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Plan for the Second Life Idol RAW novel - Chapter (42)
‘제정신인가?’
나는 멍하니 시스템 창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3차 순위 발표식까지 데뷔권을 유지하라니. 심지어 결국 데뷔를 이뤄낸 김민기조차 매번 파란 의자에 앉지 못했는데.
‘…한 번 10위권 바깥으로 밀려난 적이 있었다고 했지.’
아마 3차 순위 발표식 때였나, 파이널 스테이지를 앞두고 10위권 바깥으로 밀려나 버렸던 적이 있다고 했다. 그 때문에 더욱 극적인 형태로 최종 데뷔를 했고.
김민기뿐만이 아니다. [디어돌>은 매화 연습생들이 어떤 분량을 타 내느냐에 따라 등수 변동이 극심하게 이루어졌다.
특히 10위권 안팎은 극소수의 상위권 연습생을 제외하고는 누가 10위권 안쪽으로 들어올지, 누가 밀려날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 그런 와중에… 끝까지 10위권 안쪽도 모자라 데뷔권을 이뤄 내라, 이거지.’
즉, 시스템은 내게 이렇게 요구하고 있는 거였다. 어떻게든 분량과 서사를 타내서 화제성을 유지하라고.
떨어질 생각 따위는 꿈도 꾸지 말라고 말이다.
“…….”
나는 여전히 빛나고 있는 시스템 창을 보며 생각을 다시 한번 정정했다.
이 시스템이란 걸 만들고 나를 회귀시킨 게 누구든… 그 새끼는 역시 내게 ‘운’을 주는 존재는 아니라고.
* * *
현재 팀의 구성으로 연습생들은 제작진들이 우리 팀에 뭘 원하는지 바로 눈치챘을 터였다.
가장 먼저 각각 KRM 출신인 나와 DIO 출신인 유찬희. 제작진을 비롯해 시청자들까지 기대하는 대결 구도다.
여기에 지난 팀전에서 나와 서로 은근한 견제와 외면을 해 왔던 황영오까지 붙여 뒀다. 지난 팀전에서 도지혁, 천세림과 반대 팀으로 신경전을 벌였던 유민성도 같은 팀이 되었고.
딱 각이 나오지 않나.
‘대놓고 갈등 서사를 원하고 있군.’
갈등 서사가 생기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구성이다. 이건 제작진 측에서 우리에게 건네는 어떤 메시지였다.
‘제대로 된 분량을 타내고 싶으면… 분위기 맞추란 거지.’
어차피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갈등 구도는 결국 서사 만들기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식으로 흘러가든 결국에는 찝찝함을 남기는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며, 각 연습생들은 득과 실을 동시에 가지게 된다는 거다.
그런 만큼 정말 피할 수 없는 갈등 구도라면 그 선을 어떻게 잡느냐가 중요했다. 그만큼 연습생들이 그 균형을 파악하고 어떻게 맞춰 나가느냐가 관건이었고.
“전 이 곡 하기 싫은데요.”
…그러니까, 이런 계산이 아예 되어 있지 않은 놈은 정말 제작진들이 맞춰 놓은 갈등 서사의 부스터이자 브레이크라고 할 수 있었다.
“왜요?”
“…저는 저 콘셉트가 안 어울릴 거라고 생각해서요. 한 번도 연습해 본 적 없는 거기도 하고.”
유찬희는 두루뭉술한 변명을 둘러대며 고집스럽게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불퉁한 얼굴에 절로 한숨이 새어나왔다.
“음, 그럼… 찬희는 무슨 곡 하고 싶어?”
“브레이크다운 선배님들의 데이나인이요.”
브레이크다운은 DIO 소속의 5년 차 선배 아이돌이었다. 힙합을 기반으로 한 강렬한 비트와 파워풀한 랩핑이 돋보이는, 메인래퍼를 지망하는 유찬희가 익숙해할 만한 곡이었다.
“하지만 찬희야, 데이나인에는 보컬이 부족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건 이번 리버스 미션을 선보이기에는 어딘가 부족함이 있는 곡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이번 미션에서는 서로의 포지션이 뒤바뀌는 만큼 적당한 밸런스를 유지한 곡이 유리할 터였으니까.
도지혁의 말에 유찬희가 울컥한 듯,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토해 냈다.
“하지만 그만큼 안전한 길이라고도 생각하는데요. 전 잘 살릴 자신 있어요.”
“근데 그렇게 되면 포지션이 한쪽으로만 너무 치우쳐질 것 같은데 괜찮으시겠어요?”
“괜찮지 않을 게 뭐 있겠어요? 어쨌든 잘하기만 하면 되는 건데.”
“…저도 찬희 씨 의견 동감이요. ‘Same And Different’보다는 데이나인 쪽이 좀 더 살리기 쉬울 것 같아요.”
보다 못해 천세림까지 나서 은근히 방향을 틀려 했지만, 유찬희가 볼멘소리로 그 말을 치고 나서는 바람에 별다른 효과를 보지는 못했다.
여기에 눈치를 보던 황영오까지 가세하자 상황은 제작진이 구성한 대로 흘러가기 시작하기 시작하는 듯했다.
‘…이렇게 될 줄은 알았지만.’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잠시 동안 상황을 살폈다. 이 분위기는 생산적인 회의 정도로 대충 얼버무릴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누가 봐도 본격적인 긴장감이 팀원들 사이에 서려 있었던 것이다.
‘곡 선택 의견을 내지 말 걸 그랬나.’
곡 선택에 앞서 잠시 동안 주어진 팀 회의에서 가장 먼저 의견을 낸 건 나였다. 이제 6년 차 아이돌이 되는 오키드의 Same And Different를 선택하자는 의견을 제시한 것도 나였고.
그런 만큼, 이런 상황은 실은 예견되어 있던 것과 다름없었다. 유찬희와 황영오가 내가 원하는 의견을 그대로 따라 줄 리 만무했으니까.
‘하지만 이 정도로 공사 구분을 못할 줄은 몰랐는데.’
황영오는 지난 팀전에서도 그랬듯 의견이 한 방향으로 좁혀지면 결국 제 불만을 접고 대세를 따를 놈이었다. 유민성도 잘은 모르겠지만 지난 [디어돌> 회차를 보면 분위기에 잘 휩쓸리는 놈 같아 보였고.
그러니 패착은 유찬희가 내게 가진 적대감을 너무 얕보았다는 점에 있었다.
“음…….”
상황을 중재해 보려고 하던 도지혁이 곤란스러운 듯 침음했다. 어쨌든 유찬희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무턱대고 그 의견을 무시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의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기존의 콘셉트를 유지하며 최대한 안정성을 노리는 길과 또 하나로는 과감한 편곡과 더불어 전체적인 콘셉트를 새로 추가해 잘하면 대박, 못하면 쪽박인 도전을 하는 것.
그런 만큼 보통 가산점을 얻고 ‘레전드 무대’로 꼽히는 건 후자의 경우가 더욱 많았고, 딱 그만큼 마이너스 점수를 얻는 것도 후자의 경우가 많았다. 유찬희는 그 점을 들어 안정성을 들고 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이건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기본 틀’일 뿐이다.
‘고려해야 할 점은 하나 더 있어.’
바로 [디어돌>이라는 프로그램의 특성 말이다.
[디자인 유어 아이돌>은 모든 능력치가 골고루 구성된, 이른바 만능 아이돌을 구성한다는 콘셉트를 가지고 있었다.그 때문에 무리수로도 비춰질 수 있는 창작 미션을 1차부터 연습생들에게 부여해 가며 그 콘셉트를 집중적으로 보여 주려 했고.
그런 구성을 통해 내가 알게 된 건, 어떤 식으로든 안정성은 이 프로그램의 틀 안에서 제작진들에게 큰 점수를 얻지 못한다는 거였다.
‘안전한 길은 재미가 없으니까.’
물론 투표를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는 건 대중, 즉 아이돌 메이커들이다. 그러니 제작진들은 좀 더 새로운 도전, 다양한 구성, 그를 통해 재미있는 서사를 만들어 내는 팀에게 카메라 분량을 몰아주려 할 터였다.
그건 결국 표심으로 직결될 테고.
“…….”
그리고 이런 제작진들의 뜻을 아마 눈치가 조금이라도 있는 연습생들은 대강 알아챘을 터였다.
나는 슬그머니 눈을 굴리다 나와 비슷하게 관찰하는 듯 팀원들의 얼굴을 마주하고 있던 천세림과 눈이 마주쳤다. 우리는 잠시 서로를 바라본 후 짠 듯이 한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서 도지혁과 눈이 마주쳐 허공에서 시선을 마주하게 된 우리 세 명은 그 순간 느꼈다.
‘각을 재고 있군.’
서로 어떻게 유찬희를 조절할지 재 보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각자의 마음을 알게 된 이 순간, 우리 세 명은 일종의 동맹을 체결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럼 유민성 연습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서로의 뜻을 알게 된 순간부터 주저할 건 없었다.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나였다.
“네? 저요?”
지난 미션에서도 큰 의견을 제시하지 못했던 유민성이 급작스러운 부름에 화들짝 놀라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답했다.
“네, 유민성 님은 지금 나온 두 곡 중 어떤 곡이 더 마음에 드시는지 의견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아무래도 모든 팀원들의 의견을 다 들어 보면 좋을 것 같아서요.”
“아… 전…….”
유민성은 쉽게 이야기하지 못하겠는 듯 팀원들의 얼굴을 훑었다.
살기등등한 기세의 유찬희와 그 옆에 붙어 있는 황영오, 비교적 느슨한 자세로 앉아 있는 나와 도지혁, 천세림을 발견한 후 유민성은 눈을 유찬희 쪽으로 굴렸다.
그때였다.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는 딴 팀을 밀고 들어가야 할 테니까, 딴 건 신경 쓰지 말고 하고 싶은 곡만 얘기해 줘.”
도지혁이 건넨 말에 유민성은 퍼뜩 고개를 들고는 잠시 푯말이 있는 구역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얼굴을 굳혔다.
“음…….”
저도 모르게 뱉은 듯 유민성에게서 터져 나온 침음에 나는 의문을 느끼고 그의 시선을 따라 이미 곡을 선점하고 경연곡 푯말 아래 서 있는 연습생들의 면면을 훑어보았다.
그리고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 이놈 머리 좀 잘 쓰는데.’
그저 이번 미션의 조건을 일깨워 주는 듯 보이는 도지혁의 말이 실은 유민성에게는 어떤 압박처럼 다가갔을 것이란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2차 미션의 곡 선택은 1차 미션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뤄졌다. 가장 낮은 등수의 연습생들이 속한 팀부터 곡을 선택하되, 높은 등수의 연습생이 속한 팀은 그 팀을 밀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1등인 강현진이 어떤 곡을 선택하려 할지는 모르는 일이나, 2등인 나와 3등인 도지혁이 한 팀에 속해 있는 만큼 아마 우리는 원하는 곡을 그대로 선택해 확정하고 미션을 진행할 수 있을 터였다. 어떤 쪽이든 연습생들을 무조건 밀고 들어가야 했고.
그리고 지금 현재 가장 아래 등수부터 시작되어 속속들이 차고 있는 경연곡들 중, 데이나인은…….
‘같은 소속사 연습생이 들어갔군.’
VOT 엔터테인먼트 소속으로 유민성과 함께 참가한 동료 연습생들 중 살아남은 한 명이 미리 선점한 상태였다.
즉, 이번 미션의 구조를 선택해 보았을 때 유민성은 데이나인을 선택할 수 없었다.
‘데이나인을 선택할 수 있는 건 두 팀. 상대 팀을 밀고 들어가면 같은 소속사 동료와 맞붙고 결국 상대를 떨어뜨려야 하니 피하고 싶을 테고, 그렇다고 같은 소속사 동료를 밀어 버리는 것도 꺼려지겠지.’
심적으로도 그렇고, 도의적으로도 그렇고. 어떻게든 유민성은 일이 그렇게 진행되는 걸 피하고 싶어 할 터였다.
방금 전까지는 팀 내의 신경전에 눌려 차마 같은 소속사 연습생의 현재 위치를 파악하지 못한 듯 보였기에, 도지혁은 가볍게 말 한마디를 던져 주의를 돌린 것이었다. 상황을 제가 원하는 대로 끌고 가기 위해.
그리고 그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전… 오키드 선배님들의 Same And Different가 좋을 것 같아요.”
유민성이 우리 쪽에 붙은 것이다.
유민성의 대답에 반응은 극명하게 나뉘었다. 유찬희와 황영오의 얼굴이 구겨졌고, 도지혁과 천세림의 어깨에 들어가 있던 긴장이 약간 풀렸다.
여기에 더해 상황을 정리한 건 천세림이었다.
“그럼 지금 의견은 Same And Different가 네 표, 데이나인이 두 표인 거죠? 그럼 저희 다수결 따를까요?”
“그게 좋지 않을까. 모두가 만족하는 길을 찾지 못한 건 좀 아쉽지만…….”
“하다 보면 길을 찾을 수도 있으니까요!”
역시 쿵짝이 잘 맞는 두 사람이 그런 식으로 분위기를 조성하자, 유찬희와 황영오는 둘이서 슬그머니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여기서 반대를 하고 나설지 아니면 그대로 따를지 고민하는 듯싶었다.
물론 그건 시도조차 하기 전 막혀 버렸다.
“아쉽겠지만 우리 잘해 보자. 콘셉트 관련해서는 너무 일찍부터 걱정하지 말고. 어떻게 편곡하고 구성을 추가하느냐에 따라 많이 바뀔 테니까.”
콘셉트니, 편곡이니 하는 식으로 또 한 번 이의가 제기되기 전 잘해 보자는 식으로 도지혁이 마무리를 하고 나섰기 때문이었다.
“아…….”
“괜찮지?”
“…네.”
그런 식으로 압박하듯 말하는 데 더 뭔가를 반대하고 나설 수는 없을 터였다. 게다가 이미 다수결로 결정이 난 문제이기도 했고.
‘여기서 더 반대하고 나서 봐야 득 될 게 없다는 건 아무리 생각이 짧다 해도 알겠지.’
내 생각대로 유찬희는 주변에 포진해 있는 카메라를 빠르게 훑어보고는 가까스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기세에서 져 버렸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더 이상의 악편을 감수할 의향은 없는 듯했다.
“…저도 좋아요.”
그렇게 되자 황영오도 다시 한번 대세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4조는 오키드 선배님들의 Same And Different를 선택하겠습니다.”
미소 지으며 MC가 건넨 마이크에 대고 이야기하는 도지혁을 보다가 나는 천세림과 눈이 마주쳤다.
씩 웃어 보이는 천세림을 보며 나는 이전에 놈이 내뱉었던 말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는데.
-형들, 같은 팀 되면 재밌겠는데요? 문제가 발생했을 때 지혁 형이랑 유하 형 둘 다 상황을 조율하기 위해 의기투합할 것 같달까. 오, 그러다 레전드 케미 나오는 거 아니에요?
…그 말이 어쩐지…… 예언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잘해 봐요, 우리.”
지나치듯 그렇게 말하는 도지혁에게 대충 고개를 끄덕여 준 후, 나는 다른 팀원들과 함께 경연곡의 이름이 쓰여진 푯말 아래로 가 섰다.
아직 상대 팀은 정해져 있지 않은 모양으로, 곡을 선택할 팀은 강현진이 있는 한 팀만이 남아 있었다.
그렇다면 자동적으로 강현진의 팀과 맞붙을 걱정을 해야 했으나, 나는 우려하지 않았다.
‘Same And Different를 선택할 리 없어.’
강현진은 지난 생에서 컨셉추얼한 곡을 최대한 피하려 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건 강현진이 택했던 곡들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는 도전보다는 안정성을 중시하는 모습을, 그런 만큼 곡 또한 이지 리스닝에 가까운 곡들을 선택했던 것이다.
“1조는… 6조를 밀어내고 C.X의 ‘Noize’를 선택하겠습니다.”
즉, 놈은 우리의 경연곡인 Same And Different처럼 원곡 자체가 이미 확실한 콘셉트를 가지고 있는 곡을 선택하려 하진 않을 터였다.
“1조의 선택에 따라 6조는 자연스럽게 오키드의 Same And Different로 이동합니다.”
그러나 내가 단 하나, 예상하지 못한 게 있다면.
“…….”
…놈이 밀어낸 팀에 누가 있는지까지는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음…….”
천세림이 살짝 미간을 찌푸린 얼굴로 우리 팀의 바로 옆에 와 서는 연습생들을 바라보았다. 그중에서 가장 익숙한, 하얗게 질린 얼굴의 주단우를 찾아낸 나는 생각했다.
‘…X됐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