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Plan for the Second Life Idol RAW novel - Chapter (377)
377화
“대립? 백이현과 권 실장이?”
나는 뜬금없게까지 느껴지는 소리에 그렇게 되물었다. 백이현과 권 실장이 굳이 대립할 이유를 찾지 못한 탓이었다.
‘권 실장과 백이현은 비슷한 과라고 봤는데.’
권 실장과 백이현은 성격이 비슷했다. 둘 다 극도의 효율을 추구하는 만큼 주변을 아주 쉽게 도구화시키곤 했던 것이다.
그건 곧 주변 상황을 잘 살피고 누울 곳과 눕지 말아야 할 곳을 잘 가늠한다는 뜻과 같았기에, 나는 그 둘이 싸울 일은 웬만해서는 없을 거라 생각해 오고 있었다.
‘권 실장은 백이현을 잘 팔 생각뿐이고, 백이현은 애초에 더 잘 팔리기 위한 목적으로 KRM에 들어왔던 거니까.’
권 실장은 아티스트들에게도 인간성이 있다는 사실을 자주 잊는다. 그렇기에 더 소속 연예인들을 효율적인 방면으로 굴려 먹을 수 있는 것이고.
한편 백이현은 그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는 법이 없었다. 어떤 심적인 압박이 가해지고 체력적인 한계가 닥치든 자신이 잘 팔리기만 한다면 모든 것을 흔쾌히 받아들이곤 했던 것이다.
‘그렇다 해서 호락호락하게 굴어 준다는 건 아니지만.’
백이현은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잘 알고 태도를 유연하게 한다. 그러니만큼 KRM와 계약을 할 때에도 절대 빚지는 장사를 하지는 않았다. 권 실장도 그에 맞추어 백이현에게는 꽤 대우를 해 주었고 말이다.
그러니만큼 백이현과 권 실장의 관계는 누구 한 명 뒤지지 않는 팽팽한 줄다리기라고도 볼 수 있었다.
서로 원하는 것을 요구하고 가늠하며 누구 한 명 힘을 덜 주거나 더 주지 않는다. 그래서 누구도 무릎 꿇지 않고 줄 또한 끊어지지 않는다.
그 불가능해 보이는 관계도는 백이현이 KRM 소속의 다른 아티스트들과는 달리 외부에서 이미 1군 타이틀을 단 채 계약해 들어온 ‘팔리는’ 아티스트였기에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었다.
약점을 잡히고 시작하는 다른 소속 연예인들과 달리 백이현은 권 실장에게 그 무엇도 빚진 게 없었으니까.
덕분에 그 관계도 속에서 백이현과 KRM은 각자의 이득을 잘 취하고 있는 듯 보였다. 백이현이 점점 더 승승장구해 나가며 KRM의 매출 이익도 순조롭게 오르고 있는 듯했으니까.
“애초에 부서 자체가 다른 만큼 정확한 건 모르겠어. 하지만 최근 민기 형 사건도 그렇고 권 실장님 심사가 내내 최악이라서, 혹시 모르니 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변화가 일어나긴 한 것 같거든, 이쪽도.”
“…그래, 고맙다. 새겨 들을게.”
그러니만큼 백이현과 권 실장의 대립은 내게는 이해할 수 없는 공식처럼 다가왔지만, 나는 굳이 그에 대해서는 캐 보지 않기로 했다.
‘궁금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컴백이 코앞인 만큼 다른 곳에 신경 쓸 여유도 없었으며, 무엇보다 이어지는 평화를 뚫고 백이현에게 연락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일에서 완전히 멀어질 수만은 없었다.
“오랜만이네, 유하야.”
“…네, 잘 지내셨어요?”
같은 업계에 종사하는 이상 얼굴을 마주하지 않을 수만도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 * *
“이쪽! 이쪽 봐 주세요!”
“이동하겠습니다.”
눈앞에서 터져 오르는 플래시 속에서 가볍게 손을 흔들던 우리는 기다리던 소리에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약간 잦아들었을 뿐 끝까지 뒤를 따르던 카메라 소리가 충분히 멀어졌을 즈음에야 멤버들은 마침내 숨을 내쉬었다.
“와……. 정신없네.”
“오늘은 좀, 내내 긴장을 풀 수 없을 것 같은데…….”
“그럴 만도 하지, 이 정도 라인업은 예술대상에나 가야 볼 수 있으니까.”
겨우 포토월 행사만 마쳤음에도 모두가 조금쯤 기가 빨릴 만큼, 오늘 원디어가 참석한 행사의 규모가 거대했기 때문이었다.
한국에서 열리는 명품 브랜드의 패션쇼. 손에 꼽을 만큼의 빅 이벤트인 만큼 현장에는 아이돌과 배우, 예능인 같은 연예계 종사자를 비롯해 인플루언서와 온갖 회사의 관계자들이 모두 참석해 있었다.
“솔직히 최근 들어서 원디어가 진짜 많이 크긴 했구나, 느끼긴 했는데 오늘이 진짜 탑이네요. 남자 그룹 중에 완전체로 초대받은 건 우리뿐이라니.”
“속 울렁거려……. 오른쪽을 보면 선배님이고 왼쪽을 보면 선생님이야. 미치겠다. 어디부터 인사해야 해.”
“하하, 그럼 일단 아는 쪽부터 인사해 볼까?”
때문에 멤버들은 모두 나름대로 긴장을 한 채 오늘의 스케줄에 온 터였다. 현재 패션 쇼에 초대받은 연예인 중 원디어만큼 제일 연차가 적음에도 완전체로 초대받은 팀이 없으니까. 그만큼 포토콜부터 적지 않은 관심이 쏟아지는 중이었고.
‘‘디어돌’ 덕도 있나, 이건.’
한두 명도 아니고 원디어 멤버 전체가 글로벌 브랜드 행사에 초대받을 수 있었던 이유를 나는 그렇게 보고 있었다.
KC ENM이라는 거대한 자본을 끼고 있는 로드 엔터의 영업력 덕도 있다면, ‘디어돌’로 인해 붙은 언급량 덕도 있지 않나 싶었던 것이다.
『업적 달성 완료!』
당신은 과거의 ‘불운’을 ‘행운’으로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보상: 불운 룰렛권(1회)
이번 ‘과거의 재현’의 보상은 그렇게 돌아온 듯했으니까.
‘솔직히 김민기와 관련된 불운이 어떤 식의 행운으로 오게 될까 싶었는데.’
설마 언급량 자체가 행운으로 돌아오게 될 줄은 몰랐다.
이번 [디자인 유어 아이돌>은 생각지도 못한 쪽으로 원디어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김민기와 관련된 논란으로 ‘디어돌’ 시즌 3에 시청률이 붙기 시작한 한편, 일일 코치로 참여한 나와 강현진이 속한 원디어까지 덩달아 시청자들의 관심을 사게 된 것이다.
-김민기 빌런서사 보고 호기심 생겨서 디어돌 보다가 시즌1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원디어 입덕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무슨 일이냐 전 그저 도파민 중독이었을 뿐인데요..
-매운맛은 시즌3가 개쩌는데 서사는 시즌1이 미쳤네… 애들 관계도도 개맛집이고 무대도 레전드.. 왜 그렇게 다들 시즌1때 미쳤었는지 알겠음; 시즌1 보고 나니까 시즌3 다들 캐릭터 개 약해보여 시즌 3는 자극은 있어도 알맹이가 없다
-새삼 원디어 어떤 그룹인지가 보이네 얘네 대단한 애들이었구나
김민기를 내려치기 위한 인성 올려치기는 그다지 달갑지는 않았다.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던 소년 가장 이미지가 그러하듯, 내가 한 발자국만 삐끗해도 돌아오는 비난은 배가 될 테니까.
때문에 나는 시즌 1이 재언급되는 것조차 탐탁지 않았다. 데뷔 후 내내 희석시키기 위해 애를 썼던 소년가장 이미지가 다시 한번 강화되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기우였지만.’
하지만 상황은 이전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원유하랑 강현진 본인들이 슬럼프 겪어본 적 있어서 그렇게 조언 잘해준 거였구나 진짜 참선생들 맞네
-디어돌 하면서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어 봐서 김민기도 적출해 낼 수 있었나… 사람이 진짜 단단하다 난 원디어 보면서 왜 맏형이 아니라 원유하가 리더지? 싶었는데 이젠 좀 알거 같음 오히려 지금은 더 노련해진 거 같기도 하고
-이땐 이렇게 힘들어했던 사람들이 이젠 완전한 프로가 됐다니 신기하고 멋지다 앞으로도 승승장구하길
시즌 1을 본 사람들은 당시 내가 얻었던 소년 가장 이미지를 다시 되살리기보다는 3년 차이자 연습생들의 선배가 된 지금의 ‘성장’을 더 눈여겨보았던 것이다.
이는 전적으로 시간 덕이라 할 수 있었다.
‘당시 내가 겪었던 모든 이슈들이 이제는 흐려졌으니까.’
사생에 의해 겪었던 루머, 파격적으로 터졌던 백이현과의 인연. 이 모든 것들은 이미 오래전의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는, 즉 신선함이 떨어진 사건들이었던 것이다.
때문에 시청자들은 이제 와 충격을 받고 나를 안쓰러워하지는 않는 듯했다. 내가 어떤 정보값을 가지고 있는지 익히 알고 있는 채로 보는 시즌 1은 현재의 나와 그때의 나를 비교하는 콘텐츠 정도로만 여겨진 것이다.
덕분에 ‘달라진’ 지금의 모습에 더 집중하게 된 듯하고.
‘그렇게 생각하면 오히려 다행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 오히려 소년 가장 이미지가 희석되는 결과가 되었으니까.’
이렇듯 편집에 의해 휘둘리던 연습생 시절과 달리 이제는 그들을 응원하고 가르치는 입장이 된 지금 얻어 낸 관심은 내게도, 원디어에도 좋은 쪽으로 작용한 모양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기존의 소년 가장 이미지는 ‘성장’이라는 키워드 아래 파묻히되, 시즌 1의 연습생들로 구성되어 데뷔한 원디어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은 많아지게 된 것이다.
“찬희 씨, 일본 활동은 잘 마쳤어요?”
“……! 선배님!”
이렇게 어엿하게 자립한 프로 이미지가 성립된 데에는 최근 백이현 쪽과 벌려 두었던 거리감 또한 조금쯤 도움이 된 듯했고.
오며 가며 아는 얼굴부터 시작해 원디어에 관심을 가진 업계 사람들과 인사를 하던 중이었다. 문득 들려오는 소리에 옆을 향해 고개를 돌린 나는 아주 오랜만에 보는 얼굴과 마주할 수 있었다.
“오랜만이네, 유하야.”
“…네, 잘 지내셨어요?”
정말 간만에 보는 백이현과.
‘…뭐, 당연하기야 하겠지만.’
우리가 초대된 패션 쇼는 백이현이 글로벌 엠버서더로 있는 곳이다. 그러니만큼 백이현의 참석은 너무나 당연하다 볼 수 있었다.
“응, 잘 지냈지. 활동은 잘 마무리했지? 한국이랑 일본 팬미팅도 잘 마친 것 같던데.”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잇는 백이현의 태도에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나는 잠시 놈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아프지는… 않았던 것 같군.’
두어 달이나 두문불출했다기에 어디 몸이라도 좋지 않아진 건가 싶었지만, 그건 아닌 듯싶었다. 백이현은 어디도 상하지 않은, 매끈하기 짝이 없는 얼굴이었으니까.
“최근 형 소식을 못 들었던 것 같은데.”
여기에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걸어오는 것에 나는 문득 백이현이 두 달 전 있었던 일을 잊기라도 한 건가 싶었지만.
“응, 생각할 게 좀 있었어. 알잖아.”
제아무리 백이현이라도 그 정도는 아닌 듯했다. 그 협박은 백이현에게 어떤 쪽으로든 영향을 미치긴 한 듯싶었으니까.
‘그러라고 질문거리를 던져 준 거 아니었어?’라는 말이 함축되어 있는 대답을 내뱉은 백이현은 가볍게 미소 지어 보였다. 그에 내가 놈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이현아, 나는 소개 안 시켜 주려고?”
나는 불쑥 고개를 들이미는 남자 쪽으로 시선을 옮겼고, 이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이쪽을 응시하고 있는 남자와 마주할 수 있었다.
서글서글한 미소를 지은 남자는 먼저 손을 내밀었다.
“몇 년 동안 궁금해하기만 했는데 이제야 뵙네요. 반갑습니다. 이현이랑 같은 팀 하고 있는 서안이에요. 찬희 씨는 저번에 뵀었죠?”
“네!”
백이현과 비슷한 키에 조금 더 성숙해 보이는 얼굴. 약간 날카로워 보이는 눈매에 다부진 턱을 가진, 오키드의 셋째이자 팀 내에서 메인 보컬과 프로듀서를 맡고 있는 서안이었다.
이전에 유찬희와 마주쳐 내 번호를 가져간 후 지금까지도 묵묵부답인, 뭘 원하는지 알 수 없는 선배 말이다.
내민 손을 맞잡자 서안은 훑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거북스러운데.’
그 눈빛이 내게서 무언가를 확인하려는 듯한, 혹은 파악하려는 듯한 눈빛으로 여겨진 건 과민 반응은 아닐 터였다. 여전히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 눈빛을 스쳐 피하듯 손을 떼고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원유하입니다. 찬희한테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잘 대해 주셨다고요.”
“잘 대해 주긴. 찬희 씨가 저한테 잘 대해 줬죠. 내가 작곡한 노래는 다 알고 계시던데. 감동받았잖아요, 이렇게 순수하게 좋아해 주는 후배는 너무 오랜만이라서. 원디어에는 반가운 얼굴이 참 많은 것 같아. 지혁 씨도 간만에 보는 듯하고.”
“아, 기억하고 계실 줄은 몰랐는데.”
도지혁은 갑작스럽게 자신에게 돌려진 관심에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그렇게 답했다. 예의를 차리는 듯한 미소에 서안은 웃음으로 화답했다.
“기억 못 할 리가? 우리 이현이 급으로 춤 잘 추는 타 팀 막내였는데. 몰랐겠지만 견제 많이 했었어요, 저. 아마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테고.”
“아…….”
그렇게 막상 뱉어 낸 말에 멤버들의 표정은 조금쯤 어색해졌지만 말이다.
이유는 하나였다.
“동발이잖아요? 이현이랑. 내가 작곡한 곡으로.”
서안이 꺼낸 화제는 모두가 조금쯤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문제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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