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Plan for the Second Life Idol RAW novel - Chapter (381)
381화
“원래 우리는 좀 더 시간을 둘 생각이었어요. 첫 솔로니 나도 그렇고 이현이도 욕심이 있는 만큼, 급할 건 없으니 조금 더 길게 작업해 곡을 내야겠다 싶었죠.”
서안은 작게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그러다 원디어의 컴백이 5월이란 사실이 공표되고 나서 모든 게 갑자기 빨라졌지만.”
서안의 설명은 이랬다.
백이현의 솔로는 이번 년도 하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수록곡 작업은 대강 끝났지만 타이틀 쪽에서 백이현과 서안의 의견이 갈려, 이에 따라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작업을 해 본 뒤 타이틀을 결정해 컴백을 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원디어가 팬 미팅에서 컴백 시기를 미리 공개한 데 이어 김민기 사건이 추가로 터졌을 때 상황은 급변했다고 했다. 권 실장이 일방적으로 백이현의 컴백 날짜를 확정해 버린 거다.
“뭐 때문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때쯤 이현이는 최대한 외부 활동을 하지 않는 상황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회사 내부 소식을 전해 듣는 것도 느렸죠. 손을 쓰거나 항의도 해 보기 전에 단독 기사가 먼저 나갔습니다. 그때부터 권 실장과 대립이 시작됐고.”
자신의 컴백 날짜를 기사로 전해 들은 후 백이현은 상황을 추론해 내게 됐다.
5월에 원디어의 컴백이 예정돼 있다는 것, 내가 KRM 출신이자 [디어돌> 시즌 3의 센터를 꿰찬 김민기와 척을 졌다는 소문을 들은 후 권 실장이 내게 보복하기 위해 자신을 이용하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거다.
“이현이가 가만히 있어 줬겠어요? 동생 보겠다고 KRM 들어간 건데 본인이 해 끼치게 되는 꼴을 받아들일 리가. 권 실장이 겸사겸사 자기 성적 떨어뜨려서 본인 목에 목줄 채우려 한다는 것까지 알아챘으니 바로 거부 의사를 보였죠.”
그렇게 백이현과 권 실장은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KRM는 눈 깜짝 안 하던데요. 오히려 발매 시기를 조율하는 단계에서 이현이가 불성실한 태도를 보였기에 일방적인 통보는 어쩔 수 없었다고 둘러대더군요. KRM와 계약할 때 이현이는 ‘최대한의 지원’을 약속받는 대신 ‘최대한의 활동’을 하겠다 약속한 바 있으니까요.”
“…백이현 쪽은 그렇게 하지 않았고요.”
“네. KRM이 잡아 둔 스케줄을 거부한 건 이현이니까.”
여기서 KRM은 한술 더 뜬 듯했고. 계약서의 조항을 들먹이면서 말이다.
백이현은 약 두어 달간 소극적인 행보를 보여 왔다. 드라마 촬영이니 광고 같은, 미리 계약된 일정은 그대로 소화하되 신규 스케줄은 거부하며 두문불출했던 것이다.
거기에는 KRM과의 회의 스케줄 등도 포함되어 있었을 터. KRM은 이 부분을 짚은 듯했다.
“할 말이 생긴 거죠. 본인들은 계약서대로 했을 뿐이고, 그 일정에 나오지 않은 건 이현이니까요. 자기들은 본인들 할 일을 한 것뿐이니 잘못이 아니다 이겁니다.”
다분히 KRM 쪽에 좋게 해석해 조항을 휘두르면 백이현의 입을 틀어막을 수 있다 여긴 것이다. 말마따나 KRM는 자신들의 할 일을 다했을 뿐이니까.
‘팬덤 간의 싸움이니, 컴백하기 좋은 시기 같은 건 증명해 낼 수 없는 것이기도 하고.’
객관적으로 봤을 때, KRM가 백이현에게 못해 준 건 없었다. 이번 솔로 컴백을 대비해 백이현을 위한 프로모션이 다수 진행될 예정이긴 하니까.
홍보를 위한 예능 쪽 스케줄도 그렇고 첫 솔로 컴백을 위한 팝업 스토어도 예정돼 있으니, KRM은 일은 똑바로 한 셈이었다.
‘성적을 깎아 먹기 위한 수작질을 해 놓기는 했지만.’
하지만 그건 증명하기 어렵다. 그런 건 공식적인 문서로 남겨지거나 증명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만큼 책임 회피가 쉽고.
‘이런 쪽으로 머리를 잘 굴리니까, 권 실장은.’
그래서 더 골치가 아픈 거고.
“이 상황에서 이현이는 자기가 다 덮어쓸 생각을 하고 있으니 미치는 건 나밖에 없죠. 내가 유하 씨 찾아온 것도 그 이유 때문이고.”
상식적으로 회사의 협조가 없는데 컴백 날짜를 미룰 수 있을 리 없다. 계약 날짜가 한참 남아 있는 데다, 무엇보다도 상황이 더럽게 돌아갈 여지가 충분한 만큼 지금 단계에서 계약서상의 문제와 KRM의 횡포를 폭로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때문에 백이현은 건강상의 문제를 들어 우선은 컴백을 미룰 생각이라고 했다. 두어 달간 외부 활동을 자제한 바 또한 있으니, 이 상황에서 컴백을 미룰 명분으로는 그만한 게 없다는 것이었다. 당사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모든 프로모션은 올스탑 될 수밖에 없고.
“대신 그렇게 될 경우 덤터기는 전부 백이현이 쓰겠네요.”
“맞아요. 계약서상에는 불참할 경우의 손해배상도 기재돼 있으니까. 컴백을 강행하든 이현이가 일방적으로 컴백을 미루든, 권 실장은 손해 볼 게 없단 거죠.”
대신 그때는 백이현이 일방적으로 모든 손해를 뒤집어쓰는 셈이 된다.
훗날 이어질 앨범 발매 때도 지금과 같은 기세를 타지는 못할 것이며, 무엇보다도 본인의 건강을 챙기지 못해 다수의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쳤다는 프레임 또한 덧씌워지겠지. KRM에 빚이 생기기도 할 테고.
“…….”
할 말은 다 했다는 듯 깊은 한숨을 내쉬는 서안을 그대로 둔 채 나는 잠시 생각을 정리해 봤다.
‘백이현에게는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것과 다름없는 상황이긴 하겠는데.’
그저 거래를 했을 뿐이니 실은 믿은 적은 단 한 번도 없기야 하겠지만.
다만 기가 차긴 했을 듯했다. 백이현은 권 실장과 서로의 이득을 위해 손을 잡고 KRM로 들어온 케이스인데, 권 실장이 먼저 백이현의 뒤통수를 때린 것과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권 실장이 백이현을 꽤 봐주긴 했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제 손으로 키워 낸, 즉 약점을 잡고 있는 아티스트가 아니다 보니 권 실장은 지금까지는 나름대로 백이현을 동등하게 취급해 줬다.
다만 그게 언제까지고 이어질 리 없었다. 권 실장에게 소속 아티스트란 결국 자신이 멋대로 굴릴 수 있는 상품에 불과하니까. 자신과 동등한 위치에 서려 하는 걸 계속 참아줄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겠지.
그러니만큼 권 실장은 내내 백이현을 경계하며 손안에 넣고 굴릴 수 있을 때를 노려 왔을 것이다.
‘그래서 더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 판단한 거겠지.’
주변 정리에 빈틈이 없던 백이현이 허술한 모습을 보인 건 이 두어 달이 유일했을 테고, 다음번에 또 이런 일이 있을 거란 확신은 없었을 테니까.
즉, 시기가 잘 맞아떨어진 거다. 백이현은 방심한 대가를 맛보게 된 거고.
“난 솔직히 KRM이 맞춰 둔 날짜대로 컴백하는 게 이현이가 제일 덜 손해 보는 길일 거라고 생각하긴 해요. 권 실장이 원하는 대로 해 주면 기 싸움에서야 지겠지만, 손해 배상은 없는 일이 되잖아요. 성적이 어떻게 나올지는 누구도 모르는 문제고.”
“…….”
“하지만 걔는 절대 그렇게 할 생각이 없어 보이더라고. 내가 알기로 백이현을 말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요.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덜 손해 보게 해 줘야 하지 않겠어요?”
때문에 서안은 백이현을 대신해 놈의 리스크를 조금이라도 줄여 주고자 나를 찾아오게 된 듯했다. 이 상황에서 백이현을 조금이라도 덜 손해 보게 할 방법은 어떻게든 여론이라도 좋게 만드는 쪽이라 판단한 듯했으니까.
서안이 내게 원하는 것은 간단했다. 백이현이 건강 문제로 활동을 미룬다는 것을 공식화하기 전, 놈을 조력해 달란 것이다.
“정보를 좀 흘려 줘요. 이현이가 몸을 사리던 두 달간 아팠다는 식으로. 이현이의 건강을 걱정하는 여론이 먼저 만들어지고, 그 사실을 알았음에도 컴백 일자를 조율하지 않은 KRM 쪽에 탓하는 시선이 가게. 그러면 컴백을 미뤘을 때 조금이라도 덜 맞겠죠.”
서안이 생각한 조력에는 놈의 ‘최측근’이 필요했으니까. 현 상황에서 대중이 가장 잘 알고 있는 최측근은 오키드 멤버들에 이어 나였고.
“가능하겠어요?”
못 할 건 없다. 그깟 정보를 흘려 주는 게 뭐가 어렵겠는가. 모든 포커스가 백이현 쪽으로 닿게 되는 만큼, 원디어 쪽에는 해가 될 일도 없어 보이고.
즉 내가 할 일은 간단했다.
“…아까 전에 타이틀감인 곡이 두 개 있었다고 하셨죠?”
“…갑자기? 네. 그렇게 말했죠?”
백이현이 모든 손해를 뒤집어쓴다는 걸 그대로 내버려 둔다는 가정하에서는.
나는 어리둥절해하는 서안의 말에 가볍게 고개를 기울였다. 상황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던 탓이었다.
‘백이현이 발등 찍히는 거야 본인이 자초한 거니까 그렇다 치자.’
다만 모든 상황이 권 실장에게 좋게 돌아가는 게 영 꼴같잖았다. 이런 식으로 권 실장이 한 번 승기를 잡으면 다시 이런 일이 반복될 것도 확실해 보여 더 그랬고.
권 실장은 이미 이전에도 LON을 우리와 함께 내보냄으로써 한 차례 이쪽을 골치 아프게 한 전적이 있다. 그러다 이번에는 아예 찍어 누르려 백이현을 이용하기까지 하게 된 거고.
‘다음번에 권 실장이 또 이렇게 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어느 쪽으로든 한 번 성공을 거두면 권 실장은 또 비슷한 일을 하려 할 터였다. 오히려 그때는 더 기세등등해지겠지. 백이현까지 무릎 꿇려 제 손안에 쥐고 휘두를 수 있게 될 테니까.
“하나만 묻겠습니다. 그 두 개의 곡 중 타이틀로 선택되지 않은 하나의 퀄리티가 많이 떨어집니까?”
“무슨 그런 자존심 상하는 소리를? 말했잖아요, 둘 다 괜찮아서 이현이랑 내가 갈린 거라고. KRM가 내가 선택한 곡을 택하는 바람에 이현이가 택한 건 수록곡으로 밀려났지만, 워낙 완성도가 좋아서 그쪽 뮤비도 따로 찍을 정도였는데.”
“그럼 타이틀곡을 좀 바꿔도 괜찮겠습니까?”
“뭐라고요?”
그걸 그냥 둘 수 있을 리 없다. 권 실장이 기세등등해질수록 손해를 보는 건 내 쪽이니까.
‘본인조차 마다한 마당에 백이현을 도울 이유 같은 건 없다.’
하지만 권 실장을 막을 이유라면 충분히 있었다.
“컴백을 미룰 경우 발생할 모든 손해를 백이현이 아니라 KRM에 돌릴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을 듯해서요.”
“……!”
“서안 선배님이 말씀하신 방법을 좀 뒤틀어서 사용해 보죠, 권 실장이 곤란해지게끔.”
권 실장이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면, 나 또한 굴러들어 온 기회를 놓칠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굳이 움직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권 실장에게 본인의 업보를 되돌려주는 건 나 또한 줄곧 원해 왔던 것이었으니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