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Plan for the Second Life Idol RAW novel - Chapter (436)
436화
“야, 야, 잠깐만, 단우야.”
티엑스가 뭐라고 대꾸하기도 전, 주단우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가 여전히 단정하고 곧은 태도로 허리를 꾸벅 숙이는 것을 멍하니 지켜보고 있던 티엑스는 주단우가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을 때야 다급하게 입을 떼었다.
‘뭐지? 왜 약빨이 안 돌아?’
티엑스는 문으로 향하는 주단우의 팔을 붙든 채 머리를 굴렸다. 이상하기 짝이 없었다. 분명 이쯤이면 약효가 돌고도 남았을 텐데, 돌아보는 주단우의 눈에는 여전히 총기가 어려 있었다.
‘내성이라도 있나?’
그렇게 생각하던 티엑스는 제 스스로 떠올려 낸 가능성을 단번에 부인해 냈다.
‘말도 안 되지. 주단우가 무슨.’
주단우가 마약에 대한 내성이 있을 리 없었던 것이다. 주단우를 철저히 고립시키던 박우재가 주단우에게 약을 흘렸을 리 없고, 꽉 막혀서 재미없기 짝이 없는 놈이 스스로 내성이 생길 만큼 마약에 익숙해져 있을 리도 없으니까.
‘그럼 약이 적었던 건가?’
그것도 아니었다. 주단우의 잔에 들어간 건 분명 사람 하나 정도는 거뜬히 쓰러뜨릴 수 있는 양이었다.
이미 몇 번이나 해 보지 않았나. 덜 넣었을 리 없었다.
그런데도.
“죄송합니다. 이젠 정말 가 봐야 할 것 같아요.”
주단우는 너무나도 멀쩡해 보였다, 분명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술을 전부 비웠는데도.
그렇다면, 아마도 시간 때문일 터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약이 몸 안에 도는 데 시간이 좀 걸리는 것일 거다.
“아니, 설명을 하고 가야지. 내가 널 위해 이런 제안을 하는 거 모르는 거 아니잖아. 네가 만든 곡으로 솔로 데뷔하자는데, 이게 거부할 만한 제안인가?”
그렇기에 티엑스는 주단우를 조금만 더 붙잡아 놓기로 했다.
실제로 정말 궁금하기도 했다. 왜 주단우가 바보처럼 구는지 말이다.
제 곡을 다른 아티스트들에게 주겠다는 것도 아니고, 시즈로 돌아오면 고스란히 주단우가 돌려받을 수 있다는데도 왜 거부를 하는지.
“단우야, 좀 잘 생각해 봐. 이런 기회 누구에게나 주는 거 아냐. 애초에 솔로로 시작하는 래퍼면 모를까, 넌 아이돌이잖아. 그룹으로 데뷔하는 애들 중에 솔로 활동 기회 얻는 애들, 안 많아. 다른 애들은 무릎 꿇고서라도 받아 가고 싶어 하는 기회라고, 이건.”
“…….”
무엇보다도 솔로 활동을 왜 거부하는지, 그로서는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으니까.
그룹으로 묶어 데뷔하는 아이돌들은 커리어가 끝날 때까지 솔로 활동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팀에 비해 리스크가 큰 솔로 활동은 어느 정도의 수익이 보장되는, 인기 멤버에게만 주어지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즉, 솔로 활동이란 회사에 의해 선택받은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기회이자 인기의 척도였다.
회사가 그를 지원해 준다는 증거, 그 아이돌이 혼자로도 팔릴 만한 충분한 역량을 가지고 있다는 증표이자 짧디짧은 아이돌 수명을 이어 주는 구명줄로 통했던 것이다.
팀으로 묶여 팔리는 아이돌의 수명은 짧지만, 솔로로 활동하는 아티스트들의 수명은 그보다는 좀 더 길게 가니까.
“언제까지 팀에 묻어갈래. 너도 독립해야지. 원디어의 주단우가 아니라 그냥 주단우로 통하고 싶지 않아? 지금 원디어를 떠올리면 누가 먼저 생각날 것 같아. 너도 네가 아니란 건 알잖아. 그렇게 중요도에서 뒤처진 멤버로 활동 끝낼래?”
뭣보다 솔로 활동을 하면 자신에게 잘 맞는 콘셉트를 가지고 나와 홀로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할 수도 있었다. 굳이 팀에 자신을 맞추고, 누군가에게 가려질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나도 그런 식으로 거지 같은 팀 박차고 나와서 잘된 거고.’
팀에 소속되었을 때보다 솔로로 전향했을 때 더 못 버는 아티스트들도 왕왕 있다지만, 그럼에도 솔로 활동은 거부하기 어려운 제안이었다.
팀에서 빠져나와 솔로로 전향해 잘된 케이스는 이 업계에 얼마든지 있으며, 무엇보다 관심과 수익을 나누지 않고 홀로 독식할 수 있다는데 그 누가 거부할 수 있을까.
그러니 보통의 아이돌들이라면 무조건 받아먹고 싶어 할 기회일 텐데도.
“대표님. 전… 제가 원디어의 주단우이기 때문에 많은 팬분들께서 절 응원해 주시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뭐?”
그의 생각처럼, 주단우는 정말이지 답도 없는 놈이었다.
“분명 많은 분들이 원디어를 떠올릴 때, 제가 아니라 다른 멤버들의 얼굴을 먼저 떠올려 주실 겁니다. 하지만… 분명 저를 떠올려 주시는 분들도 있을 거예요. 전 그걸로 충분합니다.”
“…….”
“그분들은 제가 원디어이기 때문에 절 알아주셨고, 좋아해 주시고 계세요. 그리고 많은 분들이 제가 속해 있는 일곱 명의 팀을 사랑해 주고 계시겠죠. 그리고 그분들은 제가 팀에서 지금 같은 역할을 해 주기를 원하고 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진 그런 것들만 보여 줬으면 딴 모습도 보여 줄 필요가 있다는…….”
“네, 그래서 다른 모습을 보여 줘도 전 원디어의 주단우로서 보여 드리고 싶어요. 저에게서 원디어를 떼어 낸 채 ‘독립적’인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멍청하기 짝이 없는, 정에 약해서는 뭐가 진짜 자신에게 좋은지도 모르는 놈.
“따로 무언가를 보여 드릴 필요가 있을 때도 있겠지만, 그조차도 전 팀에 속한 채로 하고 싶어요. 주단우라는 이름을 좀 더 보이게 하고 싶지만, 원디어를 가리고 싶지도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지금은 제가 나설 게 아니라 팀이 조금 더 높이 올라갔으면 좋겠어요.”
“…하.”
“…그렇게 되면 팀에 속해 있는 멤버들 전원이, 그 안에 있는 저까지 함께 빛날 것 같아서요. 다른 멤버들이 그걸 위해 힘쓰고 있듯 저도 지금은 팀 활동에 더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혼자 살아갈 용기도 없는, 약해 빠진 새끼.
역시 아이돌을 하면 안 되는 놈이었다. 팀에서 벗어나지도, 다른 멤버들을 짓누르지도 못하는 놈을 대체 어디다 써먹는단 말인가.
“…무엇보다도, 저도 원디어의 주단우로 활동하는 게 좋아서……. 그래서 제안은 정말 감사하지만 당분간은 솔로 활동은 못 할 것 같습니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한번 허리를 굽히는 주단우를 경멸에 찬 눈으로 바라보았다.
여전히 주단우의 얼굴엔 어떤 변화도 없었다.
‘뭐야? 이거, 이상한 거 아냐?’
티엑스가 본인이 소지한 마약에 의구심을 품을 만큼.
* * *
티엑스는 먼저 대표실을 빠져나간 주단우보다 한발 늦게 최상층에서 로비로 내려왔다. 여전히 로비는 시끄러운 음악이 틀어져 있었고, 초대객들은 여기저기 흩어진 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주단우, 주단우는…….’
그는 가느스름하게 뜬 눈으로 주변을 훑었다. 당황해서 주단우가 나가는 대로 그냥 두긴 했지만, 생각해 보니 오늘의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클럽으로 오게 해야지. 뭐가 됐든 약점을 잡아야 해.’
김태석 그 인간 말대로라면, 주단우를 이대로 가만히 내버려 둘 수만은 없었다. 원유하를 필두로 한 원디어 일곱 명은 로드 엔터의 대표, 하승혁과 끈끈하게 얽혀 있다지 않나.
가뜩이나 뒤에 에이넷과 KC ENM을 두고 있는데, 로드 엔터가 언제 제가 다 키워 놓은 주단우를 빼돌리려 할지 몰랐다.
주단우가 말하는 꼴을 보면, 본인도 시즈레이블을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어 하는 것 같고.
‘한 번 더 먹여서 설득해 보고 여차 싶으면 주단우 과거 건으로 협박을 해서라도…….’
때문에 티엑스가 또 한 번 마약을 섞은 술잔을 손에 쥔 채 주단우를 찾아 돌아다닐 때였다.
“선배님.”
“…아, 유하 씨.”
그는 순간 자신의 시야에 훅 들어온 누군가의 모습에 얼굴 위로 미소를 덧씌웠다. 어느새인가 원유하가 자신의 앞에 다가와 있었다.
그는 원유하의 주변을 훑었다. 같은 팀 멤버를 찾으러 간다고 하기에 주단우가 원유하와 같이 있을 줄 알았는데, 그는 혼자였다.
“단우는요? 이야기 끝나서 먼저 나갔는데, 유하 씨 찾겠다고.”
“단우 형은 먼저 내려갔습니다. 술 한잔 마셨다고, 대리 불러야 될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얼굴에 열 오르는 것 같다고 해서 바람 쐴 겸 먼저 내려가 있겠다고도 했고.”
“…아, 그래?”
티엑스는 속으로 올라오는 욕지기를 짓씹어 겨우 넘겼다. 도망간 게 틀림없었다.
‘어쩔까.’
내려가는 거야 별문제는 안 된다. 그렇지만 손에 들고 있는 술잔까지 들고 가 주단우에게 억지로 먹인다는 건 말이 안 됐다. 아무리 주단우라도 왜 이렇게 뭔가를 먹이려 하나, 의심할 테니까.
‘원래는 설득하기 위해 분위기 푸는 척하면서 한 잔 더 먹이려던 건데.’
그렇게 티엑스가 혀를 차며 제 손안의 술잔을 내려다봤을 때였다.
‘…잠깐, 주단우 이 새끼는 정에 약하잖아.’
그는 시선을 다시금 올려 눈앞의 원유하를 바라보았다. 옅게 미소한 얼굴로 자신을 마주보고 있는 원유하는 제가 들린 술잔에 뭐가 들어 있는지 조금도 모르고 있었다.
이미 한 번, 그가 주는 것을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먹은 전적도 있었고.
“아쉽네. 단우가 드디어 나랑 같이 술 마셔 주는구나 싶어서 보내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잔 건배하려고 했는데. 피커즈 애들 성공도 기원하고, 단우 활동도 응원할 겸.”
그렇다면 타깃만 바꾸면 될 일이었다.
“아… 형도 좀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아마 더는 못 마실 것 같은데.”
“그래? 아쉽네. 김빠져서 어떡해. …음, 유하 씨는 술 안 마신다고 했나?”
“…저요?”
“그래, 유하 씨.”
왜 이 생각을 못 했지?
티엑스는 손에 들린 술잔을 꽉 잡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원유하를 클럽으로 보내면 주단우는 제 팀 멤버를 챙겨 가기 위해서라도 자신이 있는 곳으로 찾아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른바 ‘관계자’들로 그득한 클럽에 발부터 들이면, 그다음에는 제가 원하는 대로 놈을 굴릴 수 있고.
‘어차피 이 약이 제대로 통하는지도 확인해 봐야 하니까.’
티엑스는 아쉬운 얼굴로 제 손안의 술잔을 내려다본 후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곤 김새 죽겠다는 얼굴로 투덜거리듯 말을 이었다.
“그렇게나 오래 단우를 알아 왔는데, 내가 준 술을 마신 건 이번이 처음이었거든. 그래서 이번에야말로 단우랑 같이 술자리를 가질 수 있겠구나 싶어서 좋았는데, 좀 아쉬워서.”
“아…….”
“그래서 말인데, 혹시 괜찮으면 한잔만 같이 해 줄 수 있을까? 단우 대신해서. 가져온 술도 있으니까. 유하 씨도 단우 따라 내려갈 거면 그 인사도 겸하는 거지.”
원유하는 떨떠름한 시선으로 내밀어진 술잔을 응시했다. 아까 전에도 거절했던 술을 다시금 자신에게 들이미는 것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는 게 보였지만, 그는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딱 한 잔만. 단우도 마셨는데.”
이번에도 딱 한 잔이면 충분했으니까.
그리고, 원유하는 절대 거부할 수 없을 터였다.
“…그럼 딱 한 잔만 마시겠습니다.”
까마득한 선배가 몇 번이고 거절당하면서도 술잔을 내미는데, 후배 놈이 얼마나 더 거부하겠나. 같은 팀의 멤버까지도 받아 마셨다는데.
덕분에 티엑스의 손에 들린 술잔은 수월하게 원유하에게로 넘어갔다. 그는 원유하가 쓰러지기라도 하면 다른 놈들에게 들키지 못하게끔 얼른 부축할 준비를 했다. 원체도 술이 약한 편이고, 그게 업계에서도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라 하니 과음이랍시고 둘러대면 될 터였다.
“만나서 반가웠어, 유하 씨. 다음에도 단우랑 같이 놀러 오고.”
“네, 저도 만나 뵈어서 반가웠습니다.”
때문에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은 제 잔과 원유하의 술잔을 잠시 맞부딪친 후, 그는 원유하의 목울대가 움직이는 것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그러고 보니 유하 씨, 나한테 작사 관련해서 조언 구할 거 있다지 않았나? 그 이야기를 못 했네. 괜찮으면 잠깐 올라갈까? 아니면 자리 옮겨도 좋고.”
그리고, 티엑스는 이내 원유하가 있는 쪽으로 손을 뻗으며 선심 쓰듯 입을 열었지만.
“아, 그건 됐습니다.”
“…어?”
티엑스는 다시 한번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 보니 혼자서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괜히 이런 일로 선배님께 폐를 끼칠 순 없죠.”
“…….”
또 한 번, 기대와는 다른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기 때문이었다.
허물어지기보다는 오히려 꼿꼿하게 서는 몸. 어둑한 조명 아래에서도 은은하게 반짝이는, 흐릿함 없는 눈.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오늘은 감사했습니다.”
직전의 주단우처럼, 원유하는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 이상하게도, 오히려 비웃는 듯이 느껴지는 시선으로 그를 응시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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