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Plan for the Second Life Idol RAW novel - Chapter (48)
“무슨 생각이신데요?”
내 예상대로 유찬희는 그날 밤 바로 연습실로 찾아왔다.
놈은 연습실에 들어와서는 카메라의 불이 완전히 꺼진 것과 마이크가 설치되어 있지 않은 걸 확인하고는 낮은 목소리로 짜증을 쏟아 냈다.
나는 그 말에 덤덤한 목소리로 답했다.
“무슨 생각이겠어요?”
“그걸 말이라고 해요? 지금 묻고 있는 사람은 저거든요?”
나는 유찬희의 말에 손에 들고 있던 가사지를 툭 내려놓았다. 오후 동안 도지혁과 맞춰 본 랩은 여전히 입에 붙지 않고 있는 상태였다.
연습만 하기에도 급급한 상황이었으나, 나는 오늘은 유찬희에게 연습실을 양보해 줄 생각이었다.
“1차 경연 때 그러시지 않았어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다는 말은 맞는 것 같다고.”
“…그런데요?”
“그럼 넌 지겠네. 전혀 노력하지 않고 있으니까.”
“뭐?”
왜냐면, 오늘은 이놈과 한 방에서 연습을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역시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다는 말은 맞는 말 같아요. 모두 정말 수고하셨고 앞으로도 노력하겠습니다. 절대 누구에게도 지지 않고 항상 발전하는 모습 보여 드릴게요!
유찬희는 1차 경연 당시 그렇게 말하며 나를 비웃었다. 노력이 아닌, 캐릭터 만들기로 내가 성장캐 서사를 얻었다고 생각해 나만 알아들을 수 있는 저격을 한 것이다.
그러나 그 말대로라면 유찬희야말로 이번 경연에서 승리할 수 없을 터였다. 자기가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놈은 실은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갑작스러운 내 태세 전환에 유찬희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토해 냈다.
“하! 본색 드러내는 거예요, 이제?”
“그러지 않을 이유도 없지. 너도 이런 걸 원했던 거 아냐?”
“뭐라고?”
내 말에 유찬희는 흉흉한 기세로 나를 노려보았다. 빛이 꺼진 연습실 아래에서도 놈의 얼굴이 붉어진 게 보일 정도였다.
나는 금방이라도 달려들 기세의 유찬희에게서 얼굴을 돌리지 않고 똑바로 말을 이었다.
“내가 어떻게든 상대해 주길 바랐던 거 아냐? 너. 처음부터 내가 조작으로 올라왔다고 믿었잖아. 그동안 대놓고 견제하고 까고 싶었는데 카메라도 있고 나도 계속 피해서 못했던 거고. 그럼 너한텐 잘된 일이지. 여긴 카메라도 없고 나도 성격 나왔으니까.”
“…그래서 지금 싸워 보자고?”
내 말에 유찬희는 자기도 찔린 듯 잠시 말이 없다가, 곧 사나운 기세로 그렇게 쏘아붙였다. 그러나 나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그럼 네가 문 열고 들어올 때부터 한 대 치고 봤겠지. 근데 그래 봤자 스태프들 주의나 끌고 서로 손해 볼 게 뻔하지 않냐? 무턱대고 그럴 생각은 없어.”
“그럼 대체 뭔데.”
“하나 묻겠는데, 너 왜 똑바로 안 하냐?”
“뭐?”
“1차 경연 때 넌 노력하고 난 노력 안 한다면서 깐 것치곤 노력 안 하잖아.”
“무슨 개소리야, 단 하루도 제 시간에 잔 적이 없는데……!”
나는 욱한 유찬희가 말을 쏟아 내려던 것을 단칼에 자르고 놈에게 말했다.
“이게 맞는지 아닌지도 모르면서 하던 거만 반복하고, 딴 방법을 시도해 볼 수도 있는데 자존심 때문에 안 하는 게 네가 말한 발전하는 모습이라고 생각해?”
“…뭐?”
유찬희는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힌 듯 입을 다물었다.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놈에게 콕 짚어 이야기했다.
“황영오한테는 묻고 나한테는 안 묻고, 선택적으로 도움 구하는 게 네 최선이냐고. 너 황영오가 가르쳐 준 방법으로 지금까지 해 봤는데 안 됐잖아. 그럼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 게 상식적이지 않나.”
그러자 유찬희가 참지 못하고 어이가 없다는 듯 소리쳤다.
“내가 왜 너한테까지 물어봐야 하는데?”
“너, 나 잘한다고 생각하잖아.”
“…….”
그리고 내가 한 말에 다시금 입을 다물고 당황한 것 같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시시각각으로 굳어져 가는 놈의 얼굴을 가만히 마주 보았다.
유찬희는 나를 싫어하지만, 나는 놈이 내 실력까지 무시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어느 정도는 인정하고 있겠지.’
그렇지 않다면 이런 견제가 들어올 리가 없기 때문이다.
실력이 정말 떨어지는데 소속사와 방송사와의 관계도에 따른 조작으로만 올라왔다고 생각했으면, 오히려 비웃고 무시하려 했을 터였다. 이렇게까지 날을 세우고 견제하려 들 필요까진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놈이 내가 어떻게든 실수하길 바라고, 깎아내리지 못해 안달인 건…….’
그만큼 위기감을 느낀다는 뜻일 터였다. 라이벌로서인지 아니면 과거의 트라우마를 떠올리는 존재로 대하는 건지는 몰라도.
나는 혼란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는 유찬희에게 말했다.
“내가 네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지. 하지만 이용할 수 있는 건 이용해. 너 절실하다며, 데뷔하고 싶은 거 아냐?”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인데.”
“말했잖아, 같은 팀이니까 상관없지 않다고. 한 명이 제대로 못 하면 떨어지는 게 팀전 아니야?”
“…….”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건 개인전이 아니고, 난 지금 떨어질 생각 없어서 최대한 네가 똑바로 해 줬으면 좋겠거든.”
그리고 그건 내게도 통용되는 말이었다.
‘…아니, 어쩌면 너무 늦었지.’
원래대로라면 시작부터 한 번은 제대로 짚고 넘어갔어야 하는 문제였다. 그러나, 나는 이놈과의 직접적인 대립을 지금까지 최대한 미뤄 왔다.
‘안 좋은 버릇이 있나.’
왜냐하면 나는 이놈과 굳이 직접적으로 대립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감정싸움을 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 괜한 분쟁으로 쓸데없이 기력을 낭비해 봐야 손해라고 생각했다. 갈등보다는 서로를 무시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그러나 지금 우리는 팀이었다. 한시적이긴 하지만, 어쨌든 운명 공동체란 말이다.
그리고 경험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그대로 내버려 두면, 그 팀은 제대로 된 무대를 보여 줄 수 없었다.
“내 상판이 보기 싫어도 며칠만 더 참아. 어차피 미션 끝나고 살아남기만 하면 끝이니까.”
그 때문에 나는 직접적으로 놈과 대립해 결판을 내기로 마음먹은 것이었다.
라이트닝의 멤버들과는 달리 이놈에게는 간절한 목표가 있고, 그러면 한시적으로나마 휴전을 할 수 있을 테니까.
“대신 살아남을 때까진 할 수 있는 건 다 해 봐. 그게 네가 말하는 노력이란 거 아냐? 선택적으로, 너 편한 대로만 노력하지 말고 보컬 쪽으로는 최대한 협력해 줄 테니까 뭐든 해 보라고.”
“…뭔데? 결국 너도 나한테 도움 구해 보자고 이러는 거잖아. 랩 관련으로 서로 교환하자고 그러는 거면서 나 위해 주는 척하지 마.”
내 말에 유찬희가 반감이 들기라도 한 듯, 다시금 날카로운 눈으로 그렇게 말했다.
“내가 언제 너 위해 준다고 했냐? 착각하지 마, 위해 주는 게 아니라 서로 이득 보자고 하는 거니까. 그리고 도와주기 싫으면 안 해 줘도 돼. 네 손해겠지만.”
그러나 나는 애초부터 유찬희에게 ‘도움을 준다.’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다. 이건 말 그대로 잠시 동안의 휴전과 그에 따른 협력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이 자식이 내게 가진 반감은 나로서는 억울한 것이지만, 타인의 마음을 돌릴 수 있는 방법 같은 건 난 알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봐 온 바로선 유찬희는 고집이 있는 놈이었다. 굳이 자신의 마음을 고쳐 가면서까지 내게 도움을 주려 하지는 않을 거란 뜻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팀인 만큼, 나는 유찬희가 계속해서 비뚤게 나가는 걸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어쨌든 정말로 살아남기는 해야 하지 않겠는가. 놈도 나도.
“하지만 생각은 똑바로 해, 진짜 데뷔하고 싶으면. 어떤 방향이 진짜 너한테 이득이고 최선인지 잘 생각해 보라고.”
“…….”
“X같아도 며칠만 참고 서로 이용해서 살아남은 다음 나랑 깨끗하게 손절하든지, 아니면 같이 동반으로 떨어져서 서로 손해 보든지 너 마음에 드는 대로 정해.”
“…내가 도움 같은 거 필요 없다고 하면?”
“너나 나나 나락 가는 거지. 다른 연습생들도 떨어지겠고. 어쩌다 6조를 이겨 내도 순위 하락은 피해 갈 수 없을 것 같은데.”
“…….”
“근데 그걸 최대한 피하고 싶은 건 너 아냐?”
데뷔 기회를 억울하게 빼앗긴 트라우마도 이겨 내지 못했으면서 [디어돌>에 나올 만큼 절박한 놈이다. 지금 와서 모든 걸 포기하고 싶어 하진 않을 터였다.
그리고 지금 단계에서 유찬희가 원하는 건 위기를 이겨 내는 반전 서사, 보컬 포지션을 통해 보여 줄 다재다능함, 협력을 통한 관계도 구축이다.
‘결국 이 모든 것들을 통틀어 이 자식이 가장 원하는 것은 인지도 상승과 순위 유지고.’
그리고 잠시 동안만 자존심을 꺾으면 유찬희는 자신이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었다. 지금처럼 놈이 필요한 서사를 위한 판이 제대로 깔린 미션이 없을 테니까.
제작진 또한 그런 구도를 바라고 있고.
“…갑자기 이러는 이유가 뭔데? 지금까진 그렇게 무시해 왔으면서. 그냥 각자 하던 대로 하면 되잖아.”
물론 유찬희도 이 사실을 알고 있을 터였다. 성격이 급하고 시야가 짧다 해도, 그게 결코 이놈이 바보란 뜻은 아니니까.
하지만 고집을 꺾는 건 쉬운 일이 아니기에, 유찬희는 마지막까지 그렇게 말해 왔다. 그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답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뭐가 됐는데? 너나 나나.”
“……!”
“지금까지 안 됐으면 다른 방향으로 시도해 봐야지. 그게 진짜 최선이니까.”
이 모든 이유가 어찌 되었든, 나 또한 절박하긴 매한가지였다. 나는 지금 [디어돌>에서 떨어질 순 없었기 때문이다.
‘그건 내게 있어 죽음을 의미하니까.’
즉, 간절한 건 나도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연습실을 나섰다. 이제 할 만큼은 다 했으니, 자리를 옮겨 연습을 지속할 생각이었다.
* * *
“…….”
“…….”
분명 그럴 생각이었는데.
“…음, 자리 비켜 드려요?”
“아니, 괜찮아……. 연습하는 중이었어?”
뜻하지 않게 마주한 주단우 때문에, 나는 가사지를 든 손을 슬쩍 내려야 했다.
‘…이 자식은 왜 여기 오냐.’
나는 어색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방에서는 도지혁과 천세림이 자고 있고, 그렇다고 타 팀의 연습실에 갈 수는 없어 결국 내가 온 곳은 한구석에 있는 계단참이었다.
연습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주단우가 온 탓에 나는 거의 반강제적으로 연습을 멈추어야 했다.
주단우 또한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었다. 그대로 뒤돌아 나가기도 애매하고 머무르기도 애매하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음.’
나는 슬쩍 눈길을 내려 주단우가 손에 들고 있는 가사지를 바라보았다. 가사지 위에는 빽빽하게 글자가 쓰여 있었다.
“…형은 왜 여기 왔어요? 팀 연습실은요?”
“아……. 이미 연습하고 있는 사람이 있어서…….”
주단우는 그렇게 말하고 입을 다물었지만, 나는 그 말을 통해 이미 연습실을 점거한 게 누군지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박우재군.’
주단우는 타인과 함께 연습실을 쓰는 걸 꺼려하지 않았다. 그런 주단우가 계단참까지 밀려 나왔다는 건, 같이 연습하기에는 거북한 사람이 이미 그 안에 있다는 뜻이겠지.
…나처럼.
‘…어쩌면 쫓겨났을 수도 있고.’
나는 그와 동시에 오늘 연습실로 향하는 동안 우리 뒤에서 따라오던 주단우가 박우재와 이야기하던 것을 떠올려 냈다.
-우재야, 편곡 말인데……. 우리 다시 한번 상의해 보는 건 어떨까.
-지금 저 놀려요? 연습하기도 바빠 죽겠는데 이제 와서 무슨 편곡을 바꿔요, 바꾸긴. 형은 포지션 관련으로 칭찬받아서 시간이 남아돈다 이거예요?
주단우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쏘아붙이며 아예 말문을 막아 버리던 박우재의 모습이 떠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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