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Plan for the Second Life Idol RAW novel - Chapter (439)
439화
※ 이번 화에는 가정 폭력과 관련된 묘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감상에 참고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주단우가 농구를 그만둔 건 열여섯이 끝나 갈 무렵이었다.
어릴 때부터 또래에 비해 한 뼘은 더 컸던 키 덕분에 시작한 농구는 그가 중학교를 졸업할 즈음 입은 부상으로 인해 그만둘 수밖에 없게 되었다.
오래 몰두했고 많이 좋아했지만, 농구를 그만두게 되었을 때 주단우가 느낀 것은 약간의 아쉬움과 그 배에 달하는 안도였다.
-선수가 되고 싶은 거 아니었어? 단우야.
-그건 아니에요.
꾸준히 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래서 농구를 그만두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농구를 ‘좋아하기’ 위해서는 요구되는 것들이 많았으니까.
그 마음이 불러오는 부담은 차곡차곡 가족의 어깨에 빚처럼 쌓여 갔고.
-그냥 좋아했던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 그만 됐어요, 지금까지 너무 즐거웠으니까.
그러니 어쩔 수 없이 그만두게 되는 건 오히려 좋았다. 이번 기회가 아니었다면 주단우도, 그의 어머니도 내내 힘겨워했을 테니까.
언젠가는 분명 좋지 않은 때에, 좋지 않은 마음으로 그만두게 되었을 테니까.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해 몰려나듯 그만두는 것보단 낫다고, 주단우는 생각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포기할 마음을 먹어 왔었기 때문일까, 다행히 주단우는 또 한 번 빠르게 새로운 일상을 꾸려 나갈 수 있었다.
-한번 연락 줘요. 비주얼도 그렇고 목소리 들으니까 우리랑 잘 맞을 것 같아서 그래.
그즈음이었다. 시즈레이블로부터 명함을 받고.
-나랑 되게 닮았네. 마지막으로 봤을 땐 기지도 못하는 어린애였는데, 넌.
과거 헤어졌다는 가족에게서 연락을 받게 된 것은.
간단한 오디션 후 시즈레이블에 입사해 연습생으로서의 생활이 어떤 것인지를 배워 가고 있을 무렵이었다.
모르는 번호로 도착한 문자 메시지. 반쯤 속는 마음으로 상대방이 정한 약속 장소로 나갔을 때, 그는 자신과 똑 닮은 남자를 만날 수 있었다.
-넌 너한테 형이 있는 것도 모르고 있었어? 참 대단도 하다.
열네 살 차이라고 했다. 그래서였을까,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이었을까. 처음 만났을 때부터 어쩐지 친밀한 감정은 들지 않았다.
평생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형제였는데.
-그래, 넌 연습생 하고 있다고? 엄마는 그럼 혼자 있겠네?
실제로 만났을 때는 낯설다는 감각만이 들었을 뿐이었으니까.
자신과 닮은 얼굴이지만, 형은 달랐다. 웃는 얼굴에는 이유 모를 서늘함이 서려 있었고 가늘게 뜬 눈에는 사람을 훑는 기색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형은 무관심해 보였다.
반갑다는 듯 말하고 있는데, 십수 년 만에 만나 가족이라는 이름을 주워섬기며 그의 안부를 묻는데도 실은 그것을 정말 궁금해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주단우는 생각했다, 눈앞의 사람은 가족보다는 모르는 사람 같다고.
-잘 지내셔? 엄마 한번 보고 싶은데, 집 주소 좀 알려 줄래? 언제 만나러 가고 싶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닮은 얼굴인 것은 분명해서.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로 어머니 혼자 남았을 뿐인 주단우의 가족이 한 명 더 는 것만은 확실했기에, 그는 바보 같은 행동을 하고야 말았다.
어째서 자신이 지금까지 형의 존재를 몰랐던 건지 따위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지지 않고, 제 경계선 안쪽에 형을 들여 버리고 만 것이다.
주단우가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것은 그다음부터였다.
-…엄마, 몸은 괜찮으신 거예요?
-그냥 좀 피곤해서 그래. 걱정은 말고. 그보다 단우 너는 배우는 건 어떠니? 노래 만드는 게 좀 재미있다고 저번에 그랬었지?
시즈레이블에 입사한 후, 주단우는 회사의 요구에 따라 연습생 숙소로 들어갔다.
몸이 좋지 않은 어머니를 혼자 둬야 한다는 것이 우려스럽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실은 그 때문에 시즈레이블에 들어가는 것을 망설이기도 했었으니까.
-하고 싶은 거잖아. 그럼 하자, 단우야. 나는 네가 후회하는 게 싫어.
하지만 어머니가 그렇게 말했기 때문에. 혹시 무슨 일이 있을 땐 무조건 그에게 연락하겠다고 약속해 주었으니까.
무엇보다도.
‘…재밌어.’
끝까지 해 보고 싶은 것을 만나 버렸기 때문에.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곡을 만드는 것이 좋았다. 매순간 누군가에게 즐거움을 주기에 본인도 즐거워하며 살아야 하는 직업이라는 게 좋았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돌이 되고 싶어졌다.
주단우는 자주 아무런 걱정 없이 웃고 싶다고 생각했었으니까. 아이돌이 되면 조금 더 정당하게 누군가를 위해, 본인을 위해 웃어도 될 것 같아서.
무엇보다도 랩을 위해 가사를 쓰다 보면,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말들을 조금이나마 당연하다는 듯 말할 수 있게 되어서.
가족에게 부담이 되지 않는다면 이 꿈을 조금은 진지하게 받아들여도 되지 않을까. 돈이 아니라 노력과 재능으로 미래가 결정된다면, 최선을 다해 봐도 괜찮은 게 아닐까 싶어서.
-…자주 올게요.
주단우는 욕심을 부려 보고 싶어졌다. 이 정도쯤은 괜찮지 않을까, 안이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몰랐다. 혼자 있는 어머니를 챙겨 줄 것이라 생각해 만난 형이 자신과는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을 줄.
「발신: xxx-xxxx-xxxx
네 형이랑 혹시 만난 적 있니?」
누군가 경고를 보내 올 때까지 정말로 몰랐다.
그래서 아주 뒤늦게야 알게 되었다.
-내가 많은 걸 바라는 것도 아니잖아. 누가 내 인생 다 책임져 달래요? 그냥 적당히 성의만 보여 달라는 거지. 엄마가 나한테 미안한 만큼만, 어쨌든 날 사랑하긴 하는 거면 그만한 값을 보이란 거예요. 나한테 못 해 준 만큼만 해 달라고.
형이 어머니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는 것을.
연습생을 시작한 지 3년가량이 되었을 무렵이었다. 점점 힘들어지는 연습 과정, 어딘지 모르게 엄격해진 평가 기준에 맞춰 온 시간을 회사에 할애해 허덕거리고 있을 때.
휴대폰에 도착한 메시지에 주단우는 이상한 감각을 느꼈다. 무언가가 아주 착실하게 어긋나 버린 것만 같은, 무언가 큰 잘못을 저질러 버린 것 같다는 기묘한 예감이었다.
때문에 주단우는 그날 연습을 빠지고 회사를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고, 거기서 목격하게 되었다. 괴로워하는 어머니를 아랑곳 않고 제 감정을 쏟아 내기 바쁜 형을.
아니, 그게 정말 감정이기는 했을까.
-뭐가 어렵다고 날 못 돕냐고. 나한테 미안하다며. 그럼 어떻게든 날 돕는 게 맞잖아. 기대하게 해 놓고 왜 이따위로 구냐니까? 엄마가 이러면 또 한 번 나 버리는 거야. 알겠어요?
생각해 보면 아니었던 것 같다. 그 행동에는 감정조차 어려 있지 않았다. 그의 형은 아무런 가책도, 생각도 없이 그의 어머니를 쥐어짜 내고 있었을 뿐이었으니까.
가족이 아닌 완벽한 타인으로. ‘가족’이라는 이름을 명분 삼아 당연하다는 듯이.
모르겠다. 뭘 어떻게 했어야 했던 걸까.
-야. 미쳤냐? 네가 뭔데 나보고 집에 오지 말래. 인생 행복하고 좋았지? 너만 사랑받아서. 이제 와 엄마 공유할 수 없다 이거야?
고압적으로 어머니에게 말을 쏟아 내고 있는 형을 떼어 낸 후, 주단우는 형에게 다시는 집에 오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형은 주단우의 말을 들어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주단우의 반응은 제 형을 더 반발하게 한 것 같았다. 그 후, 주단우는 자주 어질러져 있는 집과 마주하게 되었으니까.
점점 더 어두워지는 어머니의 얼굴과 자주 어머니를 붙들고 술 냄새를 풍기며 고함을 치는 형의 모습을 목격했으니까.
주단우는 최선을 다해 형을 말렸다. 언젠가부터는 아예 집과 회사를 오가며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 애썼다. 어떻게든 어머니가 덜 상처받기를, 형이 단념해 주기를, 마음을 고쳐먹어 주기를 바랐다.
「발신: xxx-xxxx-xxxx
나는 그놈 손에서 놨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없어.
수십 번을 덮어 주고 용서해 주고 지원해 줘도 걘 안 돼.
받아 주지 말라고 엄마한테 전해. 끝이 없으니까, 그놈은.」
하지만 상황은 점점 더 좋지 않게 돌아갔다.
어린 시절부터 착실하게 엇나가 정말로 돌아갈 곳이 없어져 버린 형은 찾아낸 구명줄을 쉽게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 주단우에게 그러하듯 어려서 떼어 놓은 아들에게 죄책감을 가지고 있던 어머니도 쉽게 그를 떨쳐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럴수록 주단우는 점점 숨이 막혀 왔다.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 시간을 할애할수록 회사에서는 점점 더 밀려나고 있었고, 형은 이제 매일매일 어머니를 찾아오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아니면, 그조차도 그냥 변명에 불과한 걸까?
-엄마!
어느 날, 집으로 돌아온 주단우가 늘어진 술병 사이로 어머니를 붙들고 있는 형을 마주했을 때.
허덕거리면서,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발작하는 어머니를 챙기지 않고 마치 죽으라는 양 폭언을 쏟아 내는 형과 마주한 후.
그를 떼어 놓기 위해 형의 손을 붙든 순간 주단우는 깨닫고 말았다.
자신의 키가 더 크다는 걸.
제 몸이 더 단단하다는 걸.
술 냄새를 풍기는 이 사람은 한 번의 떠밈으로도 밀어낼 수 있다는 걸.
깨달은 순간 행동은 빨랐다. 머릿속으로 사고가 스칠 새도 없이, 어떤 반사 작용처럼.
-으아악!
-……!
주단우는 형을 거칠게 밀쳐 내 버리고 말았고, 그 순간 형은 훅, 뒤로 넘어갔다.
퍽!
그 뒤 울리던 둔탁한 파열음. 몸을 웅크리던 형이 신음을 내뱉던 소리, 어머니가 다급하게 어딘가에 신고를 하던 목소리, 깨진 술병 사이로 번지던 붉은색까지.
…그다음은 생각도 하고 싶지 않다.
생각할 수 없다는 것에 가까운 건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시간이 지났는지도 떠오르지 않을 만큼, 기억이 흐릿하기 때문에.
다만 확실한 건 몇 개 있었다.
-단우야, 걱정하지 말고… 엄마가 다 처리했으니까, 응?
형이 상해에 대한 피해 보상금을 주단우와 어머니를 향해 요구했다는 것. 어머니가 군말 없이 그것을 넘겨줌과 함께 더 이상은 찾아오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는 것.
-이야, 이거 진짜 골 아프다… 아니, 네 잘못은 아닌데.
-…….
-근데 기록에 상해로 네 이름 남은 것도 맞고. 이거 잘못 나갔다간 나중에 너 활동 아주 말아먹겠는데……. 어떻게 하다 네가 폭력을 휘둘렀나, 이런 게 실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건 아닐 거거든. 그냥 이 사건이 밝혀지면 넌 범죄자로 여겨질 뿐일 거라서.
주단우가 아이돌이 되면 안 되는 이유가 생겼다는 것.
거기까지가 주단우가 아는, 그 사건이 벌어진 이후의 상황이었다.
그리고 주단우는 여기서 아주 큰 잘못을 하나 더 저지르게 된다.
-근데 이 사건 아는 게 너희 가족 정도뿐이니 어디 퍼질 일도 없고, 우리가 전부 입만 다물고 있으면 뭐 별일이 있겠어? 너무 걱정은 마라. 입단속만 잘하자고, 우리. 응?
-그럼…….
그만둬야 하는 게 옳았는데.
이번에도 그만둘 이유가 생긴 것이었는데. 당연하다는 듯, 그만둬야 했는데.
자신의 존재로 훗날 같은 팀이 될 멤버들에게 피해가 가게 될 수도 있음을 모르지 않았는데.
-…저, 아이돌… 포기 안 해도 되는 걸까요?
농구와 달리 이번에는 포기할 수가 없었다는 것.
그래서 또 한 번 욕심을 부리고 말았다는 것. 그것이 주단우의 가장 큰 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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