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Plan for the Second Life Idol RAW novel - Chapter (445)
445화
-[형! 지금 한국에 뭔 일 있어요?]
-…응? 뭔 일이 있긴 한데. 너 촬영 중인 거 아니었어? 지금 당장 연락할 필요까진 없는데.
-[아니, 어떻게 그 문자를 보고 당장 연락을 안 해! 뭔 일인데요?]
시즈레이블의 리스닝파티에 다녀온 후, 우리는 우선 천세림에게 연락을 하기로 했다.
다만 열다섯 시간의 시차가 나는 만큼 한창 활동 시간일 듯해 나중에 확인할 수 있게 문자만 남겨 두라 한 건데, 천세림이 당장 연락해 온 것에 나는 의아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당장 해결될 만한 사안도 아니니 그렇게까지 서두르거나 다급할 필요까진 없는데, 자세한 정황에 대해서는 전해 듣지 못했을 천세림이 너무 놀란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 이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됐다.
“그 전에 우선, 찬희야. 제발 민감한 사안을 말할 땐 앞뒤로 완충재 좀 깔아 줘. 내가 문자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그, 그래서 나중에 연락해도 된다고 했잖아, 내가.”
“그러니까 오히려 더 무슨 일인가 싶었다니까?”
유찬희가 앞뒤 설명 없이 냅다 돌직구를 날려 버린 것이다.
[유찬희: 야 갑자기 미안한데 혹시 불공정 계약에 대해 아는 거 있어? 당했을 경우에 어떻게 벗어나는지 같은 거] [유찬희: 아니다 일단 너 촬영 끝나고 연락해] [천세림: ??? 뭐야? 무슨 일인데?] [천세림: 찬희 너 뭐 이상한 거에 사인했어????] [천세림: 연락 왜 안 받아???]…이런 식으로.
“아니… 혹시 모르는 일이잖아. 누가 메시지를 볼 수도 있고 너도 촬영 중이니까. …그래서 그냥 나중에 연락 달라고 했잖아!”
“첫 문자가 그렇게 왔는데 내가 어떻게 촬영에만 집중해? 덕분에 놀라서 양해 구하고 잠깐 빠져 나와서 전화 걸었는데 넌 연락 안 받고, 그나마 유하 형이 깨어 있었으니까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몇 시간 동안 혼자 온갖 생각 다 할 뻔했잖아.”
천세림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당시 대화를 마친 멤버들은 생각을 정리할 겸, 밤이 늦어진 탓에 잠을 잘 겸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는데, 유찬희도 내내 착잡해하는 것 같더니만 오히려 머리가 복잡한 덕에 겨우 문자만 보내곤 금세 잠들어 버렸던 듯했다.
일단 나는 주단우와 대화를 하고 있던 터라 천세림의 연락을 받을 수 있었고.
“어쨌든, 덕분에 물어보는 건 빨랐어요. 바로 전화 받더라고. 계약서 사본 받아서 검토해 볼 시간도 충분하게 있었던 듯하고.”
그렇게 해외에 나가 있는 천세림에게까지 우리가 연락을 돌린 이유는 하나 때문이었다.
“누나가 그러던데요? 이거 사인만 안 했으면 오히려 고소도 가능했을 것 같다고. 다만 사인을 한 이상 어쩔 수 없이 단우 형이 져 주고 들어가게 된 거래요.”
주단우의 계약서를 살필 만한, 외부로 이야기가 새지 않게 도와줄 만한 조력자가 천세림의 주변에 충분히 있기 때문이었다.
천세림의 누나는 법관 출신의 현직 국회의원인 데다, 그의 어머니는 변호사로 오래 일하셨다고 하니까. 덕분에 본인도 어린 시절부터 주워들은 게 좀 많았던 듯싶고.
‘보통 때라면 강현진이 가지고 있는 명함들을 이용해 볼 수도 있었겠지만, 이번에는 대놓고 변호사와 접촉할 수는 없으니까.’
주단우의 계약서에는 기밀 유지 조항이 딸려 있었다. 때문에, 실은 우리에게도 계약서의 내용을 알려 주어서는 안 되었을 터였다.
‘근데 뭐, 알 바인가.’
하지만 그건 결국 ‘원칙대로라면’의 일일 뿐이다. 티엑스 쪽만 모르면 되는 문제다, 이 소리다.
“엄마도 같이 계약서 확인해 주셨는데, 단우 형 쪽이 불리하대요. 사기당한 건 아니니까. 계약서의 내용에 대해서는 단우 형에게 빠짐없이 알려 줬고, 받아들인 건 형이니까요. 그쪽은 계약대로 지원금을 지급했기도 하고.”
덕분에 우리는 천세림의 어머니와 누나분께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지만, 결과를 받아 본 후에는 입맛이 쓸 수밖에 없었다.
어찌 됐든 주단우가 연습생 시절 작곡한 곡들에 대해서는 권리를 주장할 수 없게 됐음을 재확인한 셈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구나.”
그에 대해 주단우는 가만히 중얼거릴 뿐이었다. 애초부터 본인의 곡을 돌려받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는 듯, 얼굴은 오히려 덤덤했다.
그때였다.
“하지만 좀 다른 방식으로 티엑스를 엿 먹일 수 있는 방법이 없을지, 엄마랑 누나가 같이 고민해 줬는데요.”
“오?”
천세림이 장난기 어린 얼굴로 분위기를 전환시킨 것은.
곧 천세림은 주단우가 가지고 있던 계약서 사본에 적힌 한 조항을 가리켰다. 그에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지만, 멤버들은 곧 짜기라도 한 듯 함께 고개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이게 왜? 이건 그냥 티엑스가 쓰레기 새끼라는 증거밖에 안 되는 조항 아니야?”
「…“갑”(티엑스)은 “을”(주단우)로부터 곡을 양도받을 때마다 양도받은 때로부터 7일 이내 을의 계좌로 지원금 000원을 송금한다. 단, 을이 계약 기간 nn일마다 정해진 수량의 곡을 제출하지 못할 경우 갑은 을에게 제공하는 지원을 일체 중단한다.
채우지 못한 수량의 곡은 익월로 이월되며, 이월된 곡 수량을 모두 채웠을 경우 지원금이 다시 지급된다.
단, 을은 페널티로서 추후 이월된 곡의 수까지 합쳐진 양의 곡을 고정적으로 갑에게 전달하는 것으로 한다.」
천세림이 짚은 건 계약서 내용 중에서도 가장 극악이라고 할 수 있는, 주단우를 어떻게든 연습생 신분에서 쫓아내기 위해 만들어진 독소 조항이었기 때문이었다.
‘저 ‘일체의 지원을 모두 중단한다’에는 연습생으로서의 지원도 포함돼 있는 거였으니까.’
티엑스는 주단우와 계약을 맺으며 머리를 썼다. 지원금을 지급하고 저작권을 양도받되, 주단우를 어떻게든 연습생에서 쫓아내기 위해 정당하게 그를 지원하지 않을 항목까지 만들어 둔 것이다.
주단우는 초반에는 계약서대로 다달이 정해진 수만큼의 곡을 티엑스에게 전달한 듯싶었다. 하지만 당연히 곡 수를 전부 채우지 못하는 달도 있었다.
채우지 못한 수는 계약서상의 내용대로 다음 달로 이월되었다. 주단우가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난 건 그때였다.
-레슨을 못 가게 됐어, 곡을 전부 만들 때까지.
-…그거 완전 개새끼네?
지원금뿐만이 아니라, 주단우가 연습생으로서 받던 지원까지 모두 끊겨 버린 것이다.
이미 이전에도 레슨은 은근슬쩍 줄여진 상태였다지만, 그쯤 되니 티엑스는 더더욱 노골적으로 굴었다고 한다. 계약서대로 아예 중단이 되었단 듯하니까.
그때부터 주단우는 연습생이 아니라 반은 직원처럼 굴려지게 됐다.
‘직원보다 상황이 나빴던 것 같지만. 주단우가 맺은 건 노예 계약 수준이었으니.’
레슨을 다시 받기 위해, 무엇보다도 지원금을 받기 위해 주단우는 개인 연습조차 중단한 채 곡부터 만들어야 했다. 그렇게 이월된 곡을 채웠다지만 상황은 점점 더 나빠져만 갔다.
한 달이 지나는 건 빠르고, 이월된 수까지 붙어 버린 곡을 만드는 건 점점 더 힘들어져 갔다는 것 같으니까.
‘그 이유 때문도 있었을 것 같은데.’
주단우가 슬럼프를 겪게 되기까지는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을 듯하지만, 그 이유도 컸을 터였다. 주단우는 내내 조급해하며 곡을 만들게 되었을 테니까.
만들고 싶어서 만드는 게 아니라 연습하기 위해, 레슨을 받기 위해 어떻게든 채워 넣어야 하는.
그럼에도 끝내 매달 곡을 채우지 못해 결국 다음 달의 자신에게 더 큰 부담을 짊어지게 할 수밖에 없는,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 같은 시스템에 목이 졸렸을 테니.
‘사채업자 같은 방법이지, 그건.’
매달 갚아 내지 못한 돈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원금에 붙는 형식으로 주단우의 ‘빚’은 점점 늘어만 간 거니까.
어쨌든 그런 식으로 주단우는 일 년 반이 조금 넘게 곡을 만들었다.
그러다 주단우가 아예 곡을 만들지 못하게 되었을 즈음, 그가 만들어야 하는 곡의 수는 달마다 약 20곡에 달하게 되었다는 듯싶다.
“말조심해야지, 현진아.”
“아, 죄송합니다. …그런데 형도 그때 티엑스 개새끼라고 욕하셨지 않…….”
“음, 그땐 좀, 이야기 들은 직후라 분노를 참기 힘들었을 뿐이라. 어쨌든, 굳이 우리 입까지 더럽힐 필요는 없잖아. 애들도 있는데 나쁜 거 배울라.”
“…혹시 애들이 우리예요? 어쨌든, 그래서예요. 엿 먹이는 방법이 좀 힘들긴 한데… 그나마 이게 형 저작권 챙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거든요.”
“……?”
강현진이 저도 모르게 내뱉은 말을 도지혁이 단속하듯 그렇게 주의를 준 후, 천세림은 영 찜찜하단 것처럼 머리를 긁적이다 말고 본론을 이야기했다.
“이 조항에는 틈새가 있거든요. 그러니까, 티엑스에게 전달할 곡의 수를 전부 채운 다음 나온 곡의 저작권은 티엑스가 가져갈 수 없단 말도 돼요.”
“…어?”
주단우는 천세림의 물음에 눈을 크게 떴다. 그러고는 다급히 계약서를 가져와 그것을 읽어 보았다. 주단우가 그러는 동안, 천세림은 그를 주시하며 말을 이었다.
“티엑스는 매달 형이 만들 수 있는 최대한의 곡 수를 지정해 두고 그 곡들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면서 한 가지 실수를 한 거예요. 어떻게든 형한테 페널티를 줄 만한 요건을 만들기 위해, 오히려 형도 이용할 수 있는 조항을 만든 셈이 됐거든요.”
천세림의 말은 이랬다.
티엑스는 주단우의 레슨을 빼고 그를 연습생에서 몰아내기 위해 ‘주단우가 시즈레이블에 소속되어 있는 기간 동안 달마다 n곡’이라는 조항을 만들었다.
정해진 수량이 있어야 주단우가 그것을 채우지 못했을 경우 정당하게 주단우를 지원하지 않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 주단우를 괴롭혔던 그 조항은 지금에 와서는 주단우를 돕게 된 듯했다.
“지원금이 들어오지 않은 순간부터 이 계약은 멈춰 있는 상태예요. 형이 받거나 준 게 없기 때문에, 형이 마지막으로 채워야 했던 곡 수에서 추가가 되지 않았단 거죠. 그러면, 일단 이론대로는 형이 곡 수를 다 채워 티엑스에게 주기만 하면 그 달은 추가 곡에 대한 저작권을 가질 수 있단 셈이 돼요.”
“……!”
“오.”
“…그게 그렇게 되네?”
티엑스의 악의를 정면으로 뚫을 수 있는 ‘틈’이 이 조항 안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나 다시 한번만 보고 싶어. 와… 진짜 추가 곡에 대한 조항이 없네.”
“이걸 이렇게 이용할 수가 있구나. 대단한데?”
“그러니까 제가 누누이 말하잖아요, 꼼꼼하게 계약서를 작성하는 건 중요하다고.”
“…….”
때문에 멤버들이 다시 한번 계약서를 살펴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 주단우는 뭔가를 깊게 생각하는 듯 말이 없었다. 복잡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그럴 만했다.
‘다시 티엑스에게 곡을 줘야 하는 것도 그렇고, 예전에도 채우지 못했던 곡 수를 전부 채워서 줘야 한다는 거니까.’
지금 이 시점의 주단우가 곡을 발표할 수 있는 방법이 나오긴 했지만, 그럼에도 그 방법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현재의 주단우는 곡을 만들지 못해. …적어도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주단우는 [디자인 유어 아이돌> 때 편곡을 했던 것을 제외하고는, 데뷔 이후 작사만 하고 있었다. 티엑스에게 묶이지 않은, 티엑스에게 핍박받지 않은 쪽으로만 창작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주단우는 시즈레이블에 찾아가 예전에 썼던 곡을 찾아오고 싶어 했었다. 그게 완전히 불가능하다는 걸 이번에 알게 된 거고.
방법은 나왔지만,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어렵다. 무엇보다 본인 스스로 자신의 능력에 대한 회의감을 가지고 있을 터.
‘갈등할 수밖에 없겠지.’
그렇게 생각하는 건 천세림도 마찬가지인 듯싶었다. 눈을 굴리며 주단우의 얼굴을 살피던 천세림이 곧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으니까.
“만약 형이 시즈레이블과 계약을 맺은 거였다면 모르겠는데, 형의 저작권은 티엑스에게 양도되는 걸로 돼 있어서 시즈가 형 풀어 줘도 형이 연습생 시절 만들어 넘긴 곡들의 저작권은 못 찾아올 거예요. 티엑스는 절대 형 풀어 주려고 하지 않을 테니까.”
“…….”
“형이 ‘시즈레이블에 소속되어 있는 동안’이라는 기간이 붙어 있으니 형이 이적할 때까진 어떤 곡도 발표할 수가 없겠죠. 그러니까 차라리 시즈랑 계약 기간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새 곡 작곡해 내보내는 게 베스트라고는 생각해요.”
천세림의 말이 맞았다. 굳이 지금 이 시점에서 주단우가 곡을 내기 위해 덤터기를 뒤집어쓸 이유는 없었다. 때로는 기다리는 쪽이 리스크가 덜하니까.
하지만.
“근데 형은 그렇게 안 하고 싶은 거잖아요, 그쵸.”
“…응.”
주단우는 그렇게 할 생각은 조금도 없어 보였다.
“억지일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역시 지금 내고 싶어, 나는. 기다려 주시는 분들이 있으니까. 나도 지금 새로운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고.”
주단우에게는 목표가 있으니까.
“나도 조금 더 내 색깔을 만들고 싶어. 팀에 도움이 된다면, 나도 할 수 있는 건 다 하고 싶으니까. 지금 내가 곡을 만들 수 있는 상태인 건지는 솔직히 모르겠지만…….”
본인 또한 원디어라는 팀의 멤버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라면 해 보고 싶다는, 어떤 간절함이.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분명 있을 테니까.”
괜한 수고를 들여야 하는 셈이 되더라도 지금 이 시기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 욕심이, 자신이 해야 하는 이야기를 스스로 내뱉고 싶다는 절실함이 그에게도 있는 듯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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