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Plan for the Second Life Idol RAW novel - Chapter (44)
“힙합으로 갈 거면 세림이 쪽으로 추천하고 싶어요.”
“…음, 이유를 물어봐도 돼?”
“목소리 톤이 좀 더 분위기에 맞는다고 생각해서요.”
나는 짜증을 숨기기 위해서인지 일부러 웃고는 있지만, 가라앉은 목소리만큼은 숨기지 못하는 황영오에게 그렇게 답했다.
“영오 형은 톤이 좀 섬세한 편이고. 세림이 쪽은 좀 더 강한 느낌이 나는 것 같아서요. 힙합으로 하게 되면 아무래도 강한 비트에 맞추게 될 텐데 그러려면 세림이 쪽이 맞을 것 같아요.”
내 말에 황영오가 입을 다물었다. 지난 무대에서 천세림의 톤이나 분위기 등이 힙합과 어울렸다는 걸 무대로 확인했을 테니, 그 말에는 반박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너도 여기서 포기하고 싶진 않겠지.’
나는 황영오가 충분히 생각하기를, 그리고 말을 뱉어 낼 때까지 기다렸다. 놈은 이대로 가만히 포지션을 놓치려 하지 않을 테니까.
지난 미션에서 황영오는 몇 번이나 원하는 포지션을 포기해야 했다. 그리고 지금은 강제로 세 명의 포지션이 정해진 만큼, 남은 셋은 각자 원하는 포지션을 선택하기 쉬운 상황.
지금이 자신의 장점을 가장 잘 보여 줄 수 있는 기회인 만큼, 황영오는 어떻게든 이번 미션에서 메인 보컬을 타 내고 싶어 할 터였다.
그리고 황영오는 예상한 대로의 말을 꺼냈다.
“…그럼 원곡 쪽 분위기를 살려서 가면? 그건 어떨 것 같은데?”
“그건 영오 형이 좋을 것 같아요. 멜로디 자체가 클래시컬하게 가면 영오 형 목소리가 더 섬세함이나 감정을 담아내긴 쉬울 것 같은데…….”
그러자 힙합으로 가고 싶다는 의견을 냈던 유찬희가 불편한 듯 자세를 고쳐 앉는 것이 느껴졌다. 이 팀 내에서 암묵적으로 저 둘이 편을 먹고 서로를 지지해 주기로 했을 텐데, 황영오가 바로 돌아선 게 불편하면서도 불안해진 모양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하는 척 가사지를 잠깐 내려다보다가 곤란하다는 기색을 띠고 말을 이었다.
“실은 키에 대해서도 좀 할 말이 있는데… 전 힙합 쪽으로 가게 되면 최대한 노래의 키는 유지를 하는 쪽이 맞겠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곡을 파격적으로 편곡하는데 키까지 낮추게 되면 너무 원곡의 느낌이 사라질 것 같으니까.”
“아, 그건 나도 동감해. 원곡과는 아주 다른 콘셉트로 가는 것도 좋지만 원곡을 크게 해치는 선으로 가는 건 좋지 않을 것 같으니까.”
내 말에 도지혁 또한 지원 사격을 가했다. 천세림 또한 그 뒤를 이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그런데 좀… 음이 높아서 불안하긴 해요, 메인 보컬도 그렇고 서브 보컬1 쪽도 후크랑 애드립 구간에서 음정이 꽤 높던데. 찬희 씨는 어떠세요?”
“…전…….”
유찬희는 애매한 표정으로 태블릿을 통해 원곡의 음정을 확인하고는 잠시 침음했다.
원곡 버전 Same And Different는 메인 보컬과 서브 보컬1, 즉 리드 보컬의 비중이 큰 만큼 고음역대 쪽은 대부분 그쪽으로 몰려 있었다. 그에게는 부담스러운 음정일 것이다.
‘유찬희는 힙합으로 장르를 바꾸면서 키까지 낮추려 했겠지.’
실은 정말 유찬희가 원하는 대로 정통 힙합 쪽으로 간다면 키를 낮추는 게 분위기에는 더 맞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확실히 그렇게 가면 원곡을 필요 이상으로 고치게 된다.
[디어돌> 측에서 사전에 협의를 하고 편곡 등을 할 수 있도록 협력을 구하고 진행하는 것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원곡을 크게 해치는 형태를 원작자가 좋아할 리는 없다.그렇기 때문에 지난 미션에서도 최대한 음역대를 살린 채 원곡의 형태는 남기는 선에서 진행을 했었고. ‘BINGO’의 원키처럼 말이다.
‘그리고 Same And Different의 주된 포인트는 클래시컬한 화성 진행, 콘셉트.’
유찬희는 지금 이 둘을 모두 빼고 싶다고 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여기에 더해 키까지 낮추면 멜로디 라인까지 영향을 받게 된다.
즉, 모든 걸 원하는 대로 할 경우 아예 다른 곡이 탄생해 버릴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힙합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겠지.’
그럼 적당한 중간선을 던져 주면 된다. 방향을 약간 바꾼 형태, 놈도 나도 적당히 만족할 수 있는 쪽으로.
“…혹시 이런 느낌은 어떠실까요?”
나는 잠시 고민하는 듯 생각하는 척을 하다가, 곧 태블릿을 이용해 분위기를 참고할 수 있을 만한 곡 몇 가지를 팀원들에게 들려주었다.
암담하던 유찬희의 얼굴이 문득 펴졌다. 내가 어떤 느낌을 원하는지 알아챈 모양이었다.
“최대한 원곡의 클래시컬을 남기면서 스트링을 빼고…….”
몇 가지의 곡이나 예시를 더 틀어 팀원들에게 제시한 후, 나는 태블릿을 내려놓고 말을 이었다.
“이런 느낌으로, 무겁게 베이스를 추가하고 좀 더 깔끔하게 만지면 원곡 느낌은 충분히 살리면서 힙합 느낌까지 가미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러면 키도 좀 손볼 수 있고.”
“오, 전 편곡 방향성 좋은 것 같은데요? 실제로 어떤 느낌이 될지는 헬퍼분께 맡긴 다음 봐야겠지만…. 분위기도 바꿔지면서 멜로디도 살고.”
“나도 좋아. 찬희랑 영오, 민성이는 어때?”
“어, 저도 좋아요.”
유민성은 어떻게 되어도 좋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다음으로 도지혁은 황영오를 바라보았다. 황영오는 눈치를 보듯 물었다.
“그럼 이렇게 되면 메인 보컬은…….”
“키에 대해서는 헬퍼분과 더 이야기해 봐야 할 것 같긴 한데… 전 이런 진행이면 영오 형으로 추천하고 싶어요.”
“정확히는 곡이 나와 봐야 알겠지만 나도 이런 방향이면 영오 쪽이 어떨까 싶긴 해. 세림이 목소리도 좋지만 클래식한 느낌 쪽은 확실히 영오가 더 잘 살릴 수 있을 것 같다.”
“어허, 지금 정하는 건 너무 빠르잖아요~. 저도 잘할 수 있는 거 보여 줄 테니까 우리 자세한 건 곡 나오고 정하죠?”
천세림이 그런 식으로 장난스럽게 말을 꺼냈으나, 황영오는 메인 보컬 자리가 자신에게 돌아올 것임을 확신한 듯 그제야 산뜻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이렇게 가면 좋겠어요. 곡 나오고 나서 다시 정해 보자, 세림아.”
“네~ 좋아요!”
“그럼 찬희는?”
“전…….”
유찬희는 슬그머니 팀원들을 바라보다가 나와 얼굴이 마주쳤다. 그러고는 화를 내고 싶은 건지 울고 싶은 건지, 아니면 안도하는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입매를 꿈틀거리다가 결국 한숨 쉬듯 입을 열었다.
“…저도 찬성이요.”
그렇게, 2조는 클래시컬이 가미된 힙합 댄스 장르의 곡으로 편곡의 방향성을 정할 수 있었다. 모두가 조금씩은 윈윈한 결과였다.
어느 정도 분위기가 마무리되는 듯하자, 도지혁이 대화의 주제를 바꾸었다.
편곡의 방향성과 동일하게 중요한 주제.
“그럼 이제 콘셉트를 결정해야 할 것 같은데… 흠, 다들 아이디어 있어?”
바로 원곡의 요정 콘셉트를 어떻게 추가하고 변경할지에 대한 논의였다.
“그거 말인데요…….”
나는 다시 한번 손을 들었다. 팀원들의 시선 속에서 나는 가사지를 툭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원곡에서는 치유의 과정이라고 했지만, 전 좀 무섭다고 생각해서요.”
“무서워? 뭐가?”
“여기, 인간 세계의 아이와 요정 세계의 아이가 서로 만나는 부분이요.”
-진실의 파편이 드러나
뒤바뀐 운명도 삼켜내
-마침내 우리를 마주해
-서로의 영역은 similar
한계를 넘어서 널 향해
-I don’t wander anymore
Cuz we finally know
원곡에서는 두 명이 마침내 마주해 서로를 바라보며 자아를 되찾고 환희한다는 내용이었지만, 나는 이 서사를 조금 더 강렬하게 바꿀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 서사는 치유이기도 한 반면에…….
“이거 꼭 도플갱어 같지 않아요?”
…소멸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
“도플갱어?”
“네, 도플갱어요.”
내 말에 다른 팀원들이 의도를 모르겠다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을 했다. 도지혁은 체인질링에 이어 도플갱어에 대해 다시 되짚어 보려는 듯 말문을 열었다.
“도플갱어가 그거지? 세상에 나와 똑같은 사람이 한 명 더 있는데, 그 사람을 마주하면… 아.”
“네, 그러니까…….”
천천히 도플갱어에 대해 떠올려 보던 도지혁은 곧 내 의도를 깨달은 것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느낌으로요.”
이어진 설명 후 마침내 콘셉트에 대한 이해를 끝낸 팀원들은 별다른 반발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지혁이 가장 먼저 찬성을 표했다.
“나는 괜찮아.”
“…좋은 생각인 것 같네.”
황영오는 메인 보컬을 타낸 데 만족한 듯했고, 유찬희는 떨떠름한 얼굴이기는 했으나 딱히 제지를 가할 신경이 남아 있지 않은 듯했다. 유민성도 주변 분위기를 타고 고개를 끄덕였고.
마지막으로 천세림은.
“형은 역시 다 생각이 있구나.”
…라는, 내 딴에는 속 터지는 소리를 하면서 박수를 쳤다.
어찌됐든 그 덕에 콘셉트는 체인질링과 몽환이 아닌.
“그럼 저희는 도플갱어와 스릴러로 가는 걸로 하죠.”
완전히 다른 콘셉트로의 진행이 결정되었다. [디어돌> 제작진 또한 만족스러워할, 다분히 도전적인 느낌으로.
* * *
헬퍼에 의한 대략적인 편곡은 바로 다음 날 확인해 볼 수 있었다.
자세한 디테일은 시간을 두고 좀 더 만져야 하겠지만, 우리는 바로 편곡된 곡을 통해 연습을 진행하기로 했다.
그 전에 우리는 먼저 포지션을 확정했는데, 다른 포지션은 미리 정한 그대로였지만.
“그럼 메인 보컬은 영오, 센터는 세림이로 확정하는 걸로 괜찮지?”
“네~!”
“좋아요.”
여기에 더해 센터 자리를 천세림이 가져갔다는 점이 새롭게 추가되었다.
‘역시 절대 손해 보지 않네.’
메인 보컬 자리를 내주는 것으로 암묵적인 빚을 지운 황영오의 표까지 끌어와 어렵지 않게 센터 자리를 타냈으니 말이다.
곡의 분위기와 천세림이 잘 맞기도 했으나, 어쨌든 분위기를 잘 주도한 덕에 천세림은 원하던 대로 센터 자리를 타낼 수 있었다. 2차 미션 시작 당시부터 생각했을, ‘진짜’ 원하던 포지션을.
어쨌든 이 점은 날이 서 있던 팀의 분위기에는 적당히 도움이 되었다. 각자가 조금씩 원하는 쪽으로 득을 보며 편곡과 포지션이 결정된 탓에 생각보다는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던 것이다.
우려하던 유찬희와의 대립은 크게 일어나지 않았다. 놈이나 나나 서로를 무시하는 방향으로 일단 행동 방향을 정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변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일어났다.
“후…….”
하루 동안 진행되던 연습이 끝나고, 저녁 시간이 되었을 때였다. 뻐근한 목을 풀며 스트레칭을 하던 나는 연습실에 나 혼자만 남은 것을 확인했다.
‘…저녁 이후에도 연습을 하기로 했지.’
전체적인 구성과 대형, 안무의 디테일을 맞춰 보기 위해서였다. 그 이후에는 개인적으로 랩 메이킹을 위한 준비와 연습도 있었고. 원래 초반이 가장 바쁜 법인 만큼, 이 며칠 동안은 체력적으로 죽어날 터였다.
‘붕붕드링크를 써 둘까.’
4월 동안 써 두었던 붕붕드링크는 이제 겨우 몇 개만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 아르바이트를 할 일이 없는 만큼, 남은 붕붕드링크는 체력적으로 한계가 왔을 때 쓰면 좋을 터.
나는 먼저 붕붕드링크의 남은 개수를 확인하기 위해 상태창을 열었다.
그리고.
“……?”
상태창 아래에서 불안하게 반짝거리는 붕붕드링크 아이콘을 발견할 수 있었다.
‘…뭔데.’
마음속에서 빠르게 차오르는 불길함에 내가 그 아이콘을 차마 누르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WARNING!」
“…윽!”
순간 눈앞에 떠오른 경고. 그리고 온몸을 짓누르는 피로감에 나는 그대로 자리에 쓰러지듯 주저앉아 숨을 헐떡거렸다.
어느새 전신의 근육에서 둔통이 느껴지고 있었다.
‘이게, 무슨…….’
그 급작스러운 변화에 쉽사리 적응하지 못하고 허덕이던 나는 간신히 고개를 들어 눈앞에 뜬 시스템 창을 바라보았다. 붉게 빛나는 시스템 창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돌발 미션! 연습만이 살 길이다(D-6)』
붕붕드링크의 힘으로 일상을 견뎌 온 당신!
그러나 대가 없는 이득은 없는 법.
대가를 받은 만큼의 값을 연습을 통해 지불하세요.
성공 조건: 개인 연습 40시간 달성
성공 보상: 디버프 해제, 원하는 스텟 +1
진행 기간 디버프: 피로감 +400, 불면의 밤
실패 패널티: 피로감 +800, 지속적인 불면증, 스텟 랜덤 하락
나는 어이가 없다 못해 머리끝까지 분노가 치솟아 할 말도 잃은 채로 멍하니 시스템 창만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지금 이 시스템 놈은 달라고 한 것도 아닌 걸, 게다가 보상으로 줘 놓고서는 그 대가를 받아 가겠단 거였다.
“…….”
나는 후들거리는 팔을 바닥에 붙여 몸을 지탱한 후 겨우 자리에서 일어났다.
‘…40시간이라고.’
경연까지 남은 건 겨우 6일. 그리고 40시간을 채우려면 매일 밤 잠도 자지 않고 연습만 지속해야 했다.
게다가 시스템은 ‘단체’가 아닌 ‘개인’ 연습으로 조건을 한정해 두었다.
그렇다면 꿍기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나는 랩 카피를 위해 곡을 골라 틀어 놓으며 생각했다.
‘반드시 죽인다.’
어떤 새끼인지는 몰라도 이 미션의 끝에서 날 회귀시킨 놈을 찾아낸다면… 그게 어떤 새끼든 반드시 가만두지 않겠다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