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Plan for the Second Life Idol RAW novel - Chapter (380)
380화
서안으로부터의 문자가 도착한 건 패션 쇼가 끝난 바로 당일 밤이었다.
백이현을 두고 멤버들과 함께 움직이는 동안 뒤에서 휴대폰을 건드리며 눈짓하기에 뭔 짓을 하려는가 싶었건만, 서안은 백이현과는 달리 그대로 날 둘 생각은 없었던 듯했다. 그날 밤, 바로 내 쪽으로 문자가 도착한 걸 보면.
「발신자: 원유하
저한테 연락하신 거 이현이 형과는 합의된 걸까요.」
문자를 확인한 후, 나는 우선 그렇게 답장을 보냈다.
이미 한차례 백이현은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내게 단호하게 말한 바 있지 않나. 그런데 이제 와 놈의 최측근이라 할 수 있는 팀 멤버가 누가 봐도 이 일에 나를 끌어들이려는 문자를 보낸 것이었으니, 한 가지는 짚고 넘어가야 했다.
그에 서안은 명료하게 답했다.
「발신자: 서안
합의됐을 리가? 제 독단이죠.
알면 화낼 테니까 굳이 알려 주고 싶지도 않고요.」
너무 당당하다 보니 오히려 할 말이 없어지는 말을.
「발신자: 원유하
그럼 굳이 이야기 나눌 필요를 못 느끼겠습니다만.
굳이 당사자 모르게 상의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이에 기가 찬 마음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말하는 꼴을 보아하니 백이현 성격도 대충 알고 있을 것 같은 놈이 이런 식으로 굴어도 되나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서안은 물러서지 않았다.
「발신자: 서안
있죠? 이현이가 덤터기 쓰는 거 막고 싶어서 연락하는 거니까?
무시해도 되긴 하는데 그렇게 해서 후배님 마음이 편할 거 같진 않네요. 이현이한테 빚지는 거 싫어하시는 줄 알았는데, 내가 잘못 알았나?
일방적으로 또 빚지고 싶으시면 여기서 씹으셔도 되고요.」
오히려 너무 능청스럽게 사람 속을 긁어 놔서, 초연한 듯한 말과는 반대로 악착같이 나를 끌어들이려 한 것이다.
직후 내게 떠오른 고민은 하나였다.
‘말려들어 가 줄까. 이대로 무시할까.’
어느 쪽이든 위험이 있고, 어느 쪽이든 속이 뒤집어질 것은 분명하다.
뭘 선택하든 나름대로의 리스크를 짊어져야 하겠지. 그중 더 신경을 써야 하는 건 아무래도 서안과 만나는 것일 테고.
「발신자: 원유하
찬희한테 연락하세요.
챌린지 한번 하러 오시죠.」
그렇기에 나는 알면서도 말려들어 가 주는 쪽을 택하기로 했다.
이유는 하나였다.
‘이러면 그 새끼 얼굴에 빗금이라도 가게 해 줄 수 있을 테니까.’
그쪽이 백이현을 더 짜증 나게 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어 줘 봐야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는 채 전전긍긍이나 하겠지. 한편으로는 또 한 번 백이현의 말에 잠자코 있어 주는 셈이 될 테고.
‘굳이 그렇게 할 이유가 있나?’
때문에 선택은 빨랐다. 실은 서안에게 문자가 왔을 때부터 한번쯤 이야기는 할 생각이었고.
본인이 입을 열지 않는 이상, 백이현의 최측근이며 이번 앨범의 프로듀서를 맡은 서안보다 현재 백이현이 뭘 하려 하는 것인지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놈은 없을 테니까.
괜히 외부에서 만나 주변에 이야깃거리를 던져 주는 건 좋지 않을 터. 때문에 나는 유찬희와 서안이 쌓아 둔 연을 이용해 공식적인 스케줄을 빌미로 그를 로드 엔터까지 불러들였다.
“흐음. 여기가 로드 엔터구나. 처음 와 보네요.”
“이야기하실 게 있다는 건?”
잠시 레슨에 들어간 유찬희를 두고 나는 서안과 함께 회의실로 들어왔다. 남의 회사에서도 태연하게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내가 안내하는 대로 의자에 앉아 빙그레 웃는 모습에, 나는 곧 오키드 멤버란 놈들은 죄다 저런 놈들뿐인가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현이 좀 도와주시죠? 아무래도 유하 씨랑 이현이 쪽 관계도 좀 빌려야 할 것 같아서.”
“…….”
백이현도 그렇고 서안도 그렇고, 뭐라도 맡겨 놓기라도 한 것처럼 협상할 여지도 없이 내뱉기부터 하고 봤으니까.
“…자세하게 이야기 좀 해 보시죠, 그러라고 회사로 부른 거니까. 전후 사정 없이 냅다 용건만 뱉으면 제가 이해를 하겠습니까?”
때문에 나는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짚었다. 뭘 원하는 것이든, 서안과 뭘 함께한다는 것 자체가 그다지 순탄할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에 서안은 턱을 괴고 몸을 늘어뜨린 채 대답했다.
“이렇게 보면 닮았나? 상황 정리부터 하고 들어가려는 건 비슷하네요. 피는 안 이어졌대도 어릴 때 같이 지냈어서 그런가?”
어쩌면 순탄이 아니라, 아예 성립 자체가 안 될 수도 있고. 예상은 했지만, 서안은 곁에 두면 골치 아플 타입 같아 보였으니까.
“쓸데없는 소리만 하실 거면 전 그만 일어나겠습니다. 별로 친하지도 않은 선배님이랑 한가롭게 잡담이나 나누자고 온 건 아니라. 찬희는 조금 있으면 레슨 끝나니까…….”
여전히 훑는 듯한 시선. 가늠하는 듯한 얼굴에 나는 결국 자리에서 일어섰다. 답지 않게 괜한 짓을 했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런 식의 말에 괜히 응수하고 싶지도 않았고.
“이현이가 KRM랑 어떤 계약서를 작성했는지는 좀 아시나?”
“…….”
하지만, 나는 곧 그대로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서안이 비뚜름한 태도로 내가 궁금해할 만한 떡밥을 던졌기 때문이었다.
서안은 내가 그대로 멈춰 서 자신을 바라보자 만족했다는 듯 웃었다. 자신이 성공적으로 내 구미를 당길 말을 내뱉었다는 것을 알아챈 모양이었다.
그는 곧 느긋하게 의자에 기대 앉은 채 말을 이었다.
“이현이가 KRM로 회사를 이적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오키드 중 반대하는 멤버는 아무도 없었어요. 이유는 알아요?”
“글쎄요. 제가 알아야 하나요.”
“알면 좋죠. 그래야 이야기의 이해도가 높아지잖아. 뭐… 안 알아도 상관없긴 한데, 그냥 내가 이야기하고 싶으니 말할게요. 우리는 이현이한테 은혜 입은 게 꽤 많거든요.”
서안은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 끝으로 책상을 툭툭 건드리듯 쳐 댔다. 나는 그 산만한 모습을 지켜보다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우리 팀은 전적으로 이현이 덕분에 1군 대열로 올라선 거니까. 데뷔할 당시만 해도 RE 엔터는 너무 작았거든요. 데뷔까지야 했어도 그 후의 서포트를 제대로 받을 수는 있긴 한가, 싶을 정도로. 망할 확률이 높았죠, 아무래도. 그걸 다들 데뷔부터 예감했고요.”
“…….”
“그런데 이현이는 달랐어요. 망할 거란 생각을 조금도 하지 않는 것 같았죠. 다 잘될 거라고 말하고 다니더니, 실제로 제 한 몸 갈아서 오키드를 일으켜 세웠고요.”
백이현이 K-POP 팬덤을 넘어 대중에게까지 인지도가 높은 이유는 하나다. 백이현이 ‘그럴 만한’ 활동을 해 왔기 때문이다.
‘온갖 스케줄을 다 했다고 했지.’
어떤 것도 보장되어 있지 않은 신인 시절. 백이현은 정말이지 제 한 몸을 갈아 가며 활동을 이어 나갔다. 들어오는 모든 스케줄은 다 나갔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터였다.
이는 타인의 ‘운’, 즉 ‘기회’를 알아보는 능력 덕에 따낼 수 있었던 스케줄도 있었지만, 출연진 인원수를 채우기 위해 들어왔을 뿐인, 분량이 조금도 나오지 않을 스케줄과 함부로 다룰 수 있는 위치이기 때문에 들어온 것들 또한 있었다.
“진짜 미친놈 같았는데. 어디든 나가고 항상 개같이 망가지고 굴렀으면서 다음 일을 또 따내 오잖아. 그런 놈이 어딨어? 난 그 자식만 한 독기 가진 놈 아직 못 봤어요.”
그리고 백이현은 그 모든 스케줄을 가리지 않고 다 나갔고, 바로 그다음 일을 따냈다고 했다. 모든 일에서 기대한 것보다 더한 성과를 가져온 거다.
그 활약 덕에 백이현의 인지도가 쌓이게 된 거고.
‘그때 놈이 쌓아 둔 것들로 오키드는 몰라도 백이현은 안다는 말까지 나오게 된 거니까.’
오키드가 빛을 보게 된 건 그렇게 백이현의 이름값이 올라가고 난 이후였다. 백이현으로 오키드라는 그룹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덩달아 그가 속한 팀 자체의 인지도도 커지기 시작한 거다.
그러다 우리가 연말 곡으로 커버한 적 있는 ‘Nightmare’의 발매 이후 오키드 자체도 완전한 1군으로 올라서게 된 거고.
서안은 쓰게 웃었다. 그리곤 과거를 털어 내듯 가볍게 고개를 흔들고 말을 이었다.
“어릴 땐 사람이 좀 덜되어서 이현이를 질투하기도 했었어요, 우리들.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니까 보이더라고, 그때 걔가 어떤 개고생을 하고 다니면서 오키드 앞길을 파 준 건지. 우린 돕진 못할망정 개고생하는 막내한테 툴툴대기나 한 거고.”
“…그래서요?”
나는 이야기를 끊듯이 하며 물었다. 자세한 이야기를 하겠답시고 온 서안이 어째서 백이현과 오키드 멤버들의 이야기를 내게 하는 것인지 이해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에 서안은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
“그래서 우린 못 막았다 이거죠, 걔가 사지로 걸어 들어가는 걸. 제 앞길을 그 누구보다도 잘 개척하던 애가 스스로 불공정 계약을 자처하겠다는데도요. 자기 동생 만나러 간다는데 어떡해. 처음으로 들은 이현이의 개인적인 바람이었는데, 그게.”
“…….”
왜 놈이 나를 찾아온 것인지 알 수 있는 말을.
“KRM 출신이니까 소속 아티스트들이 어떤 식의 계약을 하고 다니는지야 대충 아는 바 있겠죠. 그런데 이현이의 경우 타사 아티스트라 그런가, 몇 가지가 더 붙었거든요? 그걸 알려 줄게요. 이현이는 유하 씨한테 절대 말 안 해 줄 것 같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서안은 백이현이 작성한 계약서의 일부, 현 상황에서 문제가 되는 내용을 말해 주었다.
“…그 새끼 제정신이랍니까?”
“세네. 진짜 이현이 싫어하시나 봐.”
그리고 모든 이야기를 들은 후, 나는 헛웃음과 함께 그렇게 대꾸할 수밖에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싫어하는 것보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니까 그렇죠. 불참하는 스케줄마다 손해 배상에 정도 이상의 성적을 내지 못하면 다음 계약 시에 불이익을 받는다니. 대놓고 죽을 때까지 뽑아 먹겠답시고 나온 계약서이지 않습니까.”
백이현이 제정신으로 계약서에 사인한 것 같지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누구보다도 제 이득에 밝은 놈이 굳이 사인할 만큼 제대로 된 계약서가 아니었으니까, 그건.
‘KRM가 엔터사 최대의 영업력을 가지고 있는 건 인정해.’
대한민국의 모든 방송사, 엔터사 할 것 없이 뻗혀 있는 인맥과 영향력. 그에 따른 활동 지원. 그 영업력을 잘만 이용한다면 백이현은 불이익을 받을 일이 없어 보였다.
계약서에 있는 ‘최대한의 지원을 약속’한다는 말처럼 시기를 제대로 타고, 괜찮은 프로모션을 받고, 본인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능력치를 뽑아낸다면 말이다.
하지만 엔터테인먼트라는 건 결국 사람이 움직이는 일이다. 상품을 파는 것과는 달리 변수는 언제든 생긴단 거다.
인간이기 때문에 언제고 아플 수 있고, 그 경우 스케줄을 빼게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경우에도 백이현은 손해 배상을 감수해야 했고.
“맞아요. 슬슬 뽑아 먹어 볼까 싶어서 그쪽 권 실장이 이현이를 원디어 쪽에 붙여 놓은 거고.”
무엇보다 KRM가 딴마음을 먹게 되면 돌이킬 수가 없게 될 터였다.
‘지금처럼.’
백이현은 정도 이상의 성적을 일궈 내야 한다. 그게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지만, 백이현의 이름값이라면 그 기준이 높을 것은 확실할 터.
“유하 씨를 엿 먹이기 위함도 있는데, 이현이의 목줄을 틀어쥐기 위함도 있는 거예요. 권 실장은 지금 두 명을 붙여 둬서 자기가 어부지리 보려는 거고. 활동이 붙어서 두 명 모두의 성적을 적당히 떨어뜨리는 게 권 실장에겐 이득이니까. 이제 이해 가요?”
때문에 서안은 날 찾아올 수밖에 없었던 듯했다.
백이현의 말과는 달리, 나는 이 일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게 확실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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