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Plan for the Second Life Idol RAW novel - Chapter (43)
경연곡 선택이 끝나고 둥그렇게 모여 앉은 우리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경연곡을 분석하고 그 방향성을 정하는 것이었다.
스태프들로부터 부여받은 가사지를 살펴보며, 나는 다시 한번 이번 경연곡의 원콘셉트를 떠올려 보았다.
이번 경연곡인 Same And Different는 전체적으로 청량과 몽환을 적절하게 섞은 댄스곡이었다.
전체적으로 클래시컬한 화성 진행과 더불어 스트링 베이스를 통해 몽환적인 느낌을 내 주는 곡이었는데, 곡의 리듬이 군데군데 빨라지는 지점에서는 매우 극적인 형태로 분위기가 반전되는, 적절히 포인트가 주어져 있는 곡이기도 했다.
그런 만큼 살릴 수 있는 부분과 살리기 어려운 부분의 구분을 나누는 것이 쉬웠고, 파트 배분도 포지션별로 적당히 잘되어 있는 만큼 경연곡으로는 손색이 없었다.
다만 콘셉트 체인지는 조금 까다로울 터였다.
“그런데 요정 콘셉트는 그대로 유지하는 게 좋을까?”
…왜냐하면 이 곡은 극도의 컨셉추얼함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요정 콘셉트는 발매 당시에도 호불호가 갈렸지.’
당시 오키드는 어딘가 붕 떠 있는 듯한 분위기와 무해하고 불안정한 소년의 이미지를 내세워 활동했다.
데뷔 초기인 만큼 멤버들의 나이대가 어려 콘셉트 자체가 겉도는 느낌은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딱 그 나이대에만 할 수 있다는 한계점이 있었다. 남돌에 요정은 너무 갔다는 대중의 반응도 있었고.
‘하지만 주제는 좋아.’
나는 가사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요정 콘셉트에 가려져 있기는 하지만, 가사와 더불어 표명하고 있는 주제 자체는 꽤 좋았기 때문이었다.
-Woo- 낯선 시선이 남긴 한마디
거울을 보는 듯한 환영에
다른 세상에 떠밀려온 기분
-look like me 또 다른 나
-강렬한 의문은 날 유혹해
숨길 수 없게 만들어
요정이라는 큰 주제 안에서도 오키드가 선택한 건 또 다른 자아, 즉 ‘체인질링’이었다.
‘또 다른 자아라는 건… 어떻게 푸느냐에 따라 꽤 매력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가사를 다시 한번 읽어 보았다. 가사 또한 콘셉트와 맞게 짜여 있어 좀 까다로워 보이긴 했지만, 한번 제대로 방향을 잡으면 꽤 괜찮은 결과물이 나올 듯했다.
가사나 콘셉트의 파악이 어느 정도 끝났는지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도지혁이었다.
“체인질링이 요정과 인간의 아이가 뒤바뀌어서 요정은 인간의 세계에서, 인간은 요정의 세계에서 자라게 된다는 거였지?”
“맞아요. Same And Different는 그렇게 혼란을 겪던 두 자아가 만나서 진짜 자신을 알게 되고 결국 서로 치유된다는 내용이고.”
“음, 난 곡의 서사는 마음에 드는 것 같아. 그래서 서사는 이대로 가져가면 어떨까 싶은데. 대신 편곡의 방향성은 좀 제대로 정하는 게 좋겠다. 헬퍼분께 전달드리려면.”
지난 창작 미션과는 달리 이번 미션에서는 이른바 ‘헬퍼’가 있었다. 이번에는 창작보다는 연습생들의 포지션에 더 중점을 두었기에, 편곡을 도울 전문가 헬퍼를 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포지션별로 정해진 미션이 없는 건 아니었다. 예를 들어 래퍼 포지션의 경우, 곡에 맞추어 랩 메이킹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 방향성을 잘 잡아야 해.’
헬퍼는 말 그대로 헬퍼다. 직접적으로 곡의 편곡 방향성을 잡고 콘셉트를 추가하는 건 연습생들의 몫이란 뜻이다.
그런 만큼, 애초부터 노래의 방향성을 확실하게 정해 이후의 일정에 차질이 없도록 토대부터 잘 다져 놓아야 했다.
“그 전에 저희 장르부터 정하고 가면 안 돼요?”
가사지를 들고 고민하던 중, 유찬희가 손을 들어 불쑥 말했다. 우리들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고정되자, 유찬희는 별러 왔다는 것처럼 의견을 내놓았다.
“곡 편곡 방향성부터 정하고 그다음에 전체적인 분석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전 최대한 클래시컬한 느낌은 빼는 형태로 진행하고 싶어서요.”
“편곡하고 싶은 방향성은 어떤 쪽을 원하실까요.”
“힙합이요.”
내 물음에 유찬희가 즉답했다. 놈은 확신에 찬 얼굴로 말했다.
“전 이번 미션에서 아이돌 메이커님들께 강렬함을 보여 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제가 리버스 포지션이 된 이상 조금이라도 더 익숙한 곡을 하는 게 그나마 제 실력을 보여 드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요.”
리버스 포지션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모르니, 곡이라도 익숙한 쪽으로 진행해 최대한 안정성을 확보해 보겠다는 뜻이었다.
‘…나쁘진 않지.’
클래식에서 힙합으로의 장르 변화. 나쁘지는 않았다. 어떻게 편곡을 해야 할지에 대한 방향성도 대충 보이는 것 같고.
그러나 유찬희가 원하는 힙합과 내가 원하는 힙합의 느낌은 다를 것이었다.
유찬희는 조금 더 정통 힙합 쪽을 원하겠지만, 나는 클래시컬한 느낌은 남기는 쪽이 더 편곡에 유리할 거라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그 말에 뭔가를 덧붙여 말하기 전, 나는 우선 주의를 돌려 보기로 했다. 다행히 우리가 정하지 않은 게 한 가지 더 있었기 때문이었다.
“각자 리버스 포지션은 어떻게 하실지 정하셨어요?”
내 말에 유찬희가 살짝 찌푸린 표정으로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전… 서브 보컬1이요.”
서브 보컬1은 그룹 포지션으로 따르면 일종의 리드 보컬로, 메인 보컬 다음으로 곡에서 가장 많은 파트를 가져가는 포지션이었다.
‘메인 보컬은 아무래도 부담스럽나 보군.’
유찬희는 지난 등급 평가에서 ‘봐’를 연습할 때도 고음역대를 잘 내지 못해 고전했었다. 래퍼인 그가 부르기에 ‘봐’의 음정은 너무나 높았던 것이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찬희는 부단한 연습을 통해 가까스로 음정을 맞추는 데 성공했다. 음이 좀 불안정하다는 게 단점이었지만, 깎인 점수는 춤으로 보완해 겨우 B에서 A클래스의 상승을 이뤄 낼 수 있었고.
그러나 지난 등급 평가 때 보컬로 고생을 한 기억이 좋게 남아 있지는 않을 터였기에, 놈은 이번 리버스 포지션을 더욱 부담스럽게 생각하고 있을 터였다.
“나는 서브 래퍼1을 하고 싶어. 유하는 어느 쪽이 편해?”
“메인 댄서보다는 메인 래퍼가 좋을 것 같습니다.”
현재 팀에는 메인 댄서 자리를 가져갈 수 있는 연습생들이 다수 있었다. 그러니 내가 굳이 메인 댄서를 할 필요는 없었다.
‘듣는 귀도 살려야 하지만, 어쨌든 눈을 사로잡는 게 가장 중요해.’
내가 D클래스에서 댄스 리더를 맡기는 했지만, 그건 클래스 내에서 내가 가장 안무 숙지가 빨랐기 때문이다.
래퍼든 댄서든 어쨌든 평소 나의 포지션이 아니기에 짊어져야 할 리스크는 같다. 그렇다면 대형을 이끌고 중심을 잡아 줘야 하는 메인 댄서를 할 만한 연습생이 현재 이 팀에 다수 있는 만큼, 그들 중 하나가 맡는 것이 퍼포먼스의 완성도를 살릴 수 있을 터였다.
“음, 그럼 메인 보컬 포지션이 비네.”
남은 포지션을 되짚어 보던 도지혁의 말에 옆에 있던 황영오가 불쑥 손을 들었다.
“그럼 메인 보컬 포지션엔 제가 지원하고 싶은데요.”
지난번 미션에서 나에게 메인 보컬 포지션을 넘겨줘야 했던 황영오는 경쟁자가 사라졌다 여기는 듯 처음으로 미소를 띤 얼굴이었다.
그러나 그 미소는 다시 한번 씻은 듯 사라질 수밖에 없었는데.
“아, 저도요~!”
그 뒤를 이어 천세림이 씩 웃으며 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음, 세림 씨는… 포지션이 래퍼 아니었어요?”
“아, 래퍼 자리는 다 찬 것 같아서요. 저는 포지션 구분은 딱히 안 하거든요. 그리고 형, 그냥 편하게 세림이라고 부르세요~! 씨라고 하니까 어색하다.”
“아, 어어. 그럴게.”
떨떠름한 얼굴의 황영오에게도 살갑게 이야기한 천세림이 과장된 얼굴로 고뇌하는 표정을 지었다.
“음, 우선 지혁 형이랑 찬희 님은 원하시는 포지션대로 진행하시면 될 거 같고……. 민성아, 너는 어떤 포지션 하고 싶어?”
“어? 아… 저는 좀, 댄스를 잘 살리는 쪽으로 하면 좋을 것 같은데요.”
“그럼 지금 메인 보컬은 저희 둘이서만 정하면 되는 거죠?”
“…그런 것 같은데.”
“메인 보컬 파트를 한 번씩 불러 보고 포지션을 정하는 것도 좋아 보이긴 하는데…, 전체적으로 곡이 어떤 방향으로 편곡될지 감을 잡는 게 먼저일 것 같네요. 형, 괜찮으시면 우리 파트는 편곡 방향 잡힌 이후로 정할까요? 아직 센터 자리도 공석이니까.”
물 흐르는 듯 유연하게 제 페이스대로 상황을 밀고 나가는 천세림에 밀린 황영오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는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며 의아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형, 나 노래 좀 봐 줄래요?
왜냐하면, 천세림이 메인 보컬을 하고 싶어 할 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천세림이 포지션을 따지지 않는 건 맞지만, 메인 보컬을 하고 싶어 할 리가 없어.’
지난번 개인 등급 평가에서 천세림은 보컬 쪽으로 주단우에게 도움을 구했다. 춤도 잘 추고 랩도 곧잘 하지만, 천세림은 그중에서도 보컬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정확히는 천세림 또한 유찬희와 마찬가지로 고음을 내지르는 데 익숙하지 않다고 볼 수 있었다. 음역대가 ‘봐’와는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단우를 통해 어느 정도 노하우를 습득하고 연습을 해서 비교적 괜찮은 실력을 보여 준 덕분에 A클래스를 지켜 낼 수 있었지만, 그런다고 한들 천세림이 고음역대를 보여 주는 걸 꺼리던 게 달라진 건 아니었다.
그리고 메인 보컬은 곡 내에서 가장 많은 파트를 담당함과 동시에 고음역대를 맡아야 하는 포지션으로, 천세림이 가장 피하고 싶어 할 역할이었다.
그러나 천세림이 지금 정반대로 행동하고 있는 건 아무래도….
‘…뭔가의 장치 같은데.’
즉 현재 상황을 좀 더 말이 되게 바라본다면, 놈은 원하는 바가 있고 지금 그걸 위해 밑밥을 깔아 두었다는 게 제일 설득력이 있었다.
그리고 아마 놈이 바라는 건…….
‘무난한 진행, 그리고 제대로 된 편곡 방향성과 콘셉트.’
-형, 콘셉트는 생각해 둔 거 있어요?
-아직은 감만.
-음~ 어쨌든 있단 거죠. 알겠어요.
오키드의 Same And Different를 선택하고 푯말이 있는 구역으로 자리를 이동할 때, 지나가는 투로 물은 천세림의 말이 떠오른 건 바로 그때였다.
나는 다시 한번 팀원들을 훑어보았다. 그리고 내가 의견을 냈을 때의 반응을 떠올려 보았다.
‘높은 확률로 또 한 번 분란이 일겠지.’
그리고 그 분란을 일으키는 건 유찬희와 황영오일 터였다. 어찌됐든 둘은 내게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고, 무슨 의견이 됐든 우선 물고 늘어져 보자는 마음가짐일 테니까.
황영오는 어차피 제작진이 깔아 둔 판이니 분량을 타 먹기 위해서라도 아슬아슬한 선을 달리려 할 테고, 유찬희는 일단 나를 반대하려 할 터였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놈은 나를 무너뜨리지 못해 안달인 듯했으니까.
그리고 그건 현재 상황에서 놀라울 만큼 시간을 잡아먹는, 아주 무용한 일이 될 것이었다.
‘제작진들의 뜻에 놀아나 주는 것도 좋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지금은 우선 빠르게 방향을 정하고 연습을 시작해야 했다. 이번 미션만큼 더욱 많은 연습 시간을 필요로 하는 미션은 없을 테니까.
패널티와 다름없는 리버스 포지션, 그리고 누구 한 명이라도 뒤떨어지면 그것이 큰 마이너스로 작용하게 되는 연대 책임 미션.
지금은 괜한 신경전을 벌일 때가 아니었다. 나 또한 최대한 그걸 피하고 싶었고.
그러니 천세림은 아마 날 위한 판을 깔아 둔 것일 터였다.
‘정확히는 윈윈을 원하는 거겠지만.’
나는 생각을 마치고 천세림을 바라보다가 놈과 눈이 마주쳤다. 씩 웃어 보이는 꼴이 꼭 잘하라는 응원을 하는 것 같아 괜히 어이가 없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도지혁을 바라보았다. 도지혁은 나와 천세림을 보고 대충 우리가 뭔가를 꾸미고 있다는 걸 눈치챈 듯했다.
아마 적당히 편을 들어주겠지. ‘그런’ 동맹이니까.
‘하…….’
어쨌든 어떤 식으로 분위기를 잡을지는 대충 감이 잡혔다. 나는 차마 내뱉지 못한 한숨을 속으로 삼키고 지끈거리는 머리를 눌렀다.
“콘셉트 말인데요.”
그리고 입을 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