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Plan for the Second Life Idol RAW novel - Chapter (379)
379화
“…피해 준다고?”
“응.”
내 물음에 백이현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게 대꾸하며 휴대폰을 들고 눈앞을 지나가는 모델을 촬영했다. 그에 내가 말없이 놈을 응시하자, 백이현은 아무렇지도 않게 입을 열었고.
“컴백 일자를 미루려고.”
“……!”
이내 폭탄 발언을 터뜨렸다.
잠시 입 밖으로 어떤 말이 새어 나갈 뻔한 나는 내가 현재 있는 위치를 깨닫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백이현의 얼굴은 평온했다.
‘제정신인가?’
머릿속이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한 나와는 다르게 말이다.
백이현이 말하는 ‘컴백 일자를 미룬다.’는 계획은 높은 확률로 권 실장과 합의된 바가 아닐 터였다. 서안이 우리에게 불쾌감을 터뜨릴 정도면 KRM와는 계속해서 의견이 일치되지 않고 있다는 뜻일 테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단호하게, 이미 결정했다는 듯 말한다는 건 한 가지를 의미할 터였다.
“잠수라도 타려고?”
“최악의 경우에는?”
백이현이 정말로 답지 않은 짓을 벌이려고 한다는 것 말이다.
“…제정신이냐?”
“아하하, 걱정해 주는 거야?”
내가 침음 끝에 날카롭게 쏘아붙이자, 백이현은 드디어 런웨이 쪽에서 시선을 떼고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여전한 미소에 속이 답답해진 건 내 쪽이었다.
“잠수가 어떤 무책임으로 비춰질지는 본인이 더 잘 알 텐데? 이유가 있다고 해도 네 팬들 실망시키는 결과가 될 건 확실하고. 수습은 어떻게 하려고?”
백이현의 성격과 놈이 그간 쌓아 온 커리어의 크기를 아는 만큼, 백이현이 굉장한 바보짓을 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백이현의 이미지는 흠결 하나 없는 성실함으로 이뤄져 왔어.’
기대하는 만큼의 결괏값을 보여 주는 아티스트. 어떤 스케줄에도 최선을 다하며 신뢰를 신뢰로, 성실을 성실로 보답하는 아이돌.
지금 백이현은 그 이미지를 스스로 부수려 하는 것이었다. 이 업계에서 한 번 깨진 신뢰도가 그렇게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을 텐데도.
원디어와의 동발을 피하는 것 자체가 나쁘다는 건 아니었다. 원디어의 몸집도 이제는 절대 무시할 수준이 아니게 되었으니까.
‘이번 선주문이 200만 장이었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의 음반 판매량. 여기에 동세대 남자 아이돌 중 원디어의 음원 성적이 거의 탑을 찍을 정도로 높게 나오고 있다는 사실까지.
때문에 회사 쪽에서는 이번 컴백에서 원디어가 또 한 번 커리어 하이를 찍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는 상황.
즉, 백이현의 말이 맞았다. 이제 원디어는 쉽게 찍어 누를 수 있는 정도의 몸집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다 해서 백이현과의 동발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오키드의 맏형이자 리더인 우찬이 재작년 겨울 솔로 앨범을 발매하고 군대에 간 이후, 오키드의 팬덤은 연차가 찬 아이돌 그룹이 으레 그렇듯 천천히 코어화되고 있었다.
작년에는 팀의 둘째와 셋째인 지호와 서안이 각각 솔로 앨범을 냈고, 백이현 또한 연기 쪽으로 활발하게 국내 활동을 하기는 했지만 정작 새로운 팬의 유입은 적었던 것이다.
물론 오키드의 연차부터 시작해 아스터라는 팬덤의 규모를 생각해 봤을 때는 현상 유지만 해도 다행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한없이 늦춰지는 완전체 컴백에 아스터가 슬슬 빠져나가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그러다 백이현이 컴백을 하게 된 거지.’
대중들에게는 그룹의 정체성처럼 여겨지는, 오키드의 센터이자 단연코 인지도 톱을 달리는 핵심 멤버인 백이현의 솔로 컴백.
무엇보다 팀 멤버 서안의 프로듀싱으로 이루어진, ‘소속사가 갈라졌대도 오키드는 여전히 한 팀’이라는 것을 보여 줄 수 있는 상징적인 앨범의 발매.
‘오키드의 팬분들이 반가워하지 않을 리가.’
때문에 현재 오키드의 팬덤, 아스터는 거의 축제 분위기였다. KRM로 이적한 후 백이현이 내내 연기자 활동에 주력한 탓에 그가 혹 아이돌 활동을 완전히 접어 버리려는 건 아닐까, 우려하던 팬들까지 안심시켜 준 덕에 팬들은 자연히 칼을 갈게 되었고 말이다.
-솔로 신기록 세워줄게 이현아 딱 기다려
-집 나갔던 아스터들 지금 이현이 솔로 소식 듣고 후다닥 돌아오고 있네ㅠㅠㅠㅠㅠㅠㅠ 기다렸다고요 다신 어디도 가지 마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우리 막내 솔로 데뷔 진짜 최선을 다해보자 연차 찼다고 후배그룹한테 뺏기는 일 없게 우리 애 노력한 만큼 안겨줘야죠
물론 아무리 인지도가 높은 오키드라 한들 솔로로 컴백하는 백이현의 이번 활동 성적이 완전체 때만큼 나올 리는 없었다.
앨범 판매량부터 시작해 음원까지, 개인은 결국 팀에 비해 훨씬 낮은 성적을 기록할 수밖에 없으니까. 솔로 컴백은 그래서 쉽지 않은 도전인 거고.
‘하지만 이 정도의 기세에 백이현의 컴백이면… 위험하지.’
팬들의 기세도 심상치 않은데 KRM 또한 영업력을 최대한으로 활용해 백이현의 솔로 데뷔를 위한 큰 프로모션을 펼치고 있는 상황이다.
당연히 나 또한 백이현과의 동발은 탐탁지 않았다. ‘시스템’이 연차별 업적으로 무엇을 요구할지 모르는 이상, 좋은 성적을 거두고 싶은 건 당연했으니까. 백이현도 마찬가지로 제 솔로 데뷔에 걸림돌이 될 원디어를 반가워하지 않을 테고.
그렇지만 모든 일정이 공개된 지금 백이현이 컴백 일정을 미룬다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스스로 활동을 망칠 생각이기라도 해?”
이토록 주목받고 있는 이상, 컴백 일정을 미루는 건 결국 스스로 구설수를 덮어쓰겠다는 말과 같았으니까.
-백이현 설마 쫄려서 앨범 발매 미룬 거임?ㅋㅋㅋㅋㅋㅋㅋㅋ 솔직히 지금까지 형들 다 솔로 낼 때 혼자 안 내고 있다가 회사 옮기고 나서야 겨우 내보내는 거잖아 그 와중에 한창 그쪽 팬덤 먹고 있는 후배그룹이랑 붙은 건데 견제 안될 리가 없지
-약간 뇌절인가 싶긴 한데 동생 사랑 지극한 걸로 계속 언플해대서 그런가 합리적인 의심이 좀 듬.. 공사구분 못하고 동생 위하겠다고 지가 빠져준 거 아냐? 그럼 진짜 개실망이다ㅋㅋ; 지 앨범 내보내겠다고 고생한 사람들 다 엿먹인 거잖아
-완벽한 아이돌 ㅇㅈㄹ하더니 지 솔로 데뷔 일정을 미뤄버리네 뭔 이유 때문임? 얘 2달간 거의 잠적한 거랑 뭐 이유가 있나? 쓸데없는 짓이라도 하고 돌아다닌 거 아냐? 찔리는 게 없으면 컴백은 왜 미룸?
-원디어 개이득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솔직히 백이현한테 눌릴 뻔했는데 알아서 사라져 줘서 1위한거랑 뭐가다르냐ㅠ 백이현 있는 쪽으로 비켜줘서 고맙다고 절해야될듯
백이현과 원디어의 뒤에 그런 말이 따라붙을 건 확실해 보였으니까.
즉, 결국 일정을 미루는 건 이쪽에도 백이현에도 좋지 않은 선택이 되는 것이다.
“왜? 내가 원디어에 피해라도 입힐까 봐?”
이렇듯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온갖 경우의 수를 백이현이 떠올리지 않았을 리 없음에도 불구하고 놈의 태도는 초연하기 짝이 없었다.
시선은 런웨이 쪽으로 고정한 채, 백이현은 말을 이었다.
“그건 걱정 안 해도 돼. 말했잖아, 누구보다도 널 살리고 싶은 건 나라고. 그런 내가 너한테 해 끼칠 짓을 할 리 없지. 내 선에서 마무리 지을 거야.”
“…….”
나는 조용히 백이현을 따라 런웨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쇼는 이제 막바지로 접어들어, 모든 모델들이 줄지어 이동하고 있었다.
“대책이 있냐고 묻고 있어, 난.”
“그건 네가 신경 쓸 바는 아니야, 유하야.”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물은 말에 백이현은 선을 긋듯 대답했다. 그에 나는 문득 헛웃음을 지었다.
“내 일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끼어드는 주제에 네 일에는 신경 꺼라, 이 말이지.”
“그게 그렇게 되나?”
백이현의 행동이 너무나 모순적이었기 때문이다.
본인은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온갖 짓을 해 대는 주제에 내가 제 일에 끼어들 주제가 되지 않는다는 듯 굴고 있으니까. 본인의 일에 이쪽이 아예 관계되지 않은 것도 아닌데.
백이현은 내 중얼거림에 가만히 고개를 기울였다.
“나는 고민을 덜어 준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유하 너도 생각할 게 많았던 것 같아서. 바빴잖아?”
나는 백이현이 최근에 있었던 ‘디어돌’ 이야기를 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었다. 두어 달이나 잠수를 타더니만, 이쪽 동태는 빠짐없이 지켜보고 있기라도 했던 모양이었다.
내가 침묵하자 백이현은 평온하게 말을 이었다.
“뭣보다 이런 걸 원하지 않았었어? 내 일에 별로 관심 없었잖아, 유하 너는. 오히려 내가 망하는 쪽을 바랄 수도 있고.”
“…뭐?”
“난 네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잖아. 눈앞에 없었으면 하고 바랄 만큼.”
매번 형제가 되고 싶니, 하던 말을 내뱉던 것과 다르게 그 누구보다도 냉정하게 말이다.
나는 그렇게 대꾸하는 백이현을 가만히 응시했다. 놈은 여전히 뭘 생각하는지 모를 얼굴로 런웨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이내 고개를 돌려 이쪽을 잠시 바라보곤 웃는 것에, 나는 결국 내뱉었다.
“맞아. 네가 눈앞에 보이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긴 하지. 그런데 내가 언제 네가 망했으면 좋겠다고 말한 적이 있나?”
“……!”
내내 백이현에게 하고자 했던 말을.
나는 분명 백이현을 싫어한다. 존재 자체가 그다지 좋지 않은 과거를 자극하는 놈인데, 당연히 그럴 법하지 않나.
어릴 때와 전혀 달라지지 않은 성격으로 이번 생에도 내게 멋대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만큼, 그 누구보다도 눈에 거슬리는 놈이기도 하고.
“네가 자발적으로 인생 종 치는 건 네 자유긴 하지. 그걸 막을 생각은 없어. 하지만 네가 스스로 네 이름에 흠집 내는 걸 그냥 지켜보고만 있는 것도 뭣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백이현과는 완전히 척질 수 없었다. 백이현은 나를 과거로 되돌려 놓은 장본인이고, 지금도 내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놈 중 하나였으며.
“마지막으로 묻는다. 정말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냐?”
어찌 됐든 원유하라는 인간을 만든 과거의 큰 축 중 하나였으니까.
그런 만큼, 괜한 짓을 하는 백이현을 지켜보는 것보다는 뭐가 됐든 놈에게 조력을 해 주는 쪽이 마음이 편할 터였다.
역시 아무것도 모르는 채 백이현이 무슨 짓을 하는지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것보다는 스스로 행동하는 게 나으니까.
“…응. 정말 신경 안 써도 돼.”
“…그래?”
그렇다 해서 굳이 백이현의 멱살을 잡고 도움을 받으라고 할 만큼 적극적인 마음이 드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럼 더 안 묻는다. 알아서 해. 이쪽에 피해 안 끼치겠다는 약속 지키고.”
때문에 나는 그렇게 대꾸한 후 백이현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할 수 있는 건 다 했기 때문이었다.
‘거부한 건 저 새끼니까.’
백이현과 나는 같은 팀이 아니다. 백이현의 컴백 연기가 이쪽에 큰 영향을 미치진 않을 터. 당장 백이현이 컴백을 미룬다 해서 무언가 큰일이 일어날 리도 없다.
본인의 이름에 먹칠이나 좀 하겠고, 한참 구설수에 파묻힐 뿐이겠지. 그 정도의 소란쯤은 견딜 수 있다 판단했으니 컴백을 미루겠다 결정한 걸 거다.
“유하야, 이제 갈까?”
“네.”
“잘 가, 유하야.”
“…네. 조심히 가세요, 형. 몸조리 잘하시고.”
본인 스스로 신경 쓰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하는데, 굳이 손을 뻗을 일은 없었다.
때문에 이번 일은 백이현이 알아서 할 문제로 두려고 했지만.
「발신자: 010-XXXX-XXXX
서안입니다. 시간 괜찮으면 이야기 좀 할까요?
이현이 문제로 좀 상의하고 싶은 게 있어서.」
나는 곧 그렇게 할 수만도 없게 됐다.
“계약서상으로 약점 잡히는 꼴이 될 겁니다, 이현이가 이번에 컴백을 미루게 되면. 그건 유하 씨도 별로 바라는 바는 아니라고 보는데, 전.”
“무슨 근거로요?”
“카르마 쪽 권 실장 싫어하죠? 이현이가 삐끗해서 약점 잡히면 권 실장 권력이나 불려 주는 꼴이 될 텐데, 정말 그쪽을 원하는 거예요?”
“…….”
“난 유하 씨가 권 실장 엿 먹이고 싶어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당한 거 많잖아요?”
본인은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지만, 정작 놈보다 더 열의를 내며 어떻게든 판에 나를 끌어들이려 하는 놈이 등장했으니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