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Plan for the Second Life Idol RAW novel - Chapter (460)
460화
‘이 정도면 꽤 썼네. 적당히 하자.’
콘서트의 멘트가 다가왔을 즈음에서야 김 기자는 몸을 느슨하게 늘어뜨렸다.
멤버들의 멘트를 따 적당히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을 것 같은 기사를 몇 개 내보낸 덕에 오늘 치 일은 거의 끝난 것과 다름없었다. 현장 리뷰 기사는 조금 더 다듬어 당장 다음 날 트래픽을 끌 수 있을 듯한 시간대에 내보낼 예정이었다.
그렇기에, 김 기자는 바쁘게 일하던 것을 멈추고 조금쯤 편안한 시선으로 본 무대에서 ‘마지막’ 멘트를 이어 가고 있는 원디어를 바라볼 수 있었다.
“그러니까 직원분들은 중간에서 유어원 이벤트랑 우리들 이벤트 다 알고 있었는데 그걸 콘서트 날까지 꾹 지켰다는 거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게 이런 건가 봐.”
“자존심 상한다. 이쯤 되면 직원분들 서프라이즈도 기획해 보고 싶은데.”
“넌 머릿속에 서프라이즈밖에 없냐……. 그거 도파민 중독이야.”
마지막 곡이 끝난 후, 원디어는 생각보다 이른 멘트 타임을 가지고 있었다. 의자에 앉아 여전히 얼떨떨한 얼굴로 흘기듯 관계자석을 바라보던 원디어는 짜기라도 한 것처럼 서로 투닥대다 이내 한숨을 푹 쉬더니 다시금 다정한 시선으로 유어원을 바라보았다.
“유어원, 예쁜 말 보여 줘서 고마워요. 솔직히 생각 못 했는데. 회사를 제쳐 두고서라도 이번엔 저희가 진 것 같아요.”
“노래하다가 눈앞에서 갑자기 글자가 만들어지는데, 너무 놀라서 순간 가사 까먹어 버렸어.”
“음… 실은 나도……. 춤추다가 잠깐 안무를 까먹어 버렸어….”
“그렇다기엔 현진이, 너무 평소처럼 추던데?”
“정말요? …다행이다. 솔직히 어떻게 추는지도 모르고 춘 거라……. 몸에 배어 있어서 그랬나 봐요.”
“맞아. 다들 가사도 까먹고 안무도 까먹을 정도로 놀란 것 같았는데, 간주 나올 때까지 안 멈추는 거 신기하더라고요. 이게 바로 연습의 결과인가?”
“야! 천세림, 그런 말 하면 지혁이 형이 신나서 우리 연습 더 시킨단 말야!”
“……! 헉, 그게.”
“음, 우리 막내들. 연습의 중요성을 깨달았구나. 그럼 기대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좀 더 효율적인 연습 계획표를 세워 볼까?”
“형은 최대한의 효율로 최대한의 효과를 내는 사람이잖아요. 그냥 연습 더 많이 하잔 말이랑 뭐가 달라!”
“우리 지금도 다른 팀의 두 배 이상 연습하고 있는 건 아는 거죠……?”
직전의 이벤트가 감동적이긴 했던 듯, 멤버들의 얼굴은 모두 상기된 채였다. 들뜬 분위기로 이야기를 이어 가다 이내 장난 반, 진담 반으로 연습 계획표를 조금 더 빡세게 세워 보겠다는 도지혁을 향한 애원으로 끝이 난 대화에 유어원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우리 한마디씩 해 볼까요.”
이후, 멤버들은 정해진 대로 콘서트를 마무리지을 멘트를 한마디씩 내뱉기 시작했다.
가장 왼쪽에 앉아 멤버들을 놀려 먹고 있던 도지혁부터 시작해 이번에는 울음을 참았지만 가사를 잊어버린 탓에 또 한 번 놀림을 받은 에이든 리.
춤을 까먹은 것을 부끄러워하는 강현진, 이어질 연습에 겁을 먹은 유찬희와 서프라이즈에 당해 버렸단 사실에 자존심 상해하는 천세림.
“이벤트를 준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너무 예쁜 풍경이어서… 오늘을 못 잊을 것 같아요.”
“와아아!”
그 뒤를 이어 주단우가 부드러운 미소를 입가에 머금은 채 말해 오는 것에 유어원들은 뿌듯함에 찬 환호성을 터뜨렸다.
이러한 환호성을 들으며 가만히 먼 곳의 유어원들을 응시하던 그는, 이내 한마디를 더 내뱉었다.
“자주 생각하는 것 같아요. 어떻게 이런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걸까. 아직도 저희가 이렇게 한 팀이 되어서 여러분과 마주하고 있는 게 꿈 같다고.”
“…….”
은은하게 내리깔리는 음악, 자신에게로 향하는 멤버들의 시선. 그 속에서 주단우는 평소 조금쯤 단정하고 짧게 이야기하던 것과는 달리, 조금 더 솔직하게 말을 이어 갔다.
“오랫동안 꿈꿔 왔던 풍경을,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순간을 함께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너무 행복하고 즐거웠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깨달은 것 같아요.”
“…….”
“…역시 저는 원디어인 게 너무 좋다는 걸요. 노래하고 춤추고, 여러분과 이야기하는 이 시간은 제게 정말 소중하다는 것과… 앞으로도 줄곧 여러분과 함께하고 싶다는 걸요.”
“아아아…….”
그에 신음 같은 탄식이 터져 나오는 것에, 김 기자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이걸 예고로 받아들일 수 있는 유어원은 이 시점에서는 없겠네.’
주단우의 저 말이 그저 소망이 아닌 어떤 다짐이라는 것을, 아마 이들은 모를 것이라는 걸.
주단우가 시즈레이블과의 계약을 일찍이 끝마치고 이후 로드 엔터로 완전히 소속을 옮길 예정이라는 사실은 아직 공표가 되지 않은 상황이었으니까.
‘엠바고(보도 시점 제한)가 언제였더라. 1월이었지.’
그리고 그에 대한 단독은 자신이 내는 것으로 로드 엔터와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이번 사건을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진 것에 대한, 이른바 추가 보상이라 할 만한 단독거리였다.
‘풀리면 다들 엄청 좋아하겠는데.’
원디어의 월드 투어와 개인 활동을 앞두고 불안해하는 유어원들에게 그만한 선물은 없을 테니, 원디어는 ‘서프라이즈에서 졌다.’라고 말하면서도 마지막 한 방을 아직 감춰 두고 있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렇게 ‘깜짝 뉴스’를 숨기고 있으면서도 아닌 척 감사함만 전하는 원디어에게 앙큼함을 느낄 때였다.
“오늘 이렇게 빠짐없이 자리를 채워 주시고, 또 저희를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느새 멘트 차례가 가장 왼쪽에 앉아 있던 원유하에게 돌아가는 것에, 김 기자는 신경을 곤두세웠다. 원유하가 또 어떤 말을 해올지 놓칠 수 없었던 것이다.
오늘 김 기자가 써낸 기사에는 원유하의 ‘진심’과 관련된 말들이 꽤 많았으니까.
그런 김 기자를 비롯한 유어원들의 시선 속에서 원유하는 천천히, 그러나 진심을 눌러 담아 인사를 건넨 후 조금 먼 곳을 응시했다.
그리고.
“…그리고 오늘은 콘서트를 함께 준비해 주신 로드 엔터 직원분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번 콘서트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이번에도 저희의 욕심을 가득 담은 만큼 모두 고생이 많으셨거든요. 발매 전에 수록곡 대부분을 공개하는 데에 대한 우려도 있으셨고요.”
원유하는 이내 모두가 존재를 궁금해하긴 했지만, 한 번도 제대로 조명된 적 없던 인물을 언급해 주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하승혁 대표님께서 승인을 해 주신 덕에 이렇게 유어원께 조금 더 빠르게 저희가 준비한 걸 선보여 드릴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바로 로드 엔터테인먼트의 대표, 하승혁을.
카메라가 이내 관계자석을, 그 안에 있는 한 사람을 담아내는 것에 양옆에서 술렁임이 퍼졌다. 김 기자 또한 놀라긴 매한가지였다.
‘저 사람이 여기까지 행차를 했네.’
연예 기자들 사이에서도 유니콘급 인물 취급을 받고 있는 하승혁이 그와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장소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저 정도 되면 진짜 배우 비주얼인데.’
김 기자는 순식간에 차오른 흥미에 반짝이는 눈으로 스크린을 통해 비추어지는 하승혁을 바라보았다. 콘서트장에 오면서도 갖춰 입은 수트하며, 여전히 단정한 얼굴과 태도로 하승혁은 살짝 고개만 숙여 자신을 향해 환호를 보내오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는 중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김 기자는 궁금해졌다.
‘왜 갑자기 이 시점에 얼굴을 내보인 거지? 원래 그럴 생각 없는 거 아니었나?’
갑자기 하승혁이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이유를 알 수 없었던 것이다.
하승혁은 KC ENM 본사에서 따로 로드 엔터테인먼트를 차려 독립해 나온 후, 내내 회사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그는 연예 기획사 대표라면 종종 하곤 하는 캐릭터 만들기에 집중하지도 않았고, 출신대로 정말 ‘회사원처럼’ 일하는 데만 몰두하곤 했다.
‘몇 번 인터뷰를 하긴 했지만, 그것도 정말 공적 차원에서였지. 한 번 팬들한테 자기 존재감 드러낸 적이 있긴 하지만, 그건 원디어 매니저 사건에 대한 사죄를 하기 위해서였고.’
하승혁에 대해 얽혀 있는 소문들은 많았다. 그중 연예기자 대부분이 알고 있는 소문은 하승혁이 본사를 경계하고 있어 대중 앞에 나서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본사 측에 하승혁을 배척하고 그를 어떻게든 거꾸러뜨리고 싶어 하는 경쟁자들이 여럿 있어, 하승혁이 제 존재감을 키우는 것을 삼가고 있다는 말 말이다. 그것은 동종업계의 기자들 사이에서는 정설처럼 나도는 소문이었다.
‘KC ENM이 문화 쪽 사업인 데다 대중들의 시선이 곧 권력이 되기도 하는 만큼, 대중이 하승혁의 존재를 제대로 인지하고 그쪽에 붙으면 본사 쪽도 예민해질 거란 말이었지.’
가뜩이나 후계자 싸움이 치열하게 이루어지고 있는데, 하승혁이 로드 엔터의 대표로서 캐릭터성을 얻고 대중들의 지지를 얻게 되면 본사 쪽도 가만히 있을 순 없게 될 터.
때문에 업계 관계자들은 ‘조용히 살고 싶다’는 목적하에 나온 하승혁이 일부러 그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 엔터 내부 사업에만 열중하는 것이란 해석을 내놓은 상황이었다.
-와 시바 로드 엔터 대표 얼굴 뭐야?
-미친…. 보물들을 잔뜩 가지고 있는 회사의 대표는 어떤 사람이 하는 건가 했는데 진짜. 개. 잘생김. 미친거같음.
-제가 지금 배우 보고 있는 건가요 대표님을 보고 있는 건가요
-오십대부터 시작하는 엔터사 대표 캐릭터 싸움에 젊은 배우 비주얼 엔터 대표의 등장이라… 재밌어지겠네
-저기요 대표님은 데뷔 안하시나요
솔직히 하승혁이 어디 가서 묻힐 만한 존재감은 아니지 않나.
로드 엔터의 대표로 하승혁의 얼굴이 떠올랐을 때, 유어원을 비롯해 로드 엔터 소속 아티스트들의 팬덤은 한차례 뒤집어지기도 했었다. 그 와중에 몇몇은 하승혁의 홈마가 되겠다고 주접을 떨다가, 하승혁이 너무 외부 활동을 안 하는 탓에 다시 들어가기도 했고.
그러던 중에 거의 처음으로 하승혁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시즈레이블 사건 이후, 주단우의 이적 이야기가 들려와 원디어에 대해 ‘정말 계약 연장도 가능한 게 아닐까?’라는 말이 붙을 만한 시점에서.
‘…여기에 진짜 의도가 없을 수가 있나?’
그에 김 기자가 가늘어진 시선으로 스크린을 보는 동안.
“…그리고, 그런 믿음에 대해 저희는 저희 나름대로 보답하고 싶습니다. 도와 주시는 직원분들께도, 유어원에게도요. 그걸 위해 저희가 해야 하는 건 또 한 번 ‘예상외의 것’을 보여 드리는 길뿐이겠죠.”
원유하는 멘트를 마무리짓고 있었다.
“그러니 힘내 보겠습니다. 저희, 이번에도 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와아아!”
“……?”
조금쯤 의미심장한 말로.
“그럼, 마무리에 맞추어 인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둘, 셋.”
“BE YOUR WORLD! 지금까지 원디어였습니다!”
그에 김 기자가 고개를 기울이는 동안, 원디어 멤버들은 멘트를 마무리하고 무대의 중앙에 모여 손을 잡고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이와 함께 공연장이 완전히 암전되고, 마지막 VCR이 떠오를 때.
‘아.’
김 기자는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아직 신곡 타이틀이 안 나왔잖아.’
원디어가 숨겨 둔 게 하나 더 있었다는 것을.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