 거겠지 싶었는데…….
-아, 형! 그런 소리 왜 굳이 해요! 눈치 없어. 감사합니다! 저 꼭 데뷔해서 나중에 후배로 갈게요!
-야, 나는? 너만 간다 이거냐?
-어… 그걸 왜 나한테……? 형은 형이 알아서 해야지.
-이 싸가지없는… 아니, 버릇없는 놈이……. 네가 데뷔하기 전에 내가 먼저 데뷔할 거야, 알아? 진짜 이놈을 한 대 확 쥐어박을 수도 없고.
-어어, 나 때리지 마요. 이를 거예요. 나 폭로글 올려.
-너 폭로글 올릴 만큼 어휘력 뛰어나지도 않잖아, 이 자식아. 한국어 마스터하고 와서나 그딴 말 해.
상황이 나빠지기 전인 두 명에게는 아직 달라질 기회가 있었으니까.
‘…개인적으로 그 두 명이 이전 같은 꼴이 되는 건 별로 바라지도 않고.’
응원의 마음까지는 아닐 것이다. 그 자식들 때문에 고생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니까.
하지만, 나는 그 두 명이 망하길 바라지는 않았다. 이전처럼 타인에 의해 굴러떨어지고 변하는 것을 보고 싶지도 않았고.
‘그런 마음을 먹기엔 그놈들을 너무 오래 봤어.’
미우나 고우나 오 년을 함께했다. ‘함께해서 더러웠고 다신 보지 말자.’라고 말하면서 신경을 아예 끊어 내기에는 함께 견뎠던 게 너무 많았던 것이다.
알고 싶지 않아도 알아지는 것들이 있고, 보고 싶지 않아도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있다.
덕분에 놈들이 김민기에 의해 부당하게 찍어 눌러지고 있다는 것을, 그 둘이 어디까지 해낼 수 있을지를 알 수 있었던 것이고.
“노력한 만큼 잘되겠죠. 지금처럼만 하면요.”
“그렇지, 노력이 답이긴 하니까. 유하 너 때도 그랬잖아?”
“…갑자기 제 얘기가 왜 나와요?”
“처음에는 그렇게 빼고 평타만 치려고 하던 애가 한 번 열심히 하고 나서는 아주 달라져서는……. 혹시 모르지, 그 둘도 너 같은 루트를 탈지. 걔들도 이번 일로 뭔가 깨달음을 얻은 것 같잖아. ‘디어돌’로 데뷔할지, 아니면 다른 팀으로 데뷔할지는 몰라도 여기서의 경험이 걔들에게 뜻깊게 남을 건 확실하고.”
내가 그 둘에게 해 준 게 도움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나는 김민기를 배척하기 위해 그 둘을 이용했을 뿐이니까.
그 둘을 위해 이 이상 뭔가 조언을 해 주거나 도움을 줄 생각도 없다. [디자인 유어 아이돌> 시즌 3에서의 내 분량은 끝이 났고, 난 더 이상 그 둘과 같은 팀이 아니니까.
“그렇게 치면 네가 그 애들의 터닝 포인트가 되어 준 셈이기도 하겠네.”
“…….”
하지만, 내가 그랬듯 그 둘도 과거로 되돌아오며 새로운 ‘터닝 포인트’를 맞이한 것이라면.
“…그럼 잘 이용하면 좋겠네요, 그 기회를.”
한 가지 정도는 바랄 수도 있을 듯했다. 그 둘이 지난 생에 그토록 원하던 주목받을 기회를 이번에는 제대로 잡아 주기를 말이다.
지난 생이 피차 불행했다면, 이번 생에서는 팀 멤버 전원이 좀 잘 살아 주기를 바랄 수는 있었으니까.
이 또한 각자도생으로 살아남는 것이긴 하겠지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