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Plan for the Second Life Idol RAW novel - Chapter (425)
425화
“…안녕! 그럼 저는 내일 뵙도록 하겠습니다.”
조곤조곤 들려오던 목소리가 끝을 예고하는 것과 동시에 나는 흘긋 거실 중앙을 바라보았다.
펼쳐 둔 캐리어, 그 안에 꽉 들어찬 짐.
“공항에서 봐요!”
셀프 캠을 손에 쥔 천세림이 가볍게 손을 흔들며 촬영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씩 미소 지으며 마지막 인사를 한 천세림은 이내 전원 버튼 쪽으로 손을 뻗은 후, 가만히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잠시 한숨을 내쉬더니.
“이제 말해도 돼요. 하, 진짜 방송 사고 날 뻔했네.”
이내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거실부터 부엌까지를 한번 쓱 훑어봤다.
“다시 찍어야 하나 한참 고민했잖아요. 진짜 신경 쓰여서… 볼 게 뭐 있다고 그렇게 봐요?”
정확히는, 숙소로 돌아온 후에도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부엌과 거실을 하릴없이 어정대고 있던 멤버들을.
천세림의 말에 태연스럽게 대답을 한 건 뻔뻔하기로는 원디어 내에서 제일가는 두 멤버였다.
“흠, 최대한 몰래 지켜봤는데. 너무 티 났나?”
“오, 역시 세림. 우리가 훔쳐보는 거 어떻게 알았어?”
도지혁과 에이든 리 말이다.
한가롭기 짝이 없는 두 명의 대꾸에 천세림의 얼굴 위로 어이없음이 스쳤다.
“…그걸 말이라고 해요? 누가 몰라요. 잠이나 자야 할 사람들이 지금 거실에 모여서 평소엔 안 하던 일이나 하고 있는데. 됐으니까 이제 손에서 블록 놔요, 현진이 형이랑 이든이 형. 지혁이 형이랑 단우 형도 닭가슴살 소분 얼른 끝내시고. 그러다 못 써먹겠네.”
조금쯤 한심함이 섞인 시선이 자신들을 향하는 것에, 핑계 삼아 소일거리를 하고 있던 멤버들의 얼굴 위로 마침내 멋쩍음이 스쳤다. 변명이 이어진 건 그다음이었다.
“…음. 그냥 잠깐 놀고 있는 것뿐이야. 저번 팬 사인회 때 해X포터 레고 나왔다고 말씀 주신 팬분이 있으셔서 사 둔 거 지금 만들고 있는 거지.”
“맞아, 나도~. 현진이 형이랑 나랑 언제 한번 같이 만들기로 했었거든. 이 김에 같이 차도 마시고.”
먼저 입을 연 건 천세림의 카메라에 잡히지 않게끔 거실 한구석에서 레고를 만들고 있던 강현진과 에이든 리였다.
평소 차를 마시는 걸 좋아하는 두 명은 활동기에는 가질 수 없었던 여유로운 티 타임을 즐기고 있을 뿐이라는 듯 옆에 머그컵을 하나씩 두고 있었는데, 물론 그 변명이 통할 일은 없었다.
“그러니까, 활동 끝난 날에 그걸 왜 만들고 있냐고요. 그거 사 둔 지 꽤 된 거잖아요. 뭣보다 시작한 지 꽤 됐는데도 아직 바닥밖에 못 만든 건 재능이 너무 없는 거 아니에요? 그리고 이 새벽에 웬 카페인이에요. 잠 못 잘 일 있어요?”
“이거 캐모마일인데.”
“…생각보다 우리가 레고 쪽으로는 손재주가 없는 것 같아.”
천세림이 짐을 싸기 시작한 지 거의 40분이 되었는데, 두 명은 아직까지 구조물의 바닥만 만든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차를 마시기에는 시간대가 별로 좋지도 않았고.
뒤이어 입을 연 건 부엌 쪽에 있던 두 명이었다.
“으음. 우린 택배 온 거 얼른 소분만 하고 잘 생각이었는데, 이번에 시킨 닭가슴살이 좀 질긴가 봐. 아니면 칼이 좀 안 드나? 어떻게 생각해? 단우야, 집에 숫돌 있나?”
“아, 네. 있기는 한데 가는 건 내일 할게요. 음, 신경 쓰였다면 미안해… 세림아. 앞으론 이런 일 없게 잘 갈아 둘게. …그런데 혹시 정말 더 필요한 거 없어?”
“…형 이미 가서 먹을 한국 음식 한 보따리 싸 줬잖아요. 그것만으로도 작은 캐리어가 다 찼는데요.”
천세림은 떨떠름하게 한쪽에 놓인 짐을 가리켰다. 주단우가 며칠 전부터 천세림보다도 더 열심히 챙겨 둔 즉석밥과 라면, 김치, 통조림 반찬 등이 가득 채워져 있는 캐리어였다.
천세림은 되도 않는 변명을 늘어놓는 멤버들의 모습에 고개를 젓더니 팔짱을 꼈다. 그리곤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싶다가, 고개를 기울인 채 물었다.
“내가 그렇게 걱정스러운 멤버였나? 뭐 이렇게 물가에 애라도 내놓는 것처럼 전전긍긍해요? 얼마나 가 있는다고.”
아무래도 이해가 가지 않는 듯했다. 해외로 일하러 나가는 것쯤이야 드문 일이 아닌데, 멤버들은 천세림의 출국을 유독 우려하고 있었으니까.
‘뭐… 이유야 알 만하지만.’
2주년을 기념한 일주일간의 음악 방송 활동이 끝나 겨우 숙소로 돌아온 후에도 멤버들이 피곤함을 무릅쓰고 방 밖에 나와 있는 까닭. 핑계를 만들어 거실에 죽치고 앉아 하나라도 뭘 더 챙겨 주려 하는 이유.
“세림이 네가 가서 잘할 거야 알지. 그런데 이렇게 오래, 게다가 혼자 일 보내는 건 처음이니까. 조금도 못 쉬고 가니까 걱정도 되고.”
그건 결국 새로운 도전을 앞둔 천세림을 응원하기 위함이었으니까.
천세림은 고정 패널로 해외 여행 예능에 출연하게 된 덕에, 앞으로 약 10일간의 여행을 이어 갈 예정이었다.
‘본인이 원하던 스케줄이긴 하지만… 솔직히 피곤하겠지.’
음악 방송은 꽤나 체력을 잡아먹는 스케줄이다. 이번에야 실물 앨범과 함께 활동했던 건 아니니 타이틀 때만큼 힘들지는 않았다지만, 잠을 줄여 가며 일정을 소화한 건 마찬가지.
여기에 천세림은 당장 오늘 새벽 출국한 후, 앞으로의 여행 기간 동안 막내이자 통역사로 자신보다 나이가 한참 많은 선배들을 모셔야 했다.
거기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있을 텐데, 돌아오면 콘서트 준비 일정도 잡혀 있으니.
“비타민은 챙겼지? 홍삼은?”
“다 챙겼어요. 저 체력 좋으니까 걱정할 필요 없고요.”
“음식은 아끼지 말고 뿌려, 세림아. 같이 가시는 분들 한국 음식 좋아하신다며? 힘들 때 음식 함께 나눠 먹으면 예뻐해 주실걸.”
“그것도 상정하고 두 배로 챙겼죠.”
멤버들이 천세림의 컨디션을 걱정하는 것도 당연했다. 천세림이 귀국할 때까지 약간의 휴식 시간이 생긴 우리와는 달리, 천세림은 앞으로 콘서트가 끝날 때까지는 별도의 휴가가 없을 예정이었으니까.
들킨 김에 대놓고 걱정을 쏟아붓는 멤버들에게 손을 내젓던 천세림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픽 웃고는 한쪽을 향해 고갯짓했다.
“근데 굳이 안 보는 척할 이유는 뭐예요? 차라리 찬희나 유하 형처럼 대놓고 보시든가. 그쪽이 좀 덜 부담스러웠네요.”
거실 소파에 앉아 천세림을 지켜보던 나와 유찬희 쪽이었다.
굳이 말릴 생각도 없어 보이고, 멤버가 짐 싸는 걸 보는 데 괜히 핑곗거리가 필요한가 싶어 나와 유찬희는 천세림이 촬영을 하는 동안 거실 소파에 편하게 앉아 대놓고 놈을 구경하고 있었다. 어차피 바스트 샷만 찍는 셀프 캠이니 우리가 찍힐 일은 없기도 하고.
“너 근데 다 챙긴 거는 맞아? 그러다 현지 가서 빠뜨린 거 있다는 거 깨달으면 늦는다.”
이왕 이쪽으로 시선이 돌려진 김에 유찬희는 슬그머니 물었다.
천세림의 짐을 점검해 주기라도 하는 듯 날카로운 눈으로 지켜보더니, 자기도 걱정되긴 마찬가지였던 듯했다. 평소의 유찬희답지 않은 부드러운 물음이었다.
“후, 날 뭘로 보고. 나 천세림이야, 찬희야. 이미 만들어 둔 리스트대로 챙겼으니 걱정 마. 흠, 그런데 새롭고 고맙긴 하네, 찬희가 날 걱정해 주다니.”
“……! 뭐, 뭔 걱정이야. 그냥 네가 가서 괜히 헛돈 쓸까 봐 조언해 준 거지. 그렇게 자신하다가 막상 도착하고 나서 발견하게 되면 어쩌려고 그러냐?”
물론, 그건 유어원 사이에서 유찬희 담당 일진으로 불리는 천세림의 장난기를 불러일으킨 듯하지만.
“아~ 이번에 미국 갔을 때 다 챙겼다고 말했으면서 변압기를 두고 와서 하루 동안 꺼진 휴대폰으로 산 찬희 너처럼? 자존심 상한다고 몰래 사려다 걸렸었지. 으음. 확실히 그런 일은 있어선 안 되겠는데. 다시 한번 확인해 볼까?”
“야! 이게 걱정을 해 줘도.”
평소처럼 낄낄거리며 장난스럽게 유찬희의 우려를 종식시켜 주는 천세림의 모습에 멤버들이 덩달아 웃는 동안, 나는 놈의 캐리어 쪽으로 다가가 슬쩍 짐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동안의 탐색을 마친 후 물었다.
“환약은?”
“…….”
천세림이 챙긴 온갖 영양제 중, 놈이 그렇게 자신하는 체력 환약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옥의 쓴맛과 출처를 알 수 없는 재료로 불안감을 주긴 한다지만, 천세림이 자랑한 대로 효과는 확실한 ‘그’ 환약 말이다.
내가 그것을 언급하자, 천세림은 웃다 말고 침묵했다.
그러고는.
“…자, 다들 이만 자러 들어갈까요? 나도 지금 자면 두 시간은 잘 수 있겠…….”
“말 돌리지 말고. 챙겼어, 안 챙겼어. 그것만 말해라.”
“…….”
대놓고 말을 돌리려 해, 오히려 그가 환약을 빼놓았다는 확신만 내게 안겨 주었다.
대답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 생각으로 내가 말없이 놈을 바라보자, 천세림은 찔리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아니~ 챙기려고 봤는데 없더라고요. 원래 정기적으로 본가 갈 때마다 가져오긴 하는데 이번에는 스케줄 때문에 바빠서 못 갔잖아요? 그래서 없지 뭐예요.”
묻지도 않았는데 변명을 늘어놓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냥 먹기 싫어서 본가 안 간 건 아니고?”
“…하하, 형은 무슨 소리를. 제가 그깟 쓴맛 때문에 몸에 좋은 약을 멀리할 사람으로 보이세요?”
“충분히 그렇게 보이는데.”
“당연한 거 아냐?”
“…….”
뒤이어 나와 유찬희가 단호하게 대답한 말에 천세림은 웃는 얼굴로 우리를 외면했다.
그 모습에 나는 혀를 찼다.
‘일부러 본가 안 간 게 분명하군.’
맛은 극악이어도 천세림이 가져다준 약은 행운 룰렛이 내게 주었던 아이템만큼이나 효과가 뛰어났었다. 때문에 여행 중간에 컨디션이 떨어지더라도 대충 괜찮겠지, 했던 건데.
‘없다면 어쩔 수 없지.’
나는 조금쯤 찜찜한 마음으로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정확히는, 시스템 창 안쪽을.
그러다 이내 텅 비어 있던 주머니 안쪽에서 무언가가 잡히는 것에 나는 그것을 꺼내 천세림에게 내밀었다.
“그럼 이거라도 가져가라.”
“……? 이게 뭐예요?”
“몸 안 좋을 때 먹는 거.”
“…박X스 아니에요?”
“아냐, 그런 거. 좋은 거니까 그냥 받아.”
천세림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내가 내민 병을 받았다.
황금빛이 도는 물약이 채워져 있는, 띠지가 둘러져 있지 않은 어두운 갈색 병. 그건 행운 룰렛의 결과물로 튀어나온 것이었다.
『붕붕드링크 부스터샷』
24시간의 피로를 1초 만에 해결!
몸의 이상을 완벽 해결해 당신의 컨디션을 추가 24시간 동안 최상의 상태로 유지시켜 주는 특제 회복제
…물론, 이전에 내가 한 번 뽑았다 된통 당한 적 있는 아이템이라는 점에서 좀 꺼림칙하긴 했지만.
‘예전과는 좀 다른 듯해 보이니 다행이긴 하다만…….’
이번 붕붕드링크는 지난번, 내가 김태석이 수를 쓴 것에 대응하기 위해 행운 룰렛을 돌렸을 때 뽑혀져 나온 것이었다.
[디어돌>에 참여할 당시 한 번 사용했던 아이템인 붕붕드링크는 본래 일정 확률로 부작용이 일어나는, 양날의 검 같은 아이템이었다.하지만 시스템이 한 번 업데이트된 덕인지 당시 따라붙어 있는 부작용은 없어진 듯했다. 효과도 이전보다 더욱 좋아진 듯하고.
‘덕분에 원래는 30개나 됐던 개수가 딱 3개만 뽑혀 나오긴 했지만.’
어찌 됐든, 내가 천세림에게 붕붕드링크를 건네주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박X스라면 공항에서 사도 되는데. 저 그리고 효과 확실한 비타민제도 챙겼는데요.”
“이건 비타민도 아니고, 박X스도 아니야. 그냥 몸에 좋은 거라고 생각하고 가지고 가. 그리고 정말 죽겠다 싶을 때 먹어.”
내가 김태석에게 대응하기 위해 소모한 행운은 총 110point였다.
그중 80point는 원하던 대로 쓰였다. 하지만, 나머지 30point는 대체 뭘 위한 것인지 모를 괴상한 것들로 교환된 상태였다.
“……? 죽겠다 싶을 때요?”
“그래.”
하나는 지금 뽑은 붕붕드링크 부스터샷.
이거야 컨디션 난조를 위한 건가, 생각할 수라도 있다. 나머지 하나도 언젠가 요긴하게 쓸 수 있겠다 싶은 것이었고.
“피곤해서 딱 죽을 것 같다 싶거나 뭔가 잘못된 것을 먹거나 해서 아플 때.”
하지만, 남은 하나는 아직까지도 영 의도를 알 수가 없었다.
『모멘텀 이펙트』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 일어납니다.
주변의 변화를 주시하세요.
보상: ??
“…위험하겠다 싶을 때 먹으란 소리야.”
그건 내게 명백한 위협을 예고하고 있는 듯 느껴졌으니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