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Plan for the Second Life Idol RAW novel - Chapter (389)
“싫습니다.”
“…아니, 아무런 고민도 안 하고 대답을 해요?”
서안은 당황한 듯 대꾸했다. 그러나, 그 얼떨떨한 표정에도 내 입장은 변하지 않았다.
“한동안은 오키드와 좀 거리를 둘 생각이라서요. 이번 활동까지의 접점은 미리 찍어 둔 찬희와의 타이틀 챌린지까지만으로 하죠. 정도 이상으로 붙어 있으면 팬분들이 피로해하실 것 같아서요.”
“음. 그렇게 바로 거절할 수 있는 종류의 일거리인가? 드라마 OST 제안이면 난 그래도 유하 씨가 꽤 반길 만한 스케줄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굳이 거기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잖아요?”
“거기까지 생각할 필요가 제게는 충분히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서안의 제의, 즉 백이현이 출연하는 드라마의 메인 OST 보컬 의뢰를 받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던 것이다.
‘서안의 말도 틀리지 않긴 하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서안이 제안한 스케줄은 받지 않는 게 바보긴 했다.
백이현이 출연하는 드라마를 집필한 작가는 매번 시청률 15% 이상을 넘기지 않은 적이 없는, 이른바 스타 작가였다. 이번 년도 하반기로 예정된 드라마로 인해 백이현은 또 한 번의 커리어 하이를 앞두고 있었고.
솔직히 지금까지는 백이현의 스케줄에 이쪽이 영향을 받을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건 백이현의 배우 쪽 커리어니까.
하지만 생각해 보면, 완전히 엮일 일이 없지는 않았던 듯했다.
“한 번만 다시 재고해 보면 안 돼요? 난 진짜 이 곡에는 유하 씨가 딱인 것 같은데. 작곡가로서 내 곡이 정말 좋다고 생각하는 이유도 있는데, 오히려 내가 더 아까워서 그래요. 이 스케줄이 한창 유입을 원하는 신인한테 얼마나 좋은 기회인지는 본인이 더 잘 알잖아.”
“…….”
드라마에는 배경 음악이 필요하고, 작품의 분위기를 결정 짓는 요소 중의 하나가 되는 OST 작업에는 언제나 가수가 필요했으니까.
OST는 ‘팀’을 위해 만들어지는 곡과 달리 ‘드라마’를 위해 만들어지는 곡이라, 아이돌에게는 새로운 도전이자 분위기를 보여 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대중성에도 좋지.’
드라마가 흥할 때, 함께 삽입된 OST는 나란히 화제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 한창 원디어를 알려야 하는 시기인 지금 놓치기엔 아쉬운 스케줄인 건 맞았으나.
“제가 싫어서요. 또 백이현빨이냐는 말 들을 바에야 안 하는 게 낫지 않나 싶으니까. 서안 선배님이 왜 저한테 굳이 제안을 하시는 건지 알 것 같기도 하고요.”
하필 그게 ‘백이현’이 주연으로 출연하는 드라마인 게 문제였다.
나는 이제 백이현빨로 스케줄을 얻었다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았으니까. 실제로도 백이현 때문에 내게 이런 제안이 들어온 게 확실해 보였고.
‘이번 일에 대한 보상 개념인가.’
서안의 말을 받아 이번 사건을 잘 해결해 준 것에 대한 보상 같은 건가 싶어 더더욱 떨떠름했다. 수고비처럼 느껴지는 이런 스케줄을 받자고 백이현을 도운 건 아니었으니까.
‘내가 백이현을 도운 건… 빚을 청산하고 싶어서였지.’
백이현이 나를 어떻게 되돌리게 되었는지를 알게 된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난 생각보다도 더 백이현과 깊이 연관되어 있고, 놈이 일방적으로 지우는 빚은 자꾸만 쌓여 가기만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빚이 있는 한 백이현은 나를 놓지 못한다.’
백이현이 나를 언제까지고 지키고 도와야 할 존재로 보는 이상, 나는 완전히 자립할 수 없었다. 때문에 더 이상 빚을 늘리고 싶지 않았다.
그런 마음하에 나온 내 대답에 서안은 잠시 아무런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에 서안이 드디어 단념한 건가, 싶던 나는 곧 들려온 말에 잠깐 의아함을 느끼게 됐다.
“유하 씨는 내가 본인한테 작업 제안을 건네는 게 이현이 때문이라고 생각하는구나?”
“…그럼 아닙니까?”
서안이 뜬금없는 말을 내뱉었기 때문이었다. 내 입장에서는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말을.
내 대꾸에 서안은 약간 어이없다는 듯한 얼굴을 하더니, 이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고는 약간, 사람을 한심해하는 듯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곤 입을 열었고.
“유하 씨는 본인이 노래를 잘한다는 자각은 있는 거죠?”
“…없진 않죠.”
“그럼 본인이 잘해서 내가 부탁하러 온 거라고 왜 생각을 못 하지?”
“…!”
이내 조금쯤, 이번에는 내가 얼떨떨해지는 말을 내뱉었다.
입꼬리를 비뚜름하게 올린 채 미소 지은 서안은 내 반응에 안 되겠다는 듯 고개를 젓고는 말을 이었다.
“이번 일 잘해 줬다고, 고맙다고 하는 제안 아닙니다. 어떤 보컬을 선택할지에 대한 권한은 오히려 나보다도 제작사 쪽에 있고, 나는 그냥 추천만 했을 뿐이거든요. 뭣보다 내가 유하 씨를 추천한 건 이현이 사건 있기도 훨씬 전이었고.”
“…….”
“이야기 못 들었어요? 내가 찬희 씨한테서 유하 씨 번호 받아 간 거.”
“…백이현 일에 대해 협조 구하려고 받아 간 거 아니었습니까?”
원디어가 한창 일본 활동을 하고 있을 때, 음악 방송 MC 스케줄을 위해 잠시 한국에 갔었던 유찬희는 서안과 함께 공동 MC를 진행한 후 그에게서 내 번호를 받아 갈 수 있냐는 말을 들었다. 나는 번호를 줘도 된다고 허락해 주었고.
하지만 그렇게 번호를 받아 간 후에도 내내 답이 없었던 데다, 이후 패션쇼장에서 마주쳤을 때 서안이 공격적인 태도를 보였던 탓에 나는 그가 백이현에 대한 협조를 위해 내 번호를 받아 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에요. 일 제안을 하고 싶어서 그런 거죠. 제작사 측에서 로드 엔터로 직접 스케줄 제안 넣겠다는 거, 내가 먼저 이야기해 보고 싶다고 말했거든요. 감인데 유하 씨가 왠지 거절할 것 같단 생각이 들었거든. 이현이를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았으니까. 예상이 맞았고.”
“…….”
하지만 내 생각과 달리, 서안이 내 번호를 받아 간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던 듯했다. 서안은 내가 작업 제안을 지금처럼 냅다 거절해 버릴까 봐 유예를 둔 것이다.
“그래서 말인데, 정말 다시 한번 생각해 주면 안 될까? 말했듯 나는 정말 이 곡에는 유하 씨가 딱이라고 보거든요.”
본인이 날 직접 설득하기 위해서.
대꾸하지 못하고 침묵만을 이어 가는 내 모습에 서안은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듯 눈을 굴렸다. 그리고는 자신이 왜 나와 함께 작업을 하고 싶다 생각하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해 주었다.
“변명 아닌 변명을 하자면, 유하 씨에게 곡을 맡기고 싶다 생각한 지 오래됐어요. 나도 봤거든요, K-AREA.”
“…….”
“작곡가라면 한 번쯤은 곡을 맡겨 보고 싶은 보컬이라고 생각했지. 그래서 생각했어요, 유하 씨와 같이 작업해 보고 싶다고. 유하 씨가 발라드도 잘한다는 걸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된 이상 앞으로 그런 제안이 줄줄이 들어올 텐데, 내가 먼저 스타트를 끊고 싶었거든.”
당시 에이든 리와 내가 함께한 K-AREA에서의 ‘극야’ 무대가 K-POP 팬덤에서 적지 않은 화제를 불러온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서안이 보고 연락을 해 올 것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래서 말인데, 왜 이렇게 예상외라는 얼굴을 해요? 본인이 노래 잘한다는 거 알고 있으면 당연히 내 능력 덕분에 이런 제안이 들어왔나, 생각해야 되지 않나?”
“…그럴 타이밍은 아니지 않습니까.”
백이현과 연관되어 있는 만큼, 나는 당연히 서안이 백이현 때문에 내게 연락을 해 온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게 아니라면 서안이 나를 만나려 할 일은 없어 보였기에.
그런 내 대답에 서안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어떤 상황이든 관계없이 유하 씨는 본인 능력 덕에 스케줄이 들어왔다고 생각해야 옳죠. 실제로도 그게 맞고. 본인이 지금까지 어떤 스케줄들을 해 왔는지는 자신이 더 잘 알잖아.”
오히려 서안은 내 반응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자신이 잘한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 왜 그렇게까지 본인이 능력이 없다는 것처럼 구냐는 것이었다.
“유하 씨가 왜 이현이 때문에 내가 작업 제안을 건넸다 생각하는지는 알겠어. 이현이가 유하 씨한테 꽤 손을 많이 뻗은 것 같으니까. 그런데, 이제 그렇게 일방적인 도움을 받는 시기는 지났잖아요?”
“……!”
“자신에게 들어오는 스케줄은 본인이 이루어 낸 거라고 생각해야죠. 이현이가 도와준 게 없단 건 아니지만, 그걸 여기까지 끌고 온 건 유하 씨니까.”
그런 서안의 말에 나는 아주 잠깐, 당혹을 느꼈다. 이상하게도 서안의 말에 대꾸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에 나는 인정해야만 했다.
“능력이 없었으면 유하 씨는 지금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거란 뜻이에요. 기회는 누구에게나 오지만 잡는 건 본인의 능력이니까. 그 능력이 지금의 유하 씨를 만든 거고. 나는 지금 그 능력만을 보고 유하 씨에게 부탁을 하러 온 거고요, 내 곡의 보컬이 되어 달라고.”
서안의 말에 혹하는 자신이 있음을.
서안이 지금까지와는 달리 너무나도 진지한 태도로, 거짓말 하나 없다는 듯 그렇게 말했으니까.
그 때문일까.
‘…말이 나올 건 확실하다.’
나는 잠깐, 머리를 굴려 보았다. 이 제안은 받는 게 이득인지, 손해인지에 대해.
서안이 내 능력만을 보고 작업 제안을 건넸다 한들, 대중까지 그렇게 받아들일 리가 없다. 연줄로 나를 꽂아 넣은 게 아니냐는 말이 무조건 나올 수밖에 없겠지.
백이현과 어떻게든 거리를 두고 싶어 하던 것과는 달리, 백이현의 도움을 받고 있다는 이미지가 강화될 테고.
‘OST 제안을 받아들여 얻어지는 구설수. OST로 얻어질 대중성과 팬분들의 만족. 어떤 쪽이 더 무게가 있지?’
하지만, 나는 곧 머리를 굴리던 것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근데… 진짜 본인 잘하는 거 아는 거는 맞죠? 자기가 잘하면 굳이 그런 고민을 할 이유는 없잖아요? 처음이야 사람들이 뭐라고 말할 수야 있겠죠. 근데 제대로 된 작업물을 내놓아서 그 구설수를 없애는 게 진짜 능력 있는 거 아닌가?”
“…뭐라고요?”
내내 떨떠름했던 문제를 깨끗하게 치워 준 서안이 고민하는 날 두고 슬쩍, 입꼬리를 올린 채 사람을 떠보는 투로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었다.
그 이죽임을 냅다 물어 버린 내 모습에 서안은 빙글빙글 웃는 얼굴로 뒷말을 뱉어 냈다.
“그렇잖아. 난 유하 씨가 앞으로 이현이를 도울 위치까지 올라설 보컬이라 생각해서 제안을 건넨 건데, 유하 씨는 본인이 그럴 재목이 아니라 생각하는 거 같아서. 원디어 알리고 싶은 것도 그래서 아니었나? 실은 계속 도움받는 위치에 있고 싶은 거였어요?”
딱, 사람의 경쟁심을 지나치게 자극할 정도의 말들을 말이다.
그 때문일까.
“…그러는 서안 선배님이 만드신 노래는 충분히 좋습니까? 서안 선배님이야말로 백이현빨로 꽂혀 들어간 건 아니고요?”
“오. 이젠 나를 깎아 보시겠다? 내가 연줄로 꽂힌 건지 아닌지는 노래 들어 보고 결정할래요?”
“틀어 보시죠.”
놈이 이죽대는 꼴에 불쑥 튀어나온 반발심은 단번에 저울 한쪽에 무게를 더해 버리고 만 듯했다. 생각을 전부 끝내기도 전에 나도 모르게 불쑥 그렇게 말해 버릴 정도로.
“들어 보고 놀라지나 마요. 나 진짜 잘하는 놈이니까.”
그리고 나는 제 계획이 먹혀 들어갔다는 듯 신난 얼굴로 제 휴대폰에서 본인의 곡을 재생하는 서안을 보며,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왜 이렇게까지 익숙하고 짜증이 나나 했는데.’
생각해 보니 나는 이미 저런 성격을 한 번 본 적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오히려 익숙하다고 볼 수 있었다.
-유하, 피곤해? 뭔가 안 되는 거 같은데…….
-으음, 잘할 자신 있는 거 맞지? 아니~ 그냥 유하가 충분히 집중 안 하는 것 같아서.
[디자인 유어 아이돌> 초반부. 곡을 녹음할 때마다 때때로 보곤 했던 이죽거림.“어때요? 진짜 잘할 자신 있어요?”
“…….”
‘쫄?’이라는 듯한 저 표정까지.
서안의 표정은 내가 이미 여러 번 넘어갔고, 또 여러 번 골치 아파했던 에이든 리의 도발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었으니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