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Plan for the Second Life Idol RAW novel - Chapter (388)
“…….”
백이현은 분명 많은 것이 결여돼 있다. 하지만, 그런다 한들 타인의 감정을 완전히 모르는 놈은 아니었다.
‘오히려 누구보다도 잘 알겠지.’
백이현은 평생 자신에겐 없는 것을 가늠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때문에 이제는 그 누구보다도 타인의 감정을 잘 파악하는 듯하고.
그 때문일까. 나는 아주 잠깐 그런 생각을 했었는지도 모른다.
백이현은 실은 완전히 감정이 없는 놈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 본인의 취향조차 없다고는 하지만, 그건 서안의 말처럼 실은 놈이 ‘모르고’ 있는 것일 뿐, 완전히 텅 비어 있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그러니 대화로 무언가를 해결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내가 원하지 않는다고 해도? 결국 네 행동이 날 죽이는 꼴이 될 수도 있단 걸 알아도 그럴 생각이냐?”
“안 죽을 것 같아서, 유하 네가. 그러기에는 네가 소중히 생각하는 게 너무 많잖아.”
“……!”
정말이지 답지 않은 생각을.
“넌 못 죽어, 유하야. 그럴 생각 없잖아.”
백이현은 내 물음에 그렇게 대꾸하곤 빙긋 웃었다. 그리고 내 반응을 관찰하는 듯한 시선으로 말을 이었다.
“지난번에도 말했지. 나를 가장 잘 알고 있는 게 너인 만큼, 너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것도 나라고.”
“…….”
“지난번의 대화 후 생각을 좀 해 봤어. 내가 너를 죽일 뻔했다는 말에 대해, 훗날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면 정말 네가 죽어 버릴까 하는 생각 같은 거.”
백이현은 생각을 정리하는 데 시간이 조금 오래 걸렸다고 말했다. 왜 뻔히 보이는 ‘좋은 길’을 두고 내가 돌아가려 하는 건지, 대체 내가 왜 ‘쓸데없는’ 것들에서 신경을 끊지 못하는 것인지에 대해 이해하려고 노력했다고.
그러다 백이현은 깨달았다고 했다. 자신에게 그런 이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뭐가 어찌 됐든, 그에게 있어 ‘옳은’ 방법이자 최선은 결국 나를 어떻게든 아이돌로 살아가게 해 주는 것이었으니까. 본인에게는 그게 ‘원유하’를 지키는 방법이기에.
그러한 결론을 내린 후, 백이현은 문득 하나의 생각을 떠올리게 된다.
“지금 유하 네가 삶을 포기하기엔 무리가 있지 않나, 생각이 들더라. 넌 지금 정을 준 게 너무 많잖아.”
그때 내가 한 협박이 그저 블러핑에 불과했다는 걸 알아챈 거다.
나를 아껴 주는 팬들. 멤버들. 최선을 다해 만들어 낸 커리어. 잘 구축해 나가고 있는 이미지까지.
“아이돌 원유하로서도, 인간 원유하로서도 넌 지금 놓칠 수 없는 게 너무 많아. 그렇지?”
백이현은 이제 완전히 여유로워 보였다. 확신을 느끼고 있다는 듯. 자신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듯한, 평온한 얼굴이었다.
놈은 사실을 적시하듯 말을 이었다.
“[디어돌> 때야 네 말대로 죽을 수 있었겠지. 당시 너는 지금처럼 네 멤버들에게 정을 주지 않았을 테니까. 유하 네게 그 무엇도 남아 있지 않다 생각했을 테고.”
“…….”
“하지만 지금은 다르잖아.”
[디자인 유어 아이돌>에서 연습생으로 출연할 당시와 원디어로서 3년 차가 된 지금, 내 상황은 많은 것이 달라졌다.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출연할 때쯤이야 ‘정말로’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었다. 나는 아직 연습생 신분에 불과했고, 책임지고 있는 것도 마음을 둔 것도 없었다.
기껏 새로운 기회를 얻은 만큼 적당히 살아 보자는 생각은 있었지만, 부모님을 다시 욕보여 가면서까지 살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서 시스템이 내 목숨 줄을 틀어쥐고 있는 걸 알고 있음에도 [디어돌>을 자진 하차하는 방법을 떠올릴 수 있었다.
“난 지금 네가 어떻게든 살기 위해 노력하는 걸로 보이거든. 지금 나를 막으려는 것도 그 이유 때문일 테고.”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백이현의 말마따나 지금 내게는 포기할 수 없는 게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럼 더 잘 알 텐데. 내가 네가 하는 대로 가만히 따라 줄 생각이 없다는 것쯤은.”
그렇기에 나도 포기할 수 없었다. 역시 백이현을 옆에 두는 건 위험했으니까.
내 대꾸에 백이현은 가벼운 한숨을 쉬었다. 놈 또한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한 태도였다.
“난 정말 네게 해를 끼칠 생각이 없어.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은 정말 널 위한 거야. 알잖아.”
“모르진 않아. 하지만 네가 그걸 위해 내 주변에 있는 것들을 어디까지 희생시킬 수 있는지 모르지 않아서 네가 하는 걸 그대로 받아 줄 수 없는 거고.”
본인은 떳떳하다는 듯한 태도에 나는 쏘아붙이듯 대꾸했다. 본인의 방법이 최선이라 생각하는 백이현의 오만은 여전히 적응이 되지 않았다.
백이현은 고개를 기울였다.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놈은 의문을 내뱉었다.
“네 주변에 있는 모든 게 거꾸러져도 결국 네가 살면 그걸로 된 게 아닐까? 유하야.”
“뭐?”
“아쉬울 수야 있겠지. 하지만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던 [디어돌> 때와 달리 지금 넌 마음을 붙일 만한 게 꽤 많이 생겼잖아. 그거랑 같다고 보는데, 나는.”
주변에 있는 것들이 없어져도 다시 새로운 게 생겨날 것이다. 옆에 붙어 있다 보면 나는 또 누군가에게 정을 주게 될 것이고.
“그럼 그것들로 살아 나갈 수 있잖아. 아무것도 잃지 않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나는 유하 네가 가장 잘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러니까 주변에 있는 것들은 당연히 날 위해 버릴 수도 있어야 한다고.
결국 ‘나’ 자신이 살아 있는 것이 중요하다는, 그걸 위해서는 소중한 것이라도 기꺼이 버릴 줄 알아야 한다는 백이현의 궤변에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무엇보다 나는 좀, 그런 확신이 들거든. 네게는 내가 필요할 거라는 거. 넌 지금 안전하지 않잖아.”
“…….”
지난번, 나는 백이현과의 대화를 끝내고 나오는 길에 놈이 어떻게 회귀를 이뤄 냈는지를 깨달았다. 그리고 그때 무언가를 깨달은 것은 나뿐만이 아닌 듯했다.
“누군가한테 위협받고 있잖아. 그런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네게서 손을 떼겠어.”
그때 백이현도 무언가를 알게 된 것이다. 내 운명을 틀어쥐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누군가가 나를 직접적으로 노리고 있다는 것까지도.
그 때문에 백이현은 더욱 떳떳해질 수 있는 것이고. 내가 ‘위험’한 이상, 놈은 내게 자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했으니까.
내가 아직 여섯 살짜리 어린아이라도 되는 것처럼.
‘답이 없군.’
머리가 지끈거리는 듯한 기분에 나는 마른세수를 하듯 얼굴을 쓸어내렸다. 백이현과 대체 어떤 대화를 나눌 생각을 했던 건지, 스스로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말할수록 분노만이 더욱 깊어지는 듯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자식이 어떤 식으로 나를 살려 냈는지를 알아 더더욱 화가 나면서도 순간적으로 기가 차, 나는 결국 내뱉고 말았다.
“그럼 너는 왜 그렇게 못 했는데?”
“응?”
“본인조차 못 한 걸 왜 내게 강요하냐고 묻고 있어. 너도 한 가지를 포기 못 해 과거까지 따라오게 된 거면서, 네가 하지 못한 걸 왜 내게 당연하다는 듯 요구하는데?”
백이현은 끝내 나를 포기하지 못하고 스스로의 목숨을 던져 가면서까지 회귀를 이뤄 냈다. 본인의 말대로라면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소중한 것을 버릴 수 있어야 했음에도, 백이현은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다.
그에 대한 백이현의 대답은 너무나도 담백해 오히려 헛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대체 불가능했거든, 너는.”
“…….”
“거기 두고 온 것들과 달리 넌 대체할 수가 없잖아. 그래서 아쉽지가 않았어. 난 딱 하나만 지키면 됐거든.”
그 대답으로 나는 백이현의 ‘결여’를 그 어떤 때보다도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으니까.
백이현은 내가 어떤 말을 하든 제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저 표정 없이 나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때문에 나는 결국 솟아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백이현.”
“……?”
끝내 그렇게 말해 버린 거다.
“네가 버리라고 종용하는 그 모든 것들이 내게는 버릴 수 없는 것들이라고. 대체할 수 없는 것들이라서 지키려고 하는 거고.”
어떤 말도 놈을 말릴 수 없다. 백이현과는 어떤 대화도 성립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놈을 막을 방법은 딱 하나뿐이었다.
“그러니까 같잖은 말로 날 통제하려고 들지 마. 네 멋대로 내가 가진 것들의 가치를 함부로 가늠하지도 말고. 내가 널 공격하게 하지 말라고, 백이현.”
“…….”
“나도 내 것을 지키기 위해서 어디까지 할지 모르니까.”
협상이 아닌 협박 말이다.
* * *
“개털린 얼굴이네요?”
“…….”
백이현과의 대화를 마치고 연습실 쪽으로 향하는 길, 나는 자판기 앞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듯싶던 천세림과 마주할 수 있었다.
이온 음료를 손에 쥐고 있던 천세림은 짜증스러운 얼굴을 한 내게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그에 음료수를 받아 든 나는 바로 목을 축이곤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보던 천세림은 고개를 기울이곤 안쓰럽다는 듯 미소 지었다.
“대화가 생각대로 풀리지 않았나 봐요?”
“말이 안 통하던데.”
내가 백이현과 이야기를 나누러 간다는 것을 알고 있는 만큼, 대화 진행 상황을 궁금해했던 듯했다.
그렇게만 대꾸한 나는 뚜껑을 닫아 다시 천세림에게 음료수를 돌려주었다. 음료수 통을 가볍게 쥔 채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는 천세림을 따라 연습실로 걸으며, 나는 입을 열었다.
“이번 일은 고마웠다. 네 덕에 판 만들 수 있었어.”
“뭐, 죽 맞춰 주는 것 정도야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요. 솔직히 일이 이렇게 풀릴 줄은 몰랐어서 그건 좀 놀라긴 했지만.”
KRM의 유출 사건에 대한 판, 정확히는 백이현의 팬들이 상황을 캐 보기 위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천세림의 도움을 요청했던 만큼 나는 뒤늦은 감사 인사를 전했다.
죽을 맞춰 주면서도 내내 떨떠름해 보였던 천세림은 이제는 완전히 산뜻해진 얼굴이었다.
“솔직히 형한테 구설수로 따라붙지 않을까 걱정도 좀 했는데, 그럴 일도 없어 보이고요. 별로 붙고 싶지 않은 경쟁자도 없어졌고, 팬분들도 안심하시고. 죽 한 번 맞춰 준 걸로 얻은 효과라고 하기에는 좀 수지 맞은 것 같기도 하니 다행이죠.”
천세림의 말대로, 서로 연기하듯 합을 맞춰 진행한 U라이브로 따라붙은 이득이 꽤 많았던 것이다.
원디어와 백이현의 동발을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팬분들은 많았다. KRM가 나를 견제하기 위해 백이현을 이용하는 것, 이에 따라 두 팀이 성적에 피해를 볼 거라는 점에 두 팬덤 모두가 부담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일으킨 U라이브 사고는 두 팬덤 모두에 당황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스터들은 가뜩이나 예민한 시기에 내가 백이현에게 피해를 줬다 생각해 분노했고, 유어원들은 걱정과 함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처음에 ㅇㅇㅎ가 사고쳤을 때 진짜 짜증났었거든 뭔 지들 라이브에서 우리 애 이름 꺼내서 컴백에 똥물 붓나 하고.. 근데 지금은 그냥 절하고 싶음ㅠ 걔 아니었음 해외 사이트 유출도 못 발견했을 거고 팬들 이렇게까지 결집하지도 못했을 듯…
-아 나 근데 진짜 이번에 안심했잖아… 나는 2현이도 좋아하고 U하도 좋아하긴 하는데 그 둘이 같이 붙어서 동발 뜨는 건 진짜 싫었거든ㅠ 활동 하나 보는 것도 힘든데 그 둘을 같이…? 싶어서 부담이고 얘네 성적도 걱정이었는데 솔직히 ㅈㄴ다행임..
-이야기될 게 이야기되어서 너무 다행이다 아무도 유출사고 모르는 채로 강행이 됐었으면 이런 비리는 계속해서 일어났을 테고 아티스트들은 아티스트들대로 고통받았겠지 차라리 지금 일이 터져서 차라리 좋아 이현이도 이번에 카르마에 빚 만들어 둔 셈 되기도 했고
그러다 일어난 KRM의 해외 유출 사건에 여론은 금방 뒤집혀 버렸지만 말이다.
현재 대중의 반응은 이전과는 꽤 달라진 상태였다. 백이현과 내가 사전에 유출 사고를 미리 알고 있었던 게 아니냐는 반응은 여전했지만, ‘이야기될 게 이야기되었다’는 평이 많았던 것이다.
‘카르마의 아티스트 관리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팬분들은 많았으니까.’
여기에 한 술 더 떠 실은 그 U라이브 사고가 내가 팬분들에게 보내는 SOS 신호가 아니었냐는 반응까지도 나온 상황.
-이거 한처멕인거 아님? ㅋㅋ.. 존나 쎄하네 일부러 사고 일으킨거같은데
-아니 너무 타이밍 좋게ㅋㅋㅋㅋ 이야기한거 아님? 그냥 지들 컴백에 해 될 것 같기도 하고 ㅂㅇㅎ도 카르마에 불만 많으니까 둘이 짜고 이런 일 일으킨 것 같은데
-뭐가 됐든 팬들 이용한 거잖아ㅋㅋㅋㅋㅋㅋ 난 개별로라고 봐; 알아달라고 쇼한거같애
팬들에게 유출 사건을 캐 보라는 식으로 종용하며 이른바 ‘한’을 처먹인 상황이 아니냐는 의견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대다수의 팬분들은 백이현의 컴백이 미뤄져 다행이라 느끼는 듯했다.
지금의 타이틀이 백이현 본인이 원하던 것이 아닌데다, 현재 몸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다 알려진 만큼 놈이 충분히 몸을 챙긴 후 본인이 원하는 곡으로 돌아오길 바라는 팬들이 다수였던 것이다.
-이제 그냥 깔끔하게 우리 애들한테만 집중할 수 있겠다 ㅈㄴ 개X스콘 먹은 기분
-난 진짜 개다행인게ㅋㅋㅋㅋ이번 사건으로 카르마가 어떤 개짓거리 했는지 사람들이 많이 알게돼서 앞으로 걔네가 눈치볼거라는 점임 ㅠ 솔직히 U하 길들이려고 계속 깔짝대는 거 개짜증났는데 이제 눈치보고 알아서 날짜 피하겠지 싶음ㅋ 너네가 눈치봐라 이제~
유어원 또한 지난번 LON과의 동발에 이어 또 한 번 부담을 느낄 뻔한 상황에서 해방되어 기쁨을 느끼는 한편, 앞으로 KRM가 원디어와의 동발은 최대한 피할 것임을 확신하고 드디어 평온함을 되찾은 듯했고.
“뭐, 그래도 한동안 오키드 선배님들과는 좀 적당히 엮일 필요가 있어 보이지만요.”
“안 보면 좋지, 차라리.”
그러나 너무 친밀한 모습을 보여 주는 건 좋지 않을 듯하니, 당분간은 몸을 사릴 필요는 있어 보였다. 백이현 쪽과 짜고 사고를 친 게 아니냐는 의견이 있는 만큼, 행동을 조심하는 것도 중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아, 근데 형은 그게 안 될 것 같던데.”
“……?”
“유하 씨!”
“……? 왜 아직 여기…….”
그도 그럴 수만은 없을 듯했다.
천세림과 함께 들어선 연습실. 제 작업실로 가지 않고 유찬희와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던 서안이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다가옴과 동시에 이렇게 내뱉었으니까.
“나랑 작업 한번 하죠? 유하 씨한테 딱 맞는 곡이 있는데.”
거절하기 어려운, ‘공적인’ 제안을.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